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딸에 대하여> Concerning My Daughter
감독: 이미랑
출연: 오민애, 허진, 임세미, 하윤경.
국가: 대한민국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2024.09.04.
원작: 김혜진 <딸에 대하여>
*스포일러 주의
7점 - '딸'의 사랑을 마주하며 무너지는 엄마의 상식과 가치 그리고 혐오와 도덕성.
엄마(오민애 배우)는 복잡하다. 집은 더 이상 대출이 어려운데 다 큰 딸(그린/ 임세미 배우)은 돈을 해달라고 신음한다. 딸은 2층 전세를 내보내라는데 아직 계약기간이 남았다. 철딱서니가 없어 한숨이 나온다. 2층은 젊은 부부가 아들,딸 낳고 열심히 산다. 자기 딸도 저러면 좋을 텐데 하며 자꾸 이들 부부랑 비교한다. 집이 망가지면 집주인이 고쳐줘야 한다. 2층은 자꾸 싱크대가 말썽이다. 바닥을 뜯고 수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엄마는 벌써부터 지친다.
엄마는 뼈마디도 부실한데 직업은 요양보호사다. 치매 어르신(제희/허진 배우)을 돌보느라 등골이 빠진다. 엄마는 수박 한 통을 사 들고 와 반 통은 썰어 냉장고에 넣고, 남은 반 통은 숟가락으로 퍼먹는다. 시간강사인 딸은 부당 해고된 교수를 위해 시위를 주도하더니 집을 비워줘야 한다며 짐을 싸서 본가로 들어온다. 딸은 사랑하는 연인(그린)까지 집에 데려다 놓는다. 레인(하윤경 배우)이란 여성은 자기 딸을 그린이라고 부른다. 엄마는 우리 딸 이름은 그린이 아니라고 일침한다. 레인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만 봐도 엄마는 숨통이 아린다.
엄마는 딸의 동성애를 인정하기 어렵다. 레인에게 자기 딸과 헤어지라고 말하며 곁을 안 준다. 레인의 반응은 야무지다. 우리는 7년을 만났고, 자신이 생활비를 댔으며 집 보증금도 나눴다고 한다. 자신이 아무 생각 없이 그린을 만나는 건 아니라며 헤어질 이유는 없다고 똑 부러지게 말한다. 엄마는 할 말을 잃는다.
엄마는 레인에게 아침에는 안 마주쳤으면 좋겠다고 간신히 얘기를 꺼내지만 레인은 자신은 출근 전에 커피를 내려 마시는 루틴이 있다고 불편해도 참으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차분히 말한다. 그러면서도 엄마의 안색을 살핀다. 커피를 연하게 내렸으니 마셔보라고 권한다. 딸은 자신에게 무언가를 권했던가... 별로 기억이 없다. 레인은 그린 어머니에게 식사를 했냐고 묻고, 기운이 없어 보인다며 요리를 해 드셔보라고 애틋하게 건넨다. 딸한테 받아보지 못한 살가움이다. 레인은 엄마를 사부작사부작 도와준다. 싱크대도 깔끔하게 정리하고, 청결하다. 엄마는 이런 레인의 손놀림에 시선이 간다. 살림은 잘하네라는 듯 쳐다본다. 저런 아이가 자기 딸을 사랑한다니...
윗집 새댁이 레인이 누구냐고 묻자 엄마는 딸의 연인, 딸의 애인이라고 말할 수 없다. 아니 뭐 그냥 딸 친구 지라면서 회피한다. 엄마는 둘 사이를 어떻게 이해할지 도통 모르겠다. 너희들은 지금 장난을 하는 거라고, 여자는 남자랑 결혼해 아이 낳고 키우며 사는 거라고,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 삶이 우습게 보이겠지만 다 그렇게 사는데는 이유가 있다고.
딸은 레인과 알콩달콩 행복하다. 그 모습을 보는 엄마는 쿵하고 내려앉는다. 닫힌 빗장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엄마는 딸에 대하여 생각한다. 딸이 어떻게 남자가 아닌 여자와 잘 수 있는지, 같이 살 수 있는지, 내 앞에서 저렇게 애정행각을 보이는지 불편하고 또 불편하다.
엄마는 무엇이 불안한 것일까. 딸의 미래가 걱정이다. 엄마는 요양원에서 프로처럼 일한다. 그러나 가족이 없는 어르신들이 요양원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엄마는 자기 딸의 미래가 제희처럼 보인다. 제희 어르신은 대학나오고 공부도 많이 했고 전 세계 아동들을 위해 헌신하며 봉사했지만 노후는 얼마나 비참한가. 재단까지 세웠고 자신의 이름을 걸었지만 요양원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이 늙은이를 찾아오는 사람은 없다. 오로지 엄마만 연민을 갖고 성심성의껏 돌본다. 엄마는 제희에게 최선을 다한다. 제희 어르신을 돌보는 엄마의 손길은 사랑 그 자체다. 누군가를 위한 존중의 손길을 영화는 시종일관 보여준다. 엄마는 제희 어르신을 씻길 때, 사탕을 줄 때, 가방을 건넬 때, 이불을 덮어주고 식사를 챙길 때, 기저귀를 채울 때... 엄마는 성녀처럼 어르신을 터치한다. 엄마의 딸 때문에 속이 타들어가지만 제희를 돌보며 위로받는다.
엄마는 제희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와 돌봄을 선택한다. 한 집에 여자 넷이 사는 모양새는 화목했다. 어르신이 떡을 만든다며 온 집안에 쌀과 콩으로 난장판을 해놔도 엄마와 레인은 어르신을 어르고 달래 편안하게 해준다. 레인은 빵을 굽고 솜씨를 발휘한다. 엄마가 썼던 전기냄비를 이용해 레인이 빵을 굽는다. 엄마가 했던 모습을 그대로 레인이 지금 재현한다. 레인은 어르신을 살뜰하게 챙긴다. 어르신을 대하는 손길이 마치 자신과 같다. 부드럽고 안온하게 치매 어르신을 돌봐준다.
어르신의 장례를 치르며 가족은 서로를 돕는다. 상주는 그린과 레인이 맡는다. 엄마는 둘을 보며 든든해진다. 그래... 상주 노릇을 꼭 남자가 하는 건 아니지라며. 고착화된 자신의 틀을 깨는 순간이다. 딸은 레인과 옆에 있으면서 환하게 웃는다. 딸의 웃음은 벅차 보인다. 엄마는 이제 조금씩 '딸에 대하여' 이해하기 시작한다.
엔딩은 엄마의 미소로 끝난다. 관객은 그 미소를 어떻게 해석할까. 횡단보도를 지나가는 동성 커플처럼 보이는 두 여성을 엄마가 보고 엄마는 미소 짓는다. 그러나 이 상황이 나의 현실이라면... 엄마가 후루룩 거리며 먹는 비빔국수처럼 속 터지는 상황이 연일 일어날 것이다. 영화 속 엄마는 최대한 어른의 방식으로 이 상황을 마주한다. 우리는 '딸에 대하여'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해했지만 현실이라면... 영화 대사처럼 어쩜 "너는 내 딸이니까" 더더욱 낯설지 모른다.
영화와 현실의 간극을 좁히는 일. 그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