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스포일러 주의
<어파이어>(Afire, 2023)
정보: 드라마/ 독일/ 102분/ 2023.9.13개봉/ 12세 관람가
감독: 크리스티안 펫졸드
출연: 토마스 슈베르트(레온), 폴라 비어(나댜), 랭스턴 위벨(펠릭스), 엔노 트렙스(다비트), 매티아스 브랜트(헬무트).
비뚤어진 글쓰기
레온과 펠릭스는 차를 몰고 별장을 향한다. 음악을 듣고 나뭇잎을 보며 낭만을 만끽하는 순간도 잠시, 차가 고장 났다는 펠릭스의 말에 레온은 흥이 깨진다. 숲속 지름길로 트렁크와 짐을 낑낑 들고 별장에 입성한 두 사람.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나다가 이미 짐을 풀고 지내고 있었다. 첫날부터 삐거덕거린다.
레온은 두 번째 소설을 쓰는 중이다. 원고는 이미 출판사에 보냈고, 퇴고 단계에 있다. 출판사 사장이 방문해 출판 여부를 조언할 예정이다. 그래서인지 레온은 짜증만땅이다. 펠릭스도 포트폴리오 제작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그는 저녁을 만들고 지붕을 고치고 설거지를 한다. 수영도 하고, 사진작업도 한다. 일을 하면서도 생활을 즐긴다.
반면, 레온은 덥지도 않은지 여름인데도 재킷을 입고 원고를 들고 씨름한다. 그런다고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아닐 텐데. 왔다 갔다 하며 테니스 공을 던지고, 시리얼을 먹는다. 레온은 나댜를 엿보며 그녀의 흔적을 따라다닌다. 나댜는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레온의 글을 읽더니 형편없다고 비평해 준 그녀는 매 순간을 즐긴다. 충실한 일상이 빛난다. 그녀는 빨래를 하고, 섹스를 하고, 아이스크림을 팔고, 수영을 하고, 저녁을 넉넉히 만들어 대접할 줄 안다. 타인의 상황을 살피고 마음도 쓴다. 레온과 대립되는 삶의 태도를 지닌 여성이다.
펠릭스 또한 일의 경계를 짓지 않고 모든 게 일이라고 생각하며 단단한 생활을 한다. 레온은 글 쓰는 것만이 자신에게 일일뿐이다. 글쓰기 이외의 행동은 소모적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집중도를 높여 글을 써야 한다. 예술은 누구에게 영감을 줄까. 펠릭스일까. 레온일까.
레온은 일을 해야 한다며 생활을 등한시하더니 결국 글은 쓰지 않고, 잠을 시도 때도 없이 잔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소설을 붙들고 의기소침하고, 심술도 부린다. 위기 상황에 대처능력도 부족하다. 자신의 소설이 엉망인지 알면서도 그녀가 해준 비평을 인정하지 않는다. 작가인지 작가 흉내를 내는 것인지 구별이 어려운 레온의 글쓰기는 괜찮을까. 친구를 잃고, 비극을 겪고 나서야 삶의 태도가 진지해진다. 그제야 레온의 소설은 생명을 갖는다. 허구인 소설조차 생활에 뿌리를 내릴 때 열매를 맺는다.(평점 ★★★☆ 7점)
<여덟 개의 산>(The Eottoight Mountains, 2022)
정보: 드라마/ 이탈리아, 벨기에/ 147분/ 2023.9.20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감독: 펠릭스 반그뢰닝엔, 샤를로트 반더미르히.
출연: 루카 마리 넬리, 알레산드로 보르기.
풍요롭고 풍성하고 풍부한 산. 그리고 아버지.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코녜티의 소설 <여덟 개의 산>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 도시에 사는 피에트로와 숲에 사는 브루노. 둘은 여름마다 알프스 산에서 재회하며 우정을 쌓는다. 호수에서 헤엄치고, 들판을 뒹굴고, 숲을 탐험한다. 피에트로의 아버지 조반니는 브루노를 자식처럼 생각하며 도시에 나가 공부할 기회를 주려는데 브루노의 아버지는 허락하지 않는다. 이후 피에트로와 브루노는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 뒤 31살이 된 피에트로는 여행작가가 되어 세계 여기저기를 떠돈다. 아버지의 부음 소식으로 재회하게 된 옛 친구 브루노. 피에트로의 마음속에 늘 브루노가 있었다. 브루노는 피에트로에게 조반니의 유언이었다며 폐허를 허물고 새로운 집을 짓자고 한다. 벽돌공이 된 브루노는 돌과 나무를 나르고 척척 쌓는다. 시지프처럼 산을 오르고 내려가고 또 오르는 브루노. 묵묵히 하나의 목표를을 향해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피에트로는 고독을 느낀다.
피에트로가 머무를 곳은 어디일까. 세계 여기저기를 떠돌며 자신의 산을 찾아 헤매는 피에트로. 그는 어디에도 정착하기 어렵다. 복잡한 세계를 방황하는 방랑인. 인생의 반은 어른으로 인생의 반은 소년으로 살았다는 피에트로는 세상의 여덟 개 산을 돌아보고 자신이 있을 곳을 정한다. 하나의 산을 정복하며 사는 브루노와 달리. 둘의 우정은 알프스 산처럼 변화무쌍하지만 꿋꿋함은 변함이 없다. 늘 피에트로 안에는 브루노가 숨 쉬고 있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슬픔이 머물지 못한다. (평점 ★★★☆ 7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