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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12. 2023

[세계고전문학BOOK클럽]<페레이라가 주장하다>리뷰

샛별BOOK연구소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안토니오 타부키, 문학동네. (190쪽)



  이탈리아 작가 안토니오 타부키의 1994년 작 『페레이라가 주장하다』는 포르투갈 리스본을 배경으로 독재 정권의 현실과 마주한 문화부 기자 페레이라의 내적 변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페레이라는 죽음과 삶, 과거와 미래, 그 경계선에 놓여 있다. 과거에 천착하는 페레이라는 하루하루를 소멸하며 일상을 보낸다.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페레이라는 죽은 아내의 사진과 밀접하게 생활한다. 페레이라는 문화부 기자지만 사무치는 외로움에 요동친다. 만날 사람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주변에 없다. 건조하기 짝이 없는 날들 속에 그는 죽음만을 생각한다. 그러다 삶에 뜨거움을 지닌 한 청춘남녀를 만난다. 


 석간신문 <리스보아>(리스본의 포르투칼어 이름)가 신설한 문화면에 ‘추모사’라는 칼럼란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 페레이라는 리스본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프란세스쿠 몬테아루 로시를 고정칼럼 외부 기고자로 채용한다. 그가 써온 기사를 읽은 페레이라는 당황한다. 이렇게 쓰면 기사를 실을 수 없다며 “신문에서는 진실과 일치하는 것, 혹은 진실에 가까운 것만 씁니다, 당신은 작가가 어떻게, 어떤 상황에서, 왜 죽었는지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죽었다는 사실만 말해야 합니다.”(p.35)라고 충고하자 몬테이루 로시는 대꾸한다. “음, 사실, 사실 전 마음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마음의 원칙이 저보다 더 강합니다.”(p.40) 페레이라는 그의 당당함과 무모함에 자꾸 끌린다. 청춘의 열정이 부러운 걸까. 



이탈리아 원서 (책:O경 샘)


  페레이라는 폐결핵으로 죽은 아내의 사진을 보며 말을 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내사진과 일상을 공유한다. 사진 속에서 아내는 그저 웃고 있다. 남편의 모든 걸 지지한다는 눈빛으로 말이다. 페레이라는 다이어트와 해수요법을 위해 찾아간 요양원에서 카르도주 박사를 만난다. 박사는 눈썰미가 상당하다. 페레이라가 아내의 사진을 방에 놓아둔 것을 보고 아직 작별하지 못했음을 유추한다.


   박사는 페레이라에게 “박사님은 과거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삼십 년 전 코임브라에 있고 아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기억을 물신숭배하게 될 겁니다,”(p.142)라고 말한다. 정신과 박사는 '초자아를 강물에 던져버리고 새로운 지배적 자아에게 자리를 내주십시오'(p.143)말한다. 지배적 자아는 무엇일까. 초자아는 도덕의 원리에 지배된 자아다. 초자아를 버리고 지배적 자아를 찾아가는 길. 인생에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 과업일까. 지금 당신을 지배하는 자아, 새로운 자아를 찾으라고 충고한다. 죽음만을 생각하는 페레이라에게 지배적 자아를 찾는 일은 새로운 삶을 말할 것이다.



이탈리아 서점에서 <페레이라가 주장하다> (사진:O경 샘) 


  온천에 도착한 페레이라는 친구 실바와 함께 레스토랑에 가서 아몬드를 넣은 송어 요리와 수란을 올린 소고기 스트로고노프를 주문한다. 그들은 조용히 식사를 하다가 페레이라가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 모두”(p.56)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자 실바는 “걱정하지 마”라고 답한다. 실망스러운 대답이다. 페레리아는 다시 한번 묻는다. “경찰이 주인 행세를 하고 사람들을 학살하네, 가택 수색과 검열이 자행되고 있어”하자 실바는 “이곳의 분위기는 우리가 정치적 의견을 가지는 걸 좋아하지 않아”(p.57)한다. 페레이라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페레이라는 현실을 외면하는 실바의 모습이 마치 자신의 옛 모습 같았을까. 그는 실바의 안주하는 모습, 분노하지 않는 평정심을 못 견뎌했다. 젊은 몬테아루 로시를 만나면서 일상이 조금씩 균열된다. 로시의 지배적 자아가 페레이라에게 전이된다. 페레이라는 이 대화 이후 일정을 변경해 다음날 리스본으로 돌아간다. 예전의 페레이라가 아니다. 



근사하게 이탈리어어로 낭독해주신 샘께 감사를~ 


 페레이라는 좀 더 진취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자인 그는 <리스보아>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한 글을 실었다. 마지막 문장이 ‘프랑스 만세’였다. 이를 본 편집장이 페레이라에게 와서 “중요한 상황에서 불홧거리를 만들었어”라고 하자 19세기 단편이라고 페레이라는 반박한다. 편집장은 “우리가 조심해야 하고 신중해야 해, 우리는 역사적, 문화적 경험이 많은 신문기자들이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감시해야 해.”(p.152)라는 말을 한다. 페레이라는 물러서지 않는다. 페레이라는 문화면에 19세기 작가의 단편도 검열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우스꽝스러웠다. 독일 만세를 불렀다면 통과되었겠지. 자체검열을 하는 언론에 구토를 느끼는 기자. 저널리스트의 정신이 다시 꿈틀거린다. 


  20개의 위조여권을 들고 찾아온 로시를 페레이라는 숨겨준다. 페레이라는 로시를 위해 스파게티를 만드는 데 권총을 든 사복 차림의 세 남자가 페레이라 집에 들이닥쳐 집안을 수색한다. 남자들은 몬테이루 로시를 고문한다. 페레이라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자 겁을 준다. “이봐요, 페레이라 박사, 당신은 이 집에서 우릴 보지 못한 거요, 교활한 짓 하지 마시오, 그리고 당신 친구는 잊으시고, 우리가 친절히 방문하고 갔다는 걸 명심하시오.”(p.180)하고 떠났다. 몬테이루 로시는 온통 피에 젖어 죽어 있었다. 페레이라는 정신이 아득해진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생각을 하더니 추도사를 쓰기로 결심한다. 로시의 추도사를 쓴 페레이라는 위험하다. 이 기사가 신문에 실릴 수 있도록 카르도주 박사에게 검열관 역할을 부탁하고 신문 인쇄공에게 넘겨준다.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한 페레이라. 본 것을 쓰기로 한다. 자신의 양심을 속이지 않는다.  페레이라는 로시의 기사를 쓰고 30년 넘게 일한 기자생활의 종지부를 찍는다. 저널리스트의 정신은 진실을 보도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변에 위험한 일이어도 기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독재정권은 언론을 탄압하고 침묵을 강요하지만 그는 불홧거리를 만들었다. 마음의 원칙으로 기사를 쓰면 복잡하고 큰 문제가 생기지만, 페레이라는 로시가 했던 마음의 원칙을 따른다. 로시를 위해 침묵하지 않고, 지배적 자아를 따른다. 이 기사로 복잡하고 큰 문제들을 만나겠지만 로시의 죽음을 그냥 외면할 수는 없다. 이제 페레이라는 예전의 페레이라가 아니다. 또 하나의 로시가 되어 프랑스로 망명한다.


그리고 페레이라는 리스본에서 쓴 마지막 기사에 온 힘을 다해 주장한다. 그리고 서명한다. 페.레.이.라. 




■ 작품배경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1994년 이탈리아의 기업인 겸 정치인. 제50대 총리를 역임했다. 정치 권력(총리)+경제 권력(재벌)+언론 권력(최대의 언론기업 소유주)을 한 손에 틀어쥔 바 있던 이태리 정계의 한때 거물이었고, 독특한 정치철학으로 베를루스코니주의라는 용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수많은 부정부패, 반대 세력에 대한 각종 무자비한 탄압 및 여성편력 스캔들로 점철된 인물임에도, 3차례 총리 역임에 성공하며 도합 약 9년간 집권해 개인으로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웠다. 

* “소설의 배경은 ‘살라자르 독재 정권이 지배하던 1938년 리스본이다.”(작품해설 p.196)

* 페레이라는 1940-50년대 포르투칼에서 살라자르 독재 정권을 비난하는 글들을 쓰다가 프랑스로 망명한 나이 지긋한 기자였다. (작품해설 p.199)



*살라자르 독재 정권: 1926년 군사 쿠데타를 계기로 포르투갈 제1공화국은 소멸하고 포르투갈 국가독재라는 헌법 공백기가 시작되었다. 쿠데타를 계기로 입각한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는 특이하게 군인이 아니라 재무 장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경제학 교수 출신이었다. 살라자르는 재임 기간 동안 세계 대공황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포르투갈의 경제를 되살리면서 엄청난 명성을 얻었고 이것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1930년 국민연합이라는 정당을 창당함으로써 정계에 뛰어든다.


결과적으로 살라자르는 1932년에 군인 출신 총리도 몰아내고 총리 자리를 얻는 데 성공했다. 포르투갈이 안정을 찾기 시작하자 권력을 놓고 싶지 않았던 군사 정권은 포르투갈 안정의 최대 공로자인 살라자르가 주장한 새로운 체제에 따라 헌법 제정을 했다. 이 헌법은 국민 투표를 통과했고 1933년 정식으로 포르투갈 공화국을 선포하게 된다.

 

살리자르는 의원내각제의 특징을 악용해서 1932년부터 1968년까지 36년동안 뇌출혈로 쓰러질 때까지 총리 자리를 지키면서 포르투갈의 실권을 손아귀에 쥐고 독재 정치를 펼쳤고 군인 대통령조차 그의 꼭두각시로 전락했다. 파시스트와 극우 세력을 탄압하면서도 파시스트적인 조합주의 경제 정책과 극단적인 권위주의[2 정권을 유지하면서 살라자르의 마음대로 산업을 통제하고 성장을 유지시킬 수 있었다. (출처: 나무위키)


*살라자르: 포르투칼 정치가. 1932년 총리에 취임하여 이후 36년간 1당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스페인 내란 당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프랑코파를 지원하여 군대를 파병했다. (p.19)



* 무솔리니


이탈리아의 정치가이자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이탈리아를 세계 대전 속으로 끌어들여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인물이다. 히틀러와 함께 파시즘 독재자의 전형이다.(...)1922년에 로마로 진군함으로써 정권을 잡고, 1923년의 선거법을 개정하여 1924년에 절대 다수석을 획득하였으며, 1925년에는 노동조합을 해산시키고 언론 · 출판 단속령을 시행하여 파시즘 체제를 완성하였다. 1935년에 에티오피아를 침략하고 나치스와 제휴하여 에스파냐 내란에서의 프랑코를 원조하고, 1937년에는 독일 · 이탈리아 · 일본 방공 협정을 체결, 국제 연맹을 탈퇴하였다. 1940년 3국 협정으로 제2차 세계 대전에 돌입하였다. 참전 뒤 히틀러에게 주도권을 탈취 당하였으며 연합군의 시칠리아 섬 상륙 뒤 실각, 구금되었다. 하지만 독일군이 그를 구출하여 북이탈리아 공화국을 수립하여 항전하던 중 밀라노에서 파르티잔에게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필리포 마리네티 (1876.12.22.~1944.12.2.)

이탈리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20세기 초에 일어난 미래파의 창시자이다. 일생의 대부분을 프랑스에 기반을 두었으나 이탈리아로 자주 여행을 다녔으며 양국의 언어로 저술 활동을 하였다. 그는 무솔리니의 열렬한 지지자로 열성적인 파시즘 당원이 되었으며 〈미래주의와 파시즘 Futurismo e Fascismo〉(1924)을 써서 파시즘은 미래주의가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입장은 일시적으로 이탈리아인의 애국심에 불을 붙였으나, 1920년대에는 대부분의 추종자를 잃었으며 무솔리니의 집권 이후 이탈리아 왕국 정부는 미래주의 예술을 그저 두체의 선전적인 예술에만 쓰이길 원했으며 마리네티가 원했던 예술을 통한 해방엔 관심 자체가 없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발췌


-편집장은 휴가를 받아 부사쿠에서 시원한 공기와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렌테주에서 사회주의자 짐마차꾼이 자신의 마차에서 학살당했고 거기 실려 있던 멜론에 온통 피가 튀었다는 그런 소식을 누가 감히 전할 용기가 나겠는가? 누구도 없다. 왜냐하면 나라 전체가 침묵했고, 침묵하는 것 이외에 달리 어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죽어갔고 경찰은 학살을 자행했다. 페레이라는 다시 죽음을 생각하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는 죽음의 악취가 진동한다고, 아니 유럽 전체가 죽음의 악취를 풍긴다고 생각했다.(p.14)


-얼마 전부터 아내의 사진에 대고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페레이라는 주장한다. 낮에 했던 일을 아내의 사진에 대고 이야기했고, 생각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나는 딴 세상에서 사는 것 같아, 하고 페레이라는 사진에 대고 말했다. 안토니우 신부도 내게 그런 말을 했어. 문제는 내가 죽음을 생각하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거야. 세상 전체가 죽었거나 죽음 직전에 있는 것 같아. (p.16) 


-그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목욕을 한 다음 재킷을 입었지만 넥타이는 매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넥타이를 주머니에 넣었다. 페레이라는 나가기 전에 아내의 사진 앞에 멈춰 서서 말했다. 몬테이루 로시라는 청년을 만났어, 그를 외부 기고자로 고용해서 작가들의 사망 기사를 미리 쓰게 하려고, 아주 영리한 청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멍청해 보이기도 해. (p.32)



“이 년전 모호한 상황에서 위대한 스페인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가 우리 곁을 떠났다. 그가 살해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반대 세력을 의심한다. 어떻게 그런 야만적 행위가 일어날 수 있는지 전 세계가 아직도 의아해하고 있다.*”(p.34)


*스페인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내란이 일어난 직후 소련의 스파이라는 혐의를 받아 프랑코 지지자들에게 체포되었고, 정식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총살당했다.(p.34)


-음, 사실, 사실 전 마음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안 되고, 그러고 싶지 않지만 마음의 원칙이 저보다 더 강합니다, 맹세코 전 지성의 원칙으로 가르시아 로르카의 사망 기사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마음의 원칙이 저보다 더 강했습니다. 몬테아루 로시는 다시 냅킨으로 입을 닦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전 마르타를 사랑합니다. (p.40)


-문제는 당신이 젊다는 것, 너무 젊다는 겁니다, 내 아들뻘 되는 나이, 라고 페레이라는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신이 나를 당신 아버지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나는 당신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 사이에 정확하고도 전문가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당신은 글 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마음의 원칙으로 글을 쓴다면 당신은 복잡하고 큰 문제들을 만나게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라고 페레이라는 말하고 싶었다. (p.41)





-하지만 자네도 신문을 읽고 라디오를 듣잖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자네는 알고 있겠지, 그들은 미쳤고, 세상을 전쟁으로 몰고 가고 싶어 해. 걱정하지 말게, 실바가 대답했다, 그들은 멀리 있어. 맞아, 페레이라가 다시 말했다. 하지만 스페인은 멀리 있지 않아, 아주 가까이 있지, 스페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자네 알잖아, 합법적인 정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량 학살이 자행되고 있네, 모두 어느 맹신자 장군 탓일세. 스페인도 멀리 있어, 실바가 말했다, 우리는 포르투칼에 있고. 그래, 페레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도 상황은 좋지 않아, 경찰이 주인 행세를 하고 사람들을 학살하네, 가택 수색과 검열이 자행되고 있어, 이 나라는 독재국가이고 사람들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아, 여론은 묵살되고 있어. 실바는 페레이라를 바라보다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내 말 잘 듣게, 페레이라, 실바가 말했다, 자네는 아직도 여론을 믿나? 여론은 앵글로색슨들, 영국인과 미국인이 만들어놓은 술책이야, 이 여론이란 개념으로, 실례하겠네, 그자들은 우리한테 똥을 싸지르고 있어, 우리는 그들과 같은 정치체제를 가져본 적이 없어, 우리에게는 그들과 같은 전통이 있지 않아, 우리는 노동조합이 뭔지 모르네, 우리는 남국(南國)사람들이야 페레이라, 목소리 크고 명령하는 사람에게 복종하지, 우린 남국 사람이 아니야, 페레이라가 반박했다. 우리에겐 켈트인의 피가 흐르고 있어. (p.57)


-‘자네 마리네티*알지? 전쟁을 찬양하고 학살자들을 옹호했지, 테러리스트였어, 로마진군*을 반겼다네, 마리네티는 썩은 작자라는 걸 난 말해야 해. 영국으로 가게, 실바가 말했다. 그곳에서는 자네 마음대로 그 얘기를 할 수 있을거야, 많은 독자가 생길 걸세. 페레이라는 마지막 남은 고기 한 조각을 먹었다. 난 자러 가겠네, 페레이라가 말했다. (p.58)



-몬테이루 로시가 생각났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내의 사진도 생각났다. 벌써 거의 이틀째 아내의 사진과 이야기하지 못했다. 페레이라는 사진을 가져오지 않은 걸 후회했다고 주장한다. (p.61) 


-그는 물기를 닦고 잠옷을 입었다. 현관으로 가서 아내의 사진 앞에 서서 말했다. 오늘 저녁 몬테이루 로시를 만날 거야, 왜 그를 해고하지 않는지, 왜 그를 버리지 못하는지 모르겠어, 그 청년은 문제가 있고 내게 그 문제들을 털어놓고 싶어 해. 그 청년한테 문제가 생길 줄 알았어, 여보 어떻게 생각해, 내가 뭘 해야 할까? 아내의 사진은 아득히 먼 옛날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보고 웃고 있었다. 좋아, 페레이라가 말했다. 이제 가서 낮잠을 좀 자야겠어. (p.69) 


-늦은 오후에 일어난 페레이라는 샤워를 하고 다시 옷을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맨 후 아내의 사진 앞에 앉았다. 똑똑한 의사를 만났어, 페레이라가 사진에 대고 말했다, 카르도주라는 사람인데 프랑스에서 공부했대, 사람의 정신에 대한 그 사람 이론을 설명해줬어, 아니 프랑스 철학 이론이야, 우리 안에 정신들의 연합체가 있다나봐,(p.116)


-그 주 토요일 <리스보아>에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번역한 글이 실렸다. 검열에서는 그 번역을 조용히 통과시켜주었다. 페레이라는 결국 ‘프랑스 만세’라는 말을 쓸 수 있을 것이고 카르도주 박사의 말은 틀릴 거라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도 페레이라는 번역에 서명을 넣지 않았다.(p.135)


-박사님은 과거를 바라보며 살고 있습니다, 삼십 년 전 코임브라에 있고 아내가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기억을 물신숭배하게 될 겁니다, 아마 아내분 사진과도 얘기하게 되실 겁니다, 페레이라는 냅킨으로 입을 닦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미 그러고 있는데요, 카르도주 박사님. 카르도주 박사가 빙그레 웃었다. 요양원 방에서 부인의 사진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아내 사진과 정신적으로 대화하고 있고 아직 애도를 못했구나 하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페레이라 박사님. 사실 아내 사진과 정신적으로만 얘길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페레이라가 덧붙였다, 소리 내어 말합니다, 일상을 모두 얘기하죠, 아내 사진이 내게 대답하는 것만 같습니다. (p.142)


-우린 안 지 얼마 되지 않았네, 이 신문이 창간되었을 때 만났지, 하지만 난 자네가 좋은 기자라는 걸 알아, 보도 기자로 거의 삼십 년간 일했고, 그렇게 기자 생활을 했으니 분명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걸세. 이해해 보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페레이라가 말했다. 그런데, 편집장이 말했다, 이번 마지막 기사는 예상하지 못했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레이라가 물었더니. 프랑스 찬양 말일세, 편집장이 말했다, 중요한 상황에서 불홧거리를 만들었어. 뭐가 프랑스 찬양이라는 말씀이시죠? 페레이라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페레이라! 편집장이 소리쳤다. 자넨 독일군과의 전쟁 이야기에 ‘프랑스 만세’로 끝나는 알퐁스 도데의 단편을 실었어. 19세기 단편입니다, 페레이라가 대답했다. 그래 19세기 단편이지, 편집장이 말했다, 하지만 독일에 대항한 전쟁에 대해 줄곧 얘기하더군, 페레이라, 독일이 우리의 연합국이라는 사실을 알지 않는가. 우리 정부는 적어도 공식적으로 독일과 연합하지 않았습니다, 페레이라가 반박했다. 집어치우게 페레이라, 편집장이 말했다, 생각을 해봐, 연합국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호감을, 아주 강한 호감을 갖고 있네,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독일을 연합국으로 생각하고 있고 독일처럼 스페인 민족주의자들을 도와주고 있어. 하지만 검열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페레이라가 변명했다, 단편을 조용히 통과시켜줬습니다. 검열관들이 멍청하고 무식해, 편집장이 말했다, (p.152)


-“이름은 프란세스쿠 몬테이루 로시, 이탈리아 태생이다. 사망 기사와 기타 기사들을 우리 신문에 기고했다. 마야콥스키, 마리네티, 단눈치오, 가르시아 로르카 등 그는 우리 시대 위대한 작가들에 관한 글을 썼다. 그의 기사는 아직 신문에 실리지 않았지만 언젠가 실리게 될 것이다. 그는 쾌활한 청년이었다. 그는 삶을 사랑했지만 죽음에 관한 글을 쓰는 일을 맡았고 그 일을 회피하지 않았다. 지난밤에 죽음이 그를 찾아왔다. 어제 저녁 <리스보아>의 문화면 기자, 즉 이 기사를 쓰고 있는 페레이라 박사의 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무장한 세 명의 남자가 아파트에 들이닥쳤다. 비밀경찰이라고 했지만 그들의 말을 확인할 만한 어떤 신분증도 보여주지 않았다. 진짜 경찰이 아닐 수 있다. 사복을 입고 있었고 우리나라 경찰은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누군지 모를 공범자와 움직이는 무법자들이었다. 당국은 이 파렴치한 사건에 대해 조사해야 할 것이다. 염소수염에 콧수염을 기른 키 작고 마른 남자가 무법자 무리를 이끌었다. 다른 두 남자는 그를 대장이라고 불렀다. 대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두 남자의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이름이 가짜가 아니라면 그들은 폰세카와 리마이다. 두 남자 모두 키가 크고 체격이 건장했으며, 피부는 까맸고 똑똑해 보이지는 않았다. (...) 우리는 힘있는 관계 당국이 이 폭력적인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주기를 촉구한다. 지금 포르투칼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음모로 이런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p.184)


페레이라는 한 줄을 띄고 그 아래 오른쪽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페레이라라고만 서명했다. 오랫동안 그가 쓴 범죄 기사에는 페레이라라는 성으로만 서명을 넣어 모두에게 그렇게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p.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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