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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y 27. 2021

하재영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그리고 나의 옥탑방

집을 말하면 눈물부터 왈칵 쏟아질 거 같다. 이사한 집을 꼽아보면 스무 번이 넘는다. 지금 집은 17년째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의 이사 경험은 유년, 청소년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리어카, 용달차, 자전거로 짐을 옮겼고, 자고 일어나면 이사를 갔고, 옆집에서 옆집으로 이동했다. 한 동네에서 다섯 번도 넘게 이삿짐을 날랐고, 단칸방을 전전했다. 왜 그랬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그때 나는 어린이였으니까. 집이라고 할 수도 없는 방 한 칸의 각인된 기억들. 방구석에서 공기를 마시고, 밥을 먹고, 공부를 하고, 울었다. 우리 집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은커녕 전세라도 있었으면 행복했을 것이다. 월세는 최악의 경우 아닌가. 그때는 가구, 가전도 별로 없어 금방금방 들고이고 나르기 수월했다. 내방을 갖고 싶다는 생각은 꿈의 궁전이었고, 그냥 이사만 안 갔으면 싶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에세이, 라이프앤페이지, 2020년, 221쪽 분량


  초등학교 때 전학을 세 번 했다. 그래서인지 초등 동창이 거의 없다. 나에게 안정감을 주기는커녕 불안의 늪이었다. 머리가 클수록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었다. 집을 나가고 싶은 욕구가 목까지 차올랐다. 내 손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고, 나의 꿈은 엄마에게 집을 사주는 것이 되어 버렸다.(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나는 700만 원을 모아 옥탑방을 계약했다. 당연히 전세였다. 월세는 지긋지긋했기에. 그리고 독립했다.


  옥탑방은 내 첫 번째 방이었다. 이불 두 장도 깔기 좁은 다락방이었다. 옥탑방이라고 해봐야 주방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다. 주인집 현관문을 통해 계단으로 올라가야 했다. 그래도 기뻤다. 내 방이 생겼다. 돌이켜보면 부동산에서 보여 준 첫 집을 무턱대고 계약한 거 같다. 막상 살아보니 주인집과 함께 주방과 욕실을 쓰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화장실이야 급해서 어쩔 수 없다지만 주방을 쓰려면 주인집 아주머니 눈치가 보였다. 주인집 부엌에서 라면 하나 끓여 먹기가 어려웠다. 끼니를 모두 사 먹었다. 나는 늘 배가 고팠다.


  옥탑방을 얻고, 이불 한 채, 낮은 원목 책상, 카세트테이프, 벽거울, 행거를 샀다. 옥탑방에 친구들이 놀러 왔다. 어느덧 양옥집 옥탑방은 친구들 아지트가 되어 버렸다. 주방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데. 주인한테 한 소리 들었다. 친구들이 너무 많이 온다고. ㅎㅎ 주인집 현관을 통해 옥탑방으로 들어가는 구조도 힘들었다. 늦게 들어가면 덜거덕 소리를 숨겨야 했다. 주인집은 그림에 나오는 단란한 가족이었다. 거실도 있고, 방도 두 개나 있었다. 부엌도, 욕실도 있었다. 그 집 어린 딸들이 부러웠다. 나는 거기에 얹혀사는 이방인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이런 집을 갖고 싶다 욕망했다. 행복한 가족 모습을 그 양옥집에서 처음 봤다. 옥탑방에 오래 살지는 못했다. 1년 정도 살고, 나왔다. 지금 같아서는 원룸을 얻었겠지만 당시는 옥탑방이 원룸 같은 역할을 했다. 옥탑방에 화장실, 주방시설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지만 가격이 비쌌다. 나는 가난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는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이 부제로 달려 있다. 부제만 보고 펑펑 우는 거 아닌가 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나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에는 온도차가 컸다. 내가 살던 집은 정말 가난했다. 하재영 작가가 담담하게 자신이 살았던 집에 대해 쓴 부분을 보며 나도 할 말이 많아졌다. 작가는 자기를 거친 지나간 인연의 집들을 끄집어냈고, 세상에 소개했다.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천장이 높으면 상상력이 풍부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 않은가. 집은 건강이랑 연결된다. 집에 개미, 바퀴벌레, 쥐, 벌레, 곰팡이 등이 많으면 생활이 피폐해진다.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 스트레스도 쌓인다. 집이 쾌적하고, 편안하고, 소음 적고, 깨끗하고, 넓은 공간이면 행동도 유연해진다. 유전적 기질이 중요해도 환경적 영향도 무시 못한다. 어떤 환경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 기본적인 욕구는 삶의 질을 좌우한다. 의식주, 생리적, 안전에 대한 욕구가 충족될 때 애정, 자아존중, 자기애가 가능하다. 당장 춥고 배고프면 자아실현은 멀고 먼 얘기다. 나의 경우 이사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했을까? 뭐 지금 돌이켜보면 나름대로 성장의 디딤돌이 됐다고 믿고 싶다.


  책이 좋았던 포인트는 작가가 집을 대하는 태도였다. 집을 중요한 공간으로 의식한다. 생의 중심이 밖보다는 안으로 모아져 있다. 집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가장 쾌적하게 만들려고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녀는 생활의 중요도가 밖으로 향해 있지 않았다.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집에서 작업해서 그럴지 모르겠다. 하루 종일 글을 쓰고 고치는 작가는 집을 작업실처럼 사용해야 한다. 그러기에 작가는 집의 채광도, 책상 위치도 중요하고, 작업실 창문 위치도 고려해서 배치했다. 머무는 공간을 따스하게 만들려는 그녀의 태도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집에 몰입하게 된 계기는 동생과 함께 살다 각자 살기로 결정하고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 첫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때부터이다. 저자는 서른두 살에 처음으로 자신의 집을 갖게 된다. 비록 월세 집이지만. 작가는 아등바등 최선을 다해 인테리어를 바꾼다. 사는 동안은 내 집이라는 생각을 하며 꾸몄다. 셀프 인테리어와 가구 리폼을 하며 손수 페인트칠을 했다고 한다. 조명, 문고리를 달고, 욕실의 휴지걸이도 바꿨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최선을 다다. 작가는 집을 바꾸면 일상이 좋아지리라 희망했다. 형광등 대신 펜던트 조명을 달고 향초와 꽃을 정기적으로 샀으며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본 접시도 구입한다. 향이 좋은 천연비누도 놓아둔다. 그리고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안온했다.(p.107)


자기가 거주하는 공간이 월세 집이어도 최선을 다해 인테리어를 바꾸는 작가의 부지런함, 도전정신이 좋았다. 얼마 동안 살지는 모르지만 사는 동안은 내 집이라 생각하고 꾸미는 태도가 부러웠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집을 바꾸는 작가를 보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시간을 잘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면 그 시간을 보낼 공간을 어떻게 꾸미느냐도 중요함을 알게 됐다.


이 집은 사랑하는 이들을 기억하며 기꺼이 혼자가 되는 공간이다. (작가의 집)


  작가는 매번 집을 이사할 때마다 그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해 꾸미고, 안온함을 느끼려고 애썼다 한다. 책을 읽으며 한 시절 나와 함께 살았던 집들을 떠올렸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둘러본다. 최선을 다해 꾸미기는커녕 청소도 엉망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전에 집이라도 치워야겠다. 책에 부록으로 들어있는 작가의 집을 보니 내 공간은 한없이 초라해진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을 '안온하게' 꾸며봐야겠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그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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