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후유증

by 스틸노트


3월 초 이사를 하고 나서, 정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팬트리와 주방 수납, 가구 배치는 어느 정도 마무리했지만, 나머지는 살면서 천천히 정리해가고 있다.


그런데 한 공간을 공들여 정리해놓고 나면 뿌듯함은 잠시, 곧바로 다른 공간의 번잡함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아직 정리하지 못한 곳이 하루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집안일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지 않기 위해 등원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30분 정도 가벼운 집안일을 하는 루틴을 만들었다. 환기를 하고, 이불을 정리하고, 전날 밤 아이와 놀던 흔적과 분주했던 등원 준비의 자취를 정돈한다.


매일 어느 정도 단정한 상태를 유지하다 보니, 애써 외면하던 공간들이 이제는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느껴진다.


화장실에 들어설 때마다 세면대 위에 흩어진 칫솔과 치약, 클렌징 용품들. 현관에서 신발을 꺼낼 때마다 뒤섞인 신발들 사이에서 한 켤레를 골라 드는 일. 드레스룸에서 질서 없이 걸린 옷들 사이로 겨우 입을 옷을 찾아내는 순간.


겉옷을 챙기지 않아도 외출이 가능할 정도로 날씨가 포근해지고서야, 아이의 겨울옷을 서둘러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떠올린다.


이러한 생각들은 익은 수제비 반죽처럼 육수 위로 둥둥 떠오른다. 하나둘 떠오르다 보면 머릿속은 금세 복잡해지고, 내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방향을 잃는다.


어쩌면 내가 단정하고 정돈된 상태를 추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불확실성 때문일지도 모른다. 곳곳에 엉킨 실가닥을 풀어내며 완성된 옷의 윤곽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내 존재가 선명해질 것만 같은 믿음과도 같다.


정리의 감각은 곧 삶을 대하는 태도다. 어지럽고 방황하기 쉬운 일상 속에서 정리는 하나의 튼튼한 뼈대가 되어준다. 정리를 하다 보면 끝없이 계속 이어가야만 하는 무한의 굴레 속에 빠진 듯하다. 하지만 물건을 정리하며 익힌 감각은 결국 내 삶의 여러 구석을 정리하는 힘으로 확장된다.


여전히 정리 후유증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남겨진 찝찝함이 그리 싫지는 않다. 마음을 다스리듯 정리를 하는 동안, 나의 하루는 조금씩 단정해진다. 정리는 마음의 평정심과 근력을 기르는 매일의 운동과도 같다.


정리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의 리듬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리듬은 걸리는 것 없이 매끄럽게 정돈된 공간에서 시작된다. 로봇 청소기가 남긴 물자국 위에서는 무엇을 해도 반짝인다. 아무것도 없는 무대 위의 배우가 돋보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