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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l 31. 2023

김애란 <칼자국> 첫 문장

샛별BOOK연구소


김애란 단편 <칼자국>, 창비.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어머니는 내게 우는 여자도, 화장하는 여자도, 순종하는 여자도 아닌 칼을 쥔 여자였다. 건강하고 아름답지만 정장을 입고도 어묵을 우적우적 먹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음식을 우적우적 씹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촌부. 어머니는 칼 하나를 이십오 년 넘게 써 왔다.' (p.7)



  우리는 종종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니?" "너는 참 무심하다"라는 말을 듣거나 한다. 무심함의 사전적 의미는 '아무런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없다'이다. 김애란은 <칼자국>의 첫 문장으로 '어머니의 칼끝' 과 '무심함'을 연결시켰다. 소설 속 어머니는 20년 넘게 손칼국수집 '맛나당'을 운영하며 국수를 팔았다. 어머니는 평생 '칼'을 쥐고 산 여자였다. 칼로 '썰고, 가르고, 다지는 동안 칼은 종이처럼 얇아졌다'(p.8) 칼 하나로 무능한 남편과 어린 딸을 먹여 살렸다. 


  칼국수를 끓이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는 자동적, 습관적으로 칼을 잡았다. 칼을 쥐고 꽃게를 빠게고, 개고기 뒷다리를 잘랐다. 자식을 먹이려면 어머니는 끊임없이 칼로 무언가를 만들어야 했다. 어머니의 칼끝에 생각이나 감정 따위가 머물 시간이 없다. 그러니까 '무심함' 속에는 '어미'라는 본능이 존재한다. 칼이 닳고 닳도록 음식을 만들지 않으면 결코 새끼를 키우기 어려운 어미라는 존재. 그래서 김애란은 무심함에 '서려 있다'로 종결한다. 어머니가 이 칼을 쥐고 살아오면서 생각한 모든 말들과 감정들이 응축되어 칼끝에 서려있는 것이다. 무심하게 칼질을 하는 어머니의 뒤태에는 그녀가 지나온 세월의 말들이 '서려있다'. 


 첫문장을 읽고 무심함이 서려있는 것들을 주위에서 찾아본다. <칼자국>의 어머니는 칼이었지만, 누구는 삽이, 누구는 펜이, 누구는 운전대가 그 대상이 될 것이다. 그것들을 쥐고 평생을 무심하게 박차고 나가야 한다. 새끼를 먹이고 키우는 건 본능이다. 인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김애란은 하나의 사물인 '칼'에 어미의 본능을 투영했다. 칼자국의 첫문장은 이렇듯 어마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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