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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20. 2021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샛별의 고독한 문장

샛별의 고독한 문장 12.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야간비행>, 문학동네, (136쪽 분량) 


아름다운 장면을 떠올리면 어떤 게 있을까. 파도치는 바닷가, 비 내리는 숲 속, 가족들이 밥을 먹는 장면, 아이가 잠든 모습, 엄마의 손, 사랑하는 여인의 눈동자 등~ 저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은 다를 것이다. 만약 죽음의 앞에 섰을 때 단 한 장면만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이 보고 싶을까. 생텍쥐베리의 <야간비행>의 조종사 파비앵은 마지막 순간에 별을 선택했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무나 아름답군." 조종사는 죽음의 순간에 별을 꼽았다. 그는 비행기를 조종하며 수없이 봤을 것이다. 하늘, 구름, 바다, 산맥, 그리고 별을.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훈련을 받고 1926년 라테코에르 항공사에 입사했다. 그는 1929년 조종사로서의 경험을 그린 <남방우편기>를 출간했고, 2년 뒤 <야간비행>을 썼다. <야간 비행>은 그가 항공 우편 조종사와 아르헨티나에 있는 항공 우편 회사(Aeroposta Argentina Company)에서 관리직으로서 일했던 시간들이 녹아 있다. 등장인물도 생텍쥐페리가 남아메리카에서 알고 지냈던 사람들과 연관성이 있으며, 특히 책에 나오는 리비에르는 항공 운항 감독이었던 디디에르 다우레트(Didier Daurat)에게서 영감을 받았고 전한다. 그래서 『야간비행』엔 디디에 도라에게 바치는 헌사가 쓰여 있다. 좀 더 자세한 사항은 생텍쥐페리의 회고록인 《바람, 모래와 별들》(1939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작가는 1931년 회사를 그만둔 뒤 〈야간 비행〉을 쓰고  페미나 문학상을 〈인간의 대지〉(1939)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았다. 1943년에는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발표했다. 그는 <어린 왕자>에 아름다운 삽화까지 직접 그렸다. 하지만 그는 1943년 연합군 반격 작전에 참가하기 위해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그만 행방불명됐다. 작가는 <야간비행>을 쓸 때 자신의 운명을 알았을까. 작가도 파비앵처럼 별들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생텍쥐페리가 '어린 왕자'를 집필한 책상과 원고. 책상 위에 '어린 왕자'의 그림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어린 왕자>에는 우주와 별이 나온다. 환상적인 이야기의 바탕에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다. <야간비행>을 읽고 나면 <어린 왕자>가 쓰일 수밖에 없었겠구나 알게 된다. 그는 다른 작가들과 달리 비행사였기에 하늘이라는 공간을 소설로 재현하기 수월했을 것이다. <야간비행>은 <어린 왕자>처럼 내용이 따뜻하지는 않다. 당시 항공우편회사는 기차나 배와의 속도 경쟁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을 감행했다. 소설은 산업화 사회가 시작되면서 하늘에서조차 경쟁해야 하는 자본주의의 비참함을 담았다. 작가는 주인공 라비에르를 통해 인간의 냉정함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리비에르(Rivière)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항공 우편국의 국장으로 전 항공노선을 총괄하는 책임자다. 그는 철두철미하게 일을 하며 ‘의지의 약화는 곧 실수를 유발’(p.45)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감독관 로비노가 조정사 펠르랭과 식사를 함께 하며 친하게 지내자 이를 본 리비에르는 “로비노. 자네는 부하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p.46)라고 우려를 표한다. 부하직원들과 친해지면 징계를 줄 때 개인적인 감정이 들어가니 선을 넘지 말라는 식이다. 리비에르는 냉정하다. 항공 회사는 위험요소가 많기에 규칙과 규율을 철두철미하게 지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사무실에서 서류를 검토하다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p.57)라고. 자기는 총괄책임자라 개인적인 사정을 다 봐줄 수가 없다. (어디를 가나 책임자는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안전에 대한 조바심이 있다. 자신이 우물쭈물 그냥 넘어가면 사고가 생기고 항공 회사는 흔들릴 것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현장에서 누구보다도 엄격함을 유지했다. 


  조종사가 비행기에 손상을 입히면 무사고 특별수당을 받지 못한다. 숲 속에서 고장이 나도 마찬가지다. 부당하지만 규칙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리비에르는 ‘규칙이란 종교의례와 비슷해서 부조리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도야시키지.’(p.35)라고 생각한다. 그의 내적 갈등은 옆구리 통증으로 나타난다. 몸 안에서도 신호를 보낸다. 그럼에도 그는 직원들에게 매정하게 굴 수밖에 없다. 실적을 달성해야 하기에. 


  직원을 해고하는 일은 쉽지 않다. 리비에르는 1910년부터 비행기 조립을 맡았던 로블레에게 해고를 명한다. 로블레는 리비에르를 붙들고 “1910년부터 비행기를 손봤으니……소장님, 이십 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소장님”(p.59)라며 하소연한다. 리비에르는 얄짤없다. 본보기로 당신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대신 잡역부 일을 할 수 있게 알아봐 준다. 이에 로블레는 "제 체면은요, 소장님, 제 체면은 뭐가 됩니까! 보세요., 소장님, 비행기 일을 한 지 이십 년입니다. 저 같은 늙은 노동자가……” (p.59)라며 거절한다. 20년 넘게 비행기를 조립한 로블레는 작역부 일은 싫단다. 리비에르는 그가 20년 동안 일했어도 실수를 했기에 봐줄 수가 없다.  


  어느 날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의 세 우편기가 남쪽, 서쪽, 북쪽으로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향해 돌아오고 있는 중이었다. 파타고니아를 떠났던 비행기는 무선 연락이 닿지 않는다. 파비앵이 조정하는 비행기였다. 파비앵은 번개를 뚫고 거대한 구름덩어리를 피했지만 태풍이 불어 앞도 보이지 않는다. 기체도 심하게 흔들린다. 번개가 심해 기착지와 무선이 끊겼고 비행기 연료는 바닥이 나버린 상황이다. 착륙지점을 찾지 못해 혼란스럽다. 파비앵은 ‘충돌할 위험을 감수하고 어디든 착륙할 것이다’(p.92) 다짐하며 마지막 남은 조명탄을 터뜨렸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비극적이게도 그 밑은 바다였다. 바다로 착륙할 수도 없고, 연료도 떨어지는 상황. 한줄기 빛이라도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 순간 ‘구멍으로 세 개의 별이 보였’(p.93)다. 너무나 찾고자 했던 불빛이다. 고도를 높여 더 올라가면 위험하다. 그러나 그는 빛에 굶주렸기에 고도를 높여 별들을 향해 올라간다. 저곳에 가면 살 수 있을까.


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야간비행>, 문학동네, 97쪽


너무 아름답군. 파비앵은 생각했다.
97쪽


  파비앵이 고도를 뚫고 올라온 밤하늘엔 별들이 보석처럼 빼곡히 박혀 있다. 밤에 구름이 이토록 눈부시다니! 보름달과 모든 별자리들이 구름을 찬란한 파도로 바꿔놓는 걸 목도했다. 그리고 터진 한 마디 "너무나 아름답군"(p.97). 죽음의 순간이지만 아름다운 걸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마음. 비행기 조종사로 숱한 밤하늘을 봤을 텐데 고도를  높여 올라온 이곳의 풍경은 처음이었다. 여긴 무중력의 공간이다. 그토록 흔들렸던 비행기도 조용해졌고 바람도 고요하다. 마치 물결 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미지의 하늘을 처음 본 파비앵은 별들 주위를 맴돌며 죽음을 기다린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마치 어린 왕자처럼 별들에게 이끌려 올라오고 말았다. 


  폭풍 속에서 빠져나온 파비앵은 이곳이 천국일까 생각했다. 모든 별들이 눈부시게 빛났고, 사방은 온통 흰 구름 때문에 우윳빛 세상이었다. 자신이 살면서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볼 수 있었지만 그는 이제 저 우주 밖으로 별처럼 사라질 것이다. 마지막 최후를 별무리와 함께 하는 시간.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조금 위로가 될까. 


  영화 <노매드랜드>에서 암에 걸린 스왱키는 죽음 직전 자신이 살면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를 찾아간다. 스왱키의 말이다. "콜로라도 호수에서였는데 내 카약 2미터 위로 착륙하는 크고 하얀 펠리컨들. 커브를 돌면 절벽이 나오는데 수 백 마리의 제비 둥지가 절벽에 붙어 있었어. 온 사방으로 제비가 날면서 물에 비치는데 마치 내가 제비와 함께 나는 것만 같았지. 정말 멋있었어. 그 순간, 이제 충분하다고 느꼈어. 내 인생은 완벽했어. 지금 이 순간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자신이 보고 싶었던 장소에서 생을 마감한 스왱키처럼 파비앵도 밤하늘 안에서 생을 마친다. 비행 사고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그는 별이 빛나는 이곳을 선택했다. 그리고 생을 마무리한다. 


  리비에르는 파비앵을 태운 비행기가 실종이 됐다는 보고를 받는다. 라비에르는 침착해진다. 이 사고로 다른 비행사들도 웅성거릴 것이다. 우편을 나르는 야간 비행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의 지시를 받으러 온 감독관 로비노에게 “두시군. 아순시온 우편기가 두시 십 분에 착륙할 예정이오. 유럽행 우편기를 두시 십오 분에 출발시키시오.”(p.115) 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야간비행은 시작된다. 로비노가 ‘야간비행이 중단되지 않는다는 놀라운 소식’(p.115)을 듣고 멍하게 서 있자 리비에르는 ‘매일 밤 태풍이 오는 건 아니다.’(p.117)라며 아순시온 우편기의 비행에 출발 명령을 내린다. 


"단 한 번이라도 출발을 중단시켰다면, 야간비행의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를 비난할 마음 약한 사람들을 앞질러 리비에르는 그날 밤에도 또 다른 승무원을 출발시켰다. 승리……패배……이런 단어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명은 이런 이미지들의 저 아래쪽에서 이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p.120)


  파비앵의 사고 소식을 듣고도 다른 비행의 출발 명령을 내리는 책임자의 임무를 어떻게 봐야 할까. 강한 리더십에는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출발을 시켜야 우편물은 정상적으로 운반되고, 비행업무는 돌아가니까. 그럼에도 리비에르는 파비앵의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악천후에 맞서야 하는 비행의 위험을 숙지해야 했다. 불안하고 어두운 밤하늘을 비행해야 하는 비행사의 생명도 생각해야 한다. 당시 비행기는 기차와 배와 속도 경쟁을 했다고 한다. 이 경쟁에서 이기려면 야간에도 비행을 해야 하는 상황도 이해는 되지만 비행사들의 안전은?


유럽의 화폐가 유로화로 통일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유통되던 지폐. 생텍쥐페리의 얼굴.(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작가는 비행 경험을 바탕으로 파비앵과 리비에르라는 캐릭터로 만들었다. 글쓰기와 비행을 사랑했던 작가. 자신의 비행기가 위험에 처했을 때 파비앵을 떠올렸을까. 작가도 파비앵처럼 고요하게 비행을 마쳤길 바래본다.  





생텍쥐페리가 첫 비행을 시작한 비행기는 엔진, 날개, 방향타 등 아주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비행기는 날 수 있다는 기능 외에 조종사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는 거의 없는 상태였다. 약간의 강풍에도 흔들리고, 작은 충격에도 취약하여 너무나 위험한 이동 수단이었다. 불안스럽게 날아가는 동체에 몸을 맡기고 가는 조종사에게 비행기의 요동이 자기 몸의 위기로 즉각 느껴지던 시기였다. 현대의 비행기는 너무나 대형화되고, 자동화되어 많은 부분에서 기계 시스템 이 자동으로 작동되기에, 비행사가 조종한다기보다는 첨단 기술체계가 통제하는 느낌이 들뿐이다. 따라서 비행사의 조종 기술에 비행기가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지기 힘들고 너무 복잡 정교한 기체에 인간적인 정감을 느끼기 어렵다.


1919년대의 비행기는 시속 100킬로미터로 행동반경이 500킬로미터에 불과했다. 시속 100km는 지금의 자동차보다도 느린 속도이다. 생텍쥐페리가 처음으로 조종했던 1920년대의 비행기도 장비가 너무나 불안정한 물체였다. 그 불안정과 결핍으로 비행기가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고, 속도가 느렸기에 지상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따라서 소설가에게는 세상을 관망할 수 있는 좋은 도구였다. 


 그러나 그것이 항상 낭만적인 비행만을 제공했던 것은 아니었다. 안데스 산맥 최고봉이 7000m 정도인데 비행기의 최고 고도가 5200m인 상황에서 야간 비행을 하며 항공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때는 레이다가 없어서 암흑 속에 산을 만나면 끝장이었다. 그러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비행을 공포의 여행이 아니라 시적이고 동화적인 유람으로 변환시킬 만큼 생텍쥐페리는 비행기와 비행을 사랑했다.


나는 아르헨티나로의 첫 야간비행을 잊을 수 없다. 평야에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빛이 별처럼 반짝이는 밤, 각각의 별은 이 검은 대양 속에서 인간 의식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 집에서 사람들은 독서를 하거나, 명상을 하거나, 비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른 집에서는 우주에 대해 생각하거나 안드로메다 성운에 대해 계산을 할 것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있다. 점점 멀리에서 그들의 양식을 주장하는 불빛들이 빛나고 있다. 시인, 교사, 목수들 까지도. 그러나 그 살아있는 별들 중 얼마나 많은 창문들이 닫혀있고 얼마나 많은 별들이 꺼져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가? 서로 만나도록 시도해야 한다. 저 멀리 들판에서 빛나는 이 불빛들이 서로서로 소통하도록 해야 한다.


출처: 『생텍쥐페리 비행기의 이미지 연구』, 장성욱, 프랑스학회, 2014.




발췌


조종사가 비행기에 손상을 입히면, 무사고 특별수당을 받지 못했다. 로비도가 물었다. “하지만 숲 속에서 고장이 났다면요?” “숲에서도 마찬가지일세.” 로비노는 그 점을 명심했다. (...) “하지만 로비노 씨, 그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요!” “이건 규칙이오”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규칙이란 종교의례와 비슷해서 부조리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도야시키지.’ 정당하냐 부당하냐의 문제는 리비에르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이런 말은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른다. 작은 도시의 소시민들은 저녁마다 공원 야외 음악당 주위를 서성이는데, ‘그들에게 정당하냐 부당하냐는 아무 의미도 없지. 그들은 존재하지도 않으니까’라고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p.35)


-“나는 자네를 자네 자리로 되돌려놓겠네. 로비노, 자네가 지쳤다면 자네를 지탱해줄 사람은 그들이 아니야. 자네는 상관이라고. 자네의 나약함은 보기에 좋지 않네. 부른 대로 써보게.”

“저는……”

“이렇게 쓰게. ‘감독관 로비노는 조종사 펠르랭에게 징계를 내린다. 이럴저러한 이유로……’ 어떤 구실이든 자네가 찾아보게.”

“소장님!”

“자네가 내 말을 알아들었다면 그렇게 하게. 로비노. 자네는 부하들을 사랑해야 하지만 그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서는 안 되네.”(p.46)


 -옆구리 통증은 일단 누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몸안에 살아 있으면서 인생의 새로운 의미로 다가와 자신을 돌아보게 했기에 그는 몹시도 씁쓸했다. 

‘나는 정당한가 부당한가? 나는 알 수 없다. 내가 엄격하게 굴면 사고는 줄어든다. 책임이란 개인에게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이에게 적용되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적용되지 못하는 막연한 힘과 같다. 내가 정말 정당하게 군다면, 야간비행은 매번 죽음의 위험에 노출될 것이다.’ 그는 이 길을 너무 혹독하게 달려온 데 대해 피로감이 들었다. (p.57)


-“본보기네, 어쩌겠는가, 본보기인 것을.”

“하지만 소장님! …… 이걸 좀 보세요, 소장님!” 로블레는 낡은 지갑에서 젊은 시절 비행기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자신의 사진이 실린 오래된 신문을 꺼내 보여주었다. 리비에르는 이 순진한 영광 위로 늙은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이게 1910년 사진입니다. 소장님……아르헨티나의 첫 비행기를 조립했던 제 기념사진이요! 1910년부터 비행기를 손봤으니……소장님, 이십 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소장님, 젊은 친구들이 작업장에서 얼마나 비웃겠습니까!……아! 실컷 비웃을테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네.”

“제 아이들은요, 소장님. 제게는 자식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말하지 않소. 잡역부 자리를 주겠다고.”

“제 체면은요, 소장님, 제 체면은 뭐가 됩니까! 보세요., 소장님, 비행기 일을 한 지 이십 년입니다. 저 같은 늙은 노동자가……”

“잡역부 일을 하시오.”

“싫습니다, 소장님 못 합니다!”

늙은 두 손이 떨렸고, 리비에르는 주름진 이 두툼하고 아름다운 손에서 눈을 돌렸다. (p.59)


-별들이 길잡이가 되어준 덕분에 그는 돌풍을 잘 피하면서 올라갔다. 별들의 약한 자성이 그를 이끌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빛을 찾아 헤맸기 때문에 아무리 희미한 빛이라 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여인숙의 불빛 하나만으로 부자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빛에 굶주렸기에, 이 신호 주변에서 죽을 때까지 맴돌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 그는 빛의 세계를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p.95)


 -파비앵은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이상한 세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의 손도, 옷도, 비행기 날개도 모두 눈부시게 빛났기 때문이다. 빛은 별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그의 아래와 그의 주위에 있는 흰구름들로부터 나오고 있었다.(p.96)


-‘너무 아름답군.’ 파비앵은 생각했다. 그는 보석처럼 빼곡이 들어찬 별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었다. 파비앵과 그의 동료 말고는 아무도 없는, 살아 있는 것이라곤 없는 세계에서. 그들은 보석이 가득한 방에 갇혀 다시는 그 방을 나올 수 없는, 동화 속 도시의 도둑들 같았다. 그들은 얼음처럼 차갑게 반짝이는 보석들 가운데서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죽을 운명을 맞이하여 떠돌고 있었다.(p.97)


아순시온 우편기가 곧 착륙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리비에르는 최악의 시간에조차 전보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아순시온 우편기의 순조로운 비행을 지켜보았다. 이처럼 혼란한 가운데서도, 그에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에 대한 복수이자 증명이었다. 이 순조로운 비행은 전보를 통해 다른 수많은 비행 또한 순조로우리라는 점을 예고했다. ‘매일 밤 태풍이 오는 건 아니다.’리비에르는 또 이런 생각도 했다. ‘일단 길을 개척해놓으면, 그 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p.117)


 -단 한번이라도 출발을 중단시켰다면, 야간비행의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일이면 그를 비난할 마음 약한 사람들을 앞질러 리비에르는 그날 밤에도 또다른 승무원을 출발시켰다. 


승리……패배……이런 단어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생명은 이런 이미지들의 저 아래쪽에서 이미 새로운 이미지들을 준비하고 있다.(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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