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제 엄마가 화내도 울지 않고 웃을 거야.”
아이는 내가 조금만 엄하게 말해도 금세 방안을 울음소리로 가득 채우곤 했다. 혼이 나는 상황을 유난히 힘들어했다. 그러던 아이가 이제는 눈물이 고인 눈에 힘을 잔뜩 주고서 씩씩하게 웃어 보인다.
마음이 꽤나 단단해졌다는 신호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전혀 달랐다. 비가 내리던 주말, 날이 추워 중앙도서관에 들렀다. 신발을 벗고 어린이 자료실에 들어간 아이는 구석진 공간에 앉아 한참 책을 읽었다. 그러다 책을 덮더니 공룡 인형과 계단, 벽에 붙은 벤치, 옹기종기 모여있는 책상과 의자를 오가며 놀기 시작했다.
그때, 작게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누군가의 짧은 탄성이 들렸다. 잠시 시야에서 벗어났던 아이가 아무 일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울지도 않고 딱히 다친 데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아이는 바닥에 누워 몸을 베베 꼬더니 자꾸만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감췄다. 남편이 건넨 책도 밀어내고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아이는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 달라진 분위기에 나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왜 그래? 아까 넘어졌을 때 아팠어? 아니면 놀랐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이는 참고 있던 눈물을 한 번에 터뜨렸다. 아마도 넘어졌다는 사실보다, 쿵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시선과 반응에 더 놀랐던 것 같다. 조용해야 하는 공간에서 자신이 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창피하고 더 움츠러들게 했을지도 모른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어서, 아이는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도서관 로비로 나왔다.
“많이 참느라 힘들었지. 마음이 다쳤구나. 이제 괜찮아. 지금은 크게 울어도 돼.”
언젠가 내게도 절실히 필요했던 곁을 떠올리며, 내 품에 안긴 아이의 귓가에 괜찮다고 속삭였다. 여기서는 마음껏 크게 울어도 된다고 연신 말해 주었다. 아이는 묵힌 설움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나서야 진정된 아이는 집에 돌아가는 차 안에서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아이 얼굴을 보며 여러 감정이 스쳐 마음이 쓰렸다.
내가 어떻게 반응했어야 했을까, 조금 더 세심히 살필걸. 미안함과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날의 경험이 아이에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가며 피할 수 없는 순간들을 마주한다. 당황스럽고, 창피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순간 얼어 버릴 때도 있다. 그런 불편한 순간을 조금 일찍 만난 것뿐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을 대신 막아줄 수 없다. 다만 아이가 울 때 곁에 있어줄 수는 있다. 혼자서 감당하기 버거운 감정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함께 견디는 것이다. 감정을 삼키는 일이 얼마나 외로운지 알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에게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더 자주 가르친다. 비슷한 상황마다, 책을 읽으면서, 놀이를 통해 감정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함께 고민한다. 아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엄마 정말 미워!”
“나 화가 나써!!”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아이는 이제 울음 말고도 말과 행동으로 감정을 표출할 줄 안다. 어린이집에서 나눠준 소고 장난감을 가져와 있는 힘껏 흔들기도 하고, 분노의 앞 구르기를 시전 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스스로 감정을 흘려보내고 진정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 모습이 참 대견하다.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약하다 생각하는 건 착각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직접 부딪히고, 흔들리고, 깨지고 또다시 붙으며, 생각보다 훨씬 단단해져 간다. 그저 견디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 곁에서 마음껏 울어도 되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단 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