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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7. 2021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1권

샛별의 고독한 문장

고독한 문장 3.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권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권, 11쪽. 문학동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중 당신은 어떤 가정에서 태어났냐고 묻는다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불행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했던 요소는 물론 돈이었다. 돈이 없으면 싸움이 잦고 빚이 늘고 자꾸자꾸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간다. 또, 어린아이였던 나를 울게 만든다. 불행한 가족의 원인은 돈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가정마다 불행한 이유는 '나름나름'의 이유로 다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11쪽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다. 책은 세 가정이 나온다. 안나와 카레닌, 돌리와 오블론스키, 키티와 레빈 가정이다. 나중에 탄생한 안나와 브론스키 가정까지 합치면 정확히는 네 가정이 나온다. 안나는 두 가정을 경험해 본 유일한 여성이다. 그러나 안나는 두 가정을 지키지 못하고 실패한다. 첫 번째 가정에서는 가식에 둘러싸인 아내역할 했다면 두 번째 가정에서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가정을 무참히 파괴시킨다. 타자들은 두 가정을 깨버린 안나를 향해 비난 섞인 손가락질을 하며 '바람', '불륜'이라 부르겠지만, 안나에게는 '삶'이자 '투쟁'이었다 말할 것이다.  그럼, 첫 문장을 뒷받침하는 가정들을 파헤쳐 보자.


  우선, 안나와 카레닌 가족을 들여다본다. 안나는 고모의 주선으로 카레닌과 정략결혼을 했다. 정략결혼은 말 그대로 조건만 맞으면 사랑 없이도 가능한 결혼이다. 카레닌은 안나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남자다. 사랑도 없는데 스무 살 나이 차이는  괜찮았을까.   남편을 향한 사랑의 빈자리를 안나는 자식으로 환치시킨다. 안나는 아들 세료쥐아만을 바라보고 살기 시작한다. 카레닌은 백작이며 명예를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타자의 평판에 예민하다. 그에게  안나는 장식품에 불과했다. 카레닌도 사랑하는 마음 없이 안나를 선택한 경우다. 어린 미모의 신붓감으로 이 정도면 적당하다고 고른 경우다. 사랑 없이 조건으로 맺어진 결합. 가정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불쑥 사랑이 왔을 때 안나는 불꽃처럼 타오른다.


  카레닌은 자신의 아내가 딴 남자를 만나는 거 같아 의심하지만 묻지는 않는다. 결국 안나는 남편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청한다. 카레닌은 결투, 별거, 이혼, 비밀 중에서 고민하다 비밀을 택한다. 그는 안나의 불륜에 침묵한다. 카레닌은 이혼해 줄 수 없으니, 그냥 쇼윈도 부부처럼 자기 옆에 조용히 있으라고 명한다. 안나는 그럴 수 없다. 브론스키의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카레닌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안나를 용서할 수 없다. 남편으로 그녀의 죄를 벌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벌은 그녀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싶지 않은 것이며 아들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혼 문제로 안나는 더욱더 카레닌과 멀어진다.

  

  두 번째 가정을 보자. 돌리와 오블론스키가 꾸린 가정이다. 스테판 아르카디예비치 오블론스키는 공작이며, 안나의 오빠이다. 그는 바람둥이다. 1권 첫 문단부터 돌리는  이제 남편과 한 집에 살 수 없다고 푸념한다. 남편이 가정교사 프랑스 여자와 바람이 난 것이다. 결혼생활 9년 차이다. 오블론스키는 모스크바의 관청에서 근무하는 관리로 이번에 걸린 바람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다. 돌리는 참으며 지내왔다.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바람난 상대가 자기 집에 있는 가정교사라니. 이건 너무하지 않나 분노한다. 돌리는 세르바츠기 공작 가문의 첫째 딸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둘은 너무 맞지 않은 커플이다. 오블론스키는 너무 가볍고, 돌리는 너무 진중하다. 그럼에도 부부는 아이를 여섯 명이나 낳았다. 오블론스키는 이 가정을 깨고 싶지는 않다. 그의 애정행각은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오블론스키는 가정은 지키면서 다른 여자는 만나고 싶은 전형적인 '속물'이다.


  반면, 돌리는 자녀들에게 헌신적이며 남편을 너무도 사랑한다. 남편이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면 돌리는 용서 한다. 남편을 향한 돌리의 사랑이 불행하다.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종알종알 거리는 아이들로 돌리는 정신이 쏙 빠진다. 남편 도움 없이 돌리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느라 늙어버렸다. 오블론스키는 바깥으로만 돌고, 집안일은 쳐다보지 않고, 남편, 아버지 의무에 소홀하며 이사할 때도 자신은 가지 않고, 친구 레빈에게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따로 떨어져 사는 이 부부는 서먹서먹하며 만나는 장면도 몇 번 나오지 않는다.  

돌리는 임신, 입덧으로 추해지는 자신의 얼굴을 보며 한탄한다. 아이들 병은 끊이지 않고 양육하느라 하루라도 편할 날이 없다. 여름휴가 때 레빈의 집에 얹혀살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 이럴 때마다 돌리는 자신도 삶을 고쳐 다시 시작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말뿐이다. 돌리는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기가 두렵다.


  세 번째는 행복한 가정이 등장한다. 바로 키티와 레빈이 꾸린 가정이다. 가장 이상적인 가정을 재현했다. 가정이란 무릇 어떻게 탄생하고 어떻게 지켜나가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키티는 세르파츠키 공작의 막내딸이다. 레빈은 귀족이며 농장 지주이다. 톨스토이는 키티 가정을 통해 행복한 가정의 표본을 제공한다. 책은 키티와 레빈이 처음 만나는 순간부터 청혼, 거절, 다시 화해, 결혼으로 이어주며 한 가정을 탄생시킨다. 그래서 다른 가정과 달리 결혼식 장면부터 신혼생활 모습, 첫아들을 낳는 과정과 아빠가 된 심정까지 꼼꼼하게 묘사된다. 레빈과 키티는 자신들의 사랑을 소중하게 다루며 알콩달콩 키워나간다. 부부는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대화로  해결하고 이해한 후 넘어가려고 애쓴다. 설령 그 대화가 싸움으로 이어지더라도 자신이 느낀 솔직한 감정을 상대방에게 알린다. 앙금이 남지 않게 애쓴다. 이 가정은 '고만고만'한 행복한 가정의 대표성을 띤다.


  레빈은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한다. 레빈은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 세상에 온 것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한다. 그는 양봉 일로 바쁘면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꾼들을 보며 상념에 잠긴다. 레빈은 아내 키티와 아들을 생각하며 미래를 계획한다. 무엇을 하건 모든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진리를 찾으려 애쓴다. 삶에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숙고하는 사람이다. 키티도 이런 레빈을 인정하며 일상을 개척한다. 바느질을 하고, 세탁을 하고, 잼을 만들고, 아이를 낳고, 병간호를 하고. 일상에 만족감을 얻으며 농장 생활을 기꺼이 즐긴다. 레빈과 키티는 서로 사랑한다. 그럼에도 레빈과 키티는 행복한 가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그냥 최선을 다해 살뿐이다. '최소한의 행복'이 유지되길 바랄 뿐.  


  마지막  가정은 안나와 브론스키이다. 새로 탄생한 이 가정은  롤러코스터처럼 행복과 불행을 오간다. 너무 행복했다가 너무 불행했다 찬란하며 극박하다. 브론스키는 백작이며 부유층 출신으로 젊고 유명한 장교이다. 그는 모스크바 기차역에서 안나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안나가 워낙 예쁘기도 했지만 그녀에게서 '짓눌린 생기'를 알아본 것이다. 9년 만에 외출한 안나의 작은 흥분을 기막히게 알아챈 브론스키다. 안나를 보고 단번에 사랑에 빠져버린다. 브론스키는 사교계 스타였고, 많은 여성들이 그를 사모했지만 정작 본인은 안나를 선택한다. 안나가 키티처럼 미혼이었다면 이들의 사랑은 어땠을까. 이 가정의 비극은 자신의 사랑을 믿지 못했다는 점이다.  


  네 가정 중 세 가정은 불행하다. 불행한 가정이 된 나름나름의 이유는 각각 다르다. 안나에겐 사랑과 질투가 돌리에겐 외도와 경제적 이유가 카레닌에겐 명예와 자기기만이 불행한 가정의 요소로 각각 작동되었다. 불행을 행복으로 치환하는 방법은 있었을까. 그랬다면 불행한 가정에서 행복한 가정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가정을 만들고 지키고 이어가는 일은 무척 힘든 과정이다. 맹렬하게 지키려 했어도 너무 쉽게 와장창 깨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강을 잃거나 불운이 찾아오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은 무너진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가족의 죽음을 목도할 때 가정은 슬픔에 놓인다.  가정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사랑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지키려는 가정의 본질 말이다. 행복과 가정의 간극은 크기만 하다.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내가 속했던 가정, 현재 '지키고'있는 가정,  미래에 꾸밀 가정을 생각해 본다. 여러 가정의 초상을 담아낸 작품에서 해답을 찾게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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