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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ul 23. 2021

영화 <남매의 여름밤> 리뷰

샛별의 씨네수다 7.

영화 <남매의 여름밤>


• 감독: 윤단비

• 장르: 드라마

• 국적: 한국

• 주연: 최정운(옥주), 양흥주(아빠/이병기), 박현영(고모/이미정), 박승준(동주)

• 개봉: 2020. 08.20 개봉

• 상영시간: 104분 [국내] 전체 관람가


*스포일러 있습니다.


샛별 8점- '지나고 나면 한여름 밤의 꿈'

모든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제24회 토론토릴아시안국제영화제 오슬러 최우수 장편 영화상 (2020)

제17회 홍콩아시안영화제 뉴탤런트상 (2020)

제38회 이탈리아토리노영화제 최고 작품상 (2020)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수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 수상

제8회 무주산골영화제 대상인 뉴비전상 수상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시민평론가상, 넷팩상, KTH상까지 4관왕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은 2020년 여름에 개봉했다. <남매의 여름밤>은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관객들 사이에서 ‘올해 가장 기대되는 작품’으로 입소문이 나기도 했다. 영화는 다마스를 타고 이사를 가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여름 방학 동안 아빠(이병기)와 함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남매에게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무슨 사연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가구는 모두 버리고 단출한 짐만 챙겨 다마스로 이사를 하는 아빠는 패배자처럼 보였다. 여름날 더위 먹은 닭처럼 말이다. 다세대주택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병기는 아내와 이혼했으며 남매를 도맡아 키우고 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아빠에겐 본가이자 남매에겐 친할아버지 댁인 2층 양옥집이다. 2층 양옥집은 할아버지 홀로 조용하게 지냈던 공간이다. 이제 손주들과 자식들이 시끌벅적 소리를 낸다.

원래 영화의 원제는 ‘이사’였지만 영화 촬영을 하면서 감독은 남매가 더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남매의 OOO'로 정했다가 '여름밤'을 붙였다고 한다. 1년 중 여름밤은 특별하다.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남매에게 이 여름밤은 그런 시기였으리라. 원제인 '이사'보다 훨씬 영화를 잘 살린 제목이라 생각 든다. <남매의 여름밤> 청춘의 한 시절을 잘 담은 제목이다. 영화 영어 제목은 Moving On(옮겨간다. 나아간다)을 그대로 사용했다. 엄마 없이 지냈던 남매에게 이사를 통해 할아버지와 고모라는 가족이 생겼다.


옥주는 늘 걱정이 많다. 옥주는 아빠에게 할아버지한테 우리가 여기서 살 거라고 말했냐고 묻자 아빠는 당연하지라고 대답한다. 옥주는 내심 아빠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둘의 대화이다.


# 이사하는 차 안에서.


옥주: 할아버지한테 말한 거 맞지?

아빠: 그럼. 할아버지한테 다 말씀드려 놨어.

아빠: 저기 할아버지 더위 드셔서 병원에 계시다니까 내가 가서 모셔 올게. 먼저 들어가 있어.

옥주: 괜찮은 거야?

아빠: 아이 별일 아니야. 들어가 있어. (저녁에 아버지를 모시고 옴) 아버지 애가 옥주고요, 애가 동주예요. 많이 컸죠. 저 선풍기 좀 틀어드려.


# 콩국수를 먹으며.


아빠: 의자 어디서 찾았어. 2층에 있던데. 잘했어. 드세요. 아버지. 편안하게 먹어. 눈치 보지 말고.

옥주: 눈치 보는 거 아니야.

아빠: 아버지. 뭐라도 좀 드셔야죠? 네. 국물이라도 좀 드세요. (후루룩 콩국수를 먹으며) 저 애들 방학 동안만이라도 여기서 지낼까 하고요. 아이 아버지 혼자 계시게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괜찮죠?

할아버지: 응 그렇게 해.

아뺘: 아. 아버지 참, 설탕 넣어 드시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야 콩국수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다. 다 같이 모여서 먹으니까 맛있지. 먹어.


그럼 그렇지. 아빠는 또 거짓말을 했다. 할아버지에게 이제야 말을 하다니. 옥주는 이런 아빠가 미덥지 못하다. 아빠의 직업도 변변치 않다. 아빠는 다마스에 브랜드 운동화를 싣고 팔러 다닌다. 옥주는 그 운동화가 설마 짝퉁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옥주는 아빠가 파는 운동화를 남자 친구에게 선물까지 했었다. 또 옥주는 쌍꺼풀 수술을 하고 싶어 아빠한테 “돈 좀 빌려줄 수 있어” 묻더니 70만 원 만 빌려달라고 한다. 아빠는 어이가 없다. 누나의 말을 듣고 남동생 동주는 “누나도 참 철없다”라는 말을 한다. 옥주는 아빠에게 돈을 빌려주면 아르바이트해서 갚는다고 하자 아빠는 “너는 지금도 충분히 예뻐”말하고 상황이 종료된다. 결국 옥주는 다마스에서 운동화를 훔치고 정품 가격으로 거래를 하다 경찰서까지 가게 된다. 운동화를 받은 남자 고객이 “아빠한테 연락 좀 해보시면 안 돼요?”라는 말을 하자 옥주는 도망을 쳐버린 것이다. 이런 와중에 옥주는 미안함보다 쪽팔림이 앞선다.


옥주: 아빠. 신발 짝퉁이었어?

아빠: 아니 뭐. 공장은 똑같은데...


아빠는 할 말이 없다. 딸을 혼내야 는데 그러지도 못한다. 짝퉁 신발을 정품처럼 팔러 다녔을 자신의 행위에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옥주는 아찔하다. 짝퉁 신발을 남자 친구에게 선물했으니. 사춘기 소녀는 이게 너무 걱정이다. 결국 남자 친구를 만나 신발을 벗겨 버리고 가져온다. 이렇게 남자 친구랑 관계도 정리된다. 옥주는 자신의 처지가 슬프다. 엄마는 이혼해서 집을 나갔다. 옥주는 엄마에게 원망이 가득하다. 재개발로 인해 살던 집은 철거됐고, 할아버지 집에 얹혀살고, 신발을 거래하다 경찰서까지 갔다. 아빠에게 미안하고, 일이 자꾸 꼬이는 현실이 짜증 난다.


그나마 옥주에게 위로가 되어준 사람은 고모다. 고모도 남편과 이혼위기에 있다. 남매에게 고모는 엄마 같은 존재이다. 고모가 오자마자 주방은 시끌벅적하고 호박을 잘라 부치고, 잡채를 해서 한상 차린다. 그래서인지 고모가 올 때마다 <남매의 여름밤>은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이 계속 연출된다. 고모는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양푼에 비빔국수를 만든다. 고모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자고 조카들에게 말할 때도 포도를 내온다. 묵직한 얘기가 오가지만 포도의 달큼한 향기가 2층에 퍼진다. 포도향은 가족들을 덜 슬프게 만든다. 영화는 냉콩국수, 비빔국수, 잡채, 라면, 방울토마토, 포도까지 여름에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등장한다. 음식을 먹는 씬은 관객에게 여름 영화임을 잊지 않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결국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야 할 상황이 왔고 아빠와 고모는 요양원을 알아보고 온다. 요양원을 보고 온 둘은 집 앞 슈퍼에서 밤에 맥주를 마시는데 아빠(오빠)는 고모(여동생)에게 말을 꺼낸다. “아 저기 아버지 요양원 가시고 나면 당분간 지낼까 하는데”라고 말이다. 고모는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다. 이어 고모는 “이 집 오빠꺼 아닌 거는 알지? 알지. 오빠 근데 이 집 차라리 파는 거 어때?”라고 말이다.


# 슈퍼 앞에서


고모: 오늘은 좀 덜 더운 거 같다. 아흐. 난 차라리 추운 게 낫지. 이번 여름 날씨는 진짜 아.

아빠: 더운 게 낫지 않냐, 찬바람 불면 서글퍼지더라.

고모: 오빠 겨울 타? 아니. 난 몰랐네.

아빠: 아 왜 그러잖아. 찬바람 불면 코끝이 시린다고 그러잖아. 난 겨울 되면 코끝이 찡한 느낌인 거 같더라.

고모: 의외다 오빠.

아빠: 아 저기 아버지 요양원 가시고 나면 당분간 지낼까 하는데.

고모: 오빠. 이 집 오빠꺼 아닌 거는 알지? 알지. 오빠 근데 이 집 차라리 파는 거 어때? 어차피 빈집으로 둘 수도 없고.

아빠: 생각을 좀 해보자.

고모: 솔직히 내가 그동안 한 번도 얘기 안 했지만 오빠 힘들 때마다 아빠 돈 쓸 동안 나는 딸이고 둘째라서 다 그냥 알아서 했잖아. 근데 이 집까지 갖겠다는 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아빠: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마. 언제 이 집 내가 갖겠다고 했냐? 당분간 지낸다는 거지 뭐.

고모: 뭐 지금껏 내가 서운한 거 없어서 가만있었던 건 줄 알아 아빠 그동안 힘든 거 아니까 가만있었던 거지.

아빠: 그렇지.


두 남매의 대화는 현실적이다. 아빠는 당장 갈 곳이 없어 여기서 살고 싶지만, 고모는 입장이 다르다. 고모는 잠깐이야 오빠가 집에 있어도 괜찮지만 계속 머문다면 결국 양옥집은 오빠한테 가지 않을까라는 우려를 표한다. 그래서 둘의 대화는 씁쓸하다. 아직 아버지는 요양원에 가지도 않았는데... 결국 남매의 대화는 재산 문제로 귀결된다. 다음날 집을 부동산에 내놓고 어떤 아주머니가 집을 보러 오자 옥주는 당황한다. 할아버지 허락 없이 집을 팔려고 하는 아빠와 고모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의 세계에 옥주는 다가서기를 거부한다. 이 거부반응은 엄마를 향한 부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동주는 엄마를 만나고 선물을 받아 신나게 들어오지만, 옥주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크다. 선물도 꼴 보기 싫고, 엄마를 만나는 동생도 못마땅하다. 엄마에 대한 원망은 결국 그리움이다. 엄마가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자리. 그 빈자리가 옥주는 허하고 그립다.


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옥주는 꿈을 꾼다. 엄마가 장례식장에 찾아왔고 함께 밥을 먹고, 동주의 춤을 구경하는 꿈이었다. 옥주는 고모에게 자신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 날 꿈을 꾼다. 그것도 할아버지 장례식 장에서 말이다. 꿈에서 옥주는 엄마와 함께 식사를 하고 환하게 웃는다. 꿈에서 깨어난 옥주는 더욱 텅 빈 엄마의 자리를 느낀다. 꿈은 반대라더니 옥주는 엄마가 밉지만 그립다.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가족들은 집으로 돌아온다. 아빠는 주차를 하러 갔고 옥주와 동주는 대문을 들어선다. 옥주는 선뜩 현관문을 열지 못한다. 아직 할아버지가 마루 거실에서 노래를 듣고 있을 거 같다. 옥주는 저녁을 먹다 소파를 보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옥주의 울음은 그동안 쌓인 울분일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집에서 한여름 밤을 보낸 옥주는 이제 더 이상 그 옥주가 아니다. 할아버지 없는 2층 양옥집은 허전하다. 그토록 친근했던 공간이 타자의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남매의 여름밤>의 또 다른 주인공은 2층 양옥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단비 감독은 두 달 이상을 할애해 이 집을 찾았다고 한다. 정말 보석 같은 집이다. 동인천 부근에 구옥들이 많은 동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제작진은 인천영상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2층 양옥집을 찾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 주택은 70년대 유행했던 불란서 주택(프랑스에는 없는 양식)이며 당시 한국에 유행한 건축물(부유함을 상징)이라고 한다.


윤단비 감독은 “2층 양옥집을 보자마자 ‘이 집에서 촬영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라고 전하며 수차례 찾아가 집 주인 분들께 양해를 구한 후 <남매의 여름밤> 촬영을 진행하게 되었다. 2층 양옥집의 경우 실제 노부부가 아이들을 기르고 출가를 시킨 집으로 세월감이나 생활감이 그대로 묻어나 있는 집이었고, 이 모든 것들은 스크린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윤단비 감독은 도쿄 예술대학 대학원에 일주일간 특강을 들을 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 <걸어도 걸어도>의 미술감독 이소미 토시히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들을 작업할 때 미술을 어떤 방식으로 진행했나”라는 질문을 통해 “아무리 미술 세팅을 잘하더라도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의 의외성이나 디테일한 부분은 따라 하기 힘들다”라는 대답을 들었었는데, 이번 촬영을 통해 그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고. 영화 속 소품들의 경우, 실제 양옥집에 있는 것들을 대부분 활용하여 촬영했고, 집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정하기도 했다. 윤단비 감독은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할아버지 ‘영묵’의 텃밭이 관리가 안된 채로 황폐한 느낌으로 존재했지만, 영화를 위해 이 집의 텃밭을 훼손시키기보다는 텃밭의 푸르름을 살리는 방향으로 수정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2층 양옥집 텃밭에 있던 작물인 방울토마토나 고추, 포도를 따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와 계절의 풍성함을 살리는 쪽으로 촬영을 진행한 것. 이처럼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 햇볕 아래 오래된 2층 양옥집을 배경으로 콩국수와 수박 등 여름 음식을 먹는 장면, 모기장과 매미 소리까지 여름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영화 속에 자연스럽고 매력적으로 녹아있어 관객들의 여름 감성을 자극하며 긴 여운을 선사할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할아버지는 옛 시절 부유했을 것이고, 이곳에서 남매를 키웠다. 아빠와 고모는 지금 옥주와 동주처럼 포도도 따먹고, 누워서 하늘도 보고, 엄마가 해주는 국수도 먹으면서 컸겠지. 생은 녹록지가 않다. 지금 아빠와 고모의 상황은 나쁘다. 하지만 2층 양옥집에서 만큼은 유년의 시절로 돌아갈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남매를 교차시킨다. 한세대는 다른 세대로 이어진다. 아빠- 고모, 옥주-동주. 남매들의 여름밤이 시작하고 사라지는 곳. 2층 양옥집은 마법 같은 공간이다.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양옥집은 추억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옥주와 동주, 아빠와 고모는 지금의 여름밤을 잊지 못하지 않을까. 할아버지와 마지막 시간을 보냈던 집이니까. 두 남매에게 2018년 여름밤은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각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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