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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pr 11. 2021

영화 <레 미제라블> 리뷰

샛별의 씨네수다 1.

  *스포일러 있습니다.

                                                                                                                     

샛별 평점- 8점. 뫼비우스 띠처럼 돌고 도는 민중의 분노. 이제는 끊어야 할 때!  

                                                                                                                                  

 '레 미제라블' 하면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Hugo, Victor Marie)가 쓴 <레 미제라블>이 떠오른다. 1862년에 쓴 소설이 2019년에  다시 영화로 재현됐다. 빅토르 위고가 프랑스 사회를 고발한 지 벌써 157년이 흘렀다. 프랑스 사회는 많이 달라졌을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절망스럽다. '레 미제라블'의 원뜻은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그들의 분노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해결점이 희미하다.


  레드 리 감독은 프랑스혁명을 다뤘던 <레 미제라블>을 2019년 버전으로 새롭게 찍었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우승하는 날 프랑스 국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를 만끽했다. 영화는 이 장면부터 시작한다. 주인공 이사도 친구들과 프랑스 국기를 온몸에 두르고 개선문 앞으로 달려가 환호한다. 월드컵 우승은 프랑스 국가를 하나로 모아줬다. (2002년 붉은 악마의 열풍이 떠오른다). 프랑스 국민들은 모두 형제가 되어 국기를 흔들며 기쁨에 열광했다. 그러나 그뿐이다. 다음날이면 삶은 다시 시작된다.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일자리가 없고, 돈도 없다. 배고프다.                                                                                                                                                                                                       

가운데 소년이 주인공 아서

  영화의 장발장 역은 '이사'가 맡았다. 이사는 빈민가에 사는 중학생이다. 이사는 중2, 중3 정도 되어 보인다. 키가 작은 걸로 봐선 더 어릴 수도 있다. 장발장은 빵을 훔쳤지만, 이사는 '새끼 사자'를 훔친다. 장 발장이 빵을 훔친 이유야 배가 고파서라지만 이사는 왜 새끼 사자를 훔쳤을까. 이사는 집시들이 운영하는 서커스를 보러 갔다 그곳에서 사자를 훔쳤을 것이다. 무엇을 훔쳤냐는 영화를 끌고 가는 메타포가 된다. '사자'는 우리에 갇혀 지낼 수 없는 동물이다. 영화 속 '사자'는 자유를 은유한다. 사자는 아프리카 초원에서 자유롭게 사냥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서커스단은 사자를 잡아다 채찍으로 훈련시켜 길들이고 공연을 시킨다. 이사는 사자에게 속박이 아닌 자유를 주고 싶었을까. 이사가 빵이 아닌 사자를 훔쳤다는 상징은 중요한 부분으로 남는다.


  아기 사자를 도둑맞았다는 사실을 안 서커스단 우두머리는 사자처럼 포효한다. 집시 무리들은 사자를 찾으러 다니며 훔쳐 간 놈을 박살 내겠다고 으르렁 거린다. 이때 경찰은 사건을 맡게 되고 사자를 찾기 시작한다. 영화에도 당연히 '자베르'가 등장한다. 그런데 영화 속 자베르는 셋이나 나온다. 스테판, 크리스, 그와다이다. 소설 속 형사 자베르는 여러 얼굴의 소유자였을까. 감독은 자베르를 나눠 각각의 얼굴을 표현했다. 먼저, 크리스는 자베르의 악당 기질을 그대로 드러냈다. 스테판은 선한 마음을 가진 경찰이다. 이들 중간에 놓인 사람은 그와다이다. 크리스가 새로 부임한 스테판에게 우리는 '팀'이라며 늘 함께 다녀야 한다는 말을 한다. 늘 함께 경찰차를 타고 동네를 순찰한다. 셋이지만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팀은 자베르의 역할을 더욱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동네는 소설의 무대였던 몽페르메유를 그대로 등장시킨다. 이 지역은 여전히 낙후된 빈민들의 거주지이다. 초, 중학생들은 무리 지어 축구를 하거나 할 일 없이 돌아다닌다. 어른들은 먹고살기 바빠 아이들을 방치한다. 마약거래를 대놓고 하고, 깡패들이 돌아다니고,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골치 아픈 동네다. 이 동네를 순찰하는 주간조가 '크리스팀'이다. 크리스팀에 갓 부임해 온 스테판은 아직 어리버리하다. 크리스는 차로 순찰하며 신참에게 동네 사람들인지 누구인지 일일이 알려준다. 크리스와 그와다는 이 지역을 잘 아는 베테랑 경찰이다. 범죄가 우글거리는 동네를 순찰해서인지 크리스와 그와다는 자신들이 경찰인지 깡패인지 모를 정도로 포악스럽게 일한다. 수색한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담배 피우는 여학생의 몸 만지거나 부당하다며 항의하는 여학생의 폰을 부순다. 학생들을 난폭하게 대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힘으로 제압에 바닥에 꿇게 만든다. 그래서인지 새로 부임한 제3자의 시선은 소중하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이상한 점을 보기 어렵다. 스테판은 첫날 동네를 순찰하며 가난한 동네 아이들과 경찰 같지 않은 동료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스테판의 눈에는 모든 게 이상하다.  


  스테판은 동료들과 새끼 사자를 훔쳐 간 꼬맹이 이사를 찾으러 다닌다. 이사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간다. 잡힐까 봐 튀는 솜씨가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다. 이사는 친구들 사이에서 일진이거나 짱이거나 리더 같다. 아이들은 그를 따른다. 이사가 보이는 과감함은 아이들 세계에서 '영웅'이 된다. 그렇지만 이사는 좀도둑일 뿐이다. 집시들이 데리고 있던 새끼 사자를 훔칠 정도면 그동안 훔쳐온 물건도 꽤 될 것이다. 영화 초반에 닭을 훔친 혐의로 경찰서에 잡혀 온 이사(아마도 아기 사자를 먹이를 주기 위해 잡았을 것이다.)가 등장한다. 아들을 데리러 온 이사 아버지는 이사를 보고 지긋지긋하다는 표현을 썼다. 이사를 때리는 아버지를 경찰들은 말리지도 않는다. 아기 사자를 훔친 혐의로 이사가 경찰들에게 쫓기자 친구들은 그들 도와준다. 경찰들과 맞닥뜨린 아이들은 막대기를 들고 몰려와 경찰들과 맞선다. 경찰 셋은 물러나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더 과격해지고 만다. 그와다는 그만 공포탄을 이사의 얼굴에 쏴버린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그와다는 이때 '퓨즈가 나갔다'라고 진술했다. 아이들은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었는데, 공포탄을 쏜 그와다도 제정신이 아니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었다. 아이에게 공포탄을 쐈으니 과잉 진압했다는 논란이 뜨거워질 것이다. 크리스는 이를 은폐하려고 한다. 아뿔싸... 드론 마니아였던 아이가 이 상황을 우연히 찍게 된다. 드론을 작동했던 아이는 놀란 나머지 드론의 메모리를 빼 도망친다. 드론에 방금 일어난 현장이 찍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크리스 일행은 드론을 가진 아이를 찾기 시작한다. 이때 스테판은 먼저 이사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지 않냐고 반문한다. 크리스는 드론부터 찾는 게 순서라고 윽박지른다. 이제 막 부임해서인지 스테판 말은 먹히지도 않는다. 스테판은 혼자 약국을 찾아가 피 흘리는 이사의 얼굴을 응급처치해준다. 스테판은 혼란스럽다. 다들 미쳤다.

    드론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영화에서 드론은 신적인 존재다. 드론의 힘은 막강하다. 드론으로 여학생들의 은밀한 곳을 찍고 있었던 아이가 우연히도 공포탄 맞는 장면을 찍게 됐으니 큰일 났다. 학생은 영상을 누구에게 가져다줄 것인가 고민했을 것이다. 이 아이가 선택한 사람은 동네 케밥을 운영하는 '살라'이다. 살라는 회개한 범죄 두목이다. 이젠 조용히 식당을 운영하지만 그의 아우라는 여전하다. 경찰도 깡패도 아무도 그를 못 건드린다. 살라를 찾아간 학생은 경찰에게 자신이 쫓기고 있다고 전한다. 살라는 침착하게 아이를 다독여준다. 이때 경찰은 마약조직 우두머리를 데리고 가게로 들어온다. 드론에 담긴 영상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살라는 줄 수 없다 말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난 크리스. 어떤 상황으로 번질지 다급한 전개다. 이때 스테판은 나선다. 스테판은 살라에게 정중히 부탁한다. 살라는 스테판을 따라오라며 밖으로 나간다. 둘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리 지르지 않고 조근조근 말하는 스테판을 살라는 신뢰하기 시작한다. 스테판은 자신을 믿어달라고 말한다. 살라는 이사는 괜찮냐고 묻고 영상을 건넨다. 이것으로 '아기사자 도난'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영화는 모든 인물들을 각자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 부분은 인상적이다. 그렇게 과격했던 크리스도 집에 돌아오니 맥주를 마시고 두 딸을 재우는 평범한 아빠가 된다. 스테판은 고단하고 길었던 하루를 아들과 통화하며 마무리한다. 그와다는 주방에 있는 엄마를 보더니 흐느낀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 버거웠을 것이다. 경찰 임무가 끝나고 각자 집에서 저녁을 보내는 이들의 일상은 평범했다. 이들도 누군가의 아빠이며, 누군가의 아들일 뿐이다. '경찰'이라는 신분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얼굴을 다친 이사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카메라는 이사를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카메라는 아파트 앞 공터. 쓰레기 더미가 쌓인 언덕에 그를 놓는다. 저 지경이 되었는데도 감독은 왜 이사를 저곳에 앉혔을까. 지금 이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사의 하루를 더듬어본다. 이사는 아기 사자를 훔치고 경찰한테 쫓겨 도망가다 고무탄을 맞고 붙잡혔다. 경찰은 병원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제대로 치료도 못 받은 아이를 서커스 단장에게 데리고 간다. 사과하라는 뜻에서. 그렇지 않으면 이사가 위험해진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서커스 단장은 이사를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테니. 아기사자를 건네받은 서커스 단장은 이사를 사자 우리 안에 넣는다. 순식간에 벌어졌다. 어미 사자는 당장이라도 입을 벌려 이사를 삼킬 기세다. 너무 당황한 스테판은 이사를 놔주라고 단장에게 명령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사자를 총으로 쏴버리겠다고 소리 지른다. 이사는 놀란 나머지 오줌까지 질질 눈다. 하루는 끔찍했다. 다닥다닥 붙은 좁은 아파트를 뒤로하고 망연자실 앉아 있는 이사. 비참한 심정이다. 이사의 분노는 여기서 끝이 날까.

몽페르메유에 새로 부임한 경찰 스테판.

  다음날 아침. 몽페르메유 거리를 다시 순찰하는 경찰팀. 거리는 한산하다. 아파트 앞 아이들은 물놀이하며 물총을 싸움을 한다. 경찰차를 발견한 꼬맹이들은 차를 향해 물총을 쏘기 시작한다. 물 폭탄을 맞은 크리스팀은 어이가 없다. 어제의 일이 벌써 소문난 것이다. 지나가던 자전거 일행은 경찰차를 보더니 야유한다. 거리의 사람들은 크리스팀에게 분노의 눈빛을 발사한다. 느낌이 좋지 않다. 갑자기 검은 후드티를 입은 청소년들이 몰려온다. 이사 패거리들이다. 모두가 후드티를 입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어렵다. 이들은 화염병을 경찰차에 던지며 경찰들을 아파트 안으로 유인한다. 스테판은 지원 요청을 하려고 했지만 크리스는 아이들인데 지원까진 필요 없단다. 아이들을 얕보고 있다. 결국 아파트에 갇힌 크리스 일행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이사를 중심으로 모인 학생들은 지금부터 경찰들을 공격한다. 뭉치면 아이들도 무서운 폭탄이 된다. 학생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상황. 공권력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엔딩에서 감독은 할 말을 다한다. 이사는 화염병을 들고 있고, 스테판은 권총을 들고 있다. 이사는 계단 위에 있고, 스테판은 계단 아래에 있다. 1대 1로 맞붙은 상황이다. 불이 이길 것이냐, 총이 이길 것이냐. 누가 이기던 희생자는 반드시 생긴다. 이사가 화염병을 던지면 모두 초토화된다. 이사를 제압하려면 스테판은 총을 쏠 수밖에 없다. 과연 스테판은 이사를 쏠 수 있을까. 아마도 스테판은 쏘지 못할 것이다.  권총을 든 사람이 크리스가 아닌 스테판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테판은 크리스와 다른 경찰이다. 그는 선한 사람이다. 스테판은 정의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그의 선함은 영화에 시종일관 비쳤다. 스테판은 최대한 침착할 것이다.


 혁명의 선두에는 늘 학생들이 있었다. 영화 <레 미제라블>도 여지없이 어린 이사를 앞에 세웠다. 프랑스혁명 때 민중들이 횃불을 들었듯 이사는 화염병을 들고 있다.(우리는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다.) 화염병은 민중이 들 수 있는 최후의 무기이다. 아이들은 부패한 어른들도 무참히 짓밟고 처벌한다. 그들이 보기에 어른들은  썩어 빠졌다. 영화 속 아이들은 겁이 없고 무모할 정도로 공격적이다. 지금 하는 행위가 미래에 어떻게 작용을 할지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시위하다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함께 연대하며 공권력에 맞선다. 억울함의 분노를 표현할 길은 이것뿐이다.


빅토르 위고는 빵을 훔친 장발장을 감옥에 19년이나 가뒀다. 레드 리 감독은 아기 사자를 훔친 이사를 총구 앞에 서게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이런 취급을 받아왔다. 공권력은 그들을 무지막지 다뤘다. 미국에서 있었던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2020년)이 떠오른다. 조지 플로이드는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았고, 결국 인종차별에 항위 하는 시위로 확산됐다. 이사도 마찬가지다. 좀 더 인간적인 방법은 없었을까. 아직 미성년인 아이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어른들을 보면서, 미래의 암담함이 느껴진다. 이사의 분노는 결국 폭력으로 맞서게 된다. 프랑스 사회에서 흑인으로, 빈민으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 단면을 영화는 적확하게 찍었다. '레 미제라블'의 분노는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erbles)

장르: 드라마

국가: 프랑스

러닝타임: 104분

개봉일: 2021.04.15

감독: 레드 리

출연: 다미엔 보나드(스테판 역), 알렉시스 마넨티(크리스 역), 제브릴 종가(그와다 역), 이사 페리카(이사 역).

등급: 15세 관람가     

사진출처: 네이버영화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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