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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11. 2024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눈부신 문장들

샛별BOOK연구소


한강 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문학동네, 2022. (332쪽 분량)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첫문장)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었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끝문장)






더 어두워진 것을, 차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거세어지고 있는 것을 나는 깨닫는다. 눈보라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122쪽)






무엇이 지금 우릴 보고 있나, 나는 생각했다. 우리 대화를 듣고 있는 누가 있나. 

아니, 침묵하는 나무들뿐이다. 이 기슭에 우리를 밀봉하려는 눈뿐이었다. (320쪽)







눈처럼 가볍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눈에도 무게가 있다. 이 물방울만큼. (109쪽)









업힌 채로 나는 발자국들이 사라지는 걸 똑똑히 지켜봤어요.(163쪽)






얼굴에 쌓인 눈을 한 사람씩 닦아가다 마침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찾았는데, 옆에 있어야 할 오빠와 막내가 안 보였대.(249쪽)






쉴새없이 얼굴로 몰아쳐 눈도 제대로 뜨기 어렵던 눈보라가 차츰 순해지는가 싶더니 거의 고요해졌다.(129쪽)






이 나무들이 다 묘비인가.(9쪽)






수십 포대의 설탕을 부어놓은 것 같은 눈이 안채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반사하고 있다.(153쪽)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192쪽)








마침내 나무 아래에 다다른다. 밑동 앞에 쌓인 눈을 삽으로 퍼낸다. 숨이 가빠지는 만큼 추위가 가신다.(153쪽)







하지만 눈꺼풀들은 식지 않은 것 같다. 거기 맺히는 눈송이들만은 차갑다. 선득한 물방울로 녹아 눈시울에 스민다.(125쪽)








내가, 눈만 오민 내가, 그 생각이 남져. 생각을 안 하젠 해도 자꾸만 생각이 남서. 헌디 너가 그날 밤 꿈에, 그추룩 얼굴에 눈이 히영하게 묻엉으네......(86쪽)








눈도 더는 내리지 않는다. 지금 흩날리고 있는 건 이미 내려 쌓였던 눈이다.(139쪽)






쉴새없이 얼굴로 몰아쳐 누도 제대로 뜨기 어렵던 눈보라가 차츰 순해지는가 싶더니 거의 고요해졌다. 내가 눈 속에 걸음을 내디디고 다리를 빼내는 소리만이 저녁의 정적을 부스러뜨리며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129쪽)







잠들고 싶다.

이 황홀 속에서 잠들고 싶다.

정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가 있어.(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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