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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10. 2021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샛별의 고독한 문장

고독한 문장 4.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117쪽.                                                          


너무, 너무 아름다운 셔츠들이야.

  개츠비의 저택에 방문한 데이지의 대사이다. 아름다운 걸 보고 감탄하는 지점은 각각 다르겠지만 셔츠를 보고 흐느끼는 데이지 모습에 어리둥절하다. 누구는 지중해를 보고, 누구는 고흐 그림을 보고, 누구는 밤하늘 별을 보고 감탄하며 눈물을 흘릴지 모르겠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 나오는 여주인공 데이지는 '셔츠'를 보고 감격한다. 셔츠를 보고 우는 데이지의 마음을 가늠해본다. 쉽지가 않다. 그녀는 왜 '셔츠'를 보고 아름답다 말하며 흐느껴 울었을까. 감동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감수성이 풍부하네'라는 말을 한다. 남들보다 감동 포인트가 많거나 작은 일에도 감동을 쉽게 느끼는 경우가 이에 해당될 것이다.


  셔츠의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는 데이지는 어떤 여성일까. 그녀는 상류층에 태어났고, 명문가문에서 성장했다. 그녀가 셔츠를 보고 우는 모습은 상류사회의 '상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블루칼라, 화이트칼라로 직업군을 나누듯 셔츠는 젠틀맨의 의복이자 지식계급을 대변하는 메타포가 된다. 더구나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 셔츠. 영국에서 공수한 셔츠를 보고, 눈물 흘리는 데이지의 제스처는 소설에서 중요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옛사랑이던 개츠비가 성공해 자신 앞에 나타나 준 기쁨이 이 장면으로 대변될 것이다. 셔츠는 드디어 개츠비도 상류층으로 '입장'했음을 보여주는 티켓이 된다.  


  실패한 농사꾼 집안에서 태어난 개츠비는 어떻게 신분 상승에 성공했을까. 책은 개츠비의 성공신화에 대한 정확한 언급이 없다. 다만 여러 정황을 갖고 추측할 뿐이다. 그는 17살 때 제임스 개츠(James Catz)라는 이름을 제이 개츠비(Jay Gatsby)로  바꾸고 새롭게 태어난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농부의 아들이 성공신화를 이뤘다. 금광 투기에 선공한 댄을 만나 인연을 맺었고, 범죄조직과 연루된 정황만 보인다. 울프심과 비밀거래를 하는 부분이라던가 금주법 시대에 주류 밀매랑 연관이 있겠다고 추측할 뿐이다. 개츠비의 과거는 안갯속에 갇힌 듯 모호하다. 명확한 건 그는 돈을 벌었고, 데이지 앞에 당당하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어쨌든 그는 성공했다. 뉴욕에서 성공한 개츠비는 화려한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성공의 원동력은 단 하나 데이지 때문이다. 개츠비는 가난했기에 데이지와 결혼하지 못한 자신을 직면했다. 이제 부를 거머쥐었으니 첫사랑이었던 여자 데이지를 독차지하려 마음먹는다. 이미 데이지는 톰 뷰캐넌의 아내가 되어 있는데 말이다. 개츠비는 데이지 집이 보이는 건너편에 대저택을 구매한다. 그는 저택에서 샴페인을 터트리고, 오케스트라를 불러 연주를 시키고, 고급 요리와 오렌지 주스를 몇 백 잔 준비하며 파티를 연다. 파티는 초대장 없이도 누구나 입장 가능하다. 사람들은 흐느적거리며 광란의 밤을 보낸다. 개츠비는 파티가 소문나면 언젠가 데이지도 오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한다. 데이지와의 우연한 재회를 꿈꾸며 개츠비의 파티는 계속된다. 개츠비는 다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좀처럼 데이지는 파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날 파티에 조던 베이커가 오고, 이를 계기로 개츠비는 두 번째 계획에 들어간다. 데이지를 자기 집에 초대하기로. 데이지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주기 위해 그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데이지가 좋아할 것들로 집안을 꾸민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셔츠'이다. 데이지에게 보여 주고 싶은 자신의 옷장 속 셔츠들. 드디어 데이지는 개츠비의 집으로 초대되고 개츠비는 에나멜 장롱을 열어 산더미 같은 양복과 셔츠, 넥타이를 자랑한다. (영화는 이 부분을 환상적으로 포착했다.)


'문장이 새겨진 줄무늬 셔츠, 산호빛의 체크무늬 셔츠, 사과빛 푸른 셔츠, 인디언 블루의 이니셜이 새겨진 라벤더빛 혹은 연한 오렌지빛의 셔츠들. 그 순간 갑자기 데이지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얼굴을 셔츠 더미에 파묻고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p.117)


 명품 셔츠를 보고 아름답고 슬프다며 우는 데이지의 민감한 감수성을 개츠비는 꿰뚫고 있었다. 데이지의 감수성을 알아 봐주는 사람은 톰이 아닌 개츠비였다. 개츠비는 그녀를 위해 리넨 셔츠, 실크 셔츠, 란넬 셔츠들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고, 다채로운 색상의 셔츠들을 계속 테이블 위로 던져준다. 셔츠들은 각각 고유한 색깔들을 뽐내며 서로 뒤엉켜 데이지를 흥분시킨다. 데이지의 타고난 감수성을 캐치하는 개츠비이다. 개츠비는 상류층의 생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놓친 점이 하나 있다. 상류층은 단지 부로만 이뤄지지는 않는다. 그들에겐 엄청난 이기심이 존재했음을 모르고 있었다.


 당시 1920년 미국 사회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특수를 누린 나라였다. 군수물품 판매로 엄청난 부를 획득해 이때 당시 미국 GNP가 40% 증가하고 주식 수익률 108%였다는 연구가 있다. 세계 증시가 런던에서 뉴욕으로 넘어간 시기가 바로 이때다. 훗날 이 시대를 재즈 시대(Jazz Age),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라고 평가했다. 금주법이 시행되었던 시대였지만 밀주가 성행하고, 흥청망청 돈을 물 쓰듯 했던 상류계층. 그동안 지켜왔던 전통이나 신념에도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다. 부를 누리며 이기심과 탐욕이 난무하는 한마디로 불확실한 시대였다. 그러나 이면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참혹함을 겪는 사람들도 많았다. 1920년대는 가난, 고통이 함께 공존했다.  당시 피츠제럴드를 비롯해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존 스타인 벡 작가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 미국 작가들은 미국 사회가 진정으로 필요한 삶의 태도가 무엇인지 고민이 많았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도 여기에 속하는 작가였다.


  결국 개츠비는 비극을 맞는다. 어쩜 자명한 결말일지 모른다. 그가 추구했던 이상은 허황의 극치였다. 번역자 김영하는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는 평을 내놨다. 개츠비가 표적으로 삼았던 목표는 성공이었을 것이다. 데이지는 다만 수단에 불과했다. 떳떳하지 못한 삶의 태도는 그의 표적을 빗나가게 만든다. 그가 쏜 화살이 끝내 도달한 자리는 죽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츠비 앞에 붙은 '위대한'수식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개츠비의 위대함을 찾는다면 등장인물 중 톰 뷰캐넌이나 데이지, 조던 베이커, 화자 등을 통틀어 개츠비는 가장 노력한 사람이었다. 노력은 가치 있는 일이다. 그의 위대함을 말할 때 순수하다,  데이지만을 위해 희생했다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그의 위대함을 '노력'에 할애하고 싶다.


 '데이지'라는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력했다는 점에 위대함을 부여한다. 그는 열정적으로 노력했다. 그 방법이 설령 옳지 못했을지라도. 성공하겠다는 신념을 향해 노력하는 그의 태도를 비난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츠비에게 데이지가 있었듯이 누구나 마음속에 '데이지'가 있을지 모른다. 그 데이지는 자신이 추구하는 신념이나 목표가 될 수 있다. 그 신념이 옳고 그르고 가치 있고 없고는 불행하게도 모를 수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향해 직진했듯이 우리도 맹목적으로 직진하는 무엇이 있을 수 있다. 이때 <위대한 개츠비>는 독자에게 브레이크를 걸어준다. 자신이 추구하는 '데이지'를 한 번 점검해보라고. 데이지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때 액셀을 밟아 타자들을 희생시켰다. 우리가 할 일은 책을 읽고 표적의 가치를 늘 숙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향한 '데이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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