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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07. 2021

전주국제영화제개막작 <아버지의 길>

샛별의 씨네수다 6.

 *스포일러 있습니다.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JIFF)가 29일부터 5월 8일까지 전주와 온라인에서 동시에 시작됩니다. 올 영화제는 48개국 186편(장편 116편, 단편 70편)의 영화가 상영된다고 해요. 개막작은 슬로다 고르보비치 감독(세르비아)의 <아버지의 길>이며, 폐막작은 오렐 감독(프랑스)의 <조셉>입니다. 전주국제영화제 측은 개막작 선정 이유로 "<아버지의 길>은 '그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한 가장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특히 아버지 니콜라 역을 맡은 배우 고란 보그단의 과묵하지만 행동으로 가장의 책임감을 보여주는, 선이 굵은 연기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라고 합니다. 저는 온라인으로 '아버지의 길(FATHER, 2020)'을 보았어요. 한번 결제(5,000원) 하면 12시간 동안 마음껏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합니다.                                             


  참, 영화를 보면 세상 사람들은 다양하다는 걸 느낀다. 낯선 땅과 민족들, 경제력 차이, 이질적인 문화도 있지만, 엔딩과 함께 드는 생각은 하나. 인간적 보편성은 비슷하구나. 영화 <아버지의 길>은 부성애를 찍었다. 자식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국경을 초월해도 똑같다(너무 당연한 말을 쓴다). 주인공 니콜라(고란 보그단)는 두 자녀의 아버지이다. 세르비아의 어느 작은 마을 일용노동자인 그는 목재소에서 벌목을 한다. 임금은 2년째 체불 중이다. 아내 빌랴나는 딸과 아들을 데리고 작업장으로 찾아온다. 휘발유를 들고. 빌랴나는 당장 임금을 지불하라며 "우린 너무 배가 고파요. 애들이랑 그냥 죽어버릴래요"를 외치더니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엄마를 지켜본 자녀들은 겁에 질린다. 경찰과 병원, 사회복지과에서는 엄마가 분신한 원인은 무시한 채 행동에 대한 책임만을 지적한다. 경찰은 남편에게 부인은 우울증 같은데 부인 계획을 알고 있었냐면서 추궁한다.

  게다가 사회복지과에서는 자녀를 아버지로부터 빼앗는다. 부양의무자인 아버지가 무능력하다며 자신들이 대신 돌보겠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센터는 아동 긴급 보호 조치를 시행하며 아동을 위탁가정에 맡긴다. 아버지는 받아들일 수 없다. 복지센터 직원은 아버지에게 정규직을 구하고, 집안을 살기 편하게 꾸미라고 요구한다. 직원은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지, 수도가 나오는지, 냉장고가 있는지, 벽에 칠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등을 묻더니 점검하러 갈 예정이라 알려준다.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집을 치운다. 2개월 전에 나간 전기도 옆집에서 끌어다 고쳐 놓고, 수도도 나오게 하고 페인트도 칠한다. 가난은 전기도 수도도 쓸 여력을 없게 만든다. 복지센터 직원들이 집으로 찾아와 집안을 둘러보며 심사한다. 그들은 트집만 잡는다. 장난감이 저것밖에 없냐, 욕실에 보일러가 안 들어온다, 인터넷 시대에 컴퓨터도 없냐 등등. 2년 동안 임금을 받지 못한 집안 형편에 대한 고려는 없다. 결국 센터장은 집안 환경, 일용직 등을 운운하며 아버지에게 부양의무를 유보한다. 아버지는 지금 당장 어떻게 정규직을 구하냐 따지지만 직원은 7일 이내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고만 일갈한다. 아버지는 센터장에게 아이들을 만나기 전까지 단식투쟁을 할 거라고 말한다. "나한테 그럴 권리가 있어요."라면서.

  영화는 아이를 내주지 않으려는 자와 아이를 찾으려는 자의 긴긴 싸움이다. 센터장은 법으로 맞서고 아버지는 무턱대고 대응한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권리를 찾으려면 무식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아버지는 현재 돈도 아내도 아이들도 없다. 하나씩 찾아야 한다. 아버지는 가족을 지킬 의무가 있다. 아버지의 길이자 숙명이다. 영화는 한편에 악의 축을 놓고, 선의 축으로 맞서게 한다. 악조건인 아버지를 돕는 손길이 영화를 진행시킨다. 아버지를 돕는 손길을 복기했다.  


먼저, 복지센터 경비원이다. 

경비원은 센터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건을 수없이 보았다. 그는 니콜라가 아무리 단식투쟁을 선언해도 바위에 계란 치기라는 걸 알고 있다. 경비원은 접시에 음식을 담아 아버지 옆에 앉는다. 그는 센터장이 아이들을 고향으로 빼돌린다는 정보를 흘린다. 아동을 위탁하면 정부에서 위탁비로 돈이 나오고 인당 30%를 센터장이 먹는다고 한다. 센터장은 아동들을 자신의 고향 사람들에게 넘긴다. 고향 사람들과 짜고 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고서도 아무도 무서워 말을 꺼내지 못한다고 경비원은 덧붙인다. 또, 돈을 계산해보라며. 아버지는 자기에게서 자식들을 빼돌리는 이유를 명확히 알았다. 부패한 센터장을 믿기 어려운 아버지는 이의신청을 하러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정부 장관을 직접 만나러 간다.


두 번째, 직장 동료다.

그는 이의신청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동료 집을 찾아간다. 니콜라는 글을 모르는지. 동료는 니콜라보다 훨씬 잘 산다. 거실에 소파와 찻잔도 있고, 심지어 노트북도 있다. 예전 동료였던 그는 읽고 쓸 줄 안다. 니콜라는 돈은 나중에 줄 테니 신청서를 써달라 부탁하자 동료는 사정을 듣더니 이런 일은 무료로 해주겠단다. 니콜라는 서류와 물 한 통, 빵 한 덩어리를 챙겨 길을 나선다. 마을에서 베오그라드까지 300km가 된다. 여기를 걸어갈 작정이다. 그는 차비도 없다. 양육권을 찾기 위한 험난한 여정이 시작된다. 중간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장관에게 이의신청 서류를 내겠다는 의지는 먼 길도 걷게 만든다. 300km 면 서울에서 광주까지 거리(296.14km)이다.(네이버 검색) 휴. 니콜라는 도로 위를 걸으며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는 폐가가 된 주유소에서 잠을 자거나, 길거리에서 물을 받아먹고, 빵을 조금씩 나눠 먹는다.


세 번째 경찰.

고속도로를 걷는 건 불법이고 벌금도 있다. 고속도로를 걷다 경찰차가 쫓아온다. 경찰에게 걸려 벌금을 물어야지만, 경찰들은 오히려 안전한 길로 데려다준다. 벌금 낼 돈이 없다고 하자 봐준다.


지나가는 밴

다시 길 위에 선 아버지 앞에 대행 밴이 선다. 차주는 아버지를 향해 타라고 손짓한다. 어디 가냐며 태워준다. 아버지의 사정을 듣고, 차주는 어려울 때 연락하라며 전화번호를 준다.


병원 침대

니콜라는 걷다 걷다 길 위에 쓰러진다. 탈진과 고열로. 눈을 뜨니 병원 침대에 누워있다. 누군가의 손길인지는 모르지만 그를 발견하고 병원에 옮겼거나 신고로 구급차가 왔을 것이다. 고마운 행인이다. 의사는 링거를 놔준다. 침대 옆엔 사과와 우유가 놓여 있다. 그는 병원 침실에서 기력을 회복한다. 그리고 몰래 도망친다.


편의점 직원

걸어도 끝이 없고, 또 하루가 저문다. 캄캄한 밤이다. 하룻밤 머물 장소도 없다. 편의점에 들어가 직원에게 내일 아침까지 있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너무나 뜻밖에도 직원은 아버지를 물품보관 창고로 데리고 간다. 아침 8시 전에는 사장님이 오니 그전에 나가라 말한다. 주스와 샌드위치를 가져다주는 손길. 그 마음이 따뜻하다.


전도하는 청년

또 트럭이 멈춘다. 운전하는 청년은 그에게 하느님을 믿냐고 묻더니 수도 근처까지 태워준다. 드디어 수도 베오그라드에 도착했다. 장관을 만나러 왔건만 직원들은 장관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절차를 밟으라 한다. 직접 청원을 하겠다는 아버지는 건물 밖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돼버린다. 장관을 만날 수는 있을까.


취재 기자

기자는 카메라를 들고 그에게 다가가 자식을 찾기 위해 300km를 걸어왔다는 아버지를 취재한다. 공중파로 그의 소식이 전해진다. 방송의 힘은 어디까지 미칠까.


따뜻한 음식을 갖다 준 시민

또 밤이 깊었다. 물도 없고 빵도 없다. 노숙자가 된 아버지에게 시민이 음식을 건네고 간다. 방송에서 소식을 들었다면서.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이 담겨있다. 얼마 만에 먹어보는 따뜻한 식사일까. 아버지는 음식을 삼키다 결국 눈물을 쏟는다. 여태 버티며 참아온 설움이 복받친다.


장관

장관은 언론을 의식했는지 그를 만난다. 밑에 직원들은 최선을 다해 막더니 막상 만난 장관은 젊은 사람이었고, 친절했다. 비서에게 주스를 갖다 달라 부탁하고 니콜라를 옆에 앉히더니 이의신청을 읽어본다. 여기까지 걸어왔냐고 묻는다. 당신은 아이를 버리는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다며, 아이를 찾도록 센터장에게 권고하겠다고 전한다. 게다가 차비까지 걱정하며 돈을 준다. 아이들 만날 때 초콜릿도 사다 주란다. 니콜라는 SNS에 올린 사진을 찍자고 한다. 비서가 장관과 니콜라를 찍어준다. 장관이 준 돈으로 니콜라는 사과와 초콜릿을 사서 집으로 온다. 왠지 든든하다. 빈손이 아니라서.


복지 직원

복지센터장은 니콜라에게 분노가 가득하다. 방송에도 나가고, 장관도 만났다며 일을 시끄럽게 했다고 한다. 장관 지시는 권고사항일 뿐 결정은 자기가 내린다며 일침을 가한다. 센터장은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아이를 돌려주지 않겠다 하는데, 니콜라도 침착하게 맞선다. 드디어 아들과 딸을 면회한 니콜라. 딸은 아버지에게 안기며 초콜릿을 받는데 아들은 외면한다. 아버지가 자신들을 버렸다면서 화가 엄청 나 있다. 그러나 막상 헤어지려니 위탁가정 차에 타지 않겠다며 아버지를 끌어안는다. 아버지는 너희들을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고 곧 찾으러 간다며 아빠를 믿어달라 한다. 확신이 가득한 아버지를 보고 아들은 순순히 차에 탄다. 이를 지켜본 여직원. 아버지를 집까지 태워주며 유감을 표한다. 센터장 눈치를 봤던 직원의 태도가 아버지를 돕고 싶은 마음으로 바뀐다. 월요일에 다시 오라며 도와주겠단다. 직원의 심경 변화는 아이들을 찾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옆집 아저씨와 노인

집에 와보니 모든 살림살이가 사라졌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가족들이 집을 비워봤자 5일 정도 지났을 텐데.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이 니콜라를 못 본척한 이유가 있었다. 니콜라는 옆집으로 달려가 가구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묻자 사람들이 문을 따고 가져갔단다. 기가 막히다. 옆집 아저씨와 어느 노인만 빼고, 이웃들이 니콜라 집에 들어와 살림을 훔쳐 갔다. 아마도 니콜라 가족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그렇지. 니콜라는 이웃들의 집에 들어가 물건들을 다시 찾아온다. 의자, 탁자, 인형, 그릇, TV 등등. 그들이 이걸 왜 가져갔을까. 의자를 가져간 집을 보니 의자가 많던데. 꼭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니콜라 살림을 훔쳐 쟁여 놓은 이웃들. 가난은 일말의 인간성마저 타락시킨다. 니콜라를 도와준 손길도 있지만 그를 무너트리는 손길도 곳곳에 숨어 있다. 이웃들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살림들을 죄다 가져가다니.


영화제 기간에 우연히 전주에 있었네요.

  그래도 니콜라는 그들에게 화를 내지 않는다. 묵묵하게 자신의 물건을 찾아 제자리에 배치한다. 식탁 옆에 1인용 소파가 있었는데 아직은 누구 집에 있는지 모른다. 식탁과 4개의 의자는 모두 찾았다. 곧 소파도 찾을 것이다. 아이들을 찾으러 떠났듯이 아버지는 흩어진 가구들을 제자리에 놓는다. 세상은 가구를 훔쳐 간 이웃들, 부정부패를 일삼는 관리, 임금을 체불하는 사업주도 있지만 도움의 손길도 있다. 아버지는 길 위에서 만난 따뜻한 손길을 기억할 것이다. 감독은 악과 선이 공존하는 세상을 찍었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한다. 배고픔도, 발이 찢어지는 아픔도, 모욕도, 가난도 헤쳐나가야 한다. 세상의 악도 삼켜야 한다. 식탁과 의자 4개가 집으로 돌아왔듯이 헤어진 가족들도 곧 식탁으로 모일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아버지는 다시 빵을 먹는다. 긴긴 여정을 버티려면 지금은 빵을 뜯어야 할 때다.  

                                                                                                                                                                                     



영화: <아버지의 길>(FATHER)

감독: 슬로단 고르보비치

출연: 고란 보그단

수입: 전주국제영화제

국가: 프랑스, 독일,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20분

개봉: 2021년 7월(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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