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의 씨네수다 5.
*스포일러 있습니다.
* 윤여정 배우님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축하드립니다.
"원더풀 미나리"
영화 <미나리>(Minari)는 아메리카 드림을 꿈꾸며 한국을 떠난 이민자들의 이야기이다. 미국으로 가면 서로 구원해줄 거라 믿었던 부부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영화는 한인 1세대가 미지의 땅에 정착하는 몸부림을 그렸다. 싹이 뿌리를 내리려면 비와 바람, 땅이 필요하다.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온 이방인들은 황무지에서 어떻게 살아야했을까. <미나리>는 잔잔한 수평선과 초록 풍경을 배경으로 하지만 주인공 가족의 모습은 살얼음을 위를 쿵쿵 걷는 것 마냥 불안불안 위태롭기 짝이 없다. 이곳에 새로운 씨앗이 날아든다. 한국에서 미나리 씨를 품고 온 친정엄마. 엄마의 등장은 모든 상황을 리셋시킨다. 미나리를 여기저기 퍼트리며 가꾸는 엄마의 손길은 훼손된 금들은 다시 복원시킨다. 미나리처럼 다시 살아난다. 영화는 제목이 모든 걸 다했다.
제이콥(스티브 연)은 병아리 감별사다. 10년을 병아리 똥구멍만 들여다보며 뼈 빠지게 일했다. 감별사는 한인들이 할 수 있는 일 중 고소득에 속한다. 병아리 감별사로 십 년을 일했으면 꽤 돈을 모았겠지만 이 집 사정은 그렇지 않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그렇게 번 돈 다 어디로 갔는데?" 하자 남편은 "또 시작이야. 난 장남으로서 가족을 돌본 거뿐이야"라고 소리 지른다. 아내와 제이콥은 악다구니를 하며 싸운다. 장남으로 본가를 도와준 제이콥에게 아내는 분노를 표한다. 지금 우리 꼴을 보라고. 아무리 10년을 고생하면 뭐하나. 심장이 좋지 않은 아들 데이빗(앨렌 김) 병원비를 걱정해야 한다. 더군다나 집이라고 데려온 곳이 바퀴 달린 트레일러라니. 아내는 황망하다. 10년 동안 코딱지 만한 방에서 살았다. 이젠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트레일러가 집이라니 속상하다. 문제는 병원이다. 데이빗은 심장이 약해 뛰지도 못한다. 모니카는 한창 뛰어놀 아들에게 "데이빗 뛰지 마"를 연신 뱉는다. 병원까지는 1시간이 걸린다. 만약 데이빗의 심장이 아프기라도 하면 아들의 생명은 위험하다. 확률은 반반이다. 데이빗이 별 탈 없이 지내거나 위급한 상황이 오면 한 시간 안에 사투를 벌이며 병원에 도착해야 한다. 의사들은 잘못하면 데이빗의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했다. 모니카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이의 생명을 두고 모험을 벌이는 남편이 절망스럽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남편을 보며 속이 탄다. 밖에는 천둥. 번개가 치지만 부부의 언성에 묻히고 만다. 한 번씩 토네이도처럼 휘몰아치는 절망은 온 가족에게 상처를 남기고 떠난다.
아침이 왔다. 남편은 가족을 위해 다시 한번 시작하려고 한다. 그 시작은 이곳이다. 제이콥은 아칸소 흙이 기름지다고 말한다. 이제는 좀 크게 성공하고 싶다. 병아리 감별사로는 미래가 없다. 그는 한국 농작물을 심어 한인들 대상으로 판로를 개척하면 대박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현 가능할까. 모니카는 "이게 당신이 말한 시작이면 우린 별 가망이 없어"라며 냉소적이다. 가든을 만들겠다는 남편의 드림은 불가능해 보인다.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했는데 농사를 짓겠다니 어이가 없다. 땅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대체 남편은 대책이 없다. 대출해서 무작정 땅을 사고, 아들이 아픈 건 아랑곳없이 트레일러로 가족을 끌고 오다니.
그렇다고 부부가 농장일에만 올인할 수도 없다. 당장 먹고살려면 수입이 있어야 한다. 아내 모니카는 병아리 감별사로 나서지만 아직 경력이 적어 일에 서툴다. 제이콥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시간을 쪼개 농장일을 한다. 투잡을 하는 모습이다. 그의 고군분투는 시작된다. 더군다나 미국 땅에 한국 농작물을 심을 계획이니 모험이다. 그는 낡은 트랙터도 구입한다. 문제는 물이다. 이곳에 물을 끌어 쓴 흔적이 없다. 수맥을 찾아주겠다고 온 사람은 깨끗한 우물 두 개에 300불을 부른다. 제이콥은 그를 믿을 수 없다는 눈치다. 아저씨 말이 불길하다. "결국 전 주인도 돈 아끼려다 어떻게 됐는지 알죠?" 이 땅의 전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까. 초반부터 고난의 시작이다. 이사하자마자 토네이도가 불어 트레이터를 날릴 기세더니 이번엔 전 주인의 과거를 놓고 운을 배팅한다. 물이 콸콸 나와도 농사짓기가 어려운데 제이콥은 300불을 아끼려고 혼자 우물을 찾는다. "멍청한 미국놈들은 저런 헛소리를 하고 있어"라며. 이 넓은 땅에 수맥을 찾을 수 있을까. 제이콥의 의지는 이 장면에서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이콥은 직접 삽을 들고 "한국 사람은 머리를 써. OK?" 하더니 자신의 반경 넓이로 땅을 판다. 멍청한 막대기보다 자신의 머리를 믿는다.
뜨거운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는 아버지가 있다. 손수 삽을 들고 우물을 파는 아버지의 집념을. 아버지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우물 찾는 방법을 전수한다. 그 드넓은 초원에서 기지를 발휘해 물을 찾아냈던 아버지를 데이빗은 기억할 것이다. 제이콥에게는 한국인의 자부심도 엿보인다. 수맥을 자신이 직접 찾겠다는 의지와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는 간절함이 드러난 말이다. "공짜로 찾을 수 있는 걸 돈 내고 사면 안 돼. 우리 농장은 다 땅에서 얻어 내면 돼. 그게 바로 머리를 쓰는 거야." 그의 노력은 결국 물을 만나게 해 준다. 깊이 판 땅에서 물이 솟는다. 데이빗은 아버지와 함께 유레카를 외친다. 물은 생명수다. 물이 없으면 농작물은 시들시들 말라간다. 끊임없이 물이 샘솟으려면 자연도 도와줘야 한다. 비도 적당하고 햇볕도 알맞아야 한다. 자연에서 물을 얻지 못하면 낭패다. 밝은 날이 있으면 궂은날이 오기 마련이다. 영화는 궂은날을 등장시킨다.
우물을 발견하고 외쳤던 환호는 곧 시들어버린다. 농작물이 말라간다. 큰일이다. 비가 와서 지하수가 넘쳐야는데 여의치가 않다. 우물에 물이 없다. 결국엔 집에 있는 자치구 수도에 호수를 연결에 밭에 물을 댄다. 수도는 한계가 있다. 이번에는 집 수도가 안 나온다. 하나가 해결하면 하나가 말썽이다. 단수라니 큰 일이다. 당장 가족들이 쓸 물이 없다. 설거지도 해야 하고 얼굴도 씻어야는데, 모니카는 짜증이 머릿 끝까지 난다. 수돗물을 끌어다 농사짓는데 다 써 버렸으니 말이다. 물을 쓰려면 은행 대출을 다시 받아야 한다(물세가 비싼가?). 무언가가 계속 터지는 제이콥의 꿈. 순탄치가 않다. 그는 과연 '가든'을 만들 수 있을까.
제이콥의 꿈은 비현실적이다. 일하는 인부도 없다. 저 넓은 땅을 혼자서 어쩌려는지 대책이 없어 보인다. 손수 우물을 파서 물을 대겠다는 포부는 좋으나 무리수였다. 제이콥은 초보 농사꾼이다. 그럼에도 "다들 겁내는 땅을 사다니. 요즘 농사는 아주 크게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 하나죠 "라며 은행 직원은 제이콥을 칭찬한다. 또 대출을 받는 모양이다. 아니, 다들 겁내는 땅을 제이콥은 어쩌자고 샀을까. 전 주인은 농사짓다 권총 자살한 걸로 추측된다. 일꾼으로 채용된 동네 어르신은 엑소시즘을 아느냐고 묻더니 "여기 있었던 사건은 영 안 좋아요. 그런 일은 정말로 안 좋아요."라며 말을 흐린다. 제이콥은 농사를 크게 지을 예정이면서 농사짓는 법도 잘 모른다. 어르신은 "왜 그렇게 가까이 심어요? 가까이 심으면 안 돼요."조언해준다. 심는 간격을 넓게 줘야 크게 자란다면서.
당장 아이들 케어도 문제다. 앤(노엘 조)과 데이빗은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낸다. 아이들을 병아리 감별하는 곳에 데려가기도 어렵다. 제이콥은 베이비시터는 필요 없다고 답답한 소리만 한다. 결국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에게 SOS를 보낸다. 친정엄마 순자(윤여정)의 등장은 가족에게 활기를 불어넣는다. 순자는 전쟁 때 남편을 잃고 모니카를 홀로 키웠다. 순자는 글도 모른다. 결혼한 외동딸이 미국으로 간 후 홀로 한국에서 살았다. 앤은 한국에서 본 거 같고, 데이빗과는 첫 만남이다. 머나먼 곳까지 온 엄마를 보더니 모니카 눈이 빨개진다.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 멸치 봉지를 꺼낸다. 모니카가 운다. "야! 또 울어? 멸치 땜에 울어?"라고 순자는 퉁명하게 말하지만 이러고 사는 딸이 내심 안쓰럽다. 데이빗을 위해 한약재를 사 오고, 두둑한 현금봉투도 딸 손에 쥐어준다. 순자의 보따리는 끝없이 펼쳐진다. 화투도 나오고 밤도 나온다. 고춧가루를 받자마자 손가락으로 찍어 먹는 모니카. 얼마나 다급했으면 고추장도 아닌 고춧가루 맛을 봤을까? "여긴 이런 걸 구할 수가 없어. 8시간 넓게 달라스를 갔는데 별루였어."이런 사정이니 고춧가루를 안 찍어 먹을 수가 없다. 김치에 꼭 필요한 양념이다. 얼마 만에 보는 붉은 고춧가루일까. 모니카는 고향의 향수가 벅차다. 엄마에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바퀴 달린 집에 사는 자신의 처지가 창피하다.
모니카는 한국적인 정서를 잃지 않는다. 콩장도 만들고, 그네도 만들어 나무에 건다. 그네를 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모니카는 행복하다. 아이들은 영어, 한국어를 모두 사용할 줄 안다. 한국어는 모니카가 따로 가르쳤을 것이다. 모니카의 야무진 성격도 보인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불편한 게 많다. 식사들은 자신들이 챙겨야 한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엄마는 이미 일하러 나갔다. 앤은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고, 데이빗은 시리얼을 말아먹고, 바나나와 치즈로 아침을 해결한다. 모니카도 도시락을 챙겨 다닌다. 저녁이 되어야 흩어졌던 가족들이 모인다. 저녁식사 조차 같이 먹지 못한다. 각자들 해결하는 모습이다. 밤이 깊어간다. 하루하루 살기가 바쁘다.
이민자가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 '외로움'과도 싸워야 한다. 말할 사람은 오직 가족뿐이다. 모니카는 친구가 없다. 모니카의 외로움을 읽어주는 남편은 그녀에게 교회에 가자고 권한다. 마치 남편이 허락하는 모양새다. 남편은 교회에 부정적인 모습이지만 아내는 기독교 신자 같다. 벽에 성경말씀을 붙여 놓고, 데이빗에게 기도하는 거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교회에 가는 거 조차도 남편의 뜻에 따라 움직인다. 남편은 모니카에게 선심을 쓰듯 교회로 향한다. 교회는 새로 온 신도들에게 환영의 박수를 치며 따뜻하게 맞아준다. 교회 사람들은 모니카에게 다가가지만 모니카는 영어를 잘 못한다며 뒤로 물러난다. 남자아이는 데이빗을 보더니 "네 얼굴은 왜 이렇게 납작해?"라고 찡그리며 묻는다. 교인들과 친해지려 했지만 모니카는 조금 거북스럽다. 남편에게 "일요일은 그냥 일하는 게 낫겠어"라고 한다.
순자는 이곳에서 별로 하는 일이 없다. 한국에서처럼 계속 방송을 보거나 권투를 본다. 또, 손자들을 앉혀놓고 화투를 가르친다. 데이빗은 이런 순자 모습이 할머니 같지가 않다. 데이빗에게 할머니는 "쿠키도 만들고, 나쁜 말도 안 하고, 남자 팬티도 안 입"은 모습이어야 한다. 순자는 정반대다. 쿠키도 못 만들고 욕도 잘하고, 남자 팬티 같은 옷을 입고 있다. 데이빗은 할머니를 놀리느라 오줌을 마운틴 듀라고 속인다. 할머니와 손자는 삐그덕 거리지만 케미가 좋다. 부부 사이와 대비되게 할머니와 손자의 신은 밝은 공기로 가득하다. 손녀 앤의 비중은 의외로 적다. 앤은 가족들을 뒷치닥거리 해준다. 엄마를 위로하고, 아빠에게 미국 농작물을 심으라고 조언하고, 동생을 챙겨야 하고, 할머니에게 미국 생활을 가르쳐줘야 한다. 그런데 방 배정이 조금 이상하다. 보통은 손녀랑 할머니랑 자게 할 텐데 손자랑 한 방을 쓰도록 배치했다. 앤은 데이빗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이미 할머니와 방을 쓰기 싫다고 말했을 것이다. 어린 데이빗은 의사결정권이 없어 보인다. 데이빗은 누나에게 할머니한테 '한국 냄새'가 나서 싫다고 한다. '그랜마 스멜'이라면서. 한국에 가보지도 않은 데이빗이 한국 냄새가 나서 싫다 하니 아버지는 화를 낸다. 데이빗은 할머니와 방을 쓰는 게 싫다.
순자는 손주들을 데리고 미나리 씨앗을 뿌릴 장소를 찾는다. 그 많고 많은 씨앗 중에 순자는 왜 미나리 씨앗을 선택했을까. 미나리의 근성을 때문에 미국 땅에 잘 자랄 것이라 생각했을까. 미나리를 개울가에 심는 순자는 얼마 후 미나리를 보러 간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미나리를 보자 순자는 "미나리 잘 자라네. 넌 미국서 낳아서 미나리 먹어본 적 없지. 미나리가 얼마나 좋은 건데 미나리는 잡초처럼 아무데서나 막 자라라니까 누구든지 막 뽑아 먹을 수 있어.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다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미나리는 김치에도 너먹고, 찌개에도 너먹고, 국에도 너 먹고, 미나리는 아플 땐 약도 되고, 미나리는 원더풀~ 원더풀이란다." 손자도 할머니 말을 듣더니 원더풀 미나리~ 원더풀 미나리~~노래 부른다. 순자는 원더풀 미나리에서 몇 가지 염원을 본다.
미나리는 평등하다. 미나리는 순자의 말처럼 어디서든, 누구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두를 공평하게 대한다. 평등은 한인들이 미국에서 살아갈 때 가장 중요한 가치이다. 인종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이민자들을 받아들였으면 하는 뜻이 담겨있다. 이민자들은 인종, 종교, 문화, 가치관에 차별받지 않고 공평하게 대우해주는 나라를 꿈꾼다. 누가 와도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받아주는 나라였길 희망한다. 미나리는 강하다. 누가 돌보지 않아도 잘 자란다. 데이빗은 심장이 약하다. 심장 때문에 뛰지도 못한다. 뛰고 싶을 때는 빨리 걷는 손자를 보며 순자는 "스트롱 보이~ 스트롱 보이"라고 외쳐준다. 할머니가 볼 때 데이빗은 그렇게 약하지 않다. 모니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데이빗은 훨씬 씩씩하다. 어릴 때 아이들은 다 아프면서 크는 거라며 데이빗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 불안하지만 불안감을 아이에게 전이시키지 않는 의연한 모습이다. 미나리를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했으니 데이빗도 미나리처럼 건강해질 거라는 암시가 내포된 듯 보인다. 미나리는 원더풀이다. 미나리 밭은 멋진 신세계의 공간이다. 한인들도 미국 땅에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멋지고 신나게 살아갈 것이다. 제이콥 가족도 미나리처럼 훌륭하게 해낼 것이다. 순자가 가지고 온 미나리에는 할머니의 마음, 엄마의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
단수가 되었던 집에서 물이 콸콸 나오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잘 뚫릴 것처럼 보이지만 생은 평화로울 틈이 없다. 순자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려는 듯 뇌졸중에 걸린다. 윤여정의 연기는 여기서 빛이 난다. 생동감 있는 연기와 바닥에 딱 붙어 숟가락 하나도 들지 못할 거 같은 힘없는 환자의 역할을 해낸다. 화투를 낱장을 내리치며 "쌌지! 비켜라 이놈아~ 봤지~ 아구~ 지랄~"하며 쪼그리고 앉아 화투를 치는 모습과 침대에 누워 이불 밑 서랍을 응시하며 헛소리를 하는 순자의 모습은 극과 극이다. 삶은 구비구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다. 순자가 처연하다. 남편은 전쟁에서 잃고 외동딸은 결혼하더니 미국으로 가 버리고, 홀로 한국에서 지내다 딸이 불러 아칸소 촌구석까지 왔는데 딸이 사는 모양새를 보니 속이 쓰린다. 그래도 내색 없이 손주들을 돌보며 지내는데 어쩌자고 불행은 순자에게로 찾아왔는지. 자신이 이곳에 이러고 누워있을 처지는 아닌데도 말이다. 더 이상 불행은 없을까.
데이빗의 심장 검진을 받으러 간 가족들은 기쁜 소식을 듣는다. 데이빗의 심장이 좋아졌다고 의사가 말한다. 모니카에게는 구원의 소리처럼 들린다. 병아리 감별하면서 집에 있을 데이빗을 얼마나 걱정했을까. 무슨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끝장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냈을 텐데. 이제 모니카도 한시름 놨다. 엄마도 아픈데 데이빗이 도와준다. 집으로 오는 길. 큰 불행이 눈앞에 펼쳐진다. 애지중지 길러 곧 팔릴 농작물을 보관한 창고가 불에 타고 있다. 데이빗의 꿈과 야망이 훨훨 타버린다. 불은 악마처럼 모든 걸 삼켜 버렸다. 부둥켜안고 우는 데이빗과 모니카. 그럼에도 삶은 다시 시작된다. 미나리처럼.
새소리가 들린다. 바람도 불고, 햇살도 비친다. 가족들은 함께 모여 거실에서 자고 있다. 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순자. 당신이 가족들을 지켜주겠다고 기도하는 표정이다. 엔딩은 부부의 변화를 보여준다. 놀라운 건 모니카다. 남편이 수맥을 찾는 데 옆에 동행한다. 모니카는 아칸소를 곧 떠날 것처럼 절망적인 태도였지만 엔딩에서 그녀는 남편의 든든한 구원투수가 된다. 미국에 가서 서로 구원하리라는 약속을 지키려는 듯. 데이빗에게도 사라진 야망이 보인다. 수맥을 전문가(?)에게 의뢰해 다시 시작하려는 타협의 자세가 있다. 또, 여유가 보인다. 양동이를 들고 데이빗과 미나리를 뜯으러 온다. 제이콥은 "데이빗, 할머니가 좋은 자리를 찾으셨어."라는 말을 한다. 순자가 가꾼 미나리 밭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미나리를 뜯기 전 잠깐의 애도문처럼 말이다. 미나리 군락은 마치 순자의 무덤처럼 보인다. "원더풀 미나리"를 외치던 순자는 어디로 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