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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Dec 19. 2021

정소현 소설 <가해자들> 리뷰

샛별의 BOOK리뷰

공동주택(아파트/연립/다세대 주택)에서 층간 소음은 큰 골칫거리다. 특히, 아파트는 직접 충격 소음에 취약하다. 위에서 뛰면 그 울림이 아래층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정소현의 중편소설 <가해자들>에선 층간소음의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심적 고통을 폭로한다.  정소현 작가(1975년생)는 홍익대 예술학과와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2008년 [문화일보]신춘문예에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개정판<너를 닮은 사람>), <품위 있는 삶>이 있다.

<가해자들>, 정소현 소설, 151쪽, 현대문학, 2020.


소설은 층간소음의 '불확실성'을 보여준다. 쿵쿵거리는 소리가 어디서 들리는데 정확하지가 않다. 윗집인 줄 알고 확인차 올라가 물으면 '우리 집이 아니다', '옆집이다.', '집에 아무도 없었다.', '자고 있었다', '벽을 타고 소리가 내려오는 거다.' 등의 대답만 돌아온다. 추측만 있고 물증이 없다. 윗집인 거 같은데 아니라고 잡아떼니 아래층은 미칠 노릇이다.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다.


소설은 층간소음의 '복수심'을 보여준다. 그들은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윗집에서 낸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내면서 반응하고 보복한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 고무망치로 두드리거나 우퍼를 달아 음향을 틀어놓고 나가거나 청소기를 천장으로 돌린다. 가해자의 소음에 '응징'을 시작하는 피해자들이다. 피해자는 일순간 가해자로 변신한다.  


소설에는 총 다섯 가구가 나온다. 이들은 층간소음의 피해자였다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였다 피해자가 된다. 피해를 당해도 다른 대안이 없으니 참다 참다 가해자가 돼버린다. <가해자들>의 주인공은 1111호의 화자이다. 그녀는 오래도록 1211호에서 내는 층간소음의 피해자였다. 그녀가 견딘 시간들은 증폭되어 무서운 가해자로 돌변한다. 


챕터는 아파트 호수로 나누어져 있다. 우리가 흔히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할 때 701호, 203호라고 부르거나 OO엄마라고 불러서인지 그녀들에게 이름이 없다. 이름 없음으로 그녀들의 존재와 이웃 간의 관계가 얼마나 추상적인지 드러난다. 소설에는 남자의 비중이 미약하게 실렸다. 남성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어서인지 층간소음에 소극적이거나 분쟁에 가담하지 않는다. 이를 통해 층간소음의 피해/가해자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욱 밀착되어 있음을 증명한다.  


1111


  1111호의 화자는 여덟 살 아들(민서)이 있는 이혼남과 결혼했다. 원래 이 집에는 시어머님과 남편, 민서가 살았는데 그녀가 결혼한 후 들어와 함께 살게 됐다. 그녀는 이 집에서 윤서(딸)를 낳았다. 그녀가 들어와 살 때부터 위층(1211호)에는 시어머님과 친한 진이 이모가 살았는데 손주 다섯 명을 봐주고 계셨다. 진이 이모 손주들이 내는 소음에 화자는 꾹꾹 참고 지냈지만 결국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윤서를 낳은 지 8년 만에 산후풍이 생긴 것이다. 산후풍으로 방문, 창문, 현관문, 심지어 냉장고 문까지 열면 몸이 파랗게 질렸고 몸을 떨다 발작까지 했다. 바깥출입은 전혀 못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태호)은 회피적이며 유약한 성정을 가졌다. 아내의 병을 모른척하거나 방관한다. 결국 시어머니는 며느리와 못 살겠다고 근처로 지하방을 얻어 나갔고 화자는 층간 소음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그만 소리에도 예민해져 진이 이모가 이사 간 후 새로 이사 온 위층을 상대로 가해를 시작한다.


1211


  쌍둥이를 키우는 집. 1111호의 인터폰을 수시로 받고, 매번 죄송하다고 말하는 입장이다. 층간소음 매트를 빈틈없이 깔아놓고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지만 결국 아래층으로부터 심한 공격을 받는다. 


 '그 뒤로 인터폰은 오지 않았지만, 아래층에서 제집 천장이자 우리 집 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 발을 디디면 바닥을 두 번 쳤고,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리면  바닥이 부서져라 두드렸다. 사실 나는 둔한 편이라 처음에는 이웃집에서 자주 마늘을 찧거나 못을 박는다고 생각했지 우리 집과 상관있는 소리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쌍둥이가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던히 이 상황을 넘겼을지도 모르겠다.'(p.52)


'그들은 사람이 있는 시간에는 같은 박자로 계속 두드렸고, 화장실을 쓰면 한참 동안 화장실 바닥을 부서져라 두드리곤 했다. 소음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우리는 밖으로 돌았다.'(p.53)


쌍둥이 엄마는 아래층에서 내는 맞대응 소음에 예민해진다. 결국 관리소장을 불러 이 상황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소장은 "층간소음은 어쩔 수 없이 아래층이 약자라 위층에서 늘 조심해야 해요. 1111호가 원하는 것도 그걸겁니다."(p.54)한다. 쌍둥이 엄마는 관리소장에게 층간소음 매트도 깔아놨고 슬리퍼도 신고 다니며 조용히 지낸다고 했다. 소장이 1112호 집안에 발을 들인 순간 밑에서 그의 발소리에 맞춰 공격하자 당황한다. 소장은 아래층으로 내려갔지만 그 집 딸이 나와 천장 두드린 적 없다며 "앞으로는 저희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뒤집어씌우지 마세요. 경찰 부를 거예요."(p.59)한다. 쌍둥이 엄마와 관리소장은 아래층 집 반응에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결국 쌍둥이 엄마는 남편에게 협조를 구했고, 그는 수박 한 덩어리를 사서  아래층 남자를 만나 술을 마시며 얘기를 해본다. 다음날 수박은 완전히 박살이 난 채 1211호 현관 앞에 뒹굴고 있었다. 쌍둥이 엄마는 층간 소음 매트를 걷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며 가해를 시작한다. 


1011


 성빈을 낳고 행복했지만 관리실로부터 인터폰을 받고 행복에 금이 간다. 관리소장은 아이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며 아이를 울리지 말란다. 성빈이는 신생아인데... 성빈이가 울 때마다 이상한 노래가 밤낮없이 무한 반복 재생된다. 그 노래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Toxic'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지역 맘 카페에 익명으로 글을 올린다. "아기가 어려서 나가지도 못하는데 집 안에 갇혀서 고문당하는 느낌이에요. 이젠 가만히 있어도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요, 누가 저 미치지 않았다고 증명 좀 해주세요."(p.79)


위층에서 황병기의 '미궁' 연주곡이 들리자 성빈 엄마는 결국 가해자가 된다. '미궁'은 '층간소음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쓰는 방법'(p.86)이라는데 더 이상 그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1011호는 성빈이가 울어도 달래주지 않고 울음을 무기로 사용한다. "성빈이가 울면 위층은 계속 음악을 틀고, 바닥을 두드리고, 발뒤꿈치로 쿡쿡 찍으며 온 집 안을 걸어 다니고, 공을 튀기고, 줄넘기하고, 실내에서 할 수 없는 일들을 했다."(p.89) 


성빈 엄마는 청소 밀대를 길게 빼 들고 소리가 나는 천장을 쿵쿵 치고, 공을 튕겨서 받고, 청소기로 천장을 밀기도 했다. 윗집과 자신이 만들어 내는 소음으로 피해를 보는 건 성빈이었다. '눈물범벅이 된 새빨간 성빈이의 얼굴에 대비되는 밝게 웃는 얼굴의 나'(p.90). 이 모습을 본 성빈 엄마는 화들짝 놀라 이사를 결정한다. 이사는 층간 소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내리는 마지막 보루다. 


1111


  1111호의 딸 윤서의 말이다. "엄마가 오죽 괴로웠으면 그랬겠어요? 왜 엄마 입장에서 한 번도 생각을 안 하시는 거예요? 엄마 머리 위에서 울리는 게 위층 발소리뿐인 것 같으세요? 옛날에 엄마를 괴롭혔다는 위층 할머니네 소리까지 한꺼번에 몰려와서 머리를 밟아대는 것 같아 너무 괴롭대요."(p.69) 


1111호는 결국 손목에 자해를 한 후 폐쇄병동에 입원한다. 


1112


  1112호는 최대의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된다. 1112호 지안(딸)이 엄마는 1111호의 공격을 받는다. 처음에 그녀는 공손하게 맞대응했고 소음을 줄이려고 애썼다. 지완이 엄마가 아이를 조용히 시키겠다고 답을 해도 1111호는 성에 차지 않아 했다. 1111호는 계속해서 지완이 엄마에게 문자를 보냈고, 그녀는 '아이가 앉아서 밥을 먹고 있습니다, 아이가 자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에요, 일곱 시에 들어와서 아홉 시 전에 잡니다, 저희도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 조금만 양해해주세요.'(p.103)라며 답을 했다. 결국 1112호는 지안이 입학식 날 1111호 옆집 여자와 대판 싸워 경찰까지 오고 만다. 


다른 호수와 달리 1112호는 1111호에 강력하게 응수한다. 벽을 한 번 두드리면 1112호는 다섯 번을 두드렸다. 옆집 여자의 소리에 몇 배로 갚아주었던 1112호. 결국 그녀는 회사도 그만두고 옆집을 상대로 복수하는데 전념한다. 1111호 화자가 자해 후 병원에 입원한 상황임에도 1112호는 이 사실을 믿지 않고 1212 윗집에 옆집 여자가 살고 있다고 믿게 된다. 점점 1111호를 닮아가는 1112호. 1112호는 1111호에 찾아가 윤서에게 너희 엄마가 윗집에 있지 않냐며 이런 말을 쏟아낸다.


"너희 엄마 문자를 받으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 전화받고 나면 욕이 튀어나왔어. 직장에서 네 엄마 전화받고 나서 상사를 들이받았어. 그리고 너희랑 싸우면서 무단결근했고. 그래서 그만뒀다. 설명됐냐? 내가 애랑 무슨 말을 하는 건지."(p.122)


결국 그녀는 위층에 옆집 여자가 있다는 걸 확신하고  1212호로 올라가 과도를 휘두른다. 1212에서 나온 사람은 주인 남자의 조카(남자)였다. 화들짝 놀란 1112호는 '나는 문득 이런 사람이 되는 미래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p.126)며 비명을 지른다. 


관리사무소


  아파트 주민들은 1212호에 일어난 사건이 궁금해 모여든다. 관리소장은 골치가 아프다. 그는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다.'(p.127)라는 생각을 하며 층간 소음 문제라면 지긋지긋해했다. 층간소음을 중재하는 사람은 1차적으로 경비와 관리실이다. '소음, 진동 관리법이 있고 층간소음을 조정해 주는 기관이 있지만, 갈등을 중재하고 권고할 뿐이지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제재하지는 못했다.'(p.128)


관리소장은 이런 일에 나서지 않는 게 상책이라 생각했다. '가해자는 뻔뻔했고, 피해자는 예민했으며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을 했다.'(p.129)며 살을 잡힌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1112호가 가해를 했는데도 1111호 여자를 가해자로 지목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관리소장은 경험 상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을 해결하려면 둘 중 하나는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1112호처럼 어느 순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소설은 다섯 가구와 관리사무소라는 한정된 공간을 보여주지만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심리를 리얼하게 대변했다. 층간소음의 예민한 상황을 그들은 '귀가 트였다'라고 불렀다. 다른 사람은 잘 안 들리는데 귀가 트이면 작은 소리도 다 들린다. 귀가 트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을 굉장히 예민하게 듣고 온 정신이 그 소리에 집중되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다. 사실 다른 사람은 그 소리가 안 들리는데 나만 귀가 트여 크게 들릴 수 있다. 이 지경까지 되면 멀쩡한 사람을 소음으로 공격할 수 있고, 생활이 피폐해지며 가족과 직장을 잃기도 한다. 참다 참다 복수하고 싶은 심리도 작동한다. 너희가 낸 소리를 내가 똑같이 내주겠다며 '응징'의 방법을 연구한다.  

1111호가 일으킨 분쟁으로 많은 피해자가 속출했다. 그러나 그녀도 피해자였다. 그녀에 대해 진이 이모는 이렇게 말한다. 


'형님은 모르겠지만 나는 왠지 알 것 같았다. 형님은 며느리에게 인색했다. 그 성격 좋고 성품 좋은 애한테 칭찬 한 번 한 적이 없고 만날 뒤에서 깔끔치 못하다, 덜렁거린다 타박만 했다. 게다가 뒤에서 윤서와 민서를 차별하는 것 같다며 도끼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환하게 웃던 며느리는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웃음과 생기를 잃고 어두워졌다. 그런 며느리에게 '나는 너 안 믿는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해댔으니 병이 나는 것이 당연했고, 옆에서 지켜본 애들도 형님을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설사 병이 낫는다고 해도 형님이 들어가서 또 그렇게 지낸다면 다시 도져버릴 게 분명하다. 형님은 그 병이 산후풍이라고 했지만 나는 마음의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p.39)


  1111호는 남편의 무관심과 시어머니의 폭언으로 병들어 갔고, 그 병듦이 층간소음의 가해로 드러났다. 그녀는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졌고, 난폭해졌다. 그녀에게 이웃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녀는 아파트라는 섬에서 홀로 방어막을 치고 고립됐다. 이웃은 그녀를 손가락질했고, 그녀는 자신을 차단하며 항변했다. 그녀로 인해 타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옆집 1112호도 그녀처럼 병들어갔고, 결국 끔찍한 가해자가 됐다. 


현재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 따르면, 관련 상담 건수는 2017년 2만2849건, 2019년 2만6257건으로 늘더니 2020년에는 4만2250건으로 폭증했다."(출처: 세계일보/장은수 칼럼/2021,12.13)고 한다. 


  관리소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한 번 트인 귀는 막히지 않고 사람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며 상한 마음과 망가진 관계는 고치기 힘들다. 얼른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당신들도 언제든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p.137) 그는 우리 모두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가해자들이 되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옆집, 윗집, 아랫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세상에 우리는 층간 소음으로 먼저 인사를 나눈다. 소음은 이미 이웃 간의 유대를 단절시켜 버린 주범이 돼버렸다. 이웃끼리 서로 인사를 하고 지낸다면 소음에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을까. 방음이 잘되지 않은 건물 구조상 이웃 간 층간소음 갈등은 끊이질 않을 것이다. 


  국가는 층간소음이 발생하면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 관리사무소, 층간소음관리위원회, 상담센터(지역별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지자체별 층간소음 상담실) 등을 통해 협의점을 모색하라고 권고한다. 우리에겐 좀 더 여유가 필요할지도. 그러나 작가의 말처럼 가해자는 없는 것일까. 해결책이 그곳을 떠나는 것이라면 층간소음의 갈등은 요원해 보인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피해자라고 말했다.
이상하게도 가해자는 없었다.
나는 그 상황이 무서워 그곳을 영영 떠났다.
작가의 말. 2020년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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