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길위에 김대중 (Crescendo, 2023)
정보: 다큐멘터리/ 한국/ 126분/ 2024.01.10개봉/ 12세관람가
감독: 민환기
출연: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탄생 100주년 기념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벅찼다. 한국 백년의 현대사를 김대중 대통령은 온몸으로 걸었다. 그는 '민주주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염원하며 살아온 위인이다. 그냥 나는 이분에게 '위인'이라는 말을 붙여주고 싶다. 우리 정치사에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게 위대하다. 영화는 관객을 그렇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는 선동되며 위험하다. 다큐임에도 이토록 파란만장할 수 있을까 싶다. 대통령이 되어 만난 김대중과 영화에서 만난 김대중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길위에 김대중>은 젊고, 젊고, 젊었다.
젊은 김대중의 연설은 쩌렁쩌렁했으며 수많은 민중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미래가 있었다. 분단국가를 슬퍼했고, 독재시절을 맞서 그가 외친 메시지는 '민주주의'였다.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길위의 어디든 달려갔고, 공부했다. 영화는 김대중의 삶을 2시간 필름으로 압축했다. 사업가에서 정치가로 변모(목포해운공사). 첫 번째 아내를 잃은 슬픔, 두 아들의 아빠, 1971년 박정희 후보와 접전 끝에 패, 의문의 교통사고, 1973년 납치, 이희호 여사를 만나면서 다시 시작하는 김대중.
그는 1979년 12.12 군사반란 후 1980년 내란음모조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세계에서 구명운동이 일었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그가 살해위협을 받고, 전두환 정권 초 사형선고를 받고도 굴하지 않았던 건 '민주주의' 염원이었다. 네 번의 국회의원 선거와 세 번의 대선 낙선을 치르면서도 부여잡았던 신념은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그의 삶이 영화에 육성으로 우렁차게 울렸다.
민환기 감독은 공개되지 않은 영상을 편집하고 편집해 126분에 담았다. 감독은 김대중의 탄생과 죽음, 길 위에 섰던 김대중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는 정치인 김대중의 신념이 얼마나 올곳한지를 증명했다. 국민들은 그를 추앙했다. 그의 연설에 광분했다. 그에게 한국의 희망을 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망명과 귀국, 가택연금에서 해방되고 광주로 내려가는 길목마다 역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장면은 뜨거웠다. 국민들의 열망은 한없이 타올랐다. 오로지 평등과 자유, 인권, 평화를 외쳤던 김대중.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에 전율한다.
30년 전 경기도에 살았던 나는 영광에 살았던 친구가 '김대중 선생'이라고 불렀을 때 의아했다. 왜 정치인에게 선생을 붙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고향에서 김대중은 선생님이란 호칭을 붙인다고 말했다. 그런 존재라고 말했을 때 나는 와닿지 않았다. 30년 전 나는 김대중의 행보를 잘 몰랐다. 언론이 탄압했고, 권력이 그를 가로막았다. 대중이 알 수 있는 길은 희박했다. 내가 알고 있는 건 1990년 이후의 김대중 대통령 모습이다. 삼김시대, 대통령 당선,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은 그냥 존경하는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그때 내 친구가 왜 '선생'이라는 칭호를 붙였는지 알게 해줬다. 김대중은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이다. '김대중을 위한' 영화는 선동(?)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동조차 아름답다. 왜냐하면 영화는 다큐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시대, 절망적 정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998년 2월 제15대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은 국고를 열었을 때 텅텅 비어있었다. 그는 망연자실했고, 한국은 IMF를 겪는다. 김대중은 앨빈 토플러를 만났고 여러 정상을 만나 국고의 어려움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등. 아마도 이 부분은 다음편으로 이어질 거 같다.
내가 광주에 갔을 때 김대중컨벤션센터 김대중 홀에서 본 엽서는 아직도 인상적이었다. 이희호 여사 앞으로 보내는 깨알같이 쓴 김대중 대통령의 글씨. 옥중에서 쓴 엽서는 고통의 글이었음을 영화를 보고 더욱 리얼하게 전해졌다. 감옥에서 책을 구해 읽고, 읽고 썼던 김대중. 책에서 길을 얻고, 길 위에 섰던 김대중. 그는 한국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공부했다.
영화는 1987년 광주를 방문하면서 마무리된다. 영화는 우리가 몰랐던 김대중을 알려준다. 뜨겁고, 뜨겁고, 뜨거운 영화. 그가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를 이겼더라면 어땠을까. 지난 역사를 상상했고, 가늠해 본다.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도 여느 영화와 달리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한참을 눈물짓다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