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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15. 2021

영화 <택시운전사> 리뷰

샛별의 씨네수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담고 있다. 서울 택시기사였던 김만섭은 외국 손님을 태워 광주로 향한다. 지금 광주가 어떤 상황인지도 모른 채 달린다. 기사식당에서 서울에서 광주까지 왕복 택시비로 10만 원을 준다는 소리를 듣고 다른 기사의 손님을 가로챘다. 자신에게 온 손님이 아닌 사람을 말이다. 1980년도 10만 원이면 큰돈이다. 뭔가가 수상쩍다. 정보에 빠른 택시기사들도 현재 광주가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 김만섭은 자기 손님도 아닌 손님을 태우고 양심도 없이 10만 원 생각에 룰루랄라다. 만섭은 그저 운수가 좋은 날이라 생각한다.  


광주에 도착한 택시. 길목마다 군인들이 도로를 폐쇄하고 출입통제를 한다. 광주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니 더욱 이상하다. 외국 손님은 광주에 못 들어가면 택시비를 못 준다고 "NO 광주, NO 머니"라는 말만 하니 만섭은 중간에서 미칠 노릇이다. 만섭은 순발력을 발휘해 중요한 계약서를 두고 왔다고 사정하며 겨우 광주 진입에 성공한다. 광주역을 지나는데 활기 넘칠 역주변이 적막감만 맴돈다. 도로에는 신발들이 나뒹군다. 이게 뭔 일이래. 하는 순간 뒷좌석에 있던 외국 손님은 카메라를 꺼내 촬영을 시작한다. 기자였구나. 기자였으면 기자라고 말을 했어야지. 만섭은 투덜거린다. 거리마다 가게 문은 닫혀 있고, 폐허나 다름없는 광주 시내를 본 김만섭은 위험을 감지한다.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과연 김만섭은 서울로 무사히 갈 수 있을까. 택시비 10만 원은 위험비용까지 포함된 금액이었다. 어쩐지. 운수가 좋다 했다.


영화는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재현했다. 장 훈 감독은 스토리라인을 짤 때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감독은 광주와 상관없는 두 개의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기자의 시선으로 위르겐 힌츠페터의 카메라를 선택했고, 광주와 먼 서울 택시기사의 시선을 택했다. 기자의 눈과 택시기사의  눈은 다른 시각에서 광주를 설명할 수 있었다. 5.18 광주를 새롭게 조망하는 방법으로 제삼자의 선택은 탁월했다. 기자의 시선으로 객관성을 김만섭의 시선으로 의외성을 담보했다. 감독은 5.18 민주화운동에 낯선 영화적 접근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의 결정은  성공한 듯 보인다. 이방인 독일 기자와 서울 소시민인 택시운전사는 광주에서 무엇을 봤을까.

위르겐 힌츠페너 기자와 김사복 기사

  더군다나 두 인물은 실제 인물이다. 먼저, 위르겐 힌츠르겐 힌츠페터(1937년 7월 6일 ~ 2016년 1월 25일)는 독일 기자였다. 그는 5월 18일 일본에서 광주가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다음날(19일) 김포공항에 도착했고, 택시를 타고 광주시위 현장에 들어간다. 이때 운전한 기사가 실존인물인 김사복이다. ‘푸른 눈의 목격자’로 불리는 힌츠페터는 1963년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 함부르크 지국의 방송 카메라맨으로 입사했다. 그는 베트남 전쟁을 취재했으며 1973년 도쿄 지국으로 옮겨 1989년까지 특파원으로 활동했다.


 위르겐 힌츠페터(피터)가 광주현장을 찍는다는 건 목숨을 건 행위였다. 그럼에도 그는 계엄군에 의해 참혹하게 피로 물드는 광주를 필름에 담았다. 광주 거리를 찍고, 시위 현장을 찍고, 병원에서 죽어가는 희생자를 촬영했다. 체류탄을 던지고, 방독면을 쓰고 총검을 들고 군홧발로 시민들을 차는 공수부대원을 찍었다. 군인들이 학생들을 질질 끌고 가는 현장도 담았다. 그는 기자였다. 기자는 현장을 정확하게 찍을 의무가 있다. 위험했지만 필름을 독일로 보내 전 세계에 광주의 진실을 알려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는 21일 일등석을 예약했고 김포공항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일등석이면 보완이 철저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기자는 일본으로 가서 필름을 독일 본사로 보냈고 필름은 전 세계에 광주 상황을 알리는 데 증언자료가 됐다. 힌츠페터 기자에게 광주는 위험한 취재였다. 그럼에도 기자는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말을 증명했다. 그가 찍은 많은 필름들이 광주를 알리는 데 주요한 자료가 되었다.


피터를 도왔던 택시운전사 김사복 역은 송강호 배우(김만복 역)가 맡았다. 영화 속 김만복은 11살 딸과 월세방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김만복은 아내가 병으로 죽자 술만 마시고 세상을 원망했다. 딸을 보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개인택시를 시작한다. 김만복은 사우디에서 일한 경력이 있고 김치와 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성실하게 살려는 인물이다. 비록 다른 기사의 손님을 가로챘지만 임산부를 태우고 돈을 받지 못하면서도 "순산하세요~~"라고 목청껏 응원해주는 소시민이다. 정치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돈 벌 생각뿐이다. 1980년 5월 서울에서 연일 데모가 벌어지자 만섭은 거칠게 뱉는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나 했다. 데모하려고 대학 갔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호강에 겨워서 저러는 것들은 싸그리 잡아서 사우디로 보내야 한다니까. 지들이 펄펄 끓는 모래사막에서 죽도록 고생해봐야 야 우리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였구나 하고 정신들을 차리지."


당시 많은 소시민들도 김만복처럼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의 행동과 언행은 시민을 대표하는 상징처럼 보인다. 김만복도 먹고살기 바빴고, 정치는 잘 몰랐으며 정부에서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라고 믿었던 순수하고 무지한 사람이었다. 이랬던 그가 기자를 태우고 광주로 들어가 광주의 참상을 목도한다. 그는 광주에서 조금은 다른 결로 태어난다. 그곳에서 겪었던 일이 심경변화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의리 있고 따뜻했다.


그중 한 명으로 광주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이 나온다. 황태술은 서울에서 온 김만섭과 독일 기자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황태술의 언행은 자신들을 돕기 위해 온 손님들에게 광주 시민을 대표해 환대하는 의식 같았다. 서울로 돌아가려는 만섭은 택시가 고장 나는 바람에 갈 수 없게 되자 근심의 얼굴을 보인다. 혼자 집에 있을 딸이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 광주는 전화도 끊겨 연락할 상황도 못 된다. 황태술은 부인에게 “밥 있지”라고 묻자 부인은 “밥은 있는디 반찬이 거시기한디” 말한다. 태술은 “갓김치 있으면 됐지”라면서 손님들에게 뜨끈한 저녁 밥상을 푸짐하게 대접한다. 보글보글 된장찌개는 긴장했던 이들의 마음을 사르르 풀어준다. 황태술은 갓김치를 피터에게 권한다. 왜 갓김치였을까. 톡 쏘면서 매운맛을 대표하는 갓김치는 남도대표 김치다. 어쩜 갓김치는 한국인의 근성을 그대로 드러낸 맛인지 모르겠다. 광주시민들의 의지를 갓김치로 은유했을까.

둥그런 밥상에 둘러앉은 저녁밥상에서 작은 '우정'이 돋는다. 한 끼의 밥은 마음의 공간을 넓혀준다. 갓김치를 먹고 맵다고 하는 피터를 보며 깔깔 웃거나, 피터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측은해한다. 피터는 광주를 알리겠다고 와 준 희망이었다. 그렇지만 만섭은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밤새 잠을 못 자고 뒤척이더니 새벽에 혼자 광주를 빠져나가려고 시동을 건다. 기자를 계속 따라다니면 자기도 위험해진다. 황태술은 만섭에게 광주번호판을 건네며 몸조심하란다. 마음이 무겁다. 광주에서 순천으로 넘어온 만섭은 딸아이의 분홍 구두도 사고, 국수를 한 그릇 시켜 먹는다. 만섭은 국수가게에서 주인과 손님들 대화를 엿듣게 된다.


주인아주머니: 광주에서 사람 여럿 죽었다더만 고것이도 참말인가보네. 군인들이 광주에 쳐들어가서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댜.

손님: 뭔 소리여?

주인아주머니: 그건 나도 모르제. 근디 벌써 죽은 사람이 수두룩하고 잡혀간 사람도 어마어마하댜.

손님: 에헤 고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서울서 몰려와 데모를 겁나게 하는 바람에 애꿎은 군인이 몇 명 죽었당께.

주인아주머니: 아니랑께. 사람들이 죽는 걸 직접 봤다 안하요.

손님: 그것들이 대학생들이 아니라 순 빨갱이가 아니요. 서울서 깡패까지 델꼬 몰려왔당께.

주인아주머니: 참말인가. 고것이 뉴스에 나왔어라?

손님: 그렇당께. 오늘 신문에도 아주 대문짝하게 나왔다 안하요. 아니 데모를 할라면 서울서 할 것이나 뭐 할라꼬 여까지 몰려와갔꼬.


'카더라'는 통신만 의지해야 는 시민들은 언론과 방송이 제대로 기사를 내보내지 않으니 헛소문을 사실처럼 믿는 다. 또, 신문을 보니 ‘광주시내 활보하는 폭도들과 불안한 시민, 불순세력 및 폭도 등’이 적혀 있다. 왜곡된 보도로 국민들은 광주를 바라보고 있다. 분통이 터진다. 지금 광주는 무고한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나가는데 활보하는 폭도들이라니! 광주 바로 옆 동네 순천에서도 광주 상황을 이토록 모른다. 번호판까지 바꿔가며 어렵게 빠져나온 만섭은 고민한다. 49:51로 팽팽한 갈등 상황. 아버지 만섭은 홀로 있을 딸이 마음에 걸린다. 그는 울면서 핸들을 광주로 돌린다. 기자가 찍은 필름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올라온다. 자기가 여기서 서울로 가면 그 기자는, 광주진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부터 김만섭은 택시기사가 아닌 광주시민이 된다. 만섭은 기사들을 도와 부상자를 택시에 태우고 병원으로 나른다. 광주 시민들과 택시기사들은 동료들과 연대한다.  

실제로 1980년도 5월 20일 광주에는 '차량시위사건'이 있었다. 수십 대의 버스와 대형트럭, 백대 넘는 택시가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함께 시위에 나섰다. 경향신문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스물여덟의 택시기사였던 장훈명 씨는 “보고만 있을 수 없었어요.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두려움보다 분노가 컸습니다.”라고 증언했다.


“계엄령 확대 이후, 대학생들 시위가 산발적으로 계속 있었어요. 공수(공수부대원)들이 보고 있다가 앞줄에 있는 주동자들을 딱 찍으면, 끝까지 따라가 기어코 잡습니다. 곤봉으로 때리고, 대검으로 찌르고…. 택시들이 그럴 때 문 열어놓고 기다리다가 학생들을 많이 피신시켜 줬어요. 한번은 도망치는 학생을 태우고 출발하는데, 쫓아온 공수가 대검으로 찔러 칼이 택시 문 틈에 끼인 채 총을 달고 달린 적도 있습니다.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정말 많이 실어날랐죠. 그래서 택시가 (계엄군에) 미운털이 많이 박혔어요. 시내에서 운전하다 보면 계엄군이 택시, 버스할 것 없이 세운 다음 무조건 끌어내립니다. 대학생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이 타고 있으면 무조건 끌어내린 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때렸습니다. 우리가 항의하면 기사들도 때리고…. 우리는 하루종일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운전을 하잖아요. 그래서 다 목격한 겁니다.” (‘1980년 5월, 나는 광주의 택시운전사였습니다’ 경향신문 기사. 2018.8.5 )


영화에도 광주택시 기사들은 목숨 걸고 싸운다. 다친 사람들을 한 명이라도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옮긴다. 영화는 기자들을 비꼰다. 택시기사들은 기사를  쓰지 않는 기자들을 승차거부한다. 한 기자가 황태술에게 "얼른 좀 갑시다." 하니 황태술은 "뭣이 바쁜디. 신문에 기사 한 줄 안 쓰면서 뭣이 바쁜디. 시방 제일로 한가찐게 당신 같은 기자들 아니야. 기자가 기사를 안 쓰니까 기사는 운전을 안 하겠다 이 말이여."라면서 태우지 않는다. 기자는 다른 택시를 잡아보지만 다른 기사들도 황태술과 마찬가지로 태워주지 않는다. 기자가 기자정신을 잃으면 아무리 돈이 좋아도 당신 같은 사람들은 태우지 않겠다는 기사 정신을 보였다.

언론이란 무엇인가. 정확한 보도를 취재해야 하는 기자들에게도 영화 속  보도지침에는

-계엄군에 대한 일체 부정적 기사는 모두 불가

-(?) 시위를 정당화하거나

-(?) 하는 식의 기사는 모두 불가

-(?) 또는 혁신노선을 주장/선동하는 반공분자를 정치범으로 취급, 옹호하는 내용 불가

-'광주' 언급 일체 불가라는 글씨 수첩에서 보였다. 특히 '광주'언급 일체 불가라는 문구에는 붉은 밑줄까지 쳐 있다. 당시 한국기자들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피터는 수첩의 내용을 보더니 광주로 자신이 들어가겠다고 하자 한국기자가 상황이 안 좋은데 괜찮을지 근심스러운 표정을 보인다. 기자는 진실을 쓸 권리가 있다. 사태의 본질을 파악해야 할 의무도 있다. 기자들에게 보도지침은 치욕스러운 전달이다. 언론과 정치는 늘 함께 굴러갔다. 아찔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이 수첩을 보여주는 한 컷에서도 드러난다.


영화는 힌츠페터를 통해 저널리즘이란 무엇인가 숙고하게 만든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 판결에 대한 항의 표시로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제목의 45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86년에는 서울 광화문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게 맞아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었다. 45분짜리 다큐는 <광주민중항쟁의 진실>이란 제목으로 전국 성당과 대학가에 비밀리에 상영됐다. 영상은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다. 한국언론은 1995년 은퇴한 힌츠페터는 '죽음의 공포를 무릅쓴 치열한 기자정신으로 한국인의 양심을 깨워 민주화를 앞당겼다.'는 공로로 2003년 11월 제2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여했다. 힌츠페터는 수상소감에서 "오로지 내 눈으로 진실을 보고 전하려는 생각뿐이었다"라고 말한다. 힌츠페터는 2016년 1월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투병 끝에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광주에 묻어달라." 광주의 그 날을  어찌 잊으랴. 힌츠페터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은  2016년 5월 15일 광주 망월동 5 · 18 옛 묘역에 안치됐다. "분단을 겪은 독일사람으로서, 언론인으로서 남북한 통일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라고 했던 그의 염원은 언제쯤 이뤄질까.

올해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이다. 벌써 40년이 훌쩍 넘었다.  아직까지 주범자는 살아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는 시민들에게 부채의식으로 남아있다. 아직도 5.18민주화운동을 북한개입설, 무장폭동설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영화는  군부의 통제와 왜곡 아래 놓인 광주를 타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보여줬다. 이방인 기자와 서울택시기사의 비장함은 신군부의 만행을 재해석했다. 그들의 용기는 거짓을 폭로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영화는 역사를 알리는 또 하나의 장르가 된다. 장 훈 감독은 <택시운전사>를 통해 '반인륜적'이었던 그 시간을 영화적 코드로 풀어냈다. 영화는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이다. 영화는 5.18민주화운동을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복원시킨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다. 다시 오월이 온다.


                                                                                                                                                                                                                                                                                                                                                                                                                                                                                                                 


감독: 장 훈

주연: 송강호(김만섭 역), 위르겐 힌츠페터(피터 역), 유해진(황태술 역)

개봉: 2017.8.

상영시간: 137분

등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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