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소설집 『사라진 것들』 중 <오스틴>, 앤드루 포터, 문학동네. 2024.
<오스틴>은 마흔다섯이 넘은 한 가장의 하루를 보여준다. 화자는 인근 웨스트레이크힐스에서 열린 파티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본 화자다. 화자의 아내 로라는 먼저 집에 간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앨런, 미치, 줄리, 에번 베누아, 그레그, 데브라 헐은 모닥불 주위에 모여 담배를 피운다. 에번 베누아만 빼고 모두 대학 친구들이다. 화자는 담배를 끊은지 팔 년 됐다. 친구들은 어느 사건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한다. 작년에 에번의 친구인 캘런이 겪은 일이다. 캘런의 집에서 일어난 비극인데, 침입자는 십 대 소년이었고, 캘런은 여자친구를 보호하기 위해 그 침입자가 아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욕실 입구에 머리를 가격해 죽였다.
캘런은 텍사스대학교 경제학과 계약직 강사였는데 이 사건 이후 사라졌다. 텍사스 주 안에서는 자기 집에 침입한 사람을 죽이는 건 합법이었다. 캘런은 이 사건 이후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한다. 강사직도 내려놨다. 친구들은 이 일에 대해 질문한다. "뭐 살인을 저지른 게 맞잖아."(p.12) 캘런의 행위에 대해 논한다. "다른 사람 눈엔 정당방위일 거고."(p.12) 사람들은 캘런이 한 행동에 대해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살인과 정당방위.
친구들은 궁금해한다. "자, 그니까 질문이라는 게 바로 그거야. 응? 아빠인 너는 좀 다르게 볼 수도 있을 테니까, 응? 자식 가진 부모의 시각에서 말이지. 그러니가, 그 죽은 애 나이가, 몇 살이었댔지? 열다섯, 열여섯?" (p.13) 잔인하다. 친구들은 아이가 없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 화자에게 부모의 시각이 궁금하니 대답을 해보라고 강요한다. 죽은 아이가 열다섯이다. 아직 청소년이다. 조만간 화자의 아이들(토비, 준)도 청소년이 될 것이다. 친구들은 왜 화자의 대답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일까. 친구들은 캘런의 행위가 과했다고 비난하려는 것인지, 죽은 아이의 아버지 입장에서 얘기하라는 것인지, 너에게도 만약 누군가 침입하면 어떻게 할 예정인지 묻는 듯했다. 질문을 받고 화자는 생각한다. 만약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아내와 두 아이들을 위해 살인할 수도 있고, 정당방위로 몰릴 수 있지 않나. 아 끔찍하다. 친구들의 취조하는 분위기가 화자는 못마땅하다.
[여름밤+단편 낭독여행] 필사 감사합니다. 샘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나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이다. 정당화가 되느냐 아니냐를 따질 일이 아니다. 두 인간과 그들 각각의 가족에게 일어난 아주 슬픈 사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것 말고는 그다지 할 얘기가 없다.' (p.14)
화자의 심경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 '심야의 윤리적 딜레마'(p.14)에 시달리게 하다니. 친구들과의 시간이 즐겁지 않다. 화자는 아무 말 없이 화장실에 가겠다면서 집으로 와버린다. 친구들을 안지 이십 년 가까이 되었데 완전한 타인 같다. 담배를 피우는 저 무리들이 낯설고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화자는 로라와 결혼해 연년생으로 태어난 토비와 준을 키운다. 친구들을 만날 여유가 없던 화자는 오랜만에 대학 동기들을 만나니 망명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집에 온 화자는 가족들을 본다. 아내 로라는 소파에서 아이들은 각자 침대에서 잠들었다. 안온하다. 화자는 딸 침대로 가 탁상 스탠드를 켜고 딸의 이마를 만져본다. 아내는 깨어나 파티가 재밌었냐고 묻는다. 화자는 "그게,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 그 사람들을 다 만나니까."(p.19)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 파티에 들뜬 마음으로 갔지만 막상 만나보니 예전의 친구들이 아닌 느낌이다. 누가 변한 것일까. 친구들의 근황은 페이스북으로 알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즐거워 보였다. 화자는 친구들이 콘서트, 나이트클럽에서 올린 사진들을 보며 그들은 젊음과 자신을 비교했다. 자신은 '두툼한 허리와 넓적하고 편한 신발, 희끗희끗한 턱수염에 굴복'(p.14) 하는 거 같아 상당한 거리감과 서글픔이 있었다.
오늘 오스틴에서 친구들과 있다 보니 집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화자의 꿈은 소박하다. 퇴근해서 집에 와 아이들이 잠든 뒤 칵테일이나 와인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일. 이걸로 충분하다. '나는 그 안에서 안전하'(p.21)다. 오늘 친구들 얘기는 집에 들어온 '침입자'였다. 갑자기 불안해지는 화자다. 그러나 화자보다 더 불안해하는 건 아내 로라였다.
아내는 '걸핏하면 밤중에 그곳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고 주장'(p.22)했다. 그곳은 뒷마당이다. 뒷마당에는 차고와 세탁실이 있다. 뒷마당은 꽤나 높은 울타리로 둘러쳐져 사람이 침입할 수 없는데도 아내는 자꾸 그곳에서 소리가 난다고, 불이 켜져 있다고 가보라고 했다. 아내는 수면장애와 강박증으로 잠을 잘 못 잔다. 오늘 밤도 아내는 그곳에 불이 켜져 있다며 남편에게 확인하라고 한다. 아까는 분명히 꺼져 있었다며. 화자는 아내의 말을 듣는다.
새벽 세시. 아내는 아이들을 모두 깨운다. 만약을 대비해 도망칠 준비 태세를 갖춘다. 화자는 신발을 신고 뒷마당 덱을 지나 세탁실로 간다. 오늘따라 아까 친구들이 했던 말이 박힌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똑같은 경험을 할 가능성'(p.25)에 대해 가늠한다. 화자는 캘런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도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살인과 정당방위. 두 가지 딜레마가 있다. 그것도 미성년자라면 말이다. 다행히 세탁실은 아무도 없었다. 전등을 끄고 창문 밖을 내다본다. 부엌 창문으로 아이들과 로라가 보인다.
불이 꺼진 곳에 있는 화자를 가족들은 보지 못한다. 화자는 침입자가 된 거 같다. 침입자가 되어 가족들을 보고 있자니 두려움이 앞선다. 과연 자신이 아내와 아이들을 지킬 수 있을까. 침입자가 온다면 지금과 같은 풍경을 보게 될 텐데 말이다. 화자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밤중에 자다가 깨어 뒷마당을, 세탁실을, 차고를 확인하는 일, 이상한 소음의 정체를 알아보는 일, 창문을 단속하고 잠금장치를 더 단단히 채우는 이런 일. 이것이 우리가 들어온 새로운 세상 우리가 꾸기 시작한 새로운 꿈의 일부가 되었다.' (p.24)
화자의 새로운 꿈이 시작된다. 집 안에 침입자가 있지 않을까 확인하는 일. 아내와 아이들과 자신을 지켜내는 일. 퇴근해서 음악을 듣고, 와인을 마시는 소소한 꿈이 이제 잠금장치를 더 단단히 채우는 일도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됐다. 화자는 화장실 다녀와서 캘런 사건에 대해 답한다고 사라져 버린 미치의 문자를 본다. '너 어디로 간 거야?'(p.24)
화자는 친구들에게 사라진 것처럼 이런 순간에 가족들한테도 사라지고 싶다. 지금 이 순간처럼. 불 꺼진 세탁실에 있는 화자가 가족들에게 안 보이듯이...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10초 정도 해본다. 화자는 다시 잠금장치를 확인하고 가족 품 안에 들어가겠지만... 잠깐 동안 이중의 감정을 경험한다. 지켜야 할 것과 사라지고 싶은 두 마음이 스친다.
삶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만약 침입자가 자신에 집에 들어올 수도 있고, 자신도 캘런처럼 살인을 저지를 수 있다. 만약 그 침입자가 열다섯이었다면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정당방위였어도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다. <오스틴>은 친구들을 만나 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칠지 보여준다. 캘런의 삶이 순간에 사라진 것처럼 자신도 안전할 수 없다. 삶은 늘 불안요소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은 괜찮다.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