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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10. 2023

[카페에서 즐기는 논제연구]<카메라를 끄고 씁니다>리뷰

샛별BOOK연구소


  [카페에서 즐기는 논제연구](=카토스/ca(fe) to(pic) s(tudy)) 여섯 번째 모임은 '카페느티'에서 했습니다.카페느티는 을지로 3가역(1번출구 73m)에 있습니다. 저 포함 5명이 10시에 모였어요. 한 분이 사정상 참석을 못 하셨습니다. 카페 느티는 한가하고 넉넉한 공간이었습니다. 음악은 잔잔했고, 사람들은 거의 없었어요. 우리는 브런치(?)같은 메뉴~ 토마토 치즈 파니니/ 참치 아보카도 샌드위치/ 소금빵 샌드위치와 커피, 시나몬애플티, 우롱피치 등을 주문했습니다. 



도서: 에세이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양영희, 마음산책, 2022. (209쪽 분량)

*참고영화: <수프와 이데올로기> 양영희 감독. 


  10시-1시까지 빵을 먹고 차를 마시고, 책을 토론하고, 논제를 읽었습니다. 같은 책과 영화를 봤지만 묻고 싶은 부분은 미세하게 달랐어요. 영화와 에세이 장르의 차이를 묻는 논제도 있었고, 등장하는 인물을 묻는 논제도 있었고요, 일본인 사위 가오루와 양영희 감독의 태도, 증언과 제주 4.3사건 등을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책을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토론하면 좋을지 고민했습니다. 이념, 신념, 믿음, 주의, 이데올로기 등 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지고 다투고 갈라지는 분쟁에 대해서도 언급했죠. 


  <수프와 이데올로기>,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제목도 이야기했어요. '수프'는 보이는 실체고, 먹고살아야 하는 현실을 반영하며 삶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반면, '이데올로기'는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지만 강한 성질이 있습니다. 인간이 상상하고 규정하는 가치이며 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죠.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각각 다른 형태지만, 인간에게 두 가지 모두 중요합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도 수프를 나눠먹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장소: 을지로3가 카페느티



  어머니의 수프와 아버지의 이데올로기 사이에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한  양영희 감독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녀는 이 둘을 카메라와 펜으로 잇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은 카메라를 켜고 다큐를 찍고, 카메라를 끄고 기록합니다. 두 가지 형태의 기록으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수프와 이데올로기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태도와 용기를 갖고 살 수 있을까요. 조금이나마 그 방향을 닮고 싶습니다.  


  논제를 만들어 먼 길까지 달려오고, 몸이 아팠지만 오신 샘,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참석하신 샘들의 발자국에 저도 마음을 보탭니다. 더더 좋은 질문을 만들고자 애썼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사유했던 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을지로에서 책과 음악에 둘러싸여 논제를 고민했습니다. 커피향도 좋았고, 브런치도 맛있었어요. 논제 퀄리티도 우수우수였고요! 영화까지 봐주고 논제도 2-3개씩 만들고, 연구모임에 참석해 주신 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을지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ㅎㅎ 또 다른 질문으로 12월에 뵙겠습니다. 




키워드 찾기



가족/ 재일코리안/ 조총련/ 북송사업/ 고발/ 거리/ 상실감/ 이데올로기/ 기억/ 상처/ 이념/ 회복/ 수프/ 치유/ 용서/ 아나키스트/ 용기/ 증언/ 카메라 등





이런 질문들이 나왔어요! 



-양영희 감독의 가족사에 대해.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 인상 깊었던 인물에 대해.

-평양 옥류관 연설하는 아버지에 대해.

-아들, 딸, 손자를 혁명가로 만들겠다는 아버지의 연설에 대해.

-어머니 삶의 모든 행위가 기도였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영화라는 장르와 책이라는 장르의 차이에 대해.

-각각의 장르가 전달하는 표현력과 감동력에 대해.

-수프와 이데올로기가 전하는 의미에 대해.

-일본에서 살고 있는 양영희 감독의 삶에 대해.

-영화와 책에서 드러나는 양영희 감독의 차이에 대해.

-영화에서 전해지는 감독의 내레이션에 대해.

-1960년대 일본 오사카 쓰루하시 재일 사회에 대해.

-북송사업의 선봉대에 선 아버지의 행동에 대해.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양영희 감독의 태도에 대해.

-일본인 사위를 맞이하는 어머니 본 마음에 대해.

-소포를 꾸리며 살아가는 어머니 삶에 대해.

-아들 셋을 보내고 살아가는 아버지 마음에 대해.

-더 이상 송금하지 말자는 딸과 가족이기 때문에 송금을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대립에 대해.

-아라이 카오루가 삼계탕을 끓이는 장면에 대해.

-단순한 레시피였지만 어머니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애쓰는 카오루에 대해.

-영화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연출에 대해. 





샘들께서 뽑은 발췌입니다. 



-물론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한국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북조선을 믿으면서 조총련을 지지하는 사람이 재일 사회의 70퍼센트는 넘던 시대였다. 남북으로 갈라진 한반도 갈등이 격화되는 본국의 상황은 재일 사회에도 그대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선술집이나 고깃집에서는 테이블마다 남한 지지자와 북조선 지지자가 따로 앉았고, 문득 들려오는 대화의 말꼬리를 잡아 말싸움을 시작하거나 주먹다짐까지 했다. 남한을 지지하는 거류민단과 북조선을 지지하는 조총련의 대립도 심각했다. 김치 가게와 한복점이 늘어선 미유키모리 상점가를 찾는 손님들은 김치 맛보다 가게 주인의 정치 성향을 기준으로 가게를 골랐다.(pp.18~19) 


-식민지 지배나 전쟁, 내전, 독재체제를 경험한 세대에게 지배자, 침략자, 적, 원수였던 나라의 인간과 부부의 연을 맺는다는 것은 받아 드릴 수 없는 일일 터이다.개인의 연애나 결혼에 국가간의 문제를 적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부모와 조부모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다고....(p.26-27)


-나는 가족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직계가족에서도 벗어나고 싶은데 타인과 새로운 가족을 만들라니, 제정신인가. 아버지의 딸, 오빠들의 여동생, 여성, 재일코리안 같은 명사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족을 향해 카메라를 든 이유도, 도망치기보다 그들을 제대로 마주 본 다음에 해방되고 싶어서였다. 영화 하나 만들었다고 무엇에서 해방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손목 발목에 주렁주렁 차고 있는 그것들에서 자유로워지려면 그것들의 정체를 알아내야 했다. 알아내야만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p.31)


-어머니는 상자 가득 식료품을 담았다. 우동 면이나 소면, 참기름, 설탕, 떡, 쌀, 라면까지 넣고 나면 항공우편 운송료는 매우 비싸졌다. 그뿐만 아니라 가족이 입을 정장, 평상복, 운동복, 잠옷, 속옷, 양말, 방한복, 방한화 등 계절에 맞춰 입고 신을 의류도 빼먹지 않았다. 커튼과 슬리퍼는 물론, 냄비와 식기 같은 일용품도 있었다. 란도셀, 가방, 연필, 연필깎이, 지우개, 볼펜, 노트, 사전 등 손주들의 학교생활에 필요한 물품들도 챙겨 보냈다. 화장실에 설치할 환기팬, 자전거, 축구공, 농구, 배드민턴 용품까지 있으면 좋다더라 들은 것은 전부 보냈다. 심지어 조총련계 무역회사가 니가타에 세운 전문점을 통해서 오빠들 아파트에 맞게 개량한 욕조까지 하나씩 보냈다. 어머니가 보내는 소포들은 포장이 깔끔하고 내용물이 충실해서 북한 검열관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짐을 열어본 한 검열관이 자신에게도 한 상자 보내달라고 말을 흘렸을 정도 라고 한다.(p.42)



-<디어 평양>에는 항공우편물 중량 제한을 넘기지 않도록 집에 있는 저울로 연필 무게까지 잴 만큼 세심하게 짐을 싸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수십 그램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작은 과자를 하나 더 넣어서 제한 중량에 딱 맞춰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어머니는 아들 가족뿐만 아니라 평양과 지방에 사는 친척들에게도 그 역할을 계속했다. 항공편과 배편으로, 방북할 때는 직접 나르는 작업은 45년 동안 이어졌다. (p.42)


-"네가 조국에 대해 뭘 안다고 ! 건방지게!"

이어서 아버지의 일장 연설이 시작되면 나는 거부 의사를 표명하기위해 식탁의자를 뒤로 빼며 기세 좋게 일어난다. (p.47)


-아버지는 북송 사업의 선봉대 역할을 자처했다. 북을 지지하는 조총련과 한국을 지지하는 민단의 대립이 심화되는 가운데, 동포 사회에서 격렬한 사상투쟁을 벌인 활동가였다. 자신이 가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나라를 미화해서 타인에게 이주를 추천하는 무모함을 혁명적 임무라고 믿고 수행했던 것이다. 자기 자식들 손에까지 편도 표를 들려서 북한에 보낸 몇 년 후, 그 나라에 방문해서야 누구보다 북송사업의 실태를 잘 알게 된 사람이었다.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뿐더러 용서받을 수 없다는 자각도 있었을 터이다. 세 아들과 가족들이 ‘인질’이 되고야 말았으니 그 체재에 순응하며 살기로 마음먹은 것일까. 훈장을 달고 활짝 웃는 부모님의 얼굴이 피에로 같다고 생각하며 나도 웃었다. 북조선을 조국으로 선택해 살아온 두 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믿고 살기로 했을 뿐이었다. 그런 부모님이 웃고 있었다.(pp.71~72) 


-얼핏보면 남들의 부러움을 살 법한 훌륭한 잔치 같았지만 어딘가 코미디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높다란 천장 아래 으리으리한 연회장에 들어찬 커다랗고 둥근 테이블 그 위에 수복이 담긴 소박한 조선 요리와 술 오빠들 부부와 조카들은 어머니가 일본에서 보낸 정장과 민족의상을 입고 있었다. (p. 86)


아버지가"나에게는 아들, 딸, 손자들이 있습니다."라고 말 한 뒤"이 젊은이들을 혁명가로"라고 외쳤을 때 나는 무심코 조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p. 87)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제주4.3사건에 관한 구체적인 기억을 입에 올렸다."전에 4.3사건에 대해 말했잖아 그 후에 꿈도 꿨는데 조금씩 여러가지 기억이 나려고 하네" 기억의 실을 손으로 감듯이 어머니는 신중하게 이야기했다. 이전에 단편적으로 4.3사건을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조금 이야기하다 멈추고 또 이야기하려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이이야기는 아무한테도 하면 안 돼. 4.3은 특별해. 절대로 들키면 안 돼. 무서운 일이 일어난다니까! 너희는 몰라. 더 묻지마. "마치 누군가에게 감시나 도청이라도 당하는 것처럼 경계했다. (p.147)


-어머니와 카오루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함께 장을 봐온 마늘 껍질을 벗기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때, 이 장면이 작품의 핵심이 되리라 확신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루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p.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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