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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08. 2023

[세계고전문학BOOK클럽]<나는 고양이로소이다>리뷰

샛별BOOK연구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617쪽)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p.612)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며, 주인공은 이름 없는 고양이다. ‘나는 고양이다. 이름은 아직 없다.’(p.16)는 책의 첫 문장이며, 고양이는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영어교사인 진노 쿠샤미 집에 들어가 빌붙는다. 책은 ‘고양이’의 눈을 빌어 풍자와 인간 사회를 비판한다. 그 역설적이 웃음과 유머로 승화되는 책이다. 


  화자인 ‘나’는 페르시아고양이다. 고양이를 화자로 내세워 당대의 지식계층을 유쾌하게 희화화했다. 주인 이름은 규사미이다. 그는 분메이 중학교 담임으로 돈코, 슨코, 막내딸을 두었다. 고양이인 ‘나’는 쿠샤미의 딸들과 잠드는 걸 좋아하고 온갖 고차원적인 생각들을 하며 동네를 돌아다닌다.  고양이는 어슬렁거리며 주인 규사미의 행동을 관조한다.  고양이는 “나는 인간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관찰하는데, 그럴수록 그들이 제멋대로 군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p.21)고 말한다. 동네에는 도둑고양이, 인력거집 검둥이, 화자 좋아했던 암고양이, 흰둥이들도 나온다. 다른 고양이들도 인간들을 무시한다. 건넛집 흰둥이도 인간만큼 인정머리가 없는 족속은 없다고 투덜거린다. 그러나 인간들은 고양이들이 조롱하는지 알지 못한다.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여 다들 우쭐거리며 거만하게 군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한 자가 나와 혹독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거만하게 굴지 모른다.”(p.25)


  고양이는 영어 교사인 구샤미 선생 집에 기거하며 선생 집에 모이는 친구들, 문하생들, 이웃들을 지켜본다. 고양이는 주인의 마음속을 훤히 뚫고 있는데 ‘독심술을 터득했’(p.466)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인간의 생각을 넘나드는 능력, 거리낌 없는 행동들을 하면서 구샤미 선생과 손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주인집 서재(사랑방)에는 끊임없이 손님들이 들락거린다. 


O순 샘~ 냥이들~~ 귀요미~ 


메이테이, 스즈키는 자주 이곳에서 음식을 시켜 먹고 얘기를 하다가 간다. 법과대학을 졸업하고 광산부에 근무하는 다타라 산페이는 주인에게 참마를 선물한다. 미즈시마 간게쓰군은 박사논문 준비중에 있고, 도시락을 싸서 하루종일 유리알을 깎는 작업을 한다. 부에몬 군은 연애편지에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곤역을 치른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구샤미 서재에서 꽃을 피운다. 고양이는 동네에서 가장 빠른 정보통을 갖고 있을지 모른다. 


  고양이가 관찰하고 비평하는 대상에는 구샤미 선생도 포함되어 있다. 고양이는 구샤미 선생을 옆에서 매일 보며 그의 일상과 자신의 일상을 교차하면서 서술한다. 특히 구샤미 선생의 서재에서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구샤미 선생도 자신의 안락한 공간에서 코털을 뽑기도 하고, 잠을 잔다. 


  주인이 자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리자 잠자코 있다가 오줌을 누러가자 “이런 바보 같은 놈!”(p.25)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고양이는 구샤미 선생과 가족들, 선생 집에 방문하는 손님들을 보면서 인간들을 분석한다.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양이 ‘나’는 20세기 메이지인들의 이중적이고 부조리한 모습에 대해 평가한다.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놀리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고,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 말고는 별 재주가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p.108) 고양이는 인간을 향한 ‘조롱’을 하는데, 인간의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고양이는 인간들이 납득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들지 않는 물건임에도 소유권을 행사하는 인간들의 모순덩어리. “이 드넓은 대지에 빈틈없이 울타리를 치고 말뚝을 세워 누구누구의 소유지로 구획하는 것은, 마치 창공에 새끼줄을 치고 여기는 나의 하늘, 저기는 그의 하늘이라고 신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토지를 잘라내어 한 평에 얼마를 받고 소유권을 매매한다면,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를 한 30세제곱미터로 나누어 팔아도 된다는 말이 된다.(p.187) 


고양이의 논리이지만 이치로 따지면 맞는 말이다. 인간들이 땅에 관한 소유욕으로 얼마나 많은 전쟁을 치러 영토를 확장하려지 보면 말이다.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는 것보다 고양이의 눈으로 인간들을 보면 더욱 적나라하게 평가받는다. 인간들의 실체가 얼마나 우스운지 자아낸다. 예리한 눈으로 발자국 소리 없이 어슬렁거리며 인간들을 살피고 조롱하는 저 고양이의 말들이 인간의 폐부를 찌르기도 한다. 




  구샤미 선생은 사람들 앞에서 “그래서 향후 세계의 추세는 자살자가 증가하고, 그 자살자가 모두 독창적인 방법으로 이 세상을 하직할 게 분명하네.”(p.587)하더니 “낙운관 같은 중학교에서도 정식 과목으로 윤리 대신 자살학을 가르치게 될 거야.”라는 말한다. 백 년 전에 자살에 대한 언급을 꺼림낌없이 하는 작가의 안목이 주목된다. 주인, 메이테이, 도쿠센, 간게쓰 도후군은 산페이 군이 가네다 씨 딸과 결혼을 축하한다며 맥주를 마신다. 손님들이 돌아가고 고양이는 맥주 두 잔을 다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더니 그만 물독에 풍덩하고 빠진다. 독에서 나가려고 안달을 해봐야 나갈 수 없으니 자연의 힘에 맡기고 저항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소세키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자신을 포함한 자기 본위의 이기주의와 위선적 교양주의에 물든 지식인 군상을, 더 나아가 어러석음과 뻔뻔함을 드러내는 사회 전체를 풍자한다.(...)이 책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압권은 풍자와 해학에 있을 테지만 그 뒤에 그늘로 드리워진 연민과 비애도 취해야 한다. 아마도 그것은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삐꺽거린 작가 자신에 대한 연민과 비애일 것이다”-장석주-


  백 년이 지난(2023년 기준 118년 전 작품) 지금도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쓰메 소세키는 영국 유학 후 위장병을 앓으며 우울과 혼란을 겪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를 빌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투영했다. 동물들은 혼란스럽지 않아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삶은 괴리가 없어 보였다. 배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는 동물을 보며 작가는 인간의 괴리를 포착했겠다. 나쓰메 소세키는 고양이가 되어 인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고양이 눈으로 인간의 가식을 문학 안에 끌고 온 그의 탁월함이 지금까지도 이 작품이 사랑받는 이유다.



성O 샘~ 직접 고양이 직구까지.... 감동입니다. 



■ 작가 소개 : 나쓰메 소세키 


 나쓰메 소세키(일본어: 夏目 漱, 石なつめ そうせき, 1867년(게이오 3년) 1월 11일~1916년(다이쇼 5년) 1월 9일)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평론가, 영문학자이다.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일본어: 夏目 金之助)이다.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마음》 등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있으며, 모리 오가이와 더불어 메이지 시대의 대문호로 꼽힌다. 소설, 수필, 하이쿠, 한시 등 여러 장르에 걸쳐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그의 사상과 윤리관 등은 후대 일본의 많은 근현대 작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초상은 일본 지폐 천엔(千円)권에 담겨 있었으나, 현재 천엔(千円)권에는 노구치 히데요로 바뀌었다. 현재는 해외에까지 그 이름이 알려져서 중국, 미국, 영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일본의 근대작가 중에서 가장 폭넓게 연구되고 있다. (출처:네이버)




등장인물


▶나(주인공)(吾輩) -구샤미 선생이 키우는 고양이. 소설의 화자.

▶미케코 (三毛子)-'나'의 이웃집에 사는 이현금(二弦琴) 선생이 키우는 암코양이. 언제나 주인공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인력거꾼네 깜둥이-검고 몸집이 큰 숫고양이. 무식하고 대단히 난폭하여 주인공이 무서워하고 있다.

▶구샤미 (珍野 苦沙弥 진노 구샤미[*])-중학교 영어 교사이며 고양이의 주인. 슬하에 자식 3명을 두었다. 편협한 성격으로 노이로제와 위장병을 앓고 있다. (소세키 자신이 모델인 것으로 짐작된다.)

▶메이테이 (迷亭)-구샤미의 친구인 미학자. 거짓말과 궤변으로 다른 이를 속이는 것이 취미다. (미학자인 오쓰카 야스지가 모델이라는 말이 있지만, 소세키가 부인했다.)

▶미즈시마 간게쓰 (水島 寒月)-구샤미의 옛제자이자 과학자로 상당한 호남이다. (데라다 도라히코가 모델이라고 한다.)

▶도후 (越智 東風 오치 도후[*])-간게쓰의 친구로 시인이다.

▶아마기 선생 (甘木先生)- 구샤미의 주치의.

▶가네다 (金田)-구샤미의 앙숙인 사업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구샤미를 괴롭힌다.

▶하나코 (金田 鼻子 가네다 하나코)-가네다의 부인. 자기 딸과 간게쓰와의 혼담 문제로 구샤미의 집에 왔다가 거만한 태도로 인해 냉대를 받는다. 코가 매우 거대해서 고양이가 〈하나코(鼻子)〉란 별명을 붙인다.


▶도미코 -가네다의 딸이며 어머니를 닮아 이기적인 아가씨.

▶스즈키 도주로 -구샤미와 메이테이의 동창생. 가네다 집안에 출입하면서 그의 사주를 받아 구샤미의 동정을 살핀다.

▶다타라 산페이 -구샤미의 서생이었으나 법대 졸업 후 회사에 다니고 있다.

▶야기 도쿠센-염소수염을 기른 철학자. 의미불명의 경구를 내뱉지만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유키에 (雪江)-구샤미의 조카딸. (출처: 위키백과)




■ 고양이의 기원 


고양이의 기원은 약 5000년 전 아프리카 리비아지방의 야생 고양이가 고대 이집트인에 의해, 순화ㆍ사육되어 점차 세계 각지로 퍼졌다. 우리나라에는 대체로 10세기 이전 중국과 내왕하는 과정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측된다. 인간과 고양이의 만남은 5,000년 이상의 세월 동안 계속되어 왔으며, 긴 시간을 거쳐 오는 동안 인간과 고양이의 관계는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인간과 고양이와의 관계에 급격한 변화가 시작된 것은 근대 이후부터이다. 과거 고양이의 생활이 야생적이었다고 한다면 현재는 인간에게 의존적인 애완의 색채가 짙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양이는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며, 적응력이 뛰어난 반면 자기 방식을 고집하고, 애정이 넘치면서도 경계심을 발휘하여 집단으로 생활하지만 외톨이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의존적이면서도 냉담한 ‘고양이는 인간보다 더 빨리 온 세계로 펴져 나가며 인간의 친구가 되었지만 그러면서도 늘 한쪽 발은 정글에 두고 있었다.’5) 길들이기 어려운 동물인 동시에 가장 사랑받는 애완동물인 고양이는 내면이 거의 바뀌지 않은 채 상황에 따라 외적 적응력이 바뀌어 왔던 것이다. 


인간과 함께 오랜 시간을 지낸 고양이는 고대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신성한 동물로 여김을 받았으나, 중세 크리스트교 문화권에서는 불길한 존재로 여김을 받으면서 ‘마녀의 동반자이자 악마의 앞잡이로 여겼다. 온갖 죄악의 상징’6)으로 비난받았으며 근대까지도 박해는 계속되었다. 


18세기 이후부터 고양이는 인간의 사랑스러운 동반자로 명예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행동이 우아하고 신비스러우며, 독립심이 강하고 변덕스러운 고양이는 예술가들을 매료시켜 시인과 문학자 등 지식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양이의 인기가 높아지자 <1871년에 최초로 ‘애완고양이 박람회’가 영국에서>7)열리게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서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에이프릴의 고양이』,『장화신은 고양이』,「뮤지컬 캣츠」,「고양이박물관」,「영화 고양이를 찾아서」,「마네키네코(招き猫)인형」,「키티인형」,「이웃집 토토로(となりのトトロ)」등으로 다양하게 고양이를 문화상품화하여 즐기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출처: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고양이로소이다에 나타난 고양이 먹이 고찰>


 

수고하셨습니다~ 샘들~ 




발췌



직업은 선생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식구들은 그가 뭐 대단한 면학가인 줄 알고 있다. 그 자신도 면학가인 척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식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다. 나는 가끔 발소리를 죽이고 그의 서재를 엿보곤 하는데, 대체로 그는 낮잠을 자고 있다. 가끔은 읽다 만 책에 침을 흘린다. 그는 위장이 약해서 피부가 담황색을 띠고 탄력도 없는 등 활기 없는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 주제에 밥은 또 엄청 먹는다. 배터지게 먹고 나서는 다카디아스타제라는 소화제를 먹는다. 그다음에 책장을 펼친다. 두세 페이지 읽으면 졸음이 몰려온다. 책에 침을 흘린다. 이것이 그가 매일 되풀이 되는 일과다.(p.19)


-나는 고양이지만 때론 이런 생각을 한다. 선생이란 정말 편한 직업이로구나. 인간으로 태어난다면 선생이 되는 게 제일 낫겠다. 이렇게 자빠져 자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고양이라고 못할 게 없지 않은가. 그래도 주인은 친구들이 찾아올 때마다, 선생만큼 힘든 건 없는 것 같다며 구시렁구시렁 불평을 늘어놓는다. (p.20)


-나를 편하게 해주는 일은 무엇하나 흔쾌히 해준 적도 없으면서 오줌 싸러 간다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하는 건 좀 심하다. 원래 인간이라는 족속은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여 다들 우쭐거리며 거만하게 군다. 인간보다 좀 더 강한 자가 나와 혹독하게 다루지 않는다면 앞으로 얼마나 더 거만하게 굴지 모른다.(p.25)


-남 보기에는 고양이가 다 똑같고 평등하며 차별이 없고 어떤 고양이도 고유한 특색 같은 건 없는 것 같지만, 고양이 사회에 들어가 보면 상당히 복잡하여 십인십색이라는 인간 세계의 말은 고양이 세계에서도 그대로 통한다. 눈, 코, 털, 발도 모두 제각각이다. 수염이 뻗은 모양새나 귀가 선 방식, 그리고 꼬리가 늘어진 정도에 이르기까지 같은 건 하나도 없다.(p.39)



-인간의 심리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 지금 주인이 화를 내고 있는지, 들떠 있는지, 또는 철학자의 유서에서 위안을 찾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 냉소를 보내고 있는 건지, 세상에 섞이고 싶은 건지, 사소한 일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 건지, 세상사에 초연한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p.49)


-“생각해보면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쥐를 잡아도, 도대체 인간이라는 족속만큼 뻔뻔스러운 놈들은 세상에 없을 거야. 남이 잡은 쥐를 죄다 빼앗아 파출소로 갖고 간다니까. 파출소에서는 누가 잡은 건지 모르니까. 쥐를 갖고 가기만 하면 그때마다 한 마리에 5전씩 쳐주거든. 우리 집 주인은 내 덕분에 1엔 50전쯤 벌었을 텐데도 제대로 된 음식 한 번 준 적이 없다니까. 이봐, 인간이라는 족속은 정말 겉만 멀쩡하지 순 도둑놈들이야.”(p.30)


-그에 비하면 고양이는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가 나면 열심히 화를 내고, 울 때는 죽어라 운다. 우선 일기처럼 쓸데없는 건 결코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주인처럼 겉과 속이 다른 인간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어두운 방에서나마 발휘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고양이족은 걷고 멈추고 앉고 눕고 일상생활, 똥을 누고 오줌을 누는 자잘한 일 등이 모두 진정한 일기이니, 특별히 그렇게 성가신 짓을 자신의 진면목을 보존할 필요가 없다. 일기 쓸 시간이 있다면 툇마루에서 잠이나 자겠다.(p.49)


-나는 얌전히 앉아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었는데, 우습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인간이라는 족속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써 입을 놀리고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에 웃고, 재미있지도 않은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 말고는 별 재주가 없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p.108)


-“지금 당장 곤란한 상황인가요? 다시 빚을 내야 하나요? 이 고양이가 개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사모님! 큼직한 개 한 마리 꼭 키우세요. 고양이는 쓸모없어요. 밥만 축내고. 쥐라도 좀 잡나요?” “한 마리도 잡은 적 없어요. 정말 교활하고 뻔뻔스러운 고양이라니까요.”

“아니, 그럼 다른 도리가 없겠네요. 얼른 내다버리세요. 제가 가져가 삶아 먹을까요?”

“어머, 다타라씨는 고양이도 드세요?”

“먹어봤습니다. 상당히 맛있어요.”

“정말 호걸이시네요.”(p.250)




-얼마 전부터 일본은 러시아와 큰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일본의 고양이니 물론 일본 편이다. 가능하면 혼성 고양이 여단을 조직해 러시아 병사들을 할퀴어주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까지 원기 왕성한 나인지라 쥐 한두 마리쯤 잡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쉽게 잡을 수 있다.(p.260)


-첫째, 오늘 찾아온 프록코트 차림의 백부님은 어떤가. 마음을 어디에 둔단 말인가…… 이 사람도 좀 수상한 것 같다.

둘째, 간게쓰 군은 어떤가. 도시락을 지참하고 아침부터 밤까지 유리알만 갈고 있다. 이 사람도 같은 부류다.

셋째는 …… 메이테이? 장난치고 돌아다니는 것을 천직으로 여기는 것 같다. 바로 쾌활한 미치광이임에 틀림없다.

넷째는…… 가네다 씨의 아내다. 악독한 근성은 완전히 상식에서 벗어나 있다. 완전한 미치광이다.


다섯째는 가네다 씨 차례다. 가네다 씨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지만, 우선 그 아내를 정중하게 떠답들고 금실 좋게 사는 것을 보면 비범한 인간으로 판단해도 별지장은 없을 것이다. 비범은 미치광이의 다른 이름이니 우선 이 사람도 같은 부류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p.465) 


-인간의 무릎 위에 올라가 졸고 있을 때 나는 내 부드러운 털을 인간의 배에 살짝 비빈다. 그러면 한 줄기 전기가 일어나 그의 마음속이 손에 잡힐 듯이 내 심안에 비친다. 얼마 전에는 주인이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갑자기, 이 고양이의 가죽을 벗겨 조끼를 만들면 아주 따뜻하겠는 걸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걸 바로 알아차리고 그만 등골이 오싹해진 일도 있다. 끔찍한 일이다. (p.467)


-요즘 문명의 경향을 넓은 시야에서 곰곰이 살펴 먼 미래의 추세를 점치자면 결혼은 불가능한 일이 될 거네. 놀라지 말게. 결혼은 불가능해질 거야. 이유는 이러하네.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요즘은 개성 중심의 세상이지. (...)세상이 확 변해 모든 생존자가 개성을 주장하기 시작하고 누구에게나 너는 너, 나는 나라고 말하게 되었네. (p.595)


-또 남편의 뜻대로 되는 아내라면, 아내가 아니라 인형이니까 말이야. 현명한 아내일수록 개성은 굉장한 정도로 발달하네. 발달하면 할수록 남편과 맞지 않게 되고. 맞지 않으면 자연히 남편과 충돌하지. 그러니 현명한 아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아침부터 밤까지 남편과 충돌하는 거야.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현명한 아내를 맞이하면 할수록 부부가 괴로워하는 정도도 심해지는 거지.(p.597) 


“저도 간게쓰 군 의견에 찬성합니다. 제 생각에 인간이 절대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길은 단 두 길뿐인데, 그 두 길은 바로 예술과 사랑입니다. 부부의 사랑은 그 하나를 대표하는 것이니까 인간은 반드시 결혼해서 이 행복을 완수하지 않으면 하늘의 뜻에 반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생님?”  


-인간은 개성의 동물이다. 개성을 없애면 인간을 없애는 것과 같은 결과에 빠진다.(...) 개성이 발달하지 않은 몽매한 시대라면 모르겠지만, 문명화된 오늘날 여전히 이런 병폐에 빠져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반성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고도로 개화한 오늘날 두 개의 개성이 보통 이상으로 친밀하게 연결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리 없다. 이렇게 명백한 이유가 있는데도 무식한 청춘남녀가 한때의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함부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심히 부도독한 까닭이다. 나는 인간의 도리를 위해, 문명을 위해, 그들 청춘남녀의 개성을 보호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 이 야만적인 풍습에 저항하지 않을 수 없다…….(p.598)


-주인은 조만간 위장병으로 죽을 것이다. 가네다 영감은 욕심 때문에 이미 죽은 것이나 진배없다. 가을 나뭇잎은 거의 다 떨어졌다. 죽는 것이 만물의 정해진 운명이니, 살아 있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일찌감치 죽는 것이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여러 선생님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운명은 자살로 귀착되는 모양이다. 방심하면 고양이도 그런 갑갑한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왠지 울적해졌다. 산페이 군이 사 온 맥주라도 마시고 기운 좀 내야겠다.(p.613)




수고하셨습니다~~~ 샘들~~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목숨이다. 여하튼 목숨이 붙어 있는 안 해볼 일이다. 죽고 나서, 아아, 아쉽다. 하고 무덤 속에서 후회해 야 소용없는 일이다. 과감히 마셔보자, 하고 기세 좋게 혀를 넣어 할짝할짝 해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쩐지 혀끝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얼얼했다. 인간은 무슨 별난 취향에 이런 썩어빠진 것을 마시는지 모르겠으나 고양이에게는 도저히 마실 게 못된다. 아무래도 고양이의 맥주는 궁합이 안 맞는 모양이다. 이거 큰일이다, 하고 일단 내민 혀를 거두어들였다가 생각을 바꿨다. 인간은 입버릇처럼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면서 감기에 걸리면 얼굴을 찡그리고 이상한 것을 마신다. 마셔서 낫는 것인지 그냥 낫는 데도 마시는 것인지 지금껏 의문이었는데 마침 잘 됐다. 이 문제를 맥주로 해결해 보자. 마시고 배 속까지 쓰면 그걸로 그만이다. 만약 신페이 군처럼 제정신을 잃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면 전무후무한 황제이니 동네 고양이들에게 가르쳐 줘도 될 것이다. 뭐 어떻게 될지 운을 하늘에 맡기고 해치우자고 결심하고 다시 혀를 내밀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 마시기 힘들어 질끈 감고 다시 할짝할짝 핥기 시작했다.(p.614)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물 위에 떠 있었다. 괴로워서 발톱으로 닥치는 대로 긁었으나 긁을 수 있는 것은 물뿐이어서 긁으면 바로 물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뒷발로 뛰어오르며 앞발로 긁었더니 드드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발에 뭔가 닿는 느낌이 있었다. 간신히 머리만 내밀고 어딘가 둘러봤더니 나는 커다란 독에 빠진 것이었다.(p.615)


-‘이제 그만두자. 될 대로 되라지. 드드득 긁어대는 건 이제 싫다.’ 앞발도 뒷발도 머리도 꼬리도 자연의 힘에 맡기고 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차츰 편해졌다. 고통스러운 것인지 다행스러운 것인지 짐작할 수가 없다. 물속에 있는 것인지 방 안에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그냥 편하다. 아니, 편하다는 느낌 자체도 느낄 수 없다. 세월을 잘라내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함으로 들어선다. 나는 죽는다. 죽어 이 태평함을 얻는다. 죽지 않으면 태평함을 얻을 수 없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고맙고도 고마운지고.(p.617)





표절 논란



"나쓰메 소세키가 에른스트 테오도어 아마데우스 호프만의 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발표할 당시에 표절 논란이 없지 않았던 모양이며, 고양이를 의인화하여 서술한 발상을 어느 정도 전용한 데 기인한 일로 보인다. 나쓰메 소세키도 호프만과 마찬가지로 고양이를 일인칭 화자-주인공으로 내세웠다. 고양이의 눈길로 작가가 처한 현실과 자전적인 내면을 환상과 중첩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말하였는데 둘 다 고양이의 위상을 돌올하게 하였다."  (출처: 부산일보/ '봄은 고양이인가?' 구모룡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호두까기 인형으로 유명한 독일 소설가 E. T. A. 호프만의 장편소설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 (원제 : Lebensansichten des Katers Murr) (일본어역:수고양이 무르의 인생관 牡猫ムルの人生観)>(1819년 1부, 1821년 2부)과 유사해서 표절 의혹을 받고 있다.


단순히 고양이가 화자라는 기본 설정에다가, 그 주인이 음악가이면서 문화인 즉 호프만 그 자신, 선생이면서 작가라는 나쓰메 소세키 설정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예를 들면 선생이 잣대[12]로 고양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장면이 있는데, 일본에서 버릇을 고치기 위해 고양이를 물체로 때린다는 것이 뜬금없었는데, 호프만의 작품에는 고양이가 말채찍으로 얻어맞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문장의 묘사도 비슷한 대목이 있다. 고양이가 11월에 죽은 것도 똑같은데, 모차르트 오타쿠였던 호프만은 수고양이 무르의 이른 죽음을 통해, 역시 요절한 천재 모차르트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린 필연성이 있었지만, 이 소설 속의 고양이는 맥주에 취해 물독에 빠져 돌발적인 사고로 죽어서 어떠한 의미도 없다.


소설의 마지막 연재분(1906년 8월호 게재)에는 100년 전에 죽은 무르라는 동족(고양이)이 언급*(하단 발췌 참고)되는데, 소세키의 양심적인 고백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은 이 작품이 연재하던 중에 <신소설(新小説)>이라는 문학 잡지 1906년 5월호에서 호프만의 소설을 표절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다. 고양이를 갑자기 죽이고, '100년 전에 죽은 무르가 이몸(와가하이)을 놀래키려고 먼 저승에서 출장온 것 같다'라는 어정쩡한 문구를 집어넣어 연재를 끝마친 이유로 추측된다." (출처: 나무위키)


*발췌---


"고양이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살게 된 것도 이제 2년이 넘었다. 나로서는 이 정도로 식견 있는 고양이는 다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번에 듣도 보도 못한 무르* 라는동족이 불쑥 나타나 기염을 토하는 바람에 살짝 놀랐다. 잘 들어보니 실은 백 년 전에 죽었는데 어쩌다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를 놀라게 하려고 일부러 유령이 되어 멀리 저승까지 출장을 왔다고 한다." (p.612)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여기서 무르는 <고양이 무르의 인생관>의 주인공 무르를 말한다. 


* 두 작품을 모두 읽고 비교해보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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