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소설집, 문학동네, 2022. (250쪽 분량)
인간은 끝 숫자에 약한 것일까. 1999년을 돌아보면 당시 종말론이 판을 쳤다. 종말은 숫자 '9'에 붙어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들로 인간을 괴롭혔다. 반면, 희망은 숫자 앞에 붙는다. 덕분에 밀레니엄 시대 2000년은 희망찼다. 2999년에도 사람들은 종말을 얘기할까. 2023년이 되어 1999년을 보면 그토록 평범한 과거였다. 전 세계는 괜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었다. 2023년은 이토록 평범한데 말이다. 코로나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금 2020을 바라보면 세상이 어찌 될지 불안했는데 다시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그러나 '평범'이란 말에는 '고통'이 숨어있다. 고통을 겪고 희망을 버리지 않을 때 우리는 '평범'을 맞이한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고통을 겪은 결과일지 모른다. 저절로 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김연수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토론했다. 참석한 샘들께서 3.5에서~ 5점까지 별점을 주셨다. 층층이 쌓인 은유를 하나씩 푸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미래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에 주목했다. 등장인물 중 교열을 보는 화자의 외삼촌도 언급했다.
사십 대인 외삼촌은 교보문고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사무실에서 교정을 본다. 외삼촌의 손을 거쳐간 책들 중 지영현이 쓴 <재와 먼지>도 있었다. 외삼촌의 기억으론 1974년, 75년에 <여성현대>에 당선된 장편소설이었는데 판매금지 당했다고 했다. 이유는 첫 문장 '1972년 10월을 우리는 시간의 끝이라고 불렀다.'(p.15)라는 부분 때문이다. 검열관은 10월 유신이 연상되서인지 판매금지를 결정했다. 그러나 <재와 먼지>는 판타지 소설이다. 지금 읽으면 아무 내용도 아니다. 이후 작가는 자살했다. 지민의 엄마인 지영현은 시대를 앞선 소설가였고 미래를 보는 안목을 지녔다. 화자는 20년 만에 <재와 먼지>를 손에 넣는다.
작가 지영현이 미래를 상상했다면 어땠을까. 대학생이 된 딸의 미래를 기억했다면... 지영현에게 미래의 가능성을 봤다면 자살하지 않았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녀에게 그렇게 요구할 수도 없다. 죽음을 선택한 자에게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공허하다. 다만, 동반자살을 하러 온 두 친구에게 미래의 가능성을 말해줄 수는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외삼촌의 행동뿐이다.
외삼촌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p.24)으며 동반자살을 하겠다는 조카와 지민에게 저녁을 들며 좀 더 얘기하자고 한다. 고깃집에 데려가 고기를 구워주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소설 속 외삼촌은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지민에게 <재와 먼지>의 내용을 들려주며 엄마의 자살로 고통받은 마음을 읽어준다. 이번 여름 방학에 자살을 할 거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지민의 말을 경청해준다. 지민에게 인식을 조금 바꿔보자고 권하고 과거만 기억하고 미래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비극이라는 말해준다. 엄마의 자살에서 벗어나 지민의 미래를 상상해 보라는 것. 미래는 이토록 평범할 수 있으니 지금을 살아보라는 것이다. 결국, 너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불안감에 휩싸였던 세계인들. 다행히 코로나 종말을 선언했고 마스크에서 해방됐다. 3년 전 코로나가 발생했을 때 마스크 쓰기, 거리 두기, 백신개발 등 우리는 하루하루 코로나와 싸웠다. 그런 날들을 보냈지만 언제 그랬냐는 둥 지금은 '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됐다. 이렇듯 미래가 늘 불안한 것은 아니다. 작가는 좀 더 확률적인 개념을 가져온다. <재와 먼지>를 소지한 김원이 카지노에 들락거리며 깨달은 하나를 전한다. '계속 지는 한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거의 100센트에 가까워진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결국 돈을 따게 돼 있'(p.22)다고. 다만 카지노에서 돈을 따지 못하는 건 판돈 때문이다. 확률과 현실의 간극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리는 카지노에서 돈을 딸 확률로 미래의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
미래는 가능성이다. '미래가 다가올 확률은 100퍼센트에 수렴한다는 것'(p.35)이다. 누군가에는 이 가능성이 오늘로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오늘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평범한 미래를 맞을 확률은 100에 가깝다. 작가는 이 단편에서 인식의 변화, 가능성, 세계를 바꾸는 방법, 다른 행동 등을 말한다. 어떻게든 지민을 살리고자 하는 인류애가 보였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다면 쓸 수 없을 단편이다. 김연수의 토닥임이 좋다.
발언 내용
-잔잔했고, 마지막 부분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문장이 좋았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묘했다.
-망치로 맞는 기분이다.
-미래를 보고, 가능성을 찾는다는 게 신선한 관점이었다.
-창창한 미래를 생각하는데 평범한 미래라니 인상적이다.
-강렬한 스토리였다.
-죽음. 종말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
-유명한 김연수 작가의 책을 읽어서 좋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거 같아 위로를 받았다.
-3번 사는 설정이 참신하다.
-짧은 단편에 여러 등장인물이 나와 산만했다.
-고전문학만 읽다 최근 소설은 잘 읽지 못했는데 너무 좋았다.
-장편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편 한 편 들여다볼 부분이 많았고, 에너지를 주는 책이다.
-여행을 다니는 작가가 부러웠다.
-요즘 작가들의 책을 잘 안 봤다.
-인터스텔라 영화가 생각났다.
-시간이 해체된 과거, 평행우주 같은 흐름이 보였다.
-엄마가 미래를 상상했더라면 어땠을까. 딸이 커서 대학생이 된 것을 상상했다면.
-표제작은 어려웠다.
-침울할 때 읽어 좋았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게 좋았다.
-그 외
외삼촌의 존재에 대해
-외삼촌은 신적인 존재 같다.
-신은 미래를 예언하는데, 외삼촌이 둘의 결혼을 말했다.
-신적인 관점, 시선을 가진 사람 같다.
-외삼촌은 엄마의 소설을 잘 알고 잘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야기꾼이다.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불안 요소를 부드럽게 해결하는 능력을 가졌다.
-지민이가 외삼촌에게 반했더라면 어땠을까.
-외삼촌 같은 사람이 있다면 위로가 되겠다.
-교정에 진심인 인물이다.
-둘의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다.
-그 외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3번의 삶을 산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인상 깊은 캐릭터 나누기
-카지노의 확률과 미래가 다가올 확률에 대해
-'지는 한이 있더라도 선택해야만 하는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대해
-<재와 먼지>라는 책 내용에 대해
-외삼촌이 '동반자살'할 거라는 지민의 말을 듣고 보인 태도에 대해
-미래를 상상하며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엔딩에서 둘이 맥주를 마시며 <재와 먼지>를 말하는 부분에 대해
-화자가 <재와 먼지>를 손에 넣는 과정에 대해
-'이토록 평범한 미래'라는 제목에 대해
-유체이탈, 도플갱어, 예지몽, 인체자연발화, 공중부양 등 불가사의한 능력에 대한 관심이 많은 화자에 대해
-김원 씨가 카지노에 들락거리며 했던 확률에 대해
-김원이 광화문 시위를 보면서 하는 말에 대해
-김원이 '다른 행동을 한 번 해보세요'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에 대해
-미래를 상상하며 미래에 있을 나를 그려보는 것에 대해
-미래가 이토록 평범하다면 지금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그 외
발췌
예언가들이 저마다의 성장 배경과 지적 능력에 따라 1999년을 해석했듯이 우리도 각자만의 1999년을 경험했다. 내게도 1999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그해 여름, 외삼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들른 교보문고에서 나는 쪽지 하나를 발견했다.(p.11)
지민이 말했다.
"제목이 뭐예요?"
"'재와 먼지'라고 하고요, 작가 이름은 지영헌이에요."
외삼촌은 티스푼으로 커피를 저었다. 이미 충분히 섞었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옆에서 보면 두꺼운 알이 하얗게 보이는 안경을 쓴 외삼촌이, 아직은 사십대였던 외삼촌이, 평생 책만 읽은 가난뱅이 외삼촌이, 꼼꼼한 교열자로 유명했으나 인터넷과 검색기가 교열을 대체하면서 20세기와 함게 쓸모가 사라진 외삼촌이 자기 머릿속을 뒤지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1974년인가 75년에 제1회 <여성현대>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당선된 작품, 맞죠?" (p.14)
과거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가 현재를 결정하는 것이다. 계속 지는 한 다음번에 이길 확률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까워진다. 미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는 결국 돈을 따게 돼 있었다. 다만 판돈이 부족했다. (p.22)
그래서 모든 책은 저자 자신이에요. 그러니 책 속의 문장이 바뀌려면 저자가 달라져야만 해요. (p.27)
"그게 내 앞의 세계를 바꾸는 방법이지요. 다른 행동을 한번 해보세요. 평소 해보지 않은 걸 시도해도 좋구요. 서핑을 배우거나 봉사활동을 한다거나. 그게 아니라 결심만 해도 좋아요. 아무런 이유 없이 오늘부터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거나. 아주 사소할지라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겠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눈앞의 풍경이 바뀔 거예요." (p.27)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미래를 기억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p.29)
"그러게. 그런데 살아보니까 그런 놀라운 말이 아니라 너무나 평범한 말이더라.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는 죽지 않고 결혼해 지금 이렇게 맥주를 마시고 있잖아. 줄리아는 그냥 이 사실을 말한 거야. 다만 이십년 빨리 말했을 분. 그 시차가 평범한 말을 신의 말처럼 들리게 한 거야. 소설에 미래를 기억하라고 쓴 엄마는 왜 죽었을까? 그게 늘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엄마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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