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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18. 2021

영화 <노매드랜드> 리뷰

샛별의 씨네수다 4.

*스포일러 있습니다.


샛별- 7점. 새로운 삶의 방식 발견. 외롭지만 자유롭게!    

  

 <노매드랜드>(Nomadland)를 보고 정성일 평론가가 쓴 <언제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는 책 제목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노매드랜드>처럼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살 수 있을까는 걱정과 함께. 적게 갖고, 적게 입고, 적게 먹고, 적게 소유하는 삶. 그런 삶을 몸소 보여주는 사람들을 찍은 다큐멘터리 같은 로드무비이다. '노매드'는 유목민, 방랑자라는 뜻을 지녔다. 영화는 노매드의 삶을 편안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원작은 저널리스트 제시카 브루더의 에세이 <노매드랜드: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이다. 원작을 중국 감독인 클로이 자오가 맡아 영화로 만들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현재 핫한 감독이다. <로데오 카우보이>를 통해 영화제에 선보였고, 마블의 최고 기대작인 <이터널스> 감독이기도 하다. <이터널스>는 현재 앤젤리나 졸리, 마동석 배우가 찍고 있어 화를 모았다. 봉준호 감독은 차세대 거장 20인 감독 중에서 한 명으로 클로이 자오 감독을 꼽기도 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받았다. 골든글로브 시상식 역사상 아시아계 여성 감독 수상은 처음이다. 74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촬영상을 받았으며 현재 <미나리>와 함께 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6개 부문 노미네이트 되어 있다. 4월 25일 <미나리>와 경합을 벌일 예정이다.(두근두근)   


  주인공 펀은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맡았다. 그녀는 <파고>, <쓰리 빌보드>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 차례나 수상한 베테랑 배우다. 이번 아카데미에서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지 기대된다.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실제 밴을 타고 4-5개월 정도 노매드 생활을 경험했다. 영화 속 밴을 '밴가드'라고 이름 짓고 개인용품을 가져와 실내도 꾸미고 촬영 때는 밴에서 쉬면서 친밀해지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프로정신이 돋보인다. 영화 속 노마드들은 실재 유목민들을 캐스팅하여 화재를 모았다. 펀을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와 펀의 친구 데이비드 스트라탄(데이브 역)을 제외한 모든 인물은 현재 유목민들을 캐스팅했다. 조연들의 존재감은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갖게 만든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배우가 아닌 자신의 삶을 보여주면 되었기에 화면은 더욱 리얼리티적인 느낌을 받는다. 감독의 선택은 배우들을 영화 속에 스며들게 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자연스러워 관객들을 한층 편안하게 만들어줬다. 실제로 조연배우들이 주연배우도 자신들과 같은 노매드인 줄 알았다고 했다니. 영화 현장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상상해본다.  

  삶에는 여러 길이 있다. 영화는 인생의 길 중 '노매드'라는 길도 있다고 제시한다. 노매드라는 대안의 길은 인생을 살아갈 때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주인공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은 길 위의 생활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펀(Fern)은 작고 낡은 밴을 타고 유랑하기 시작한다. 사연이 있다. 벤이 살았던 네바다주 엠파이어라는 동네 석고공장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마을 전체가 사라지게 된다. 남편도 병으로 죽게 되고, 직장도 잃은 펀은 이때부터 노매드가 된다. 밴의 이름은 '선구자'라고 지어졌다. 펀은 광활한 자연을  보고 삶을 느낀다. 펀은 노을이 지는 지평선, 구름이 잔뜩 낀 평야, 바람에 파도가 부서지는 바다,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며 행복을 느낀다.


  자연과 함께 사는 삶을 현대인들은 동경한다. 캠핑문화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 잠깐이라도 캠핑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 보고, 초록 잎사귀를 보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소리를 듣는다. 계곡물소리를 듣고,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작은 돌멩이도 만져본다. 숲 속 그늘에서 고기도 굽고, 아이들과 낮잠도 자고, 모닥불도 피우며 음악도 듣는다. 새벽에는 진한 커피를 내리고, 책을 읽는다. 이런 시간들은 복잡한 시간을 멈추게 하고, 머리를 식혀준다. 자연은 너그러운 행복감을 선물한다. 일상을 탈출한 사람들은 자연에서 '쉼'을 느낀다. 그러나 다시 직장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곳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 캠핑카를 머물 집으로 선택했다면 삶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노매드는 노숙인이 아니다. 주택만 집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집은 내가 사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어떤 형태이건 모두가 집이 될 수 있다. 노매드의 집은 밴이다. 밴에서 자고, 먹고, 살아간다. 밴으로 이동하고 밴이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요금을 지불하고 잠깐이지만 그들끼리 모여 지낸다. 머무는 시간도 각자 다르다. 누구는 하루, 누구는 한 달을 살다 갈 뿐이다. 노매드들이 머무는 공간은 또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된다.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요리를 하고, 뜨개질을 하고, 이웃을 사귄다. 밤에는 함께 모여 모닥불도 피우고, 각자의 물건을 나눔 한다. 배변은 차에서 해결하고, 머리는 손수 자른다. 폭신한 침대는 아니지만 몸을 뻗을 공간도 있다. 노매드들의 살림은 단출하다. 꼭 필요한 살림들로 채워진다. 식탁도 책받침만 하게 만들고, 휴대용 버너에 수프를 끓이고, 접시는 몇 개 없다. 그래도 밴은 여러 생활도구들로 꽉 차 있다.


  노매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번다. 펀도 여러 일들을 쉼 없이 한다. 벌어 놓은 돈은 남편 병원비로 썼을 것이다. 펀은 일하지 않으면 먹고살 길이 막막하다. 펀은 아마존에서 일하거나, 건설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일한다.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도 근무하고, 캠핑장에서 매니저로 일한다. 밴은 말썽을 부릴 때가 많다. 타이어가 펑크 난다던지 엔진이 고장 나든지. 이럴 때마다 차를 수리해야 한다. 카센터 직원은 밴이 오래되었으니 새 차를 사라고 권하지만, 은 저건 차가 아닌 집이기 때문에 쉽게 처분하기 곤란하다고 한다. 수리비도 많이 나왔는데 당장 지불할 돈이 없다. 사정이 이러니 펀은 일을 안 할 수 없다. 펀은 일하면서 노매드 생활을 한다. 다른 노매드들도 펀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노매드들은 일하고 남은 시간은 최대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생활을 선택했다.

  노매드 생활은 불편한 점도 많다. 밴을 주차하는 문제도 있고, 용변을 처리하는 일도 숙제다. 씻는 것도 어렵다. 낯선 사람이 한밤중에 밴을 두드릴 때 두렵다. 아플 때도 큰 일이다. 늘 비상약을 챙겨야 한다. 밴이 망가졌을 때는 낭패다. 스페어타이어와 오일을 준비해야 한다. 또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문제다. 노매드랜드에서 만난 데이브는 펀에게 관심을 보였다. 데이브는 손자가 태어났다면 잠깐 아들 집에 머문다. 펀도 초대받아 하룻밤 머문다. 데이비는 밴보다 아들 집이 더 잘 어울리고 편해 보인다. 그는 펀에게 아들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한다. 펀은 도저히 하얗고 폭신한 침대에서 잘 수가 없다. 잠이 안 온다. 컴컴한 밤에 밴으로 다시 돌아가서야 잠을 잔다. 이런. 익숙함이란 때론 무서울 때가 있다. 침대가 훨씬 편할 텐데 좁은 자기 밴에 누웠을 때 잘 수 있으니 말이다. 펀은 이런 말을 한다. "나이가 들면 개성이 강해져" 맞는 말이다. 생활해 온 습관을 유지하고 싶은 욕구는 나이 들수록 더욱 강하게 온다. 그러나 펀이 못 자는 이유는 잠자리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씬은 펀이 초대받은 데이비의 아들 집을 응시하더니 다음 컷으로 넘어간다. 다음 씬이 펀의 마음을 대변한다.


  이어지는 컷은 바람이 부는 바닷가 절벽이다. 파도가 부서지고 바람에 머리칼이 흩날린다. 펀은 시원하고 뻥 뚫린 기분을 느낀다. 펀은 잠깐이지만 문명 안에서 하룻밤을 지내며 데이비의 고백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도 잠깐은 망설였을까. 갈등하고 뒤척이다 그녀는 그의 고백을 뒤로하고 그 집을 나온다. 다시 노매드가 된다. 이것이 그녀가 선택한 삶이다. 이제는 자유롭고 싶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구속받지 않는 삶이 좋다. 사랑이라는 굴레조차 거부한다. 그녀는 자연을 선택한다. 태초의 자연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영화는 미국의 광활한 자연들을 찾아다니며 촬영했다. 가장 원시적이고 태곳적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펀은 남편을 잃고 마을을 잃은 슬픔을 자연에서 치유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자연은 그녀와 하나다. 문명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 그녀의 남은 여정은 노매드랜드가 될 것이다.  

  유목민들은 그들끼리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노매드의 삶을 보면서 왜 그렇게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들이 길 위에서 살게 된 이유들은 각자 다르다. 누군가는 남편을 잃고, 누군가는 베트남 참전 용사였고, 누군가는 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보낸다. 그 누군가는 마지막을 병원에서 보내기 싫다고 나온 사람이다. 펀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온 삶을 만나면서 자신도 힘을 낸다. 노매드들은 각자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지금은 '노매드'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이면 충분하다. 그들은 노매드라는 이유로 서로 돕는다. 누군가 죽으면 조용히 애도를 표한다. 누군가 아프면 병원도 데려간다. 누군가 배고파 보이면 샌드위치를 건넨다. 이들은 집이 없을 뿐이지 서로 돕는데 따뜻하다. 인생은 외로움 투성이다. 모두들 그렇지 않은가. 외로운 사람들끼리 나누고 감싸면 조금은 덜 외롭게 살아갈 수 있다. 노마드랜드 공동체는 조용하고 소박하게 우정을 쌓는다.  


  살다 보면 길을 잃을 때가 있다. 자신이 추구했던 길이 사라지거나 틀어지거나 없어지거나 할 때 우리는 좌절한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거나 도시 없어졌을 때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감독은 '길 위에서' 다시 출발할 수 있다고 여지를 준다. <노매드랜드>는 집과 가정이라는 관념에서 좀 더 자유로우면 된다고 말한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족을 만들려고 애쓰지만 현실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남들이 한 방향으로 갈 때 조금만 틀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게 삶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도 위로해준다. 노매드들은 나이가 많다. 거의 노인이다. 젊은 시절을 거쳐온 그들의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죽음이 가까울 때 어떻게 살고 싶은가.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남은 노년에 대해서 말이다. 하루는 또 시작되고 그들은 새로운 길을 떠난다. 떠나면 곧 만나게 된다. 노매드들의 공통 언어가 하나 있다. "See you down the road". 영원한 이별은 없다면서 헤어질 때 포옹한다. 떠나간 사람도, 이별한 사람도 돌고 돌면 언젠가는 만난다. 길 위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영화 <노매드랜드>

장르: 드라마

국가: 미국

감독: 클로이 자오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러닝타임: 108분

개봉: 2021. 04. 15

등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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