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문장 10.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 켄 키지, 민음사, 525쪽 분량.
별점- 4.0 웅크린 몸을 펴 창살을 뚫고 날아가려는 몸부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켄 기지, 민음사, 514쪽.
드디어 자유다.
케네스 엘턴 키지(Kenneth Elton Kesey, 1935년 9월 17일 ~ 2001년 11월 10일)는 미국 작가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1962년도에 발표했다. 작가는 젊은 시절 정신병원에서 잠깐 일한 경험을 살려 소설을 집필했다. 그때의 경험은 작가에게 충격이었다. 작가는 정신병원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소설에서 고발한다. 또한, 정신병원에서 희생되는 환자들의 현실에 집중했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으려고 애썼다.
주인공은 맥머피이다. 그는 정신병원에 오자마자 병원 안의 분위기가 이상함을 감지한다. 환자들은 수간호사 앞에서 눈치를 보며 절절맨다. 비정상적이다. 간호사는 환자를 도와주는 사람 아니던가? 환자가 약을 처방받고 수간호사에게 무슨 약이냐고 물어봐도 알려주지 않는다. 입 다물고 먹기나 하란다. 당신은 이 약이 무슨 약인지 알 필요가 없고, 물과 함께 삼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환자의 권리나 인권은 안중에도 없는 간호사다. 왜 그녀는 알려주지 않는 걸까. 무언가 석연치 않다. 환자들이 매일 먹는 약은 수면제일까? 신경안정제일까? 환자들은 간호사가 주는 대로 약을 받아 삼킨다. 이런 사례만 보더라도 수간호사와 환자들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브롬든이다. 브롬든은 인디언 추장 아들이다. 브롬든은 병원에서 10년 동안 귀머거리, 벙어리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 왔다. 브롬든은 사실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을 속인 건 아니었다.
"시를 떠나기 전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했다. 귀머거리인 체하며, 지금껏 남의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숨겨 온 것에 대해서였다. 과연 앞으로 지금과 다르게 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귀머거리가 되기 시작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너무 어리석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듯이 행동하기 시작한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었다."(p.332)
이렇듯 애초에 사람들은 브롬든을 유령 취급했다. 인디언은 어리석고 영어를 못하며 듣지도 못한다고 생각 사람들의 편견이 무섭다. 브롬든은 말할 타이밍을 놓쳤고 벙어리 신세로 전락한다. 백인 사회에서 인디언의 위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브롬든이 벙어리, 귀머거리 흉내를 내면서 이방인의 존재가 됐다. 모든 것을 듣고 있지만 침묵한다. 브롬든은 간호사, 의사들이 회의할 때 옆에서 청소를 하며 상황을 엿듣고 다닌다. 그는 제3자 시점에서 병동을 관찰하는 위치에 있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브롬든은 병동의 생활이 지긋지긋하지만 용의주도하게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간다.
걸리면 안 된다. 브롬든이 벙어리가 아니라는 걸 아무도 몰라야 한다. 이런 브롬든에게 다가오는 인물이 있다. 맥머피이다. 맥머피는 병동에 오자마자 인디언 추장 브롬든이 정말 벙어리일까 생각한다. 맥머피는 브롬든을 사람 취급해 준다. 맥머피는 브롬든이 듣고 있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단 한 사람이다. 브롬든은 맥머피를 경계하지만 자꾸 그에게 눈길이 간다.
맥머피는 독특한 캐릭터이다. 맥머피는 죄를 지었고 감옥에 갔다 미친 척 연기를 펼쳐 정신병원에 들어온 케이스이다.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을 택한 맥머피. 이것부터 요상하다. 정신이 말짱한 사람이 정신병동을 제 발로 걸어오다니. 차라리 감옥이 낫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맥머피는 병원생활을 놀이처럼 생각하며 사람들을 관찰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이상하고 자신만 멀쩡한 상황. 그런데 어라~~~ 환자들보다 더 이상한 건 병원 시스템이다. 컴바인(Combine 하나의 단일체/ 결합하다)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병원의 체제나 운영 방식이 비합리적이다. 그 안에서 일하는 수간호사. 그녀 또한 비정상적이다. 맥머피는 이런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이 나서서 해결해보려 한다. 수간호사와 맞짱을 떠보려는 맥머피.
-“그러면 다른 곳에서 카드 게임을 하게 해 주면 어때요? 다른 방 없나요? 회의할 때 테이블을 놓고 쓰는 방도 좋고요. 그 방은 회의할 때를 빼면 하루 종일 비어 있잖아요. 그 방을 열어 놓으면 카드를 할 사람은 거기에서 하고, 노인들은 여기에서 라디오를 들으면 되잖아요. 그러면 서로 좋지 않겠어요?” 수간호사는 미소를 짓더니 다시 눈을 감고 고개를 살짝 흔든다.(p.179)
루이즈 플레처 Louise Fletcher (간호사 밀드레드 랫체드 역) @사진: 네이버 영화
수간호사 랫치드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는 곳은 정신병원의 중앙부인 간호사실이다. 그녀는 환자들이 병원 내의 규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쓴다. 그녀는 ‘여덟 시간 동안 책상에 앉아 유리창 너머에 있는 휴게실을 바라보며 환자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기록’(p.15)한다. 또 랫치드는 병동에서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하고, 환자들의 제안에 비협조적이다. 자신이 정한 규율에서 타협이란 없다. 규칙을 벗어나는 행동들에 대해선 가차 없이 벌을 내린다. 환자에게 그녀는 악마 같은 존재다. 그녀의 손가락 하나로 전기 충격을 당하거나 생명에 위협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가방을 묘사한 부분이다.
"콤팩트나 립스틱 같은, 여자들이 갖고 다니는 물건 따위는 들어 있지 않다. 그녀의 하루 업무에 필요한 것들, 이를테면 바퀴처럼 생긴 기구,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톱니바퀴, 표면이 도자기처럼 빛나는 작은 정제, 주삿바늘, 핀셋, 시계 수리공이 사용할 법한 펜치, 구리철사 묶음 등이 가득 들어 있다." (p.15)
"수간호사의 얼굴은 여전히 차분하다. 마치 그녀 자신이 원하는 표정을 조각하여 색칠을 한 것 같다. 여전히 차분하다. 자신감과 인내심이 있는 침착한 표정이다. 더 이상 고갯짓은 하지 않는다. 오싹할 만큼 냉정한 표정의 얼굴, 빨간 플라스틱을 짓눌러 만든 것 같은 침착한 미소, 나약함이나 근심을 드러낼 만한 주름 하나 없는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운 이마, 도화지에 그린 것 같은 녹색 눈. 그 눈빛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기다릴 수 있어요. 이따금씩 작은 패배를 경험하기도 하겠지만 인내심을 갖고 침착하게, 자신 있게 기다릴 수 있지요. 왜냐하면 내 사전에 패배는 없으니까요."(p.189)
잭 니콜슨 (Jack Nicholson) 랜들 패트릭 맥머피 역 @사진: 네이버 영화
맥머피는 수간호사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놓는다. 맥머피는 회의 시간에 수간호사한테 야구 경기 월드시리즈를 보려고 텔레비전 시청 시간에 대한 재투표를 제안한다. 간호사는 “텔레비전 시청 시간을 오후로 바꾸는 것에 찬성하는 분들은 손을 드세요.”(p.232)라고 하자 총 스무 명의 급성 환자들이 손을 든다. 수간호사는 이런 상황에 어리벙벙해하며 “겨우 스무 명이군요, 맥머피 씨(...) 안됐지만 당신의 제안은 부결됐어요.”(p.233)말한다. 그녀는 병동에는 마흔 명의 환자들이 있으니 “이곳의 규칙을 바꾸려면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해요.”(p.233)라면서 말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식이다. 수간호사는 얼토당토도 않는 규칙을 내세워 야구 경기를 볼 수 없게 만든다. 맥머피는 화가 치민다.
"총 스무 명의 급성 환자들이 서서 손을 들고 있다. 그들은 단지 텔레비전 시청에 찬성해서 손을 드는 게 아니다. 수간호사에게 반항하기 위해, 맥머피를 중환자실로 보내려는 그녀의 생각에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위해 그녀가 말과 행동과 가혹한 행위로 수년 동안 그들을 쥐락펴락한 소행에 대항하기 위해 손을 들고 있는 것이다. (p.232)
“안됐지만 당신의 제안은 부결됐어요.”
“잠깐만 기다리라니까요!”
“맥머피 씨, 병동에는 마흔 명의 환자들이 있어요. 마흔 명인데 겨우 스무 명이 투표를 했어요. 이곳의 규칙을 바꾸려면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해요. 이제 투표는 끝났습니다.”
환자들이 하나 둘 슬며시 손을 내리고 있다. 그들은 보기 좋게 당했다는 것을 알고, 안전한 안갯속으로 살짝 숨으려고 한다. 맥머피는 계속 서 있다.
“나 원 참, 환장할 노릇이군. 이런 식으로 투표를 한다 이거요? 저기 있는 늙은 환자들도 포함된단 말이오?” (...) “그러니까 민주적인 병동 어쩌고저쩌고해 놓고 이딴 식으로 운영한다 이거군요. 기가 막힐 노릇이군!”(p.233)
맥머피는 누워있는 환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만성질환을 가진 환자로 거의 식물인간이다. 그들이 어떻게 손을 들 수 있겠는가. 맥머피는 저쪽 구석에 서 있는 추장을 보더니 “추장, 당신한테 달려 있어요.”(p.236)라고 한다. 모두가 추장을 주목하는 자리. 추장은 과연 손을 들어줄까. 초조한 결정의 시간이 흐른다. 추장만 손을 들면 과반수가 넘는다. 추장은 손을 든다. 추장은 위험한 행동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추장은 이 사건을 계기로 변한다. 철통 같던 브롬든도 조금씩 자유의지를 향해 열망하기 시작했다.
밀로스 포먼 감독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 미국 129분. 1977년 개봉
"지금 내 손이 움직이고 있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맥머피는 여기에 온 첫날 내 손에 !몰래 어떤 장치를 해 놓았고, 내 손이 내가 내리는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어떤 주문을 걸어 놓았다. 그래 봐야 소용없다는 건 바보라도 안다. 그러니 내가 자발적으로 손을 들 리 없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수간호사의 눈빛만 봐도 내 입장이 얼마나 난처한지 충분히 알 것이다. 그러나 나는 손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 아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자진해서 손을 든다. 맥머피가 환성을 지르며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내 등을 토닥인다. “스물한 명! 추장이 손을 들었으니까 스물한 명이 찬성했어요! 이래도 과반수가 아니라고 하면 이 모자를 먹어 버리겠소!”(p.237)
맥머피는 환호성을 지른다. 맥머피가 수간호사를 이겼다. 사람들도 함께 손뼉을 친다. 그동안 수간호사에게 맥머피처럼 도전한 사람이 있었을까.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맥머피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수간호사는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맥머피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린다. 무섭다. 수간호사 권위에 도전한 자는 모두 만성 환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그녀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 환자들은 이런 상황을 봤을 것이고, 이를 잘 알기에 묵묵히 수간호사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들은 조용조용 숨죽여 지낸다. 수간호사 눈밖에라도 나면 큰일이다. 그녀의 말은 신의 목소리이며 절대 권력이다. 약한 자는 불복종할 수밖에 없다. 맥머피는 수간호사의 적수가 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맥머피는 손을 들어준 인디언 추장 아들 브롬든이 고맙다. 어느 날 병동의 흑인 보조원이 회중전등을 들고 추장의 침대 시트를 검사하고 있다. 맥머피는 한밤중에 뭐 하냐고 묻자 흑인 보조원은 “어때요? 이 밑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모두 껌이에요. 그것도 수천 번이나 씹은 것들이지요!”(p.343) 알려준다.
“지난 몇 년 동안 브롬든 추장이 어디서 껌을 얻었는지 궁금했어요. 매점에 갈 돈도 없었고, 껌을 주는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또 적십자 부인에게 달라고 하지도 않았거든요. 그래서 나는 죽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이것 보세요.” 그는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내 침대 커버의 가장자리를 들어 올리고 그 밑에 전등을 비추었다. “어때요? 이 밑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모두 껌이에요. 그것도 수천 번이나 씹은 것들이지요!”(p.343)
"나는 무의식중에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한쪽 팔꿈치로 받쳐 몸을 일으키고, 흑인 보조원을 바라보듯 나를 빤히 바라보며 내가 다른 말을 꺼내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나는 침대 커버에 놓인 껌을 집어 들어 손에 꼭 쥐고 다시금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나도 함께 웃으려고 했지만 어린 암탉이 울려고 하는 것처럼 꺽꺽대는 소리가 나왔다. 웃음소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울음소리에 더 가까웠다."(p.345)
빗자루를 들고 있는 브롬든 (화자) @사진: 네이버 영화
이 말을 들은 맥머피는 남몰래 추장에게 다가가 “추장, 지금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주시 프루트밖에 없소.”(p.344)라며 껌을 건네준다. 추장은 무의식중에 “고마워요.”(p.345)라는 말을 해버리고 만다. 추장이 말을 뱉었다. 10년 동안 자신을 감춰왔던 비밀을 털어놨다. 말을 하는 추장을 보고 맥머피는 놀래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추장은 맥머피를 신뢰한다. 이 친구에게는 자신의 진실을 보여줘도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브롬든은 느낄 수 있다. 맥머피는 인간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맥머피가 다소 망아지 같은 면이 있지만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살려는 철학이 있다. 그걸 브롬든은 꿰뚫었기에 자신을 노출시킬 수 있었다.
맥머피와 브롬든은 연대한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병동 생활을 시작한다. 병동에서 맥머피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모두 해준다. 맥머피는 빌리에게 도움을 줬지만 빌리는 수간호사의 말을 듣고 자살을 한다. 이 사건에 대해 수간호사는 맥머피에게 “이제 당신은 속이 시원하겠군요. 인간의 생명을 가지고 놀다니, 인간의 생명으로 도박을 하다니 당신이 신이라도 돼!”(p.503)라고 한다. 지금 빌리가 죽은 게 누구 탓인지 모르고 있다. 수간호사는 빌리의 약점을 이용해 엄마 이야기를 꺼냈고, 빌리에게 엄마는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이겨낼 수 없어 자살을 했던 것이다. 이를 외면한 채 책임을 전가하는 수간호사에게 맥머피는 달려들었고 이 일로 맥머피는 ‘뇌 전두엽 절제술’을 받게 된다. 맥머피는 결국 식물인간이 되어 병실에 돌아온다. 그는 수간호사에게 보기 좋게 당하고 말았다.
"병동 문이 열리면서 흑인 보조원들이 이동 침대를 밀고 들어왔다. 침대 가장자리에 차트가 달려 있었는데, 거기에 검정색의 굵은 글씨로 ‘맥머피, 랜들 P. 수술 완료’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잉크로 ‘뇌 전두엽 절제술’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들은 침대를 휴게실로 운반하여 벽 가까이 식물인간들 곁에 붙여 두었다. 우리는 침대 발치에서 그 차트를 다시 읽었다." (p.509)
"만약 저 사나이가 맥머피라면, 휴게실에 명찰을 붙인 채 이십 년이든 삼십 년이든 누워 수간호사의 체제에 도전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는 견본으로는 결코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다."(p.510)
"그 크고 다부진 육체는 생명력이 강했다. 그것은 생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참 동안 저항했다. 그것이 무서운 기세로 저항했기 때문에 나는 그 위에 올라탄 채 발버둥 치는 다리를 내 다리로 꽉 눌렀다. 그러는 동안 내 손에 쥔 베개도 그 얼굴을 누르고 있었다. 나는 몸부림이 멎을 때까지 계속 그 위에 올라타 있다가 슬그머니 내려왔다." (p.511)
병실에 실려 온 맥머피를 본 브롬든은 절망한다. 맥머피를 이렇게 만들어놓다니. 이제 맥머피는 더 이상 인간의 존엄을 부르짖을 수 없다. 브롬든은 고민하다 맥머피에게 다가가 그의 ‘몸부림이 멎을 때까지 계속 그 위에 올라타 있다가 내려’(p.511) 오는 행동을 하고 만다. 브롬든은 맥머피를 수간호사가 있는 병동에 그냥 두고 나올 수가 없다. 맥머피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어쩜 브롬든은 맥머피의 뜻에 따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
영화로 만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잭 니콜슨 -미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맥머피가 병동에 오면서 병원 공기가 달라졌다. 활력과 생기로 자욱해졌다. 맥머피는 환자들의 권리에 대해 계속 수간호사와 맞섰다. 안 되면 다시 재도전 할지라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환자들은 이런 맥머피가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저러다 수간호사에게 된통 당할 텐데 하고 말이다. 결국 맥머피는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권력에 맞서다 실패했다. 그렇지만 맥머피는 패배하지 않았다. 부당한 구조 속에 억울한 희생자일 뿐이다. 수간호사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남용했다. 주삿바늘, 전기 충격기, 약물치료, 전두엽 절제술까지 써서 말이다. 진정한 정신병자는 수간호사가 아닐까. 자신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환자들에게 그녀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른다. 맥머피는 유일하게 저항했다. 이를 본 브롬든은 그의 정신을 보고 삶을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자유를 선택했다. 사람 취급하지 않는 곳에서 벗어나 캐나다로 자유를 찾아 떠나기로 말이다.
브롬든은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맥머피가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제어반을 번쩍 들어 올려 창문을 깨부쉈다. 브롬든은 제어반 들기에 성공했다. 브롬든은 맥머피를 통해 자유의지를 배웠다. 부당해도 침묵하며 병원생활을 할 것이냐, 자신을 옭아 맸던 줄을 끊고 탈출할 것이냐. 브롬든은 후자를 선택한다. 브롬든은 "드디어 자유다."(p.514)를 외친다.(이 부분은 영화 쇼생크 탈출이 생각난다) 브롬든을 쫓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는 달리기 시작한다. 몇 킬로미터를 계속 달린다. 침묵하며 조용하게 이방인으로 산 그가 변했다. 수간호사의 권위에 저항할 힘을 얻었다. 그 용기는 맥머피와 지내며 갖게 되었다. 맥머피를 알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브롬든은 한 것이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브롬든은 있는 힘을 다했다.
작가 켄 키지는 권력을 가진 자가 약자들을 순종시키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질문했다. 그것은 아마도 '폭력'이지 않을까. 수간호사가 환자들에게 휘두르는 폭력. 폭력 앞에 꼼짝도 못 하는 환자들. 이들의 관계는 현대 국가 모습과 닮기도 했다. 켄 키지가 그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을 내세웠지만 넓게 보면 그 대상은 국가, 사회, 기업, 학교, 감옥, 가족일 수도 있다. 커다란 권력이 미약한 개인을 폭력적으로 규제할 때 희생자는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자유의지를 향해 권위에 도전하다 맥머피처럼 당할 수 있다. 그러나 맥머피의 희생은 브롬든에게 큰 용기를 심어줬다. 용기를 낼 수 있는 힘은 한 인간을 변화시킨다. 둥지 위를 날아간 브롬든. 앞으로 그는 어떻게 살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