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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11. 2023

김금희 장편소설 <복자에게> 발췌(feat. 제주바다)

샛별BOOK연구소

김금희 장편소설 <복자에게>, 문학동네, 2020. (총 237쪽)


김금희 작가의 장편소설 <복자에게>를 읽다 제주가 그리워졌다. 소설 배경은 제주였고, 문장마다 제주바다가 넘실거렸다. 소설은 소송과 판결의 과정을 거치는 묵직한 내용이지만... 제주도의 지명이 언급될 때마다 설레며 읽었다. 제주를 느낄 수 있는 문장이 수두룩했고, 지난 올레길을 걸으며 찍은 사진들을 발췌와 섞어본다. 아! 올레길 한 시간이라도 걷고 싶다. 나중에 다시 꼼꼼히 읽어야 할 책 <복자에게>. 우선 발췌와 바다를 모아본다. 


발췌


고고리섬으로 전학을 간 건 1999년이었다.(p.9)


나는 그 해의 느낌을, 제주공항에서 대정읍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달리던 길의 풍경으로 기억했다. 고모가 이삿짐이 요것밖에 없느냐고 놀라며 캐리어를 가리켰을 때 "싹 다 버리라면서요"하고 볼멘소리로 답한 것 외에 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겪은 파산한 부모의 절망과 한심함과 무기력에 대해서는. (p.9)



고고리섬은 최남단 마라도보다 조금 북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면 다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봄의 청보리밭으로 유명한 섬이었다. 고고리는 이삭이라는 뜻의 제주어였다. 섬은 여객선 선착장이 있는 북리와, 주택을 비롯한 섬의 기반시설들이 갖춰져 있는 동리로 나뉘었다. 보건소 관사는 동리에 있었고 초등학교는 바로 맞은편이었다.(p.11)


-"야, 너," 

생각에 잠겨 터덜터덜 걷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용인대 호랑이 체육관'이라고 적힌 추리닝을 입은 여자애였다. "너 보건소 의사 선생님네로 이사온 얘지?" 말하는 모양으로 봐서는 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첫 만남에 말을 놓아도 되나. (p.18)



-"할망당에 인사를 했어야지. 안 그러면 그렇게 벌 받는다. 너 돈은 있냐?" 나는 주머니에서 천원을 꺼내 보았다. 그러면서도 얘가 지금 삥을 뜯으려는 건 아닌가 경계했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 그래도 고모가 여기 의사 선생님이고 저도 언젠가는 아픈 날이 있을 텐데 그러지는 않겠지. (p.20)


-그렇게 해서 함께 걷기 시작한 그애와 내가 그날의 해변 길에 있다. 한번 불어오면 나를 통과하며 저절로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힘을 써서 내가 찢고 나가야 하는 듯 느껴지는 거센 바닷바람 속에. 해야 하는 인사를 하지 않는 데 대한 사과가 필요하다며 앞장서 가는 그애의 뒷모습 속에. 방파제의 갯강구들을 밧줄로 괜히 훑어 바다로 빠뜨리며 걷는 그애의 전진 속에, 그해 그 섬에서의 시작이 있었다.(p.21)



-저녁이라 그런지 제주공항에는 수화물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휴대전화를 켜자마자 관사 관리인의 전화가 왔다. 아직 공사를 끝내지 못해 집에 돌아가면 인부들이 일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얘기였다. (p.34)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그런 상념에 빠져들어갔다. 표면적으로 욕설 탓이었다. 지난해 법정에서 두 차례 엿 까세요. 라고 했고 그건 정말 상황이 그랬기 때문이었지만 법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징계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을까. 사실 내면에 어딘가 에멘탈 치즈처럼 구멍이 난다고 느낀 건 오래전이었다. (p.35)



-공항을 나와 제일 먼저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정식을 시키자 전복과 딱새우가 가득 든 해물뚝배기에 반찬으로 돔베고기 꼬치가 나왔다. 사장이 딱새우 먹을 줄 아느야며 까는 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하다가 내가 자연스럽게 가로로 잡아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꺾어 껍데기를 벗겨내자 "정확하시네요"하고는 돌아갔다.(p.45)


사장은 바구니에 담긴 귤을 가리키며 공짜니까 가져가라고 했다. 귤들은 푸릇했고 점무늬가 있기도 했지만 싱싱해 보였다. '비닐봉지 제공 불가. 손에 쥘 수 있는 만큼만 욕심 내기'라고 안내문이 쓰여 있었다. 나는 누가 비닐봉지까지 달라고 하냐고 사장에게 물었따. 아주 양심이 불량하네, 하고. 맞장구를 칠 줄 알았는데 사장은 주방 쪽을 향해 "패마농 주문허카 말카?" 하더니 "네네"하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이 있고 그런 게 사람이죠."(p.47)



그날 우리는 산방산 근처의 오래딘 다금바리 식당으로 갔다. 홍충현 부장판사와 양선배와 함께였다. 그저 정기적인 친목 모임이라고 했는데 도착해보니 다른 사람들이 더 있었다.(p.50)


"그래요?"

"네, 날것 싫습니다. 생선은 구워야 고소하고 조리면 화려하고요."(p.55)


아빠가 세상을 떠난 2009년은 내가 사법고시에 합격한해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더 냉랭한 사람이었다.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본가를 가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 1차라 할지라도 사법고시 합격은 누군가와는 나눠야 할 기적 같은 소식이었다. 서울에서 바로 전철을 타고 수원으로 향했다. (p.57)



"내가 아빠를 미워했어. 아빠가 실패해서 아빠를 미워했어. 그런데 나는 아빠가 아니라 실패를 미워한 셈이라는 생각이 들어."(p.61)


제주에서 돌아왔을 때 나는 말이라는 것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말을 하기 위해 목에 힘을 주면 그 동작조차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대신 문을 완전히 잠가놓고 스스로를 허리띠로 의자에 묶어가며 독하게 공부했다.(p.63)


-고고리섬 바다에서 잡았다는 성게와 전복으로 배를 채우는 와중에도 일종의 민원이 우리 테이블로 밀려들었다.(p.72)



"무슨 돌인가요?"

"고넹이돌이라마씸." 고양이돌 말하는 거냐고 내가 묻자 좌중이 모두 여기 출신이 맞는구먼 하고 흐뭇해했다. 재작년에 태풍이 왔을 때 고넹이돌 해안가가 피해를 많이 보았다. 돌도 약간 파손이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바지선이 들어오더니 실어내갔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주민들은 바위가 너무 부서져서 나라에서 위험해서 치웠나보다 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돌은 서귀포시 대형 스파에서 발견되었다. 알고 보니 업자가 공사 폐기물 속에 넣어 훔쳐간 것이었다. 스파에서는 인테리어를 한 건설업체 탓을 하고 업체는 그 돌이 폐기물이었다고 주장을 한다고. (p.74)


-바람, 산담, 갯강구, 폐비닐, 낮은 지붕의 집들. 나와 고모가 살았던 집은 지금 의용소방서가 되어 있었다. 나는 동리 쪽 접안 시설을 지나면서는 그 집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복자의 집. 마을에서 드문 보라색 지붕 집. (p.76)



-승선 시간이 얼마 안 남았을 때야 매표소에 도착했다. 서둘러 승선 신고서를 작성하고 표를 받았다. 홍유가 터미널 안에서 파는 미역을 보고 사고 싶어했지만 내일 같이 사장을 가자고 말렸다. 유채꽃이 피는 시기라 터미널 안은 섬을 찾은 관광객들로 복작거리고 있었다. 고오세가 특산품 매대 앞에서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다가 "저기, 저기 이판사님!"하고 불렀다.(p.77)


-복자는 장래희망이 과학자였고 다랑초등학교 열두 명의 육한년 아이들 중 몇 안 되는 과학부 부원이었다. 과학경시 대회나 각종 발명품 대회에도 자주 참가했다. 그리고 과학자의 꿈을 위해 외국어 익히듯 표준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과학의 엄정한 개념들에 대해 다른 과학자들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일단 언어의 정립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라디오를 열심히 들었다.(p.83)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고고리섬 물살은 셌다. 배가 사흘이 멀다 하고 끊기고 외지인들이 들어왔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도 잦았다. 나는 마을에 그런 사고가 났다고 들으면 집밖을 나가기도 으스스했고 바닷가에 서 있자면 더 그랬다. 그래서 "그 사람은 아직 못 찾은 거 알아? 보말 잡으러 들어갔다가 못 나왔다잖아"하고 말하면, 복자는 낚싯대를 뺐다 넣었다 하다가 "아직 더 잡아야 하나보지 뭐"하고 농담하곤 했다. "다 잡으믄 나오겠지."(p.85)


-복자가 그렇게 상상한 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같은 동물원의 대표곡들 때문이었다. 나는 있다고, 출구에서 나오면 딱 있다고 답했다. 어차피 당장 확인할 수는 없을 테니까.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서 그걸 확인하는 건 아주 먼 일일 테니까. 아무리 빨라도 고등학생이나 돼야 할 테니까. 나는 한 계절 몇 달 만에 그렇게 멀어져버린 그곳에 대해 슬픔을 느꼈다가 따귀를 갈기듯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이를 꽉 물고 그런 마음을 내리 눌렀다.(p.86)



-휴게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 확실히 물 색이 짙고 파도가 더 거세게 치는 듯했다. 포말이 방파제에 부딪쳐 마치 폭죽처럼 화려하게 부서지곤 했다. 그 무렵 고모가 이규정에게 차마 보내지 못한 편지를 손에 넣은 나는 그걸 여러날 읽고 나서 거기에 담긴 비극과 슬픔과 그리움과 애정을 복자에게 읽어주었다. (p.92)


-저녁이 되자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깔렸다. 옥상에서 보니 오징어잡이 배들이 항구 가까이 정박해 있었다. 비가 올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복자가 제순이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번개를 무서워하는 제순이는 신기하게도 비가 오는 날이면 아주 예민해졌다.(p.94)



-우리는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주택과 상점들의 거리를 통과해 바다 쪽으로 갔다.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유채꽃이 있었다. 유채는 이 섬의 대지와 바위들과 잘 어울리는 꽃이었다. 그 극적인 노란빛에는 분명한 환희가 있었으니까. 선배는 아이 얘기를 많이 했다.(p.113)


-평일이라 그런지 바닷가는 한적했다. 제주는 내가 살았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관광지화되어 있었다. 그래서 좋은 일이란 음악이 들려오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인기 가요를 가게 사장 취향대로 틀어버리는 식이라 할지라도 풍경 앞에 섰을 때 으레 음악이 들리는 것이 좋았다. "선배님, 여기 대정 가면 비행장이 하나 있어요.""비행장이? 제주공항 말고 또 있어?" "지금 쓰는 비행장은 아니고 옛날 일본군이 벙커로 썼고 최후의 일전을 위해 확장했던 터인데요." 새로 다니게 된 중학교에서 마음에 드는 건 근처에 그 광활한 비행장이 있다는 점뿐이었다. 얘들이 알뜨르, 알뜨르, 라고 해서 뭔가 했더니 산방상 아래 뜰이라는 뜻이라 했다.(p.114)



-그리고 하늘하늘 유채꽃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저 무연하게, 들판의 끝까지 펼쳐지면서."얘, 그딘 가지 말라." 내가 기웃거리고 있자니 마을 주민들이 그렇게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이 많이 죽은 장소라고 했다. 제주에는 어디든 그런 죽음에 대한 경계가 있었다.(p.115)


-제주의 여름은 무엇보다 습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집안도 밖도 온통 눅눅했다. 작은 플라스틱 통에 든 습기제거제는 일주일도 안 돼 가득찼으므로 나는 어려서 고모가 그랬던 것처럼 염화칼슘 이십 킬로그램을 자루로 샀다. 홍유는 차라리 제습기를 사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 세간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마치 여행자처럼 가져온 짐만으로 이 계절을 넘겼으면 했다. (p.131)



-어스름한 새벽인데 벌써 물질을 나간 해녀들이 태왁을 띄워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온 뒤에 내는 긴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젯밤 겨우 와인 한 병을 가져온 고오세가 우리가 누운 평상 옆에 서서 열심히 설명해주던 별과 인공위성 구분법을 떠올렸다. 둘 다 밤하늘에 빛나는 점인 것은 같은데 지켜보면 인공위성은 조금씩 움직인다고. (p.139)


여름이 한창이었다. 생선 가게 주인이 한 팔을 내밀거나, 선풍기 바람이 비닐봉지들을 펄럭일 때마다 매대에 내려앉았던 파리떼가 와하하 일어났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생선을 토막 내고 오징어를 손질하는 주인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파리떼가 그의 유일한 아우라 같았다고 고모는 적었다. 오직 그것만이 토막 난 생선처럼 종결되지도 않고 차양 아래 오징어처럼 다 물러지지도 않은 채 생이 계속된다고 증언하는 듯했다.(p.163)



-해안의 거친 바위들, 섬의 유일한 공장인 보리 도정공장과 밭둑의 고인 돌들까지, 그렇게 위에서 보니 모든 것이 한없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드론이 점점 내려앉아 지붕의 시점이 되고 잠자리들의 시점이 되고 우리의 눈높이가 되고 갯강구들의 자리까지 내려와 착륙하면 슬픔이 먼지처럼 피어올랐다.(p.181)


-생선의 내장과 뼈를 한데 모아 봉지에 넣고 반쯤 녹은 얼음을 길가에 확 뿌렸다. 얼음에도 생선 비린내와 피냄새가 배어 있었다. 다라이에서 뻐금거리며 숨이 꼴깍꼴깍하던 광어를 아저씨는 칼등으로 툭 쳐서 기절시킨 다음 능숙하게 회를 떠서 오세에게 먹어보라고 했다.(p.196)



-복자의 말을 들으며 오름을 내려가는데 맑았던 날씨가 또 바뀌어 서리가 흩날렸다. 나는 지금 눈가에 번지는 건 눈물이 아니라 서리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대화가 가능한 오름에서의 날이란 전혀 불행하지 않다. 불행이 침범할 수가 없고 슬픔이 흩날리지 않는다. 복자도 울지 않으니까 나도 울 수가 없다. "복자야, 그런데 오늘 왜 새별오름이야? 왜 여기서 우리 만났지?" "예전에 할망이랑 들불 놓는 걸 봤던 게 생각나서 오랜만에 와봤지. 그대로네. 주차장 넓어진 거 빼고."(p.215)


-하지만 초저녁에 외로이 뜬 별처럼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오름에서 나는 말할 수 없는 배반감과 분노, 내가 맡고 있는 이 직분을 함부로 하는 침해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내가 베풀고 싶었던 선의와 우정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 세게 나를 찌르는 것이었다. "너 지금 일종의 선을 넘었어." 회색의 주차장은 이미 눈으로 다 젖어가고 있었다. "너는 지금 내 인생에서 침해하지 말아야 할 것을 침해한 거야."(p.217)



-해안을 계속 따라가려다가 마음을 바꿔 용눈이 오름과 산굼부리를 들렸다. 그리고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야외학습을 갔던 일이 생각나 민속마을로 갔다. 그전과 다르게 규모가 커져 있었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었다. 중국어와 일본어가 병기된 안내지도를 받고 그날따라 너무 차갑게 불어닥치는 산바람에 어깨를 옹송그린 채 안으로 들어갔다. 제주에 오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똥돼지는 자기들도 추운지 한참을 기다려도 우리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물옹기를 짊어진 아이 동상의 종아리가 아주 추워 보였다.(p.224)



-아무리 잘 빗어놓아도 머리를 다 흩뜨려놓는 바닷바람과 부두에 정박한 배들에게, 오늘도 끊이지 않는 민원들을 해결하느라 스쿠터를 타고 바쁠 미혜씨와 꿈의 변경이 용인되어 섬으로 돌아와 있는 오세에게, 그리고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이라도 냉동고에 넣으면 얼마든지 다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된다고 말할 줄 알았던 현명한 나의 친구, 복자에게.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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