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샛별 Mar 11. 2022

<아무튼, 여름> BOOK 리뷰

샛별BOOK연구소

아무튼 시리즈 30번. <아무튼, 여름>, 김신회, 제철소, 2020. (170쪽 분량)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다. 여름엔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어서 좋다. 훌러덩훌러덩 벗기 편하다. 나는 어둑어둑 밤이 싫다. 당연히 겨울밤을 나기 어렵다. 대신 여름은 해가 길어 좋다. 낮이 많으면 뭔가 더 넉넉해진다. 밝은 낮은 초조하지 않고, 오늘이 더 남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여름에 작렬하는 태양빛도 좋다. 뜨거운 태양이 아스팔트를 데우는 그 고요가 좋다. 아스팔트 위에 사람은 적고 뜨거움이 가득하다. 시간이 정지된 거 같다. 여름 거리를  걷고 땀을 뻘뻘 흘리고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천상의 음료다. 여름에만 들리는 매미소리도 좋다. 계곡물에 발 담그는 순간도.


이런 모든 게 좋지만 여름을 가장 좋아하는 '나뭇잎' 때문이다. 빈 가지에 가득 채운 잎사귀들. 최대한 매달려 하늘하늘 흔들리는 초록 잎들을 볼 때 생명력을 느낀다. 숲 속에 가득한 나뭇잎들, 가로수에 붙어 더 이상 부풀 수 없는 꿈들을 꾸는 나뭇잎들. 초록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는 계절은 여름뿐이다.  



 아무튼 시리즈에 <여름>이 있어 찾아봤다. 김신회 작가가 썼다. 나도 여름 좋아하는데 작가는 어떤 '여름'을 썼을까. 궁금해서 읽어봤다.   


  <아무튼, 여름>은 여름을 둘러싼 추억과 기억을 모은 책이다. 작가는 다양한 방법으로 '여름'이라는 계절을 소개했다. 여름에만 가능한 일들이 있다. 작가는 여름에 할 수 있는 그것들을 좋아한다. 지금부터 그것들을 소개하면~~  


작가에게 여름의 시작이라고 느낄 때가 덩굴장미가 필 때이며, 여름에는 영화 <기쿠로지의 여름>가 생각난다고 한다. 


작가는 여름에, 발리에서 만나 '여름 한철 사랑'했던 사람을 추억한다. 다시 여름에 사랑을 할 수 있을까라는 기대도 포함해서. 


작가는 여름에, 제주 초당옥수수를 꼭 먹어야 하고, 대나무 돗자리를 꺼내 수시로 눕는다. 또,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는 수입 맥주를 만 원에 네 캔을 살 수 있어 좋단다. 여름밤 맥주는 신속하고 깔끔하게 먹어야 한다며 맥주사랑이 대단했다. 하지만 맥주캔을 분리수거할 때마다 알코올 중독인가, 폭식증인가 묻는다.


작가는 여름에, 머슬 셔츠를 즐겨 입고, 새로운 머슬 셔츠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여름 하면 수영인데 늘 배워야지 하면서 지금껏 안 배우고 있다는 말도 보탰다. 여름철에 과일 샤인 머스캣을 사 먹으며 더 열심히 일할 것을 다짐한다.


작가는 여름에, 혼술하는 즐거움도 강조했다. 여름 저녁, 합정동 '빨간 책방' 1층 바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을 읽었던 기억도, 여름날 도쿄역 근처 '마루비루'라는 술집에서 혼자 스페인 까바(Cava)를 시켰던 이야기도 꺼낸다. 


작가는 여름에, 옥천냉면을 먹고, <삼시 세 끼 산촌 편>을 본다. '염정아, 윤세아, 박소담'이 출연해 시골에서 하루 세 끼를 만들어 먹는 이야기. 초록이 무성한 산골에서 서로 의지하는 그녀들의 모습에 용기를 얻는다고. 더운 여름에는 보면 딱이겠다. 


작가는 여름에, 소주를 마신다. 배우 한고은 씨가 소개한 레몬소주를 알게 되고 난 후 만들었는데, 최적의 비율(컵에 얼음 많이+탄산수 1: 레몬즙 1: 소주 0.5)을 찾았고 여름철 지인들과 레몬 소주를 마신다고 했다. 마트에서 레몬을 안 팔면 라임을 넣어도 좋단다. 


작가는 여름에 여행했던 괌, 발리, 치앙마이에 다녀온 이야기도 썼다. "여름휴가는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p.164)라며 책을 마무리한다. 여름을 좋아하는 작가의 포인트가 나와는 달랐다. 그 점이 신선했다. 나에게 누가 겨울이 싫은 이유를 백가지라도 대라면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여름이 싫은 이유는 물어보면 음... 모기 정도. 근데 모기도 봐줄 수 있다. ㅋㅋ 아무튼, 여름을 좋아하는 이유를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작가 소개 : 김신회 

10여 년간 TV 코미디 작가로 일했고, 이후 10여 년간 에세이스트로 살고 있다. <보노보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심심과 열심> 등을 썼다. 여름이 올 때마다 이 책의 중쇄를 들고 휴가 가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가 있다. 



발췌


-여름은 적당한 것을 넘기지 못하고 기어코 끓게 만든다. 나는 여름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서한나 <피리 부는 여자들>에서 


-왜 그렇게 여름이 좋냐는 질문 앞에서는 늘 대답이 궁금해진다. 그렇지만 그냥, 이라고 얼버무리기에 여름은 그렇게 단순하게 넘겨버릴 게 아니어서 그럼 한번 써볼까, 했다. 마치 여름에게 보내는 러브레터처럼, 여름이 좋은 이유에 대해 써보는 거다. 나는 너의 이런 점이 좋아. 그래서 좋아. 별로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좋아. 1년 내내 여름만 기다리며 사는 사람으로서 내 여름의 기억과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비슷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었다. (p.13) 


-내게도 언제든 꺼내 볼 수 있는 여름날의 추억이 있다. 여름이 그 추억만큼 나를 키운 것이다. 여름은 담대하고, 뜨겁고, 즉흥적이고, 빠르고, 그러면서도 느긋하고 너그럽게 나를 지켜봐 준다. 그래서 좋다. 마냥 아이 같다가도 결국은 어른스러운 계절.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여름 같은 사람이다. (p.14)


-한국에 돌아와서도 그 사람 생각만 났다. 그에게는 휴가철에 경험한 짧은 일탈이었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상사병이었다. SNS 속 그는 일상으로 복귀해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병상에 누워 어제도 오늘도 끙끙댔는데, 이후 약 3년 동안 그 사람을 잊지 못했다. 친구들과 나는 그 시간을 '잃어버린 3년'이라고 부른다. (p.25)


-그 경험 이후 '여름 한철 살랑'에 대한 환상을 깨끗이 떨쳐버리고 아무리 날이 더워져도 초연한 사람이 되었다, 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 뒤로도 여전히 여름만 되면 가슴이 뛰면서 호흡이 가빠졌고, 결국 비슷한 실수를 몇 번 더 반복하고서야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여름이 오면 내 지난 흑역사를 다 알고 있는 친구들과 모여 백지영의 <사랑 안 해>를 목놓아 부른다. 언젠가부터 코미디 프로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는데, 인생이 코미디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p.25)


-좋아하는 게 하나 생기면 세계는 그 하나보다 더 넓어진다. 그저 덜 휘청거리며 살면 다행이라고 위로하면서 지내다 불현듯 어떤 것에 마음이 가면, 그때부터 일상에 밀도가 생긴다. 납작했던 하루가 포동포동 말랑말랑 입체감을 띤다. 초당옥수수 덕분에 여름을 향한 내 마음의 농도는 더 짙어졌다. (p.33)


-여름밤 맥주는 신속하고 깔끔하게 먹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조리가 필요한 안주는 별로다. 기름에 볶거나 양념을 무치거나 삶거나 끓이거나 에어프라이어로 튀기는 음식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와도 안 해준다. 그래서 최대한 간단한 걸로 주워 먹고 정 아쉬울 때는 떡볶이나 치킨을 시킨다. (p.38)


-그런 마음으로 좋아하는 여름이 오면 좋아하는 머슬 셔츠를 꺼내 입는다. 그걸 입고 숲길을 걷고, 달리기를 하고, 바닷가로 떠난다. 어떤 옷을 입을 때 가장 편안한지를 깨닫고 나니 내 몸이 그 옷에 합당했는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옷을 입는지도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내 몸을 샅샅이 검열하는 일을 끊고 나니 남의 몸 역시 검열하지 않게 됐다. (p.47)


-안녕. 나에게 잊지 못할 여름을 선물해줘서 고마워. 누군가를 너만큼 좋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다시는 그런 사람을 못 만난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 나는 너와 함께 있을 때의 나보다 혼자인 내가 더 마음에 들거든. 잘 살아라. 나는 더 잘 살게. (p.76)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리무진 버스에서 또 울고 말았다. 슬픔은 대출금 같은 것이다. 애써 모른 척, 괜찮은 척해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 외면하거나 도망치기만 하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저 실컷 슬퍼하는 것으로 착실히 상환해나갈 수밖에 없다. (p.85)


-평양냉면도, 함흥냉면도 석연치 않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옥천냉면이다.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유연하면서도 개성적인 냉면이니까. 집에서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가야만 맛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자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애틋함은 옥천냉면의 비법 다진 양념 같은 거겠지. 그저 냉면 한 그릇을 먹기 위한 한여름의 양평행은 그 어느 여름 축제보다 반가운 이벤트다. (p.108)


-내 인생이 레몬 소주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뉠 것 같은 느낌. 20년 남짓 품어온 소주에 대한 불신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소름 끼치는 매력이 그 안에 있었다. 한고은의 레몬 소주...... 뭘까. (p.136)


-그때부터 본격 여름 특집 와식 & 좌식 생활이 시작된다. 수박을 접시에 담아 돗자리 위에 앉아 먹는다. 찜기에서 막 꺼낸 초당옥수수나 뽀득뽀득 씻은 말랑이 복숭아를 들고 가 벽에 등을 기대고 먹는다. 냉장고에서 캔 맥주를 꺼내와 앉아서는 대나무 돗자리의 서늘함과 맥주의 시원함을 비교하기도 한다. 운동하고 난 오후에는 그 위에서 스트레칭도 한다.(p.150)


-반쯤 해롱해롱한 상태로 도쿄의 골목을 돌아다니며 계속 웃었다. 낮술도 좋았지만 날씨도 좋았고, 내 옆에 있는 친구도 좋았고, 그와 그렇게 낯선 길거리를 갈지자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도 좋았다. 소프트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한 입씩 번갈아 먹고, 길가에 보이는 간판을 하나씩 짚어 읽으면서 걷고 또 걸었다. (p.157)

작가의 이전글 브라이언 헤어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리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