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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n 29. 2021

알베르 카뮈 <이방인>

샛별의 고독한 문장

고독한 문장 8. <이방인>, 알베르 카뮈, 민음사.


'뫼르소는 왜 아랍인을 쏘았는가'


<이방인> 알베르 카뮈, 민음사. 134쪽.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


'부조리'하면 프랑스 작가 카뮈가 떠오른다. 이 용어는 카뮈의 철학 사상으로도 유명하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는 사형선고를 앞두고 "내가 살아온 이 부조리한 전 생애 동안"이라는 말을 했다. 죽음의 순간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이방인>은 20세기 실존주의 문학 대표 작가 알베르 카뮈 대표작이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 짧은 소설을 ‘건전지의 발명’과 맞먹는 사건이라고 압축한 바 있다. 알제리 태생 카뮈는 <이방인>을 통해 억압적인 관습과 부조리를 고발하며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뫼르소'를 탄생시켰다. 카뮈는 뫼르소의 고뇌를 통해 자신의 철학적 사상인 '부조리'를 다졌다. 그렇다면 부조리란 무엇인가. 조리 있지 않음이다. 부조리는 이치에 어긋나는 상황이다. 세상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은 태반이다. 그중에 카뮈가 천착했던 가장 부조리한 현상은 이것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바로 탄생과 죽음.


  인간이 태어났으면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것일까? 불행하게도 탄생은 죽음으로 귀결된다. 인간에게 시작은 탄생이며 끝은 죽음이다. 만약 신이 있다면, 신이란 존재는 가혹하다. 생명을 태어나게 해 놓고, 왜 죽게 만들었을까. 카뮈는 이 절대적 진리가 부조리했다. 인간에게 죽음은 당연한 거 아닌가 생각할지 모르지만 카뮈는 그렇게 않았다. 그는 신에게 반항했다. 인간에게 탄생-영원을 만들지 않고, 탄생-죽음을 부여했으니 말이다. 죽음이 있는 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절망스럽다.


  뫼르소는 이 부조리라는 사상을 잘 읽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마치 내일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이방인>의 유명한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p.9).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그는 그렇게 슬프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은 언젠가 죽기 때문이다. 엄마도 오늘, 아니 어쩌면 어제 죽음을 맞이했을 뿐이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그러니 엄마의 죽음 또한 그렇게 슬플 일도 아니다. 엄마의 죽음은 곧 이어질 자신의 죽음도 예측 가능하다. 죽음 앞에서 인간은 평등하다. 누구만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죽음이라는 존재가 도사리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슬플 일일까라고 뫼르소는 생각했다. 뫼르소는 자신이 느끼는 대로 엄마에게 애도를 표한다.


  보통 애도의 방법은 상식적인 기준이 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면 당연히 아들로서 해야 할 도리. 즉 '~~~해야 한다'라는 사회의 룰이 있다. 뫼르소는 그 도리를 다하지 못한다. 뫼르소는 엄마가 돌아가셨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고 자신의 욕구를 따른다. 마렝고 양로원 문지기가 뫼르소에게 입관한 엄마의 모습을 보고 싶으면 관에서 나사못을 뽑아 준다고 하자 그는 거절한다. 뫼르소는 마지막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을까. 그는 엄마를 모신 관 앞에서 밀크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운다. 장례식을 치른 후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 마리 카르도나를 만났다. 마리는 사무실에서 일했던 타이피스트였다. 그녀에게 마음이 있던 뫼르소는 영화 구경을 가자고 제안했고, 그녀는 페르낭델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싶다 말했다. 엄마 장례를 치른 다음날 아들은 마리와 함께 코믹 영화를 보러 간 것이다.


  뫼르소의 행동이 상식 밖의 행동일 수 있다. 어떻게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해수욕을 하고, 여자를 만나 성욕을 채우고 영화를 보러 갈 수 있느냐 물을 수 있다. 그는 자식의 도리를 벗어났고, 비난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그렇지만 카뮈는 묻고 있다. 슬프지 않은데 슬픈 척 가면을 써야 하냐고 말이다. 그것이 엄마의 죽음일지라도. 엄마의 죽음이 지금 당장 뫼르소에게는 슬프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맨얼굴을 감추고 살아간다. 죽음 앞에서는  슬픈 눈물을 흘려야 하고 애도 의식을 표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범이 있다. 그러기에 슬픈 척, 애도하는 척하며 타인의 눈을 의식해 일정 부분 가면을 쓰는 사람도 있다. 뫼르소는 ~~척하는 인물이 아니다. 자신이 현재 심정을 그대로 충실히 따를 뿐이다. 뫼르소는 가식적이지 않으며 솔직하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으로 하여금 분노케 한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아들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이다.


  사회적 통념상 납득하기 어려운 뫼르소를 좀 더 들여다보자. 그는 가난한 선박회사 직원이다. 그는 성실하며 자신이 느낀 것 이상으로 말하지 않는 성향을 가졌다. 마리가 뫼르소에게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냐고 묻자 뫼르소는 그렇다고 답한다. 다시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는 질문에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이지만 아마 사랑하지는 않는 것 같다"(p.52)고 대답한다. 마리는 사랑하지 않는데 왜 결혼하냐고 말한다. 뫼르소에게 사랑=결혼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아도 결혼은 할 수 있고, 마리가 원한다면 자신은 상관없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게 결혼과 동시에 얼마나 공허한 관념인지 그는 알고 있었을까. 사랑해서 결혼해도 결혼은 생활이 되어 버린다. 결혼은 사랑과 멀어지는 속성을 지녔다. 사랑이 식는다고 해야 맞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니 뫼르소는 지금 그렇게 산다고 해도 뭐 어떠냐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서로 만나 행복하면 그만이라고 느낀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 마지막에 뫼르소는 바닷가에서 아랍인을 총으로 쏴 죽인다. 그는 왜 아랍인을 죽였을까. 우발적인 상황이었다. 아랍인을 죽일 개연성이 없었다. 뫼르소는 법정에 서게 되고, 변호사는 뫼르소를 정당방위라고 변호한다. 먼저 아랍인들이 뫼르소 일행을 미행했고, 레몽을 단도로 상처 입혔다. 태양빛은 뜨겁고 모래사장에서 아랍인이 단도를 뽑아 태양에 비추자 그 빛이 반사되어 뫼르소의 이마를 쑤셨다. 그는 엄마의 장례식 때 느꼈던 태양의 기억이 되살아났고, 그에게 태양은 견디기 어려운 존재였다. 수직으로 강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저 태양의 강렬한 섬광을 뫼르소는 견디기 어렵다. 햇볕에 이마가 부풀어 오르는 거 같다는 착각도 든다. 그 순간 그는 그만 레몽의 권총으로 아랍인을 쏘고 만다. 그 총소리는 자신의 행복을 깨트리는 소리였으며 불행의 소리였다. 탕, 탕, 탕, 탕.


“그러자 이번에는 아랍인이, 몸을 일으키지는 않은 채 단도를 뽑아서 태양빛에 비추며 나에게로 겨누었다. 빛이 강철 위에서 반사하자, 길쭉한 칼날이 되어 번쩍하면서 나의 이마를 쑤시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눈썹에 맺혔던 땀이 한꺼번에 눈꺼풀 위로 흘러내려 미지근하고 두꺼운 막이 되어 눈두덩을 덮었다. (...)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방인> p.69-70)


  이 사건으로 뫼르소는 운명이 바뀐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살인자가 됐다. 살인 동기가 명확하지 않다. 법정에서 뫼르소는 살인 이유가 "태양 때문이라고 말했다."(p.115)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태양 때문에 살인을 했다니... 뫼르소는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고 말했다. 이건 진실이다. 뫼르소를 괴롭혔던 건 저 붉은 태양이었다. 공판이 재기되고 "살인죄, " "계획적" "정상참작"(p.118)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변호사는 뫼르소가 몇 년 동안의 금고, 징역을 살면 될 거라고 자신했지만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가 어머니 장례식 때 했던 부도덕한 행동들이 판결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법정에 선 증인들은 양로원 문지기, 양로원 원장, 마송, 레몽 생테스, 셀레스트, 살라마노 영감, 마리 등이다. 재판장에 왜 이들을 불렀는지 아이러니하다. 아랍인과 관련된 사람들을 불러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엄마 장례식과 연결된 사람들이 재판정에 서 있다. 장례식 때 했던 뫼르소의 행동은 가십거리가 된다. 재판은 뫼르소의 살인죄보다 '아들의 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또, 엄마 이야기를 꺼내려는 재판 상황이 벌어지자 이걸 눈치챈 뫼르소는 귀찮다고 생각했다.  


  재판장은 아들에게 왜 엄마를 양로원에 보냈느냐고 물었다. 뫼르소는 부양할 돈이 없었다고 한다. 검사는 아랍인을 죽일 의도로 샘 쪽으로 간 것이 아니냐고 추궁했다. 뫼르소가 아니라고 대답하자 검사는 "그렇다면 저 사람은 무기는 왜 가지고 있었으며, 바로 그 장소로 되돌아간 이유는 무엇인가요? "(p.99)라고 묻는다. 뫼르소는 우연이라고 답한다. 우연의 일치.. 알제의 바다는 뜨거웠고 태양은 내리쬐고 모래는 거칠었다. 아랍인 칼에 어깨를 맞은 레몽은 병원에 갔고, 뫼르소는 여자들의 수다가 시끄러웠다. 더운 여름 시원한 샘 그늘로 가고 싶었다. 다시 그 장소에 갔더니 마침 샘 그늘에 아랍인이 있었다. 아랍인은 뫼르소를 보자 단도를 뽑아 든다. 단도는 태양빛에 반사되어 뫼르소 이마를 찌른다. 그래서 총을 쐈다. 총을 쏠 수도 있었고, 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쐈다. 아랍인을 쏘면 그 칼날의 빛도 멈춰질 것 같았다. 태양빛에 반항하고 싶었던 뫼르소.  


“우리는 오랫동안 해변을 걸었다. 이제 태양은 찍어 누르는 듯 세차게 내리쪼였다. 햇빛은 모래와 바다 위에 부서지고 있었다. 나는 레몽이 자신이 가는 곳을 알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잘못 생각한 것인지도 모른다. 바닷가 끝까지 가서, 우리는 마침내 커다란 바위 뒤에서 바다로 향해 모래밭으로 흐르고 있는 조그만 샘 가에 이르렀다. 거기서 우리는 그 아랍인 둘을 다시 만났다. 그들은 기름기가 밴 푸른 작업복을 입고 누워 있었다.”(p65)


“방아쇠가 당겨졌고, 권총 자루의 매끈한 배가 만져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 요란한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나는 한낮의 균형과 내가 행복을 느끼고 있던 바닷가의 예외적인 침묵을 깨뜨려 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방을 쏘았다. 총탄은 깊이 보이지도 않게 들어박혔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은 것이었다.”(p70)


  살인 동기가 없는 우발적 행동. 자신을 둘러싼 억압, 작열하는 태양, 무직한 바다에서 벗어나 서늘하고 그늘진 샘 쪽으로의 이동 욕구. 부자유에서 자유를 향한 발걸음. 운명은 이렇게 결정된다.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 태양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니 너무나 부조리하다.(이 부조리함 때문에 이 책은 어렵다.) 인간의 삶처럼 태양빛 때문에 아랍인을 죽였다는 뫼르소도 아아러니하다. 뫼르소 자신 또한 살해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는 겸허히 죗값을 받는다. 상소를 거부하며 사형을 받아들인다. 법정에선 어떤 변명도 하지 않는다. 변호사와 검사의 공방에 그는 침묵했다.


  다만 부속 사제와의 논쟁에서 뫼르소는 자신의 생각을 쏟아낸다. 그의 항변은 이렇다. 그래서 뭐 어쨌단 말인가. 인간은 어차피 죽게 되어 있다. 지금 사형으로 죽건, 예순 살에 죽건 매한가지이다. 인간이 죽는다는 건 명백한 일이다. 뫼르소는 이 진리를 확실히 알고 있다. 그러니 죽음 앞에 인간의 삶은 부조리하다. 반항할 수 있는 건 저 영원불멸한 태양뿐이다. 태양은 죽지 않는다. 태곳적부터 시작된 저 태양은 언제까지 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자신은 소멸되어도 태양은 존재할 테니 말이다. 인간은 이 세계 속을 잠시 스쳤다 사라질 뿐.


  뫼르소가 알고 있는 것 단 하나 "부조리한 죽음"이다. 이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죽음 이외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다른 사람의 죽음, 어머니의 사랑 이런 것들도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모두 사형수이다. 아무리 아등바등 살아봤자, 의미를 두고, 가치를 찾아봤자 죽음 앞에서는 무효하다. 이 부조리가 숨이 막히도록 힘들지만 그것만이 진리임을 뫼르소는 확신했다. 그러니 사제한테 영원히 살 것처럼 말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당신은 살아있어도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고.


나는 전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다.

                                           (136쪽)


  뫼르소가 사형대 앞에서 할 말이다. 죽음은 부조리하고, 서글프지만 이제 곧 휴식에 들어간다. 이 한 세상 이렇게 실존했고 사라질 뿐이다. 이것만은 확실하다.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당신들도 죽을 것이기에. 똑같은 조건인데 누가 누굴 애도한단 말인가. 뫼르소의 마지막 소원은 자신이 단두대 앞에 섰을 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을 질렀으면 하는 바람뿐.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직면하라. 죽음의 현장에서 삶을 생각하라.


  죽음을 생각하고 삶을 산다면 당신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카르페디엠(carpe diem)이 떠오른다.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해라! 카뮈는 영원히 살 거처럼 행동하지 말길 당부했다. 현재-여기라는 실존에서만 인간은 오롯이 삶을 살 수 있다. 카뮈는 오래 사는 것보다 많이 살기를 원했다. 가식적인 삶을 버리고 한순간을 살아도 진실되게, 자신의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가길.


  <이방인>은 여러 번 읽어도 여전히 어렵고 낯설다. 탄생과 삶, 삶과 죽음을 끊임없이 고뇌했던 카뮈. 작가는 인간이 태어났는데 왜 죽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고 모순되는 상황을 ‘부조리’라는 용어로 상징화했다. 부조리의 대표 작가. 카뮈의 작품 이해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죽음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삶은 재조명된다. 인간은 영원히 살 거처럼 착각하며 내일을 살아간다. 카뮈가 말하는 삶은 부조리하지만 반복되는 삶에서 의미를 찾는 것,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실존주의 근본 사상이기도 하다. 지금-여기 말이다. <시지프 신화>에서 보면 돌덩이를 이고 언덕을 오르는 시지프스에게 신이 다시 돌덩이를 아래로 내려버리지만 절망하지 않고 기꺼이 다시 오른다. 어떤 상황에서건 죽음을 확신하며 순간을 충실히 사는 삶. 그걸 카뮈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토론해도, 글을 써도  모르겠다.)




 발췌 부분  <이방인> 발췌, 민음사.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뛰어갔다. 그처럼 서둘러 대며 달음박질을 친 데다가 버스에서 흔들리고, 또 가솔린 냄새, 길과 하늘에 반사되는 햇빛, 그런 모든 것 때문에 나는 졸음에 빠져 버렸다. 나는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거의 내내 잤다. 잠을 깨고 보니 어떤 군인의 어깨에 기대어 있었는데, 그는 나에게 웃어 보이며 먼 데서 오느냐고 물었다. 나는 더 말하기 싫어서 “네.” 하고 대답했다. 양로원은 마을에서 이 킬로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나는 걸어서 갔다. 곧 엄마를 보려고 했지만 문지기가 하는 말이, 원장을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원장은 바빴으므로 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동안 문지기는 줄곧 이야기했다. 그는 맑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p.10)


-그때 간호사가 들어왔다. 갑자기 땅거미가 내렸다. 삽시간에 밤이 유리창 위에 짙어 갔다. 문지기가 스위치를 돌렸을 때, 별안간 쏟아지는 불빛 때문에 나는 앞이 캄캄하도록 눈이 부셨다. 그가 식당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라고 권했으나,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는 밀크 커피를 한 잔 가져오겠노라고 말했다. 밀크 커피를 매우 좋아하므로 나는 그러라고 했다. 조금 뒤에 그는 쟁반을 하나 들고 돌아왔다. 나는 커피를 마셨다. 그러자 담배가 피우고 싶어 졌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시신 앞에서 담배를 피워도 좋을지 어떨지 몰라 망설였다. 생각해 보니, 조금도 꺼릴 이유는 없었다. 나는 문지기에게 담배 한 대를 권하고, 둘이서 함께 피웠다. (p.15)


-그리고 또 기억나는 것은 성당, 보도 위에 서 있던 마을 사람들, 묘지 무덤들 위의 붉은 제라늄 꽃들, 페레스의 기절(마치 무슨 꼭두각시가 해체되어 쓰러지는 것 같았다), 엄마의 관위로 굴러 떨어지던 핏빛 같은 흙, 그 속에 섞이던 나무뿌리의 허연 살, 또 사람들, 목소리들, 마을, 어떤 카페 앞에서의 기다림, 끊임없이 툴툴거리며 도는 엔진 소리, 그리고 마침내 버스가 알제의 빛의 둥지 속으로 돌아왔을 때의, 그리하여 이제는 드러누워 열두 시간 동안 실컷 잠잘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을 때의 나의 기쁨, 그러한 것들이다. (p.25)


-내가 눈을 떴을 땐, 마리는 가 버리고 없었다. 그녀는 아주머니한테 가야만 한다고 내게 설명했더랬다. 그날이 일요일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나는 따분한 기분이 되었다. 나는 일요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자리 속에서 몸을 뒤척대며 마리가 베개에 남긴 머리카락의 소금기 냄새를 더듬다가 10시까지 자 버렸다. 그리고 여전히 침대에 누운 채 12시까지 담배를 피웠다. 나는 여느 때처럼 셀레스트네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틀림없이 사람들이 질문들을 할 텐데 그게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란 프라이를 해 가지고, 빵도 없이 접시에다 입을 대고 먹었다. 빵이 떨어졌으나 사러 내려가기가 싫어져서였다.

점심을 먹고 나자 좀 심심해져서 아파트 안에서 어정거렸다. 엄마가 살아 있을 때는 알맞은 아파트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너무 커서 식당의 테이블을 내 방으로 옮겨다 놓을 수밖에 없었다. (p.28)


-나는 셀레스트네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막 먹기 시작했는데 키가 작은 이상스러운 여자가 한 사람 들어와서 나의 테이블에 앉아도 좋으냐고 물었다. 물론 앉아도 좋다고 했다. 몸짓은 앙증스럽고, 능금 같은 작은 얼굴에 눈이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재킷을 벗고 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메뉴를 살펴보더니 셀레스트를 불러, 즉시 명확하고 빠른 목소리로 먹을 요리를 전부 주문했다. 그러고는 오르되브르를 기다리는 동안, 핸드백을 열고 네모진 종잇조각과 연필을 꺼내어 미리 합산을 해 보고는, 지갑에서 팁까지 덧붙여 정확한 금액을 자기 앞에 내놓았다. 그때 오르되브르가 나오자 그녀는 서둘러서 먹었다. 다음 요리를 기다리며 또 핸드백에서 푸른 연필과 일주일 동안의 라디오 프로그램이 실린 잡지를 꺼냈다. 그 여자는 정성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거의 모든 방송에 표시를 했다. 잡지는 열두어 페이지나 되었다. (p.53)


-아무도 없었다. 언덕 끝을 따라 바다를 굽어보며 늘어선 작은 별장들 안에서는 접시며 포크, 스푼 등속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땅에서 올라오는 돌의 열기 속에서는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다. (p.62)


-그러나 나는, 원래 육체적 욕구에 밀려 감정은 뒷전이 되는 그런 천성이라고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장례식이 있던 날, 나는 매우 피곤했고 졸렸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잘 알 수가 없었다.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변호사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것으로 충분하지 못합니다.”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억제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요.” 하고 나는 대답했다. (p.75)


-또 담배도 고통 거리였다. 형무소로 들어왔을 때 나는 허리띠, 구두끈, 넥타이, 그리고 호주머니에 지니고 있던 모든 것, 특히 담배를 빼앗겼다. 일단 감방으로 들어온 뒤 담배를 돌려 달라고 청해보았지만, 그것은 금지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매우 괴로웠다. 나의 기를 꺾어 버린 것은 아마 이것이었을 거다. 나는 침대 판자에서 뜯어낸 나뭇조각들을 빨곤 했다. 온종일 끊임없이 구역질이 따라다녔다.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그것을 왜 빼앗아 버리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도 징벌의 일부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는 벌써 담배를 피우지 않는 일에 익숙해져서, 그것은 이미 나에게는 아무 징벌도 되지 못했다.

그러한 불편을 제외하면, 나는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거듭 말하자면, 문제는 다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p.88)


-알아듣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다 특권 가진 존재다. 세상엔 특권 가진 사람들밖에는 없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또한 장차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 역시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다. 그가 살인범으로 고발되었으면서 자기 어머니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형을 받게 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다는 말인가? (p.134)


-살라 마노의 개나 그의 마누라나 그 가치를 따지면 매한가지다. 자동인형 같은 그 작은 여자도, 마송과 결혼한 그 파리 여자나 마찬가지로, 또 내가 결혼해 주기를 바라던 마리나 마찬가지로 죄인인 것이다. 셀 리스트는 레몽보다 낫지만, 셀레스티나 마찬가지로 레몽도 나의 친구라고 한들 그것이 무슨 중요성이 있단 말인가? 마리가 오늘 또 다른 사람의 뫼르소에게 입술을 내바치고 있은들 그것이 어떻다는 말인가? 이 사형수야, 도대체 알기냐 하느냐? 미래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이런 모든 것을 외쳐 대며, 나는 숨이 막혔다.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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