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김호연 에세이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 행성B, 2020. (282쪽 분량)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
김호연은 장편 소설 <불편한 편의점>(2021)을 쓰고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불편한 편의점>을 잼있게 읽었던지라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 <망원동 브라더스>(2013)도 읽기 시작했고, 에세이도 읽었다. 에세이 <매일 쓰고 다시 쓰고 끝까지 씁니다>는 부제는 '시나리오에서 소설까지 생계형 작가의 글쓰기'다. 이 책을 읽으면 소설을 재밌게 쓰는 비결을 알 수 있을까.
에세이는 순식간에 읽혔다. 필력이 좋다. 글쓰기로 고생고생한 시간들을 이토록 재밌게 쓸 수 있다니. 놀랍다. 손에 놓지 못하고 쭉 읽었다. 작가는 글은 무조건 '궁금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우연히 되는 게 아니었다. 목차만 봐도 그가 어떤 글쓰기 여정을 거쳤는지 유추된다.
목차
1장 '초보 시나리오 작가의 습작 지옥'
2장 '달콤 쌉싸름한 키친 테이블 라이팅'
3장 '무지막지한 전업 작가 생존기'
4장 '혼자 쓰기, 같이 쓰기, 닥치는 대로 쓰기'
5장 '데뷔: 창작의 망망대해에서 잠시 휘파람 불기'
6장 '작업기: 올해는 소설을 쓰고 내년에는 시나리오를 씁니다'
7장 '네버엔딩 스토리텔러 스토리'
김호연은 시나리오 작가로 고군분투하다 소설을 쓰게 됐다. 그는 대학생 때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계에 진출하는 게 목표였다. 또, 학교 도서관에서 <올리버 스톤>, 시드 필드의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등을 읽었고, 영화를 보고 글을 썼다. 작가의 이력은 화려하다. 작가 지망생, 시나리오 작가, 만화 스토리 작가, 퇴근 후 작가, 생계형 작가, 공모전 헌터, 소설가를 거쳐 현재 그는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며 '시나리오'에 몰두했는지 알게 된다. 오로지 시나리오, 시나리오만 생각하는 작가. 작가의 첫 직장은 영화사였고, 압구정 사무실 지하 골방에서 시나리오를 썼다.
두 번째 직장은 대학로에 위치한 황매출판사였다. 이곳에서 오전에는 출판일을 오후에는 시나리오 작업을 하게 된다. 그는 2016년에 전업작가를 결심하고 동인천으로 내려가 보증금 천에 월세 십만 원, 방 두 개짜리를 얻는다. 하나는 침실, 하나는 작업실로 사용하며 하루 3장의 원고를 꼭 쓸 것을 스스로와 약속한다. 침실에서 작업실로 갈 때는 평상복에서 출근복으로 갈아입었다고 한다.
그는 해냈다. 2013년에 <망원동 브라더스>를 시작으로 <연적>(2015), <고스트라이터즈>(2017), 2021년에 <불편한 편의점>을 써서 유명해진다. 작가는 어쩌다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에세이를 읽고 나면 그런 생각은 1도 들지 않는다. 당연히 유명해질 사람이 유명해진 거 같다. 20년을 '진정성 있게' 글을 사랑한 보상이라 생각 든다.
에세이를 읽으면 '글 쓰는 일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토록 글쓰기에 진정성 있는 작가라니. 작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그럼에도 마음 저 깊숙한 곳에 나도 '전업작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에이 무슨~'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제주 작은 집을 구해 처박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맴돈다. 그의 글쓰기 분투를 읽고 나면 잠자고 있던 글쓰기 욕구가 요동친다.
에필로그에 '공복의 글쓰기'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작가는 '1일 1식을 한 지 2년째'란다. 세상에!.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고 글을 쓰다니. 빈속에 글을 쓰면 몰입도 잘 되고, 식비는 줄고, 글 쓰는 시간이 늘어나 원고분량도 채울 수 있단다. 대단한 자기관리다. 대신, 저녁 한 끼를 먹는 즐거움은 크단다. 허기를 느끼며 쓰는 글. 그의 글들은 이런 공복을 딛고 쓰인 글들이었다. '비어 있는 위장을 소중히 여긴 채 계속 글을 쓸 것이다.'(p.282) 시나리오 작가부터 소설가가 되기까지 그는 굶으며 썼다. 자신의 글이 세상 사람들에게 '밥'이 되길 희망하며 말이다. 존경스럽다.
발췌
"인생의 모든 어려움이 글감이며, 죽지 않고 살았다면 그에 대해 글을 써야 한다" -바버라 애버크롬비-
모든 초고는 쓰레기였고, 쓰기는 고쳐 쓰기였으며, 작품의 완성이란 불가능하고 마감에 맞춰 작업을 멈출 뿐이다. (p.12)
S#1. 압구정동. 영화사 사무실. 낮. (p.13)
프레데리크 마르텔의 <메인스트림>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형편없는 시나리오 작가는 아이디어가 없다(그들에게는 슬픈 일이다). 좋은 시나리오 작가는 아이디어가 너무 많다(이건 그들의 한계다). 위대한 시나리오 작가-특히 창조성이 풍부한 작가-는 단 하나의 아이디어만 갖고 있다. (p.28)
무명작가의 시나리오가 영화로 완성되어 전국 극장에서 개봉될 확률은 사법고시 합격률을 가뿐히 능가한다. 하지만 고시원에 들어가 시나리오를 쓰는 지망생이 얼마나 되는가? (p.29)
"한석규 배우의 입에서 내가 쓴 대사가 거의 하나도 틀리지 않고 그대로 발음되었어. 내가 슨 대사가 잘리거나 변형되지 않고 고스란히, 그의 입을 통해 내 귀로 들어왔다고!" 10개월간 <이중간첩>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수많은 신과 대사를 썼다. 그것들은 대부분 탈락되거나 선배 작가들의 손을 거쳐 좀 더 정교하고 훌륭한 것으로 완성되었다. (p.33)
이에 정사장님이 한 말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다 잃어도 상관없다. 출판에서 번 돈은 출판에 다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p.43)
그런데 노 샘의 만화계 인맥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불청객>의 고행석,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박흥용, <미생>의 윤태호, <도깨비 언덕에 왜 왔니?>의 김용희, <좀비콤비>의 김행장 등 당시에도 대단한 필력의 작가들이었다. 그리고 이후 나는 평소 존경하던 박흥용 작가의 신작 <호두나무 왼쪽 길로>의 편집을 맡게 되었다. (p.45)
2006년 12월, 나는 전업을 결정한다. (p.65)
며칠 뒤 나는 자유공원 아래 송월동에 위치한 빌라를 계약했다. 보증금 천에 월세 십만 원, 방은 두개였다. 그곳이 내 첫 독립 공간이자 작업실이었다. 나는 독립군이라도 된 듯 비장하게 이사를 했고, 계약 기간 2년 안에 반드시 전업 작가로 안착하리라 다짐했으며, 작품을 팔아 번 돈으로 서울에 번듯한 작업실을 구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방이 두개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아침에 침실에서 일어나면 트레이닝복 차임으로 집을 나선다. 자유공원을 산책하고 와 씻고 식사를 하고 트레이닝복을 벗고 제대로 갖춰 입는다. 그리고 옆방 작업실로 출근한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생활과 작업을 분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일을 오래할 것이기에, 전업 작가로 제대로 글을 쓰고 싶었기에, 생활과 글쓰기 사이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기 위해 애썼다. (p.70)
*로그라인.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한 '흥미로운' 한 문장. 로그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작품은 좋은 상업영화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진리다. 지금이라도 자신의 이야기가 극장에서 볼 만한 두 시간짜리 영화가 될 수 있는지 가늠해 보려면, 그것을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고 그 한 문장이 흥미로운지를 판단해 보면 된다. (p.75)
그리고 내가 전업 작가로서 생존의 기로에서 고통받을 때 자신의 가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공해 준 은인이기도 하다. 매직과 나의 동업이 언제 다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영화로 친해져 영화를 같이 했고 다시 영화로 함께할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내게 마술 같은 친구다. (p.80)
할리우드 시나리오 '구루' 시드 필드가 <시나리오란 무엇인가>에서 강조한 3장 구조 역시 이야기에서 1장의 끝이 어디이고 2장의 끝이 어디며 2장에서의 중간점(midpont)은 어디고 그 역할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을 이야기에서 제대로 짚어 내고 기능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튼튼한 구조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다.(p.82)
번역된 책의 제목은 <시나리오 시퀀스로 풀어라>이고 내가 쓴 메인 카피는 '3장 구조의 신화는 가라'였다. 아이러니컬했다. 우리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영화로 완성되지 못했는데 그 시나리오란 걸 잘 쓰기 위해 공부차원에서 번역한 이 책은 완성된 것이다. <시나리오 시퀀스로 풀어라>는 우리가 만든 책이어서가 아니라 참으로 유용하다. 여러 교육기관에서도 교재로 구매해 가곤 했다. (p.88)
가끔 그곳이 몹시 그립다. 내 습작의 광야. (p.97)
동인천에는 배다리 골목이란 전통 있는 헌책방 골목이 있다. 나는 아침 산책 때에 책 서너 권을 지니고 그곳으로 가 하루식비를 확보하곤 했다. 출판사 생활 4년 동안 증정받거나 모은 책 수백여 권이 그렇게 몇 개월 만에 사라졌다. 가끔씩 출판사에 보내 주는 신간이 도착하면 반나절 만에 읽어 치워 헌책으로 만들어 버렸다. 헌책이 되면 팔 수 있으니까. 그렇게 헌책이 라면 두 개와 소주 한 명으로 보이는 순간이 될즈음, 나는 두 손을 들게 되었다. (p.101)
실패다. 2008년이 다 지나가고 있었고 2년간의 전업 작가 도전은 완벽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p.101)
어느덧 마흔이었다. 서른셋에 다시 전업 작가로 나섰을 때 "당신은 지금으로부터 7년 뒤 마흔에 소설이 당선되고, 그제야 그나마 작가로 인정받게 됩니다"고 누가 말해 줬다면 절대로 가지 않을 길이었다. 결국 모르니까 할 수 있는 거다. 인생은 알 수 없기에, 살아 봐야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7년 무명작가 생활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소설가로 데뷔할 수 있었고 이제 작가 생활이 좀 쉬워지려나 했다. 하하하. 그야말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생각이었고 호랑이가 개 끌어가는 소리였다.(p.176)
하루에 반드시 채워야 하는 '3장'. 이를 위해 이마에서 피가 나는 느낌으로 매일 열 시간씩 모니터를 보며 쓰다 지우다 쓰다 지우다를 반복했다. 머리가 덥고 몸이 무거워진다 싶으면 작업실을 박차고 나가 겨울바람이 나부끼는 증평의 들판을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며 생각한 것들을 가지고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썼다. 지루하고 힘들었다. 석 장을 못 쓴 날은 다음 날 벌충을 했다. 다음 날 벌충이 안 되면 다음다음 날... 안되면 다음다음다음 날... 그러다 운이 좋은 날에는 다섯 장도 썼다. 그런 날은 눈길을 뚫고 읍내까지 걸어가 맥주를 사 와선 벌컥벌컥 마시고 행복감에 겨워 잠들었다.(p.208)
소설가 김영하는 자신의 단편 <옥수수와 나>에서 소설가라는 직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소설은 그런 게 아냐. 매우 육체적인 거야. 심장이 움직이면 마음은 복종해. 우리는 시인이나 평론가와 다른 몸을 갖고 있어. 문학계의 해병대, 육체노동자, 정육점 주인이야.' (p.210)
한편으로 공모전에 준하는 콘진(한국콘텐츠진흥원)과 영진위(영화진흥위원회),CJ 오펜(O'PEN)의 작가 지원 프로젝트에 지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영화 관계자들이 작가를 양성하고 돕는 곳이니 경쟁이 세지만 충분히 도전할 가치가 있다. (p.241)
이것저것 많이 당선되었다는 자랑처럼 들리는가? 그럼 이제부터 떨어진 것들에 대해 말해 보겠다. <유령작가>로 세계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문학동네 소설상, 자음과모음 문학상, 중앙 장편문학상, 오늘의작가상에서 모두 탈락했다. (p.250)
공모전에 응모하면 할수록 타석은 늘어난다.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이 작품 부족, 준비 부족, 시간 부족 등을 이유로 타석에 서지 않는다. 공모전이란 것이 결국 자기 작품을 평가받는 자리이기 때문에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과 평가를 거부하는 오만함이 섞여 자연스레 게으름으로 귀결되곤 한다.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