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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05. 2021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

샛별의 고독한 문장

고독한 문장 6. 레이먼드 카버 <대성당>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 리뷰

                      <대성당> 중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119쪽.                                           
죄송합니다.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살다 보면 케이크 조각처럼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 특히 말이 그렇다. 힘들 때 누군가의  말 한마디는 따뜻한 위로가 된다. 작은 행동도 그렇다. 누군가의  별것 아닌 행동이 살아갈 때  힘을 얻는다.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1938~1988)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는 별것 아닌  두 가지 말과 행동이  등장한다.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고, 끝내 죽음을 맞는다. 아이의 죽음에 담당 의사의 정직한 말은 작은 위안이 된다.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롤빵을 대접하는 빵집 주인의  행동은 슬픔을 버틸 힘을 얻는다. 분명 삶에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 자식을 잃은 상황에서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은 『대성당』에서 중요한 소설이다. 원제는 <A SMALL, GOOD THING>이다. 레이먼드 카버를 말할 때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의 표현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주는 작품을 말한다. 카버의 소설은 어딘가 텅 빈 느낌을 받지만 계속 생각나게 하는 매력을 가졌다.  소설은 짧고, 간결하며, 쉬운 문체로 소시민의 삶을 열광적으로 다룬다. 작가는 삶의 공간에서 만날 수 있는 인물들을 리얼하게 그렸다. 빵집 주인, 의사, 맹인, 주부, 판매원, 회사원 등.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도 그중 하나다.


토요일 오후, 그녀는 쇼핑센터에 있는 제과점까지 차를 몰고 갔다. 갈피마다 케이크 사진들을 테이프로 붙여놓은 바인더를 훑어본 뒤, 그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했다. (p.91)


  앤 와이스는 토요일 오후 아들 생일파티를 위해 케이크를 맞추러 빵집에 갔다. 아들 이름은 ‘스코티’이다. 스코티는 다음 주 월요일이면 여덟 살이 된다. 엄마는 서른셋이다. 그녀의 발걸음이 가볍다. 케이크 주문은 설레는 일이다. 앤은 '하얗게 뿌려놓은 별들 아래 우주선이 설치된 발사대'(p.91)가 그려진 케이크를 골랐다. 앤은 케이크를 보고 기뻐할 아들 얼굴이 떠오르며 빵집 주인에게 다가간다.


  빵집 주인은 나이가 좀 있고 목이 두꺼운 남자로 흰색 앞치마를 걸치고 있었다. 주인은 앤이 주문한 케이크를 받아 적는데 퉁명스럽다. 앤은 '무례한 건 아니고, 다만 퉁명했다.'(p.92)고 느낀다. 빵집 주인을 묘사한 문장이 소설 분위기를 압도한다. 케이크 주문이 들어오면 기분이 좋을 텐데 퉁명스럽니. 무슨 못마땅한 일이라도. 성격이 원래 그런 걸까. 퉁명스러운 사람을 떠올려 본다. 퉁명스러운 사람에게 말을 걸면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대부분 말이 짧거나 무표정하다. 빵집 주인이면 손님에게 미소로 답해야 할 텐데 벌써부터 삐그덕 거린다. 그것도 생일 케이크를 맞추는 자리에서.


  평범했던 하루가 지났다. 다시 별것 아닌 것 같은 하루가 온다. 월요일 아침, 앤은 아이를 등교시키고 빵집에 들러 주문한 케이크를 찾고 오후에 생일파티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아이가 집으로 들어온다. 스코티는 뺑소니 차에 치였다며 눕는다. 앤은 놀란다. 아이는 곧 의식을 잃는다. 병원에 실려 간 아이는 뇌진탕과 통증, 구토를 보였고 폐에 체액이 들어가 펌프로 빼내는 치료를 받았다. 주치의 닥터 프랜시스는 스코티가 혼수상태는 아니라고 한다. 벌써 밤 열한 시다. 남편 하워드는 잠깐 집에 가서 씻고 올 예정이다. 옷도 갈아입을 겸. 그는 차를 몰며 기도한다. 아들을 살려달라고. 하워드는 순탄했던 자신의 과거가 스친다. 대학을 나오고, 결혼하고, 경영학 학위를 따려고 일 년 더 대학을 다니고, 투자회사에 취업하고, 스코티가 태어나고, 아빠가 되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지금까지 그런대로 운이 좋았다. 그는 다시 기도한다. 제발 아무 일 없게 도와 달라고. 여태 운이 좋았으니 운을 뺏지 말라고. 아직 희망은 있다. 스코티가 깨어나면 되는 거니까.


  하워드가 집에 도착하자 전화벨이 울린다. “여기에 가져가지 않은 케이크가 있는데요.”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요? 무슨 말씀이세요?” 하워드가 물었다. “케이크요.” 목소리가 말했다. “십육 달러짜리 케이크."(p.95) 카버는 '상대방이 말했다'라고 쓰지 않고 목소리라고 썼다. 대단하다. 지금 상황에서 하워드에게 들리는 건 목소리일 뿐일 테니. 아이는 위급한 상태로 병원에 누워 있다. 자신이 집에 있는 동안 아이가 죽을지도 모른다. 현재 너무 초조하고 고통스러운 상황이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목소리가 영 기분 나쁘다. 혹시 스코티를 친 뺑소니 그놈 목소리인가. 의심쩍다.


  닥터 프랜시스는 아이에게 포도당을 주입시킨다. 앤이 불안해하자 남편은 닥터 프랜시스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냐고 말한다. 간호사가 들어와 맥박을 잰다. 앤은 간호사를 붙잡고 아들 상태를 묻지만 간호사는 의사가 회진을 돌고 있다며 나간다. 곧 들어온 의사에게 앤은 아이가 왜 이리 잠만 자는지 묻는다. 의사는 "차차 좋아질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제 곧 깨어날 겁니다."(p.99)하더니 "다만, 두개골에 실처럼 금이 났어요." 한다. 앤은 말도 안 된다며 놀래자 의사는 뇌진탕이고 그로 인한 쇼크라고 설명한다. 하워드는 "이걸 혼수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말씀하셨죠?"라고 확인한다. 의사는 "맞아요. 이걸 혼수상태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한다. 앤은 "혼수상태인 거예요."(p.100) 단호하게 말한다. 의사는 혼수상태와 쇼크를 길게 설명하며 내일이면 좋아질 거라며 자리를 뜬다. 의사의 확신과 엄마의 불안은 대립된다. 의사는 앤에게 걱정을 좀 덜 할 필요가 있으며 자기를 믿으라고 하지만 엄마는 직감으로 안다. 아이가 지금까지 깨어나지 않는 건 위험하다는 징후다. 앤은 발만 동동거린다. 부모는 죽은 듯 잠만 자는 아이를 위해 해 줄 게 없다.


  의사는 곧 깨어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앤은 자꾸 물어본다. '혼수상태' 아니냐고.  앤은 답답할 노릇이다. 희망을 품고 기다리기엔 너무 초조하다. 의사가 기다리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의사는 희망의 말을 던진다. 아침이면 분명 호전될 거라고. 앤은 아무리 봐도 아들이 혼수상태 같다. 혼수상태는 각성 자체가 불가능하다. 무의식 상황이다. 눈을 뜨거나 소리를 내거나 자극에 반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의사는 쇼크이고 곧 깨어난다고 하니. 시간이 흐른다. 지금 아이는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이의 몸은 점점 차가워진다.   


  결국 아이는 사망한다. 의사들은 사망원인을 '히든 오클루전'이라고 했다. hidden occlusion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혈관폐색 증상을 뜻한다.' 히든 오클루전은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특이증상이다. 의사가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수술을 했으면 살릴 수도 있는 상황이라지만 놓쳤다. 앤이 그토록 묻지 않았는가. 기다림 밖에 없냐고. 혼수상태와 일시적 쇼크를 구별해서 처치를 달리했어야 한다. 환자에게 의사는 절대적인 존재다. 환자는 그들의 판단, 행동에만 의지한다. 부부는 무력감을 느낀다. 의사의 진단에 따라 아이가 죽기도 살기도 한다. 의사도 최선을 다했겠지만 스코티는 죽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의사는 진심 어린 사과를 한다. "죄송합니다. 정말 너무 죄송합니다" 의사는 어떤 변명도 없이 가장 '솔직한' 말로 잘못을 인정한다. 죄송하다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자신의 한계, 불가항력적인 상황, 판단에 대한 잘못, 아이에 대한 애도 등. 의사는 엑스레이를 찍고, 주사를 놓고, 맥박을 재고, 다른 전문의에게 의뢰하고, 수술을 준비했다. 의료사고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진료행위에 대한 잘못을 표한다. 저렇게 말했다가는 의료소송에라도 가면 불리할 텐데 의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을 한다. 아이는 부검을 할 예정이다.


  부검은 정상적이지 않은 죽음을 말해준다. 개인적으로 이런 상황이면 의료소송까지 진전되지 않을까. 의사의 계속된 낙관에 아이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아이가 좋아지기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의심했어야 했다. 의사의 말은 억장이 무너지는 앤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까? 앤은 아이를 살리지 못한 의사가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히든 오클루전'이라고 판단했으면 좋았겠지만 의사는 귀신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앤은 그의 말을 듣고 어쩔 수 없었음을 받아들인다. 비통하지만 아이는 세상을 떠났다. 의사의 말로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풀어진다. 아주 조금은.


  아이는 죽고 부부는 집으로 온다. 또 장난 전화를 받는다. 앤은 빵집 주인이 전화한 거라 생각하고 따지러 간다. 빵집 풍경, 빵집 주인 행동, 빵집 냄새, 빵집에 온 부부, 빵집 주인과 나눈 이야기를 리얼하게 묘사했다. 문장마다 빵 냄새가 날 거 같다. 빵집에 들어가 있는 착각에 빠진다. 빵집 주인은 전화에 대해 사과하고 정말 죄송하다고 말한다. 빵집 주인은 부부에게 용서해줄 마음을 내달라고 한다. 처음에 앤이 케이크를 맞추러 갔을 때 빵집 주인은 퉁명스럽다고 했다. 이 표현은 빵집 주인의 삶과 행적을 말해준다. 빵집 주인은 케이크를 주문하고 찾아가지 않아 화가 났다. 퉁명하지만 케이크에 대해 전화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다. 케이크 주문을 모르는 하워드의 반응에 빵집 주인은 더욱 화가 났다. 어쨌든, 오해와 분노가 뒤범벅이 된 통화에 대해 빵집 주인은 사과한다.


  빵집 주인은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아무래도 뭘 좀 드셔야겠네요.” “갓 구운 롤빵이라도 좀 드렸으면 싶은데, 드시고 살아내셔야죠. 이럴 땐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거든요.”(p.173)라고 말한다. 셋은 롤빵과 커피를 마신다. 아침이 올 때까지 빵집 주인은 외로움에 대해, 중년에 찾아온 무력감에 대해, 아이 없이 긴 세월을 지낸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해준다. 아마 빵집 주인도 아이를 잃었던 경험이 있었을까. 자식을 잃고 살아가는 부모의 남은 생은 고통이다. 그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딜지 빵집 주인은 알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해 대접한다.


  알고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소설이 위대할 때가 있다. 주인공처럼 누구라도 자식을 잃을 수 있다. 레이먼드 카버는 그 고통의 순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부부는 아이의 죽음이 비통했지만 의사는 최선을 다해 애도를 표했다. 그걸 부부는 느꼈다. 죄송하다고 말하는 의사를 부부는 받아들였다. 아들 생일 케이크 때문에 오해했던 사건도 따뜻한 롤빵으로 풀어졌다. 큰 싸움이 일어날 뻔 한 자리였지만 죄송하다는 사과와 행동은 이해라는 마음으로 누그러진다. 카버의 단편은 소설인데도 꼭 옆집에서 일어난 거 같은 리얼리티가 묻어 있다. 왜 레이먼드 카버를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고 부르는지 어렴풋이 알겠다. 짧은 분량에 단편적인 삶의 한 조각만 다뤘음에도 깊은 통찰이 일렁인다. 산다는 것에 대한 질문들이 계속 맴돈다. 너무나 인간적인 말 한마디, 사과하는 행동에 부부는 자식을 잃었지만 오늘을 견딜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우린 살아가야 한다.

밑줄 긋는 모든 문장은 슬프고 고독하다.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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