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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06. 2021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2권

고독한 문장 2.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2권                                                                                                                                                                                                                                                                                                                                                                                                                                                                          

<안나 카레니나>2권, 584쪽.  (내가 대신 장난감을 전해주고 싶다.)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문학동네)는 총 3권인데, 그중 2권은 두꺼워도 너무 두껍다. 606쪽이다. 1권은 461쪽,  3권은 545쪽이니까  세 권을 합치면 총 1612쪽이다. 러시아 대문호답다. 불멸의 작품은 역시 스케일이 남다르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 1, 3권만 읽어도 내용이 연결된다던데, 어쩌자고 톨스토이는 이토록 많은 분량을 써서 독자들을(또는 나를) 힘들게 할까. 좀 전에 2권 완독을 하고 든 생각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7년 만에 다시 읽었다. 2권을 읽었나 싶을 정도로 내용이 생소하다. 분명 건너뛰지 않고 읽었는데 말이다. 레빈이 농부들과 하루 종일 풀 베는 장면부터 브론스키가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그렸고,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안나(안나의 딸)를 예뻐한 부분도 정말 낯설다. 그래도 2권 막바지에 나타난 문장은 또렷하게 기억났다.


바로 이 문장.

그녀는 어제 그토록 넘치는 사랑과 슬픔을 가게에서 골라가지고 왔던 장난감을 꺼낼 겨를도 없이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고 말았다.
                           (584쪽)                    

                                                                                                                                                                                                                                                                                                                                                                                                                                                           

  아이고. 안나 님 그러게 브론스키랑 왜 그랬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안나와 세로쥐아(아들)가 안쓰러워 눈물이 다 난다.  '장난감을 꺼낼 겨를도 없이' 이 무슨 난폭한 디테일인가. 작가는 이걸 문장으로 만들어 기어이 독자를 자극한다. 모성을 꿰뚫고 있는 톨스토이가 얄궂다. 아들 생일 선물을 꺼낼 겨를도 없이 그대로 가지도 돌아오다니... 주루룩 눈물 흘리지 않고선 못 배기는 장면이 아닌가.


  안나는 다른 남자(브론스키)의 아이를 낳고 남편(카레닌)과 아들(세료쥐아)을 버리고 떠난 여자다. 안나는 그토록 원하던 브론스키와 살게 되고 러시아를 떠나 유럽을 여행하며 행복했지만 마음 한편엔 늘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했다. 이탈리아에 있던 안나는 아들 생일을 위해 잠시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브론스키에게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들킬까 봐 말도 꺼내지 못한다. 아홉 살 된 아들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었던 엄마. 안나는 이제 아들을 맘 편히 볼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페테르부르크를 떠날 때와 지금의 위치는 달라져 있었다. 안나는 고귀한 백작부인에서 바람난 유부녀로 전략해 버렸다. 사교계에선 혐오의 눈빛으로 안나를 모욕하고 파티도 출입금지시킨다. 안나는 남편에게 아들을 만나 보고 싶다며 편지했지만, 거절당하자 그녀는 아들 생일날 무작정 남편 집으로 간다. 남편 몰래 아들을 만나야 하는 상황이다. 늙은 하인이 안나를 알아보고, "들어가시죠 마님"하는데 그의 뒷모습이 의연해 보인다. 드디어 모자 상봉.(흑흑)


"세료쥐아!"

"엄마"


잠결에 엄마를 본 세료쥐아는 "난 오늘 엄마가 올 줄 알고 있었다"라며 말한다. 안나는 세료쥐아의 말을 듣고 운다. 세료쥐아는 엄마 왜 우냐고, 목멘 소리를 한다. 카레닌은 세료쥐아에게 엄마는 죽었다고 알렸었다. 이런 상황에서 모자는 울지 않을 수 없다. 안나는 "엄마가 없을 때는 어떻게 옷을 입지? 어떻게...."(p.578)하며 부둥켜안고 운다.


안나는 고백 한다. 안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훌륭한 사람이다. 아버지를 사랑해야 한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죄를 지었다. 너도 크면 알게 될 거라 흐느끼며 말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당당해도 자식 앞에서는 한없는 죄인이 될 수밖에 없다. 엄마는 그런 존재다. 안나는 자식을 버리고 떠난 어미이기에 세료쥐아한테는 죄인이다. 그 죄는 씻을 길이 없다. 평생 미안함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지 않을까.


9시가 되자 아들을 보러 오는 남편의 발소리가 들리고 하인은 제발 마님 이젠 방에서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안나는 "아가!" 하며 차마 안녕이란 말은 삼키고 후다닥 나간다. 남편과 딱 마주친 안나는 정신없이 얼굴을 베일로 가리고 뛰다시피 나온다. 그리고 나오는 문장이다. '장난감을 꺼낼 겨를도 없이 그대로 가지고 돌아오고 말았다' ....  선물을  줄  겨를도 없이 죄지은 여인이 되어 뛰어나와야 하는 안나의 처지가 처량하다. 터덜터덜 호텔방으로 돌아오며 꺼내지 못한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 안나는 망연자실 했겠지. 자신의 신세에 한탄하고, 혼자 지낼 아들 생각에 가슴을 부여잡았을 터.


브론스키를 사랑했다는 죄는 모성을 단죄한다. 브론스키와 행복했어도 자식을 버리고 온 어미의 모습을 톨스토이는 리얼하게 포착하고 있다. 세료쥐아의 생일날은 매번 돌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안나는 생일선물이라도 주려고 이토록 애를 쓸 것이다. 1년에 한 번이라고 만나 볼 수 있다면 희망을 가질 텐데. 잠깐도 만나지 못하는 자신의 죄가 한없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이렇게 2권은 끝이 난다. 슬픔이 슬픔을 몰고 온다. 안나는 우여곡절 끝에 겨우 세료쥐아를 만났지만 선물도 주지 못하는 도망치듯 나와야 하는 숙명에 놓였다.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을 두고 남은 생을 살아야 하는 안나를 생각해본다. 사람은 완벽할 수 없다. 누구나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렇지만 부모는 자식에게만큼은 완벽해 보이고 싶은 심리가 있다. 아들을 생각하면 짓고 싶지 않을 죄였을 것이다. 죽지도 않은 자신을 아들에게 죽었다고 해야 하는 안나의 처지나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엄마를 이렇게 만나야는 세료쥐아의 처지가 안됐다. 앞으로 세료쥐아는 엄마를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 어린 나이에 엄마를 그리워하며 혼자 쓸쓸히 지내야 하는 세료쥐아의 운명이 안쓰럽다. 세료쥐아는 엄마를 용서해 줄까.


  만나면 안 될 사람을 만난 것처럼 둘의 짧은 해후는 이렇게 끝났다. 세로쥐아에겐 엄마를 본 마지막 시간이었을까. 아들을 만나는 장면에서 슬픈 죄인처럼 그려진 안나의 묘사가 불안한다. 톨스토이는 안나에게 어떤 단죄를 내릴까. 그녀의 속죄는 어떤 식으로 이어질까. 빨리 3권을 펼치고 싶다. 진짜 <안나 카레니나>는 가독성 탑이다. 등장인물 가득하고, 방대한 스토리지만 책은 독자를 몰입하게 만드는 데 여념이 없다. 최강 고전문학이다. 문장 문장마다  밑줄 긋고 사유하고 토론해도 밤이 모자랄 책이다. 추운 겨울밤, 사랑과 모성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그녀의 죄의식을 생각해 본다.                                               

<안나 카레니나>2권, 레프 톨스토이,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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