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슬픔의 방문>, 장일호 에세이, 낮은산, 2022. (255쪽 분량)
문장이 깊다. 아버지의 부재와 어머니의 가난으로 장일호 작가는 철없는 시절을 패스하고 바로 어른이 된 듯 보였다. 불행할 때마다 읽었던 책들은 그녀의 마디마디를 키웠고, 책 속 인물을 심리적 부모로 삼았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찾아오는 슬픔. 슬픔이 느닷없이 문을 쾅쾅 두드릴 때 구석에서 떨었을 아이. 그러나 장일호는 자신을 방문한 슬픔(불행)을 '자원화'했다. 슬픔과 맞섰고, 그 강함으로 기자가 됐다. 기자가 되어 약자의 아픔을 쓰다듬어 주는 글들을 생성한다. 문장을 믿는 또 한 사람을 알았다. 장일호 기자님.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아버지는 자살했다. 당신 나이 스물아홉 살에. 여름이 한창인 1988년 초복이었고, 유서 한 장 없는 죽음이었다. 대체 청산가리는 어디서 어떻게 구한 걸까, 엄마는 아버지가 죽을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고 경찰에게 매달렸다. 경찰은 주검을 발견한 즉시 아내 동의 없는 부검을 마치고 사건을 하루 만에 종결시켰다. (p.15)
첫 문장이 강렬하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첫 문장도 생각났지만,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로 시작하는 카뮈의 <이방인>도 오버랩됐다. 결혼한 남자가 스물아홉에 아내(스물일곱), 딸(다섯 살), 아들(세 살)을 두고 청산가리를 구해 자살을 하는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장일호 작가에게 이 질문은 평생을 쫓아다녔겠다는 생각이 든다.
몇 년 전 후배가 물었다. "선배는 술, 담배, 커피, 고기 중에 하나만 끊어야 한다면 뭘 끊을 거야?"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답했다. "목숨". (p.38)
13년간 매년 주간지 50권을 만드는데 동참한 <시사IN> 장일호 기자. 퇴근 후에는 어김없이 술을 마시고, 마감을 지키며 취재와 글 쓰는 삶을 살았던 작가. "목숨"을 끊고 싶다니... 첫 문장과 연결된다. 불현듯 터지는 말들. 자살이란 단어가 작가에게 박혀있나 보다. 자살은 잘 살고 싶은 마음의 또 다른 표현일까. 자살= 살자. 잘 살자는 염원의 몸부림이기를.
그해 여름은 비가 지독했다. 장맛비가 자주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축축한 등이 먼저 알았다. 그럴 때면 책상 위로 올라가 쪼그려 앉곤 했다. 물이 차오르는 모양을, 빨간 쓰레받기를 들로 물을 걷어 내는 엄마를 하릴없이 바라보았다. 언제나 물이 이겼고, 나 대신 책이 울었다. (p.47)
지하에 물이 차면 장판도 젖고, 벽지도 젖고, 가구들도 잠긴다. 쓰레받기로 물을 퍼내는 엄마를 보며 작가도 울고, 책도 울고, 문장도 울었다. 가난은 지독한 슬픔의 방문이다. 2층으로 이사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빌고 빌어도 가난은 떠나지 않는 불청객.
상업고를 나온 사람이 드물고, 기초수급을 오랫동안 받았던 사람도 찾아보기 힘든 회사에서 내가 지나온 가난은 '자원'이었다. 다른 시각을 가졌으리라는 기대를 받았다. (p.69)
가난과 상처를 자원화하는 사람들의 비애. 그 강함과 용기도 때론 슬프다.
2010년 벌어진 '제2의 조두순 사건'이 특히 그랬다. 하필 사건 장소는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였다. 그날 밤 뉴스를 보며 눈시울을 적시는 엄마 앞으로 리모컨을 집어던지며 발버둥을 쳤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가 그때 그 아저씨를 신고하지 않아서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거라고, 왜 잊어버리고, 조심하라고 당부했냐고. 짐승처럼 울었다. 한바탕 난장을 피운 뒤 돌아누운 내게 엄마는 자신도 성폭력 생존자라고 말했다. 엄마가 고른 단어는 생존자가 아니었지만, 나는 그렇게 번역해 들었다. 엄마는 자신의 고통을 어떻게 '자원화'해야 하는지 몰랐고, 입이 있으되 말하지 못했다. 대신 엄마가 배운 건 "그러고도 다 살아"라는 체념이었다. (p.34)
자원화. 자원화에 성공(?) 한 사람과 실패(?) 한 사람의 차이. 그건 용기이거나 아니면 자기보호.
나는 어머니와 헤어진 직후 줄담배를 피우며 짝꿍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네 엄마'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며 길길이 날뛰었다. (p.149)
페미니즘이 뿌리박혀 있어도 시댁과의 갈등은 첩첩산중이다. 양쪽 모두 닿을 수 없는 간극. 부당함과 밀리고 싶지 않으려는 입장의 팽팽함. 찌질한 하찮음과 무참함의 신경전. 이것부터 '나의 투쟁'
어느 해였던가, 어머니 생신을 겸해 1박 2일 여행을 간 적 있다. 내 칫솔을 챙겼느냐 묻고, 이내 짝꿍의 칫솔도 챙기라고 말씀하셨다. 욕실에서 씻고 있던 짝꿍이 소리를 질렀다. "내 건 내가 챙기는 거지 그걸 왜 일호한테 말해!" 어머니가 무안한 표정으로 답했다. "으이구, 내가 느네 할머니가 했던 거처럼 일호한테 시집살이 시키면 아주 난리 나겠다."내가 웃으며 답했다.(p.151)
그래도 시어머님과 1박 2일 여행을 하는 며느리. 착한 마음이다. 남편도 저렇게 챙겨주고. 친정 엄마가 하는 말과 시어머니가 하는 말의 온도차. 아들이 하는 말을 듣는 시어머니는 무안하며 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겠다. 이런 말에 불끈하는 아들의 행동도 다소 과하다. 챙기라고 물어볼 수도 있는 것이지. 아니면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어머님의 말투에 분노가 쌓여 터진 거 같다. 여하튼, 잔소리는 서로를 멀어지게 하는 도구다.
안식월을 다짐한 건 수술 이후 지난하게 이어지던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끝난 몇 달 뒤였다. 제주에 와서 제일 처음 한 일은 꽃집 찾기였다. 다이소에서 2000원 짜리 작은 병을 사서 꽃집에 들고 갔다. 병에 맞춰서 꽃을 꽂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침에 눈뜨면 상한 가지를 솎아 내고 물을 갈아 주었다. '찰나'와 '무용함'을 생각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제주에서 지낼 집은 카페공드리 사장 부부가 미리 알아봐 줬다. 머무는 동안 드는 각종 비용은 회사 선배들이 앞다퉈댔다. 그러고 보면 내가 회사에서 배운 가장 큰 것은 기사나 취재가 아니었다. 선배들은 선배가 베푼 것은 선배에게 갚으려 하지 말고 후배에게 갚으라고 당부하곤 했다. 나는 선배들을 통해 마음은 정확하게 셈해 갚는 게 아니라 흐르는 것임을 배웠다.(p.246)
유방암 진단을 받고, 자신을 쓰다듬어줄 시간을 얻은 작가님. 제주에서 안식월을 보낸 것 너무 잘한 일이다. 다이소에서 꽃병을 사서 꽃을 꽂고, 바다를 보고 하늘을 보며 무슨 상념에 잠기셨을까. '찰나와 무용함'. 제주에서 두 단어가 피부에 닿았다는 문장을 헤아려본다. 지금 이 순간 영원할 거 같아도 삶은 찰나이지 않을까. 무용하지만 그 무용함을 애쓰며 살고 있는 인간들. 그리고 나.
도무지 해결되지 않는 질문을 들고 책 앞에 서곤 했다. 삶도, 세계도, 타인도, 나 자신조차도 책에 포개어 읽었다. 책은 내가 들고 온 슬픔이 쉴 자리를 반드시 만들어 주었다. 슬픔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 나는 아프고 다친 채로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고통으로 부서진 자리마다 열리는 가능성을 책 속에서 찾았다. 죽고, 아프고, 다치고, 미친 사람들이 즐비한 책 사이를 헤매며 내 삶의 마디들을 만들어 갔다. (서문)
'슬픔의 자리에서 비로소 열리는 가능성'이라는 제목이 붙은 서문이다. 슬픔이 방문한다면 옆자리에 앉히고, 다독여야 한다고 말하는 저자다. '슬픔의 얼굴은 구체적이었다'라는 말이 좋다. 슬픔은 다행히 예의가 있다. 적당히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만 슬픔을 준다. 슬픔이 올 때 책은 처방전이 된다. 문장을 먹고 치료를 받으면 더디더라도 눈물이 멈추고 마음이 잔잔해진다. 행복할 때도 슬플 때도 책은 약이 된다. 평소에는 영양제처럼 먹다가 급할 때는 비상약처럼 유용하다. 아마 내게 <슬픔의 방문>도 비상약이 될 거 같다.
'상처받는 마음을 돌보는
슬픔의 상상력에 기대어
나의 마음에 타인의 자리를 만들곤 했다.
살아가는 일이 살아남는 일이 되는 세상에서
기꺼이 슬픔과 나란히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