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추악한 욕망에 스러지는 고결한 영혼' 2023 토월정통연극/ 2023.5.12-6.4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기간: 2023. 5.12-6.4
관람시간: 170분(인터미션 15분)
5/27 2시 공연
"공기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도 질투란 놈이 끼어들면 예수님 말씀처럼 강력한 확증이 될 수 있어." (3막 3장 중)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 연극을 봤다. 오셀로, 이아고, 데스데모나, 에밀리아의 연기, 연출을 궁금해하며 좌석에 앉았다. 토월극장 무대는 넓이보다 깊이감이 상당했다. 배우들이 무대 앞까지 나오려면 걸음수가 꽤 나오겠다.
우선 오셀로를 실험적으로 연출한 부분들이 좋았다. 오셀로의 피부를 검게 분장하지 않은 점, 데스데모나(이설)의 의상이 마음에 들었다. 흰색 원피스였는데 치마주름이 많아 하늘하늘해 보였다. 재킷을 입고 벗으며 의상에 변화를 줬다. 오셀로의 롱 재킷도 근사했다. 오셀로를 맡은 유태웅 배우는 멋있었다. 발성도 좋고, 키도 컸다. 헤어도 애쉬그레이로 보였다. 오셀로 장군은 예상보다 훨씬 우아했다. 검은톤의 무대도 비극을 풍기는 듯 보였다.
에밀리아(이자람)도 정장바지를 입었고 하녀보다는 비서처럼 연기했다. 이아고(손상규)는 익살스러웠다. 가죽 재킷을 입었는데 허리를 굽혀 굽신거리는 모습이 시종일관 박쥐처럼 보였다. 이아고는 작은 악마처럼 오셀로는 근엄하게 무대에 등장했다. 네 명의 배우들이 번갈아가며 긴 대사를 했고, 성량도 호탕했다. 쉽지 않은 분량의 대사를 외우고 외웠을 배우님들. (존경을 표합니다.)
<오셀로>의 화두는 '질투'이다. 질투라는 녀석은 사람의 정신을 단순하게 만든다. 오셀로는 이아고를 정직한 충신으로 믿었고, 데스데모나의 순결을 믿었다. 그러나 이아고가 옆에서 데스데모나의 정조에 금이 가는 말들을 흘리자 오셀로의 사고는 한쪽으로 매몰된다. '오,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p.109, 오셀로)라는 이아고의 대사가 있다.
오셀로에게 퍼지는 질투심은 데스데모나를 창녀라고 확신하게 만든다. 카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하자 어떤 말도 귀에 들리지 않는다. 질투라는 괴물은 점점 장군의 늠름함을 의처증으로 추락시킨다. 아내를 의심하자 이아고가 말한 정황이 꿰맞쳐지며 그 생각에 집착한다. 24시간이 지옥이다. 특히, 자신이 준 '손수건'으로 카시오가 수염을 닦았다고 전해 듣자 질투의 화신은 극에 달한다. 데스데모나의 배신을 100퍼센트 믿는다. 책에는 '내 나이가 황혼에 접어들었기 때문에'(p.114)라는 대사가 있다. 나이가 많은 오셀로는 어린 데스데모나가 늘 불안했다. 젊은 아내가 잘생긴 카시오와 바람이 났다는 걸 알고 결혼생활을 저주한다.
함께 연극 보고 맛난 커피도 사주신O희 샘 고마워요. 행복했어요.
그렇다면 이아고(28세)는 오셀로와 데스데모나를 왜 갈라놓는 것일까. 이아고가 부관 자리에 발탁되지 못했고, 오셀로가 자신의 침실에 들락거렸으며, 흠모했던 데스데모나를 빼앗겼기 때문일까. 이아고의 미움 또한 또 다른 질투의 변형이다. 이아고는 계획적으로 접근해 오셀로를 조정한다. 그의 이유 없는 계략은 죄책감 없이 진행된다. 성적질투가 얼마나 강렬한지 잘 아는 이아고는 오셀로를 실험한다. 이아고는 오셀로를 극도로 미워하며 복수를 하는데 일말의 자책도 없다. 아내의 정조를 의심케하는 이아고의 발언들은 그토록 믿었던 오셀로의 사랑에 금이 간다. 다시 봐도 대단한 셰익스피어다. 사랑의 약속이 이토록 가벼울 수 있다니. 질투의 화신이 어떻게 파멸하는지 1604년에 썼다는 사실이 놀랍다.
데스데모나와 에밀리아의 연대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데스데모나가 죽자 버들노래를 불러주는 에밀리아. 남성들 사이에서 희생된 두 여자 주인공. 데스데모나는 방어력이 없었고, 에밀리아는 사실을 폭로하다 죽음을 당한다. 두 여성은 남성들에게 지배당하고 희생된다. 그럼에도 셰익스피어는 데스데모나를 뜨거운 사랑으로, 에밀리아를 의리 있는 여성으로 그렸다.
연극은 몇 가지 연출의 아쉬움을 남겼다.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장면은 우스꽝스러웠고, 오셀로가 죽는 부분도 질질 끌었다. 무대꾸밈, 대사소화, 음악, 조명 등도 좀 더 디테일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는 심플했고, 대사가 다소 늘어졌다. 그렇지만 에밀리아의 울부짖음은 울림이 컸다.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나 연극을 만들기는 무척 힘들다. 꾸준히 명작을 연출하는 실험정신, 새로운 기법 등을 구사하는 연극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오셀로>를 보면서 신선한 연출을 봤다. 계속 연극을 사랑하며 내가 모르는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졌다.
'오셀로' 연극 응원합니다.^^
책을 가져오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