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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21. 2021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

샛별의 고독한 문장

고독한 문장 5.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에밀 아자르)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332쪽
나는 화장품을 들고 입술에 루주를 발라주고 볼터치를 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주었다.(332쪽)


  우리는 사랑을 알고 있을까. 사랑'한다'와 사랑을 '안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사랑을 하는 것과 사랑을 안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사랑의 폭이 다르다. 사랑을 안다 앞에는 '진정한'이란 수식이 생략되었다. 다시 묻는다.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알고 있을까.' 사랑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때로는 사랑을 한다면서 상대방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이기적인 사랑이다. 사랑이란 말로 타인을 소유하거나 구속과 억압도 있을 것이다. 사랑에는 늘 이러해야 한다라는 조건도 붙는다.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주인공 모모의 사랑은 차원이 다르다. 모모는 진정한 사랑을 알고 있다. 상대방을 더 사랑하는 것,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 상대방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사랑을 알고 있다. 그리고 내내 실천한다.  


  모모는 뭘 잘 훔친다. 워낙 능숙하게 훔쳐 걸리지도 않지만 걸려도 주인들이 봐준다. 식료품점 진열대에서 달걀을 하나 훔쳐도 가게 주인이 혼내기는 커녕 달걀 하나를 더 얹어 준다. 모모는 이상하게 사랑을 받는다. 모모를 보면 용서해주고 싶나 보다. 어느 날은 개를 훔쳤다. 모모는 훔친 강아지에게 '쉬페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쉬페르는 최고라는 뜻이다. 모모는 쉬페르를 품에 안고 산책을 시킨다. 모모는 개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키울 능력이 없다. 그게 우울했다. 모모는 쉬페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자라길 원했다. 지나가는 귀부인이 푸들인 쉬페르를 보고 예뻐하자 모모는 오백 프랑(대략 60만 원 정도)을 부른다. 오백 프랑을 주고 살 정도면 돈이 어느 정도 있는 집이다. 부자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 큰 금액을 불러 확인한다. 영특하다. 모모는 쉬페르에게 멋진 삶을 선물하고 싶었다. 쉬페르를 건네주고 받은 오백 프랑은 하수구에 버린다. 모모는 그 돈을 쓸 수 없다. 모모는 돈이 싫다. 돈을 버린 장소도 하수구이다. 구린내 나는 돈. 도대체 돈이라는 게 뭐길래 쉬페르와 같이 지내지도 못하게 만든다. 돈 때문에 자기가 사랑하는 쉬페르를 부잣집으로 입양시키는 게 슬펐다. 쉬페르를 위해 로자 아줌마 아파트보다 더 안전한 곳에 보내려는 모모. 쉬페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한다. 사랑하지만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모모가 아는 사랑법이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13쪽)


  모모는 울음이 터진다. 사랑 없이 살 수 있다니 모모는 생이 실망스럽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도 오버랩된다. 로자 아줌마가 자기를 사랑해서 같이 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돈을 받고 돌봤다게 믿어지지 않는다. 모모는 무척 슬펐다. 어린 모모에게 사랑은 중요한 문제였다. 사랑 없는 가족은 가족일까. 아줌마와 나는 가족인데, 사랑이 없어도 함께 살 수 있다니. 그렇다면 아줌마는 돈 때문에 나를 돌봤었나 등등. 어린 모모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혼란스럽다. 아줌마가 지금까지 자신을 돌봐준 게 돈 때문인지 사랑 때문인지 알고 싶다. 미치도록! 이제 송금이 끊겼는데 아줌마는 나를 버릴까. 나를 더 이상 돌봐주지 않을까. 빈민구제소에 가야 하나. 모모에게 사랑은 생존의 문제다. 어린 모모는 사랑에 천착한다. 사랑은 자기 앞에 놓인 생에서 중요한 질문이다.


  사랑의 의심은 모모의 기우였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무지 사랑한다. 모모를 돌보는 대가로 우편환을 받았건 받지 않았건 아줌마에게 중요치 않다. 아줌마는 모모의 나이를 속이기까지 했다. 네 살이나 나이를 어리게 계산했다. 모모는 자기가 열 살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실은 열네 살인데 말이다. 아줌마는 모모가 빨리 어른이 되는 게 싫었다며.나이가 훌쩍 많아지면 자신을 떠날 게 두려웠다 고백했다. 모모는 아줌마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를 와락 안아준다. 어쨌든 아줌마가 거짓말을 했으니 혼란스러울 법도 한데 그녀의 마음을 읽어준다. 이제 아줌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꼈다고 해야 할까.


  모모에게 로자 아줌마는 '전부'였다. 모모는 고아나 다름없이 엄마도 아빠도 모르고 컸다. 아줌마는 자기 부모에 대해 뭔가 아는 거 같은데 비밀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결국 나중에 자신의 아빠가 아파트로 찾아오고 엄마의 비극도 듣게 되지만, 모모에게 아줌마는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었다. 모모가 아줌마를 생각하는 마음은 상상을 초월한다. 로자 아줌마는 현재 65세다. 폴란드 태생이며 유태인이다. 아줌마는 아우슈비츠에 강제 수용된 적도 있었다. 몸무게는 95kg이다. 그녀는 매춘부였다. 폴란드에서부터 몸을 팔기 시작하여 파리의 푸르시 거리, 블롱델 거리를 전전했고, 모로코와 알제리에서도 몸을 팔았다. 오십이 되어 더 이상 엉덩이로 빌어 먹는 짓은 하지 말자며 아이들을 봐주기 시작했다. 돌봐주는 아이들은 매춘부 자식들이다. 그중 모모도 한 아이다.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아줌마는 일요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몄다. 가발을 쓰고, 화장을 진하게 하고 볼리에 광장에 나가 우아하게 앉아 있곤 했다. 아줌마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중이다. 아우슈비츠에 있었던 경험은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다. 자다가 비명을 지르고, 지하실에 자신만의 벙커를 마련한다. 아줌마는 이곳을 별장이라 불렀다. 모모가 지하실에 이런 공간이 왜 필요하냐고 물으니 아줌마는 무서워서 그랬단다. 아줌마는 향수도 좋아했다. 늘 좋은 냄새가 났다. 아줌마는 신경안정제를 자주 먹는다. 신경안정제 없이는 잠을 설치는 일이 많다. 아줌마는 초인종 소리를 싫어한다. 누가 초인종을 누르면 독일 친위대원들이 왔다는 착각에 빠져 허둥댄다. 아줌마는 심장이 좋지 않다. 아파트 칠층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고역이다. 모모는 아줌마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안다. 모르는 게 없다.


 모모는 아줌마를 늘 걱정한다. 생활비도 자꾸 마음에 걸린다. 자신 앞으로 왔던 송금도 이제는 끊겼다. 모모는 친구를 한 명 만든다. 우산으로 만든 친구 '아르튀르'다. 옷을 입히고, 얼굴도 만들고 신발도 신긴다. 아르튀르와 거리에서 쇼를 하면 사람들은 동전을 던져줬다. 이제 우편환도 오지 않으니  모모는 자기 손으로 밥벌이를 해보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로자 아줌마를 조금은 돕고 싶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줌마를 위해서. 모모의 초점은 온통 아줌마에게로 향하고 있다.


  모모는 꿈이 있다. 경찰 되고 싶다. 모모가 보기에 경찰은 힘이 센 존재다. 경찰이 되면 아줌마를 지켜줄 수 있을 거 같았다. 특히 프랑스에 온 이방인들은 경찰차만 봐도 겁을 냈다. 아줌마가 키웠던 아이가 경찰서장이 되었고, 경찰서장은 아줌마 뒤를 봐준다. 모모도 아줌마를 봐주려면 경찰이 좋을 거 같다. 모모는 작가도 되고 싶어 한다. 하밀 할아버지는 늘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 모모도 빅토르 위고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모모는 자신의 모든 생이 벅차다. 그동안 겪었던 많은 일들을 글로 쏟아낼 것이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 이야기를. '은밀한 집'이라고 불리는 로자 아줌마의 아파트를 배경으로 거리의 이웃들의 생을 쓸 것이다. 모모에게 가난은 힘들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배웠다. 그가 알고 있는 이웃들은 선하다. 착한 사람들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모모는 가난한 이웃들을 기억한다. 하밀 할아버지를 비롯해 의사 카츠 선생님, 은다 아메데 씨, 롤라 아줌마 등등.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배웠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할아버지는 여든다섯이다. 그는 늘 회색 젤라바(아랍인들이 평상복으로 입는 긴 망토)를 입고 다닌다. 할아버지는 양탄자 행상을 하며 온 세상을 다녔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 어릴 때 사랑했던 자밀라를 평생 잊지 못하는 할아버지다. 비숑 거리에서 자비심을 베푸는 의사 카츠 선생님도 모모가 존경하는 인물이다. 카츠 선생님의 진단은 언제나 정확하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짓을 하면 카츠 선생님께 데리고 온다. 강아지를 팔고 받은 오백 프랑을 하수구에 버렸을 때도 로자 아줌마는 당장 모모를 끌고 카츠 선생님께 달려왔다. 카츠 선생님은 모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며  로자 아줌마에게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주는 사람이다.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며. 현재 누가 더 아픈지 잘 알고 있는 유능한 의사다.


  모모는 은다 아메데 씨도 좋아한다. 파리 시내 모든 흑인들 가운데 최고의 멋쟁이다. 핑크색을 좋아하는 아저씨는 포주면서 뚜쟁이이다. 아메데 씨는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늘 멋진 핑크 실크 양복에 손가락마다 다이아 반지를 끼고 다녔다. 아메데 씨는 글을 몰라 부모님께 편지를 보낼 때 로자 아줌마의 힘을 빌리곤 했다. 모모가 좋아하는 롤라 아줌마는 같은 아파트 오층에 살았다. 볼로뉴 숲에서 동성연애자들을 상대로 돈을 번다. 그는 서른다섯살이며 세네갈 출신의 권투선수였다. 롤라 아줌마는 남자로 살기 싫어 성전환 수술을 했다. 늘 뾰족구두를 신고 다니고 매일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 롤라 아줌마는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살뜰하게 챙기는 이웃이다. 나중에 로자 아줌마가 많이 아프자 이웃들은 호의를 베푼다. 그중 왈룸바 씨도 있다.


  왈룸바 씨는 육층에 산다. 그는 카메룬 출신이며 청소부 일을 한다. 왈룸바 씨는 파리 생 미셸 거리에서 불을 삼키는 묘기를 보여 구경꾼들을 모은다. 아저씨는 아줌마가 기억하지 못하고 정신이 없을 때 불쇼를 보여주면서 충격요법을 써본다. 왈룸바 씨는 고향 사람들과 여덟 명이서 지낸다. 그 좁은 방에 여덟 명이 모여 산다니. 파리로 돈을 벌러 온 이주노동자이자 불법체류자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왈룸바 씨와 그의 동료들은 벨빌에서 유명하다. 혹시 집에 환자가 생기면 왈룸바 씨 일행이 달려가 아프리카식 종교의식을 치른다. 그는 추장처럼 생겼고 얼굴엔 온통 상처 투성이었지만 아줌마가 정신이 혼미할 때 최선을 다해 깨워 준다. 칠층짜리 아파트에 모여 사는 이웃들은 로자 아줌마의 슬픔을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다. 그만큼 로자 아줌마도 이웃들에게 베풀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아줌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틈만 나면 아줌마를 찾아오곤 했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를 떠날 준비를 한다. 점점 치매에 걸려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치매로 인한 합병증은 육중한 아줌마의 몸을 지배해버렸다. 아줌마는 더 이상 혼자 걸을 수도 없고, 일층으로 내려가지도 못한다. 어느 날은 벌거숭이가 되어 섹스숍에서 처럼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카츠 선생님은 아줌마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카츠 선생은 아줌마가 불법체류자이지만 병원으로 옮기자고 모모를 설득한다. 병원에 아줌마를 보내는 게 더 인간적이라면서. 모모는 그럴 수 없다. 아줌마가 자신은 절대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모모에게 도와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 편에서 생각해본다. 병원보다 집에서 죽는 게 더 나을까. 아줌마는 식물인간이 되어 사는 삶을 원치 않았다. 모모는 안락사까지 생각한다. 인간이 태어나는 건 선택할 수 없었지만 죽음은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런 생에서 구해주세요."(p.295)


로자 아줌마가 걸어온 생을 모모는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매춘부가 되어 여기저기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니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배신당하고, 오십이 넘어 매춘부가 낳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외롭게 살았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강제수용소에 갔다 온 트라우마는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 사진을 몸에 지녀야 마음의 안정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비난해야 할 사람의 사진을 말이다. 아줌마는 젊었을 때 예뻤다. 지금은 머리카락도 몇 가닥 남지 않았지만. 치매라는 병은 인간을 추하게 만든다. 자신이 옷을 벗고 춤을 춰도 모른다. 치매는 인간적 고귀함을 찾을 수 없는 병이다. 아줌마가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안락사뿐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카츠 선생님은 구급차를 불러 아줌마를 병원으로 옮길 것이 뻔하다. 대책이 필요하다.


 모모는 지하실을 생각했다. 아줌마의 최후는 지하벙커여야 한다. 지하실은 아줌마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공간이다. 지하실은 쓸쓸한 도구들로 가득 차 있지만 아줌마에게는 가장 평화로운 장소였다. 아줌마를 위해 모모는 힘겹게 지하실로 아줌마를 인도한다. 아줌마는 의식이 들면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아줌마는 정신이 들 때마다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매만진다. 거울을 보며 자신이 너무 추한 꼴이 되었다는 것에 눈물을 흘린다. 그녀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꾸몄다. 가발을 쓰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했다. 그녀는 죽음의 문턱에서 조차 아름답게 있길 원했다. 그게 그녀의 인생이었다. 모모는 지하실에 아줌마를 눕히고 촛불을 켜준다.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나는 화장품을 들고 입술에 루주를 발라주고 볼터치를 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주었다. 눈꺼풀과 푸른색과 흰색으로 칠해주고 그녀가 평소 하던 대로 애교점도 붙여주었다." (332쪽)


 모모는 아줌마 얼굴에 화장을 해준다. 아줌마가 평소 했던 방법대로. 모모는 아줌마가 어떻게 화장을 했는지 알고 있었을까. 화장하는 방법을 모른다 해도 루주를 발라주고, 볼터치 정도는 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주었다"라는 문장은 나를 울린다. 화장을 해본 사람은 눈썹 그리기가 어렵다는 걸 안다. 눈썹은 선을 조금만 잘 못 그어도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해야 한다. 눈썹은 사람마다 그리는 방법이 다르다. 눈썹 꼬리만 잘못 그려도 얼굴 인상이 바뀐다. 자기 얼굴에 어울리는 눈썹 모양이 있다. 모모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게 너무 놀랍다. 모모는 정말 아줌마를 사랑했구나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좋아하던 모양대로' 눈썹을 그려줬다니. 아줌마가 좋아하는 애교점도 찍어준다. 아줌마 얼굴과 눈썹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면 모를 부분이다. 모모는 그녀가 어떤 모양으로 눈썹을 그리는지 어떤 모양을 좋아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사랑하면 그 사람을 알게 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썹을 그려줄 수 있을까. 그가 좋아하는 모양대로 그려줄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이 문장 하나로 나는 모모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게 됐다.


  모모는 섬세한 아이다. 만약 아줌마가 책을 좋아했으면 지하실에서 책을 낭독해줬을 거다. 아줌마가 커피를 좋아했다면 커피 향을 나게 했을 것이다. 아줌마가 원하는 걸 해주는 모모다. 만약 <자기 앞의 생>을 영화나 연극으로 연출한다면 이 장면을 최고의 장면으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자기 앞의 생>은 거부한다. 모모가 아줌마를 '진정으로' 사랑한 숭고한 장면이다. 아줌마는 아름다운 걸 사랑했다. 죽음이 닥쳐도 예쁜 옷을 입고 유태인 동굴로, 지하벙커로 가고 싶어 하는 여자였다. 모모는 아줌마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았는지 안다. 가진 전부를 털어 아주머니에게 향수를 사다 뿌려준다. 아줌마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는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고 싶은 모모는 향수와 색조화장으로 아줌마를 부여잡고 있다. 아줌마는 점점 부패했지만 그 곁을 지켜준다. 그녀가 원했던 대로 죽음을 맞게 도와준다. 모모가 알고 있는 사랑이다.


 모모는 불우하게 태어났다. 일단 태어났으니 물릴 수도 없다. 자기 앞의 생! 이미 생은 주어져버렸다. 어찌 됐건 살아내야 한다. 열네 살이건 열 살이건 중요치 않다. 아랍인이건 유대인이건 상관없다. 모모는 아줌마와 살 집이 있고, 이웃들이 있다. 물건을 훔치고 살아가지만 모모에겐 우산 친구 아르튀르가 있다. 가끔 사자도 꿈에 나온다. 어느 부잣집에서 쉬페르도 잘 지낼 것이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의 사랑으로 지금까지 주어진 생을 버틸 수 있었다. 이제 아줌마는 곁에 없다. 열네 살이지만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이 지쳐버렸다. 그럼에도 이건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p.343)


밑줄 긋는 모든 문장은 슬프고 고독하다.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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