나는 새벽형 인간이 아니라 고요형 인간이다

밤에 몰래 찾아온 고요

by 스틸노트


새벽 12시 24분. 잠에서 깼다.

집 안은 놀랄 만큼 조용했고,

모두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요즘 나는 거의 매일 아이가 잠드는 저녁 아홉 시 반에 함께 잠들고, 새벽 한두 시쯤 깬다. 두 시간 정도 뒤척이다가 서너 시쯤 다시 잠드는 수면 패턴이 생겼다. 아이 옆에 눕는 순간 하루 내내 분주하고 날이 서 있던 긴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저절로 잠이 온다. 억지로 잠들려 애쓰지 않아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다는 느낌이 좋아서 굳이 깨어 있으려 버티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일찍 잠에 들면 새벽에 한 번은 꼭 깬다는 것이다. 찾아보니,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졸림의 압력’ 같은 것이 조금씩 쌓이는데, 이를 수면압이라고 부른다. 아침에 막 일어났을 때는 거의 없던 이 압력이 하루 동안 서서히 높아지고, 밤이 되면 충분히 쌓여 깊이 잠들게 만든다.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 수면압은 다시 낮아진다.


나의 하루 패턴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된다. 평소 새벽에 일찍 일어나다 보니 낮 동안 피로가 꽤 쌓이고,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마무리하는 저녁 여덟 시쯤이면 이미 몸은 충분히 잠들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깊이 잠에 빠져 들고, 어느 정도 쉬고 나면 새벽 한두 시쯤 다시 눈이 떠지는 것이다. 충분히 잔 것처럼 머리가 맑아지면 그때부터 미뤄두었던 생각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건, 역사적으로 인간이 항상 한 번에 8시간을 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를 ‘Segmented Sleep’이라고 부르는데, 첫 번째 잠(first sleep)을 4시간 정도 자고, 잠시 깨어 있다가 다시 두 번째 잠(second sleep)을 3~4시간 이어서 자는 방식이다. 그 사이의 깨어 있는 시간 동안 사람들은 기도를 하거나 글을 쓰고 , 조용히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사색하거나 창작하는 사람들이 이 시간대를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왠지 이해가 된다.


어쩌면 자정을 막 지난 이 시간이, 해뜨기 직전의 새벽보다 내게 더 잘 맞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기상을 시작하고 모닝 리추얼을 지키려 애쓰면서도 늘 고민이 있었다. 아이가 중간에 깨거나 내가 먼저 깨어 다시 잠들기 어려운 날이면, 그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흘려보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새벽 한두 시라면 아이는 깊이 잠들어 있고, 집은 가장 조용하며, 외부의 자극도 거의 없다. 생각하고 기록하기에 오히려 가장 완벽한 시간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진정한 보너스 타임. 새로운 선택지를 얻은 것처럼 머리가 환해졌다. 그동안 한 번에 충분히 자야 한다는 생각이 은근한 부담이었는데, 이 시간을 하나의 고요한 시간으로 받아들이기로 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지난 새벽, 다시 잠들기 애매한 시간에 깨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두 시간은 무척 만족스러웠다. 그 시간 덕분에 중요한 깨달음도 얻었다. 어쩌면 나는 ‘새벽형 인간’이기보다 ‘고요형 인간’에 가까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시간대보다 중요한 것은 ‘방해받지 않는 상태’였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생각을 구조화할 때 가장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


이른 새벽 두 시간이 주는 충만함은 어디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감각이었다. 밤에 몰래 찾아온 고요 속에서 나는 조용히 침잠하여 사색을 즐겼다. 아마 내일도 약속한 것처럼 이 시간에 다시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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