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브라이언 헤어, 베네사 우즈, 디플롯, 2021. 과학입문, (312쪽 분량)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제목을 곰곰이 생각해 봤다. 살아남으려면 다정해야 한다처럼 들렸다. 모든 생명은 유한하지 않으니 끝까지 살아남는 게 일생 최대의 과제일 수 있겠다. 저자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격한 세상을 살아내려면 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살아남는 자는 강한 자도, 능력 있는 자도 아닌 '다정한 것'이라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다정함과 생존력과의 상관관계가 솔깃하기도. 또 김영하 작가가 추천한 책이기도 해서 도서관에서 빌렸다. 제발 살아남기 위한 다정함이 비겁함이 아니길 바라면서 읽었다. (설마)
'다정함'이란 뭘까? 상대방에게 친근함을 표시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표현이며, 누군가의 마음을 읽어주는 행동이다. 다정함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애정까지 포함한다. 다정한 사람에게 우리는 호감을 느끼며, 그런 사람들과 관계를 나누고 싶어 한다. 반면, 멀리하고 싶은 사람들은 냉정하거나 잔인하거나 차가운 성격을 가졌다. 이들은 타인을 생각하기보다 이기적인 마음이 많다. 그래서 이런 소유자들은 자신의 가족, 친구에겐 다정해도 친구가 아닌 타자에겐 차갑게 대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성격을 가진 생명체들이 다 함께 '잘' 살아남으려면 다정함이 우선한다는 건 필수조건 같다.
저자는 두 명이다. 브라이언 헤이는 듀크대학교에서 진화인류학, 심리학, 신경과학과 교수를 맡고 있다. 버네사 우즈는 듀크대학교에서 진화인류학과의 연구원이며 수상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둘은 데이터와 자료를 통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이유를 제시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개념은 '자기 가축화 가설'이다. '친화력은 자기가축화 self-domestication를 통해서 진화했다'(p.31) 인간은 도구(총, 화살 등)를 사용할 줄 알기에 힘이 약해도 동물들을 위협하며 막강한 존재로 등극했다. 동물의 입장에선 저런 인간들에게 다정해야(잘 보여야) 그들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거 비겁함 아닌가/ 비겁함보다는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모든 동물들이 가축화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동물들이 가축화되었을까.
가축화된 과정을 보면 어느 정도 지능이 있어야 가능했다. 인간들이 요구하는 협력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의 지능이 필요했다. 개는 늑대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래로 인간과 닮도록 진화됐다. 개는 늑대와 달리 사람이 채집하거나 경작한 양식도 소화할 수 있었다. 개는 가축화되었지만 개의 야생 친척인 늑대는 가축화의 필수 기준에 부합되지 않았다. 늑대는 사람이 먹이를 공급하기 어려웠고, 사납게 굴었으며 위협받으면 물었다. 결국 늑대는 가축화에 실패했다.
오레오의 특기는 테니스 공 3개를 한입에 물어오기였다. (p.46)
저자는 인간의 손짓에 주목했다. 손가락이 무언가를 가리킬 때 상대방은 그 사람이 손짓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 저기를 보라는 것인지, 이리 오라는 것인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등. 손짓은 '심리학에서 '마음이론 Theory of Mind'이라고 부르는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시작되는 관문'(p.40)이다. 손짓은 협력적 의사소통의 기초적인 단계이다. 손짓은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가능한 의사소통이다. 이 손짓의 행위를 동물들도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연구진들은 침팬지에게 마음이론 능력을 실험했는데 잘되지 않았다. 반면, 저자가 키우는 개 오레오는 손짓이 통했다. 저자가 공을 던지고 왼쪽을 가리키면 오레오는 왼쪽으로 찾으러 갔고, 오른쪽을 가리키면 오른쪽으로 테니스 공을 물고 왔다. '오레오의 반응은 침팬지들보다 더 유연하고 인지적으로도 더 정교했다.'(p.52) 연구팀은 오레오를 통해 '개도 우리처럼 협력적 의사소통에 특화된 인지능력이 있다'(p.54) 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의 손짓을 이해하는 개는 인지능력이 뛰어났다. 개는 손짓을 읽어낼 수 있었지만 반면 늑대는 읽어내지 못했다. '늑대는 지능이 높았음에도 사람이 보내는 협력적 의사소통의 의도는 자연스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p.77) 고로 늑대는 가축화되지 못했다. 가축화된 동물들이 우둔할 거는 기존 생각들은 이 연구로 재평가되었다. 가축화된 동물들은 지능이 정교했고, 인간과의 친근함이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저자는 동물의 세계에서도 다정한 협력이 종족 번식을 유리하게 하고 있음을 서술했다. 연구자 랭엄은 보노보를 연구하며 침팬지와 비교했다. 특히 암컷을 비교했다. 보노보는 콩고강 남부 열매가 풍부한 지역에 거주했기에 암컷들끼리 서로 돕고 친화력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보노보는 공격성이 낮은 수컷과 짝짓기를 선호했다. 이는 수컷의 공격성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침팬지는 서열이 높은 암컷들에게만 매일 충분한 먹이가 보장되었기에 암컷끼리 경쟁했다.
보노보들 세계에서 암컷끼리 연대는 특이했다. 보노보 암컷은 수컷에게 기대어 살지 않았다. 침팬지 암컷은 수컷에게 기대어 살아갔지만 보노보들은 달랐다. 보노보 암컷들은 같은 암컷들을 경쟁자로 여기지 않았고, 친구처럼 받아들였다. 보노보들은 '나눔'의 효과를 알고 있었다. 침팬지들이 먹이를 혼자 다 독식했다면 보노보는 자신이 먹을 음식이 줄더라도 나눠먹었다. 나눔은 미래를 보장받는다. 자신의 먹이가 없을 때 누군가가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이들에겐 있었다. 보노보 암컷들은 서로가 다정했으며 친절했다. 보노보에게는 관용과 친화력이 우세했다. 이런 특징들이 보노보를 살아남게 만들었다.
보노보의 자기가축화 가설처럼 서로에게 관용적일수록 보상은 커졌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땠을까. 인간도 감정을 그대로 발설하거나 자제력을 키우지 않으면 그 무리에서 위험했을 것이다. 인간들도 보노보처럼 자기통제와 친밀감을 높여 서로 유대감을 쌓아나갔고, 공동체를 형성했다. 인간도 독식보다는 나눔과 연대를 통해 사회적 인지능력으로 확대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보노보도 닮았지만 침팬지의 공격성도 가졌다. 자신들의 리그 안에서는 다정함을 발휘했지만 나와 다른 타자들에게는 맹렬히 공격했다. 그 예는 인류 역사상 무수히 많다.
유대인 박해부터 노예제도, 인종차별을 시작으로 '중국의 문화혁명,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테러, 프랑스혁명, 일본제국주의까지'(p.255) 이어졌다. 특히 인간은 자신과 다르다고 느낄 때 제노사이드(Genocide 인종,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대립을 이유로 그 구성원을 대량 살해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행했다. 특히 저자는 유대인 대학살에 대해 언급했다. 같은 인간끼리 어떻게 그런 야만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했다. 또, 누구는 목숨이 위험했는데도 유대인들을 도왔다. 누구는 유대인을 학살하고 누구는 유대인을 도울 수 있었을까.
유대인 대학살이 진행될 때 유럽인들은 목숨을 걸고 유대인을 박해와 죽음으로부터 구출했다. 그들은 유대인을 헛간, 다락방, 하수구나 가축우리에 숨겨줬다. 하룻밤을 숨겨주기도 했고 한 해 동안 보살펴주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은 방관하거나 나치 편을 들 때 이들은 왜 유대인을 도와줬을까? 사회학자 새뮤얼 올리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구출해 준 수백 명의 증언을 분석했더니 그들에게 공통점이 포착되었다. '그들 모두가 전쟁 전에 유대인 이웃이나 친구 혹은 직장 동료와 친하게 지낸 경험'(p.258)이 있었다. 이렇듯 다정했던 경험은 유대인들을 목숨 걸고 도왔던 이유가 됐다. 이 분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앞으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다정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정했던 경험은 타인을 보호하고, 공격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도울 수 있는 원동력은 다정한 경험이었다. 그 유전적 기질이 인간에게 남아 있는 한 어떤 폭력에도 인간은 그들을 도울 것이며 살아남으려고 애쓸 것이다. 책의 많은 부분은 동물들의 사례였지만 인간에게도 투영해 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인간과 동식물들이 지구 땅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한 첫 번째 행동은 '다정함'이 아닐까. 적자생존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정함이 살아남는다.
별점은 5점 만점 중에 4.3이다. 가독성도 좋고, 다정함이라는 키워드로 동물에서 인간까지 확대하는 연결이 좋았다. 과학 입문서로 무리 없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읽고 나면 어떻게 인류가 살아야 할지 답도 제시한다. 다만, 중간중간 글에 대한 관련 사진들이 실렸는데 출처가 없어 답답했다. 책 내용과 관련된 사진들인지 출판사가 임의로 비슷한 사진을 배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부록(출처) 분량이 많은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ㅎㅎ
발췌
어린 시절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는 나의 개 오레오였다. 여덟 살 무렵, 내 두 손에 쏙 들어가던 오레오는 순식간에 식탐 강하고 삶을 사랑하는 약 30킬로그램 무게의 래브라도 레트리버 성견으로 자라났다.(p.42)
그러나 실제로 가축화의 가능성이 있는 전 세계의 덩치 큰(45킬로그램 이상) 포유류 147종 가운데 14종만 가축화되었으며, 사람이 오랫동안 의지해온 포유류는 5종(양, 염소, 소, 돼지,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더 작은 포유류도 가축화되기는 했지만 (늑대도 그중 하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극히 적은 수다. (p.63)
다이아몬드는 사람이 주는 먹이를 쉽게 먹을 수 있고, 성장이 빠르고, 번식이 쉽고, 사육 상태에서 출산 빈도가 높고, 사람과 친해지기 쉽고, 지배 서열에 순응적이고, 울타리 안에서나 천적과 맞닥뜨렸을 때 침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p.63)
보통 여우는 둘 중 하나를 갖고 놀았지만 내가 가리킨 장난감을 고르지는 않았다. 녀석들은 아무 장난감이나 선택했다. 친화력 좋은 여우들은 내가 제안한 장난감을 선호했다. 보통 여우와 친화력 좋은 여우가 나와 함께 보낸 시간은 동일했지만, 친화력 좋은 여우만 내 손짓에 응했다. (p.74)
랭엄의 생각이 옳았다. 이런 유형의 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친화력 좋은 여우들은 우리의 손짓을 이용해서 먹이를 찾아낼 수 있었다. 개에게 전혀 뒤지지 않았다. 반면에 보통 여우들은 몇 달에 걸쳐 집중적으로 사회화 훈련을 받았는데도 우리의 손짓에 응한 확률이 겨우 절반을 넘기는 수준이었다. (p.75)
여우 실험은 우리가 개에게서 관찰한 협력적 의사소통 기술이 가축화의 산물임을 입증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어 주었다. (p.75)
우리가 개의 인지능력이 얼마나 정교한지 밝혀낸 뒤로, 다른 연구자들도 가축화된 동물들의 지능에 대한 기존의 통념, 즉 가축화가 동물을 우둔하게 만들었다는 기존 생각의 재평가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p.82)
암컷 보노보는 배란기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냈다. 그들은 엉덩이가 분홍빛으로 부풀어 있는 기간이 길어서 수컷으로서는 정확히 언제 배란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또 암컷들은 침팬지 같은 행동을 보이는 수컷에게는 적대적으로 군다. 암컷에게 강제로 짝짓기 하려 드는 수컷은 반드시 맹렬한 저항에 부딪힌다.(p.96)
암컷 침팬지는 친척 암컷에게만 도움을 주지만 암컷 보노보는 모든 암컷을 돕는다. 새로운 암컷이 무리에 들어오면 흥분하거나 호의를 보이며 반기는데, 서로 앞다투어 달려들어 인사하고 털을 다듬어주고 성기를 문질러주곤 한다. 이 원주민 암컷들이 그동안 알고 지낸 수컷들에 맞서서 새내기 암컷을 지켜줄 것이며, 자기네 아들들로부터도 지켜줄 것이다.(p.97)
암컷의 승리가 어느 정도로 완전하냐면, 수컷이 암컷을 만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어머니를 통하는 것일 정도다. 보노보 수컷은 침팬지 수컷처럼 암컷을 꺾어 누르기 위해서 뭉치는 대신 엄마에게 의지해서 암컷 친구를 소개받는다. 침팬지 수컷은 자기네 엄마마저 복종시키는 반면 보노보 수컷은 마마보이의 결정판이다. 암컷과 친하게 지내는 이 방식은 성공적 번식 전략이어서, 번식에 가장 성공한 침팬지의 수컷 우두머리보다도 더 많은 후손을 얻는다. 이는 암컷의 다정한 수컷 선호가 다정한 사회의 진화를 야기하는 선택안이라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사례다.(p.98)
보노보 수컷과 침팬지 수컷 (99쪽)
어떤 종 안에서 관용과 친화력을 지닌 개체군이 살아남는 자연선택이 일어났는데, 그 형질 변화가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집단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 또한 자기 가축화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p.98)
침팬지라면 그 문을 열지 않고 혼자 다 먹었을 것이다. 보노보는 놀랍게도 문을 열고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보노보는 자기가 먹을 음식이 줄더라도 나눠 먹는 것을 선호했다. (p.101)
보노보는 다정한 동물로 찬양되기도 하고, '전쟁 말고 사랑'이라는 모토에 걸맞은 히피 유인원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한다. 특히 많은 과학자가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침팬지를 우리의 거울상으로 더 적합하다고 믿으면서 보노보는 오랜 기간 무시되어왔다. 실제로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특성이 침팬지에게 있다.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우리가 그러하듯이 침팬지에게도 빛나는 지능과 악마 같은 장난기,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살해를 저지를 수 있는 잔학성이 공존한다. (p.106)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보노보와 개의 경우처럼 관용적일수록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얻는 보상이 커졌을 것으로 예측한다. 동시에 이 가설은 감정반응을 억제하고 관용을 베푼 뒤 돌아오는 보상을 계산할 줄 알았다는 점에서 우리가 그 어떤 종과도 확실하게 다르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바로 이 자제력과 감정조절 능력이 결합되어 사람 고유의 사회적 인지능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p.123)
'우리는 공막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다'(131쪽)
침팬지와 보노보를 비롯한 모든 다른 영장류는 색소가 공막을 짙게 만들어 홍채와 뒤섞여 보인다. 이 경우 홍채와 공막의 색 대비가 낮아져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또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아채기 어려워진다. 우리는 공막이 하얀 유일한 영장류다. 게다가 눈의 형태도 아몬드 모양이어서 공막이 더 눈에 띄는 까닭에 시선을 조금만 움직여도 무엇을 보는지 알아차릴 수 있게 되어 있다. 우리의 눈도 다른 종들처럼 위장형이었으나 어느 시점부터 광고형으로 바뀌었다. (p.131)
대부분 동물은 공막을 숨긴다. 자기가 다음에 어떤 행동을 할지 경쟁자가 추측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사람 아기에게는 하얀 공막이 유리하다. (p.134)
우리의 눈은 분명하고 유일할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기도 하다. 사람은 피부, 머리, 심지어는 손톱까지 다양한 색을 띤다. 홍채도 초록색, 회색, 파란색, 갈색에 검은색까지 다채로운 색이 있다. 하지만 공막은 모두 똑같이 하얀색이다. 하나의 형질이 이렇게 절대적인 단일성을 보이는 건 아주 이례적이다. (p.135)
우리는,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가 썼듯이 "나약하게 알몸으로 빽빽 울면서" 태어나 몇 해 동안 이 상태로 지낸다. 하지만 사회적 인지능력이 일찍 발현되는 덕분에 타인의 마음과 연결될 수 있다. 우리는 타인의 의도와 생각, 감정을 읽을 수 있어 뇌가 형성되고 성장하는 동안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자들의 노력과 사랑을 활용할 수 있다. (p.155)
옥시토신은 내측전전두엽피질과 편도체의 연결을 차단함으로써 내측전전두엽피질을 더욱 활성화시키고 두려움과 역겨움을 느끼는 편도체의 반응을 둔화시킨다. 다시 말해서 옥시토신은 위협당하는 느낌을 감소시켜 상대방을 신뢰할 수 있게 해준다. (p.162)
눈맞춤은 옥시토신 분비를 더욱 촉진하여 감정적 유대를 강화한다.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눈맞춤 시간을 길게 끌어 옥시토신이 효과를 발하게 하는 것이, 굳게 악수하는 것보다 십중팔구 탁월한 선택이 될 것이다.(p.163)
1954년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무자퍼 셰리프(Muzafer Sherif)는 그 유명한 로버스 동굴 공원 실험(Robbers Cave Experiment)을 수행한다. 그는 오클라호마주에서 열린 여름캠프에서 11세 백인 남자아이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눈 뒤 각 그룹의 캠프 지도교사에게 아이들에게 다른 그룹을 위협이 되는 존재로 묘사하도록 지시했다. 일주일도 안 되어 아이들은 상대 그룹의 깃발을 불태우고 상대의 오두막을 습격했으며 무기를 만들었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외부 집단에 부정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생기면, 차별에서 제노사이드(Genocide)까지 사람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충돌의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p.182)
*제노사이드(Genocide) : 인종,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대립을 이유로 그 구성원을 대량 살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바카 피그미족이 동물원에 전시된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1906년 오타 벵가(Ota Benga)라는 피그미족 1명이 뉴욕 브롱크스 동물원의 원숭이 집에 전시되었다. 19세기와 20세기 초 미국과 유럽에서는 세계 각지의 원주민 부족을 전시하는 것이 유행이었다.(p.200)
동물원에 전시된 오타 벵가 (201쪽)
오타 벵가는 나이 스물 셋, 149.9센티미터, 체중 46.7킬로그램이었고, 치아는 뾰족하게 갈아 날카로웠다. 전시시간에는 천조각으로 허리 아래만 가리고 지냈고, 천 조각을 세탁하는 월요일에는 나체로 지내야 했다.(p.200)
사람들은 벵가가 어린 침팬지와 노는 모습을 구경하고 싶어 했다. 그들은 벵가와 침팬지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것 같다면서, 둘이 너무 닮아 누가 누군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p.200)
벵가가 동물원에서 풀려나 처음 보내진 곳은 고아원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지내다가 담배 공장에 취직했다. 그는 날카로운 치아에 캡을 씌웠고 미국식 옷을 사 입고 영어를 배웠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글로 남긴 기록은 없다. 오타 벵가는 서른세살에 불꽃 의식을 치르고 씌웠던 캡을 떼어내고 총으로 자살했다.(p.200)
인류학자 제임스 헌트(James Hunt)는 1864년 "대형 유인원과 흑인 비유가 유인원과 백인 비유보다 수적으로 훨씬 많다"고 썼다. 유인원이 사람과 동물의 중간 단계였다면, 흑인은 백인과 유인원의 중간 단계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p.205)
이 주장으로 노예무역에 대한 반감과 상류층 지식인들의 도덕적 딜레마까지 한 번에 해소할 수 있었다. 삶과 자유, 행복을 누릴 권리가 만인에게 적용되는 천부인권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흑인으로부터는 이 권리를 박탈하려는, 도덕적으로 모순을 정당화하는 데 유인원 비유만 한 처방이 없었던 것이다.(p.205)
영화 <킹콩> 207쪽
하지만 이런 유인원 유행이 꺼져가는 동안에도 미국의 흑인들은 여전히 유인원으로 그려졌다. 이들은 흔히 여자나 피에 주린 형상이었다. 발정 나 돌아버린 유인원으로 가장 유명한 아이콘을 꼽는다면, 1933년에 나온 영화 <킹콩>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킹콩>은 인종차별의 색채가 농후한 영화였다. 백인 여자가 어떤 밀림이 우거진 섬에서 흑인 야만인들의 인도로 검은 고릴라를 만난다. 검은 고릴라는 이 백인 여자에게 기이할 만큼 성적 관심을 보이고, 여자는 검은 고릴라에게 백인 문명 세계를 되찾아주고자 한다. 그러나 고릴라로서는 결코 반길 수 없는 일이다. 백인 남자들은 검은 고릴라가 백인 문명을 파괴하기 전에 잡아서 죽이고, 백인 여자는 주인공 백인 남자의 품에 안겨 힘없이 쓰러지며, 자연의 질서는 회복된다.(p.206)
고프가 지적하는 것은 비인간화,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인원화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유인원으로 부르거나 유인원에 비유하다 보면 사람들의 심리에 도덕적 배제가 발생하며, 이렇게 유인원화의 표적이 된 개인이나 집단은 기본 인권을 지켜줄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된다. 편견보다 유인원화가 현재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인종 간 격차를 더 잘 설명해 주는 것이다.(p.218)
이 그릇된 생각은 노예제가 있던 시절부터 끈질기게 전해져온 한 낭설과 닿아 있다. 흑인들이 고통에 덜 민감하다는 믿음말이다. 흑인의 피부가 더 두껍다고 생각하는 의과 학생들은 흑인 환자의 통증에 충분히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들도 흑인 응급 환자의 고통을 더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팔이나 다리가 골절된 흑인에게는 진통제 처방을 덜 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흑인 암 환자, 흑인 편두통 환자, 흑인 요통 환자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흑인 어린이 맹장염 환자조차 백인 어린이 환자보다 더 적은 양의 진통제를 투약받았다. (p.223)
다정함, 협력,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우리 종 고유의 신경 매커니즘이 닫힐 때, 우리는 잔인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다. 소셜미디어가 우리를 연결해주는 이 현대 사회에서 비인간화 경향은 오히려 가파른 속도로 증폭되고 있다. 편견을 표출하던 덩치 큰 집단들이 보복성 비인간화 형태에 동참하며 순식간에 서로를 인간이하 취급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서로를 보복적으로 비인간화하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p.226)
중국의 문화혁명,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스탈린주의, 무정부주의 테러, 프랑스혁명, 일본제국주의까지 권력자는 어떤 형태의 정부로도 비인간화와 그에 수반하는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민들을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고 믿게 만드는 것뿐이다. 나치 지도자 헤르만 괴링Hermann Goring이 뉘른베르크 감옥에서 말했듯이, "지도자는 언제든 국민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다. 아주 쉬운 일이다. 그저 우리가 공격받고 있으며 평화주의자들에게는 당신들이 나라를 위험에 노출시키고 있다고 말한 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면 된다. 어떤 국가에서든 동일하다." (p.255)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증오에 대해 명쾌한 예측을 제시한다. 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외집단을 비인간화할 때, 즉 외집단 구성원을 인간 이하의 무언가로 말하는 것이 이를 듣는 상대방에게 최악의 폭력 행위를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가설은 또한 사람을 동물이나 기계에 비유하거나, '쓰레기' '기생충' '체액' '오물' 등 본능적으로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언어로 묘사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형태의 증오언설이라고 본다. (p.277)
조사 결과, 개 품종들 사이에 뚜렷한 우열이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사람 집단 간에도 뚜렷한 위계가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p.298)
오레오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하면서 나는 다른 동물들의 지적인 잠재력에도 눈을 뜰 수 있었다. 오레오 덕분에 나는 침팬지의 잠재력을 조금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오레오 덕분에 나는 모든 낯선 이를 잠재적 친구로 대하는 동물, 보노보와도 만날 수 있었다. (p.300)
오레오와 나눈 우정과 사랑으로 나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함을. 그것이 우리 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숨은 비결이다.(p.300)
하지만 사람들은 이 표현을 아주 좋아했다. 수많은 변종이 나타났다. 섹시한 것이 살아남는다. 귀여운 것이 살아남는다. 예쁜 것이 살아남는다. 뚱뚱한 것이 살아남는다. 착한 것이 살아남는다. 똑똑한 것이 살아남는다. 심지어 아픈 것이 살아남는다까지. 그리고 이 책이 긴 리스트의 끝에 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p.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