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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Aug 06. 2022

김호연 장편소설<불편한 편의점>BOOK리뷰

샛별BOOK연구소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나무옆의자. 2021. (268쪽 분량)

*스포 있으니 주의하세요. 


김호연 장편소설 『불편한 편의점』은 청파동 골목 모퉁이에 자리 잡은 작은 편의점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편의점 이름은 'ALWAYS'다. 소설은 서울역에서 알코올성 치매로 노숙을 하던 독고라는 남자가 염여사의 파우치를 찾아주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편의점 사장인 염여사는 독고 씨를 데려와 도시락과 컵된장국을 챙겨준다. 염여사는 독고 씨가 경우가 있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염여사는 노숙하는 독고가 안쓰러워 알바생 시현에게 ‘그 덩치 큰 노숙자 사내가 오면 도시락을 주라고’(p.23)말한다. 독고 씨는 매일 같은 시간에 편의점을 찾아와 ‘산해진미도시락’을 챙겨 먹는다. 


어느 날 편의점에 젊은 불량배들이 들어와 서로 욕을 하자 염여사는 ‘매장에서 욕하지 말고 빨리 사서 집에 가라’(p.44)고 했다. 그러자 젊은 여자애는 염여사의 머리를 툭 치고 “노인네가 진짜 뒈지려고 환장했나!”(p.45)라며 윽박지른다. 이때 독고 씨가 들어왔고 이어 경찰이 온다. 자기를 도와준 노숙자에게 염여사는 “이거 먹고 술 끊는 조건으로 우리 가게 일 좀 봐줘요.”(p.49)라며 아르바이트생으로 채용한다. 독고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편의점에 오가는 사람들과 끊임없는 에피소드를 만든다. 


특히, 오선숙과 독고 씨의 에피소드가 찡하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오선숙은 독고 씨가 마음에 안 든다. 선숙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남자가 남편, 아들, 그리고 미련 곰탱이 독고 씨라고 단정한다. 선숙의 아들은 대기업에 취업했다 1년 2개월 만에 때려치우고 주식투자로 돈을 날리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하더니 중간에 엎어져 지금은 외무고시를 준비 중이다. 그러나 서른 살 아들은 매일 방에서 게임만 한다. 속이 터져 보다 못한 선숙은 아들과 다툰다. 편의점에서 울고 있는 선숙에게 독고 씨는 "속상할 땐 옥수수...... 옥수수수염차 좋아요."(p.105)라며 위로해 준다. 그러면서 선숙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삼각김밥과 편지를 주라고 권한다. 

소설에 나오는 참참참 세트~입니다.

'옥수수수염차'는 만병통치약이다. 독고 씨의 알콜릭을 낫게 해 줬고, 선숙의 아들과 화해하게 도와줬다. 편의점 손님인 경만에게도 중요한 음료가 된다. 경만은 편의점을 ‘참새방앗간’이라고 불렀다. 경만 씨는 마흔넷에 의료기기를 파는 영업사원이다. 경만은 퇴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참참참’을 먹는 게 유일한 낙이다. ‘참참참’은 참깨라면+참치김밥+참이슬소주를 말한다. 경만은 어느 날부터인지 아르바이트생인 곰 같은 사내 독고 씨가 불편하다. 경만이 소주를 먹다 야외 테이블에서 잠이 들자 독고 씨는 얼음을 넣은 옥수수수염차를 건네며 “옥수수… 수염찹니다. 속상할 땐… 이게 좋아요.”(p.119)라고 한다. 독고는 옥수수수염차의 효과를 알고 있다. 작은 음료수 병이지만 누군가에는 큰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독고 씨. 


독고 씨는 올웨이즈 편의점에서 서서히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다. 알고 봤더니 그는 성형외과 의사였다. 고스트 닥터에게 대리 수술을 맡겼는데 사고가 일어났다. 이 일로 독고 씨는 아내와 헤어지고 환자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다 서울역에 기억을 잃는다. 이후 독고는 알코성 치매에 걸려 노숙자가 된다. 독고는 예전 기억을 회복하며 자신의 지난 삶을 반성한다. 


<불편한 편의점>의 가장 큰 특징은 의외성이다. 노숙자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점. 편의점 주인인 염여사가 이익보다는 직원들 복지를 더 챙긴다는 점. 독고의 전 직업이 의사라는 점 등이 책을 흥미 있게 만들지만 환상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리얼리티가 주를 이룬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편의점이라는 공간과 오고 가는 손님들과 아르바이트생들의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닮아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독고는 말도 느리고 어눌해 어리숙한 줄 알았는데 담배 이름을 모조리 외우는 부분에서 과거 어떤 일을 했을까 유추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덩치가 커 잘 싸울 줄 알았는데 맞고만 있는 점. 노숙자가 파우치를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애쓰는 부분. 심지어 파우치를 노숙자들에게 뺏어 찾아주는 장면들은 캐릭터를 호감가게 만들었다.   


편의점의 특징은 규격화이다. 모든 것이 반듯하고 흐트러짐이 없다. 그러나 소설 속 편의점은 '불편'하다. 물건도 다른 곳보다 다양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 독고 씨는 불편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일반 편의점에서 볼 수 없는 '정'이 흐른다. 경만 씨가 추울까 봐 파라솔 옆에 온풍기를 비치해두고, 염여사는 노숙자에게 폐기된 음식을 주지 않는다. 독고는 할머니들의 물건을 배달까지 해준다. 이런 인간적인 모습 때문에 편의점은 여러 에피소드가 샘솟는다. 우리네 동네에 있는 편의점은 포근한 인상을 주지 않지만, '불편한 편의점'은 훈훈한 온기가 가득했다. 또한,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들의 고민과 밀접했다. 그들이 안고 있는 삶의 모습이 어쩜 독자들과 닮았기 때문에 이 책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거 아닐까. 


알코올 유도성 치매란?


알코올 유도성 치매와 같은 말로, 알코올의 섭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지 장애를 광범위하게 부르는 용어이다. 술과 연관되는 치매 증후군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알코올 섭취가 신경 조직을 직접적으로 손상시켜 음주 중단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기억력 저하 및 인지 저하를 보여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지속성 치매 상태가 있고, 지나친 음주와 식사량의 감소로 인한 비타민 B1 결핍으로 발생하는 베르니케-코르사코프 증후군(Wernicke-Korsakoff syndrome)과 같은 경우도 있다. 



증상


알코올 유도성 치매는 기억력을 포함한 광범위한 인지영역에 손상을 나타낼 수 있다. 흔히 전두엽 손상을 일으켜 탈억제 및 집행 기능의 손상이 자주 나타나며, 기억 저하도 동반된다. 이 외에도 정신운동지연(Psychomotor retardation), 우원증(Circumstantiality), 고집증(Perseveration), 주의력 저하, 지남력 장애가 흔히 관찰된다. 이 외에도 언어능력 저하, 판단력 저하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알코올성치매 [Alcohol-related dementia]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서울대학교병원)

등장인물

-편의점 주인 염영숙 여사

-노숙자이자 의사였던 독고 씨

-편의점 알바 시현

-편의점 알바 오선숙 

-참참참 세트를 먹는 경만

-극작가 정인경

-에일맥주 사업을 하려는 염여사 아들 민식

-과거 형사였던 곽 노인

-서울역 노숙자 선배였던 독고. 

-그 외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독고는 말할 때마다 말줄임(......)이 많은데요,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독고 씨가 사람들에게 건네는 '옥수수수염차' 장면을 어떻게 보셨나요?

-여러분은 ‘옥수수수염차’가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염여사라는 인물을 어떻게 보셨나요?

-독고가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기억을 되살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노숙자 독고의 전 직업이 의사였다는 설정은 마음에 드십니까?

-각각의 인물들이 독고 씨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 ‘ALWAYS’라는 공간을 어떻게 보셨나요?

-독고 씨는 고스트 닥터, 대리 수술, 사망사고 등이 일어나면서 노숙자가 되었는데요, 의료사고를 어떻게 보셨나요?

-대구로 내려가 자원봉사를 시작하기로 한 독고 씨의 결심에 대해서?

-경만의 유일한 낙인 ‘참참참’(참깨라면+참치김밥+참이슬소주) 세트를 먹는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여러분에게도 '참참참'같은 물건이 있을까요?

-알바 오선숙과 게임만 하는 아들의 관계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염여사의 아들이 편의점을 팔려고 하는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알바생 시현이 독고 씨의 도움을 받아 유튜버가 되는데요,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셨나요?

(특히, 진상 손님에 대해서)

-손님들을 대하는 독고 씨의 모습에 대해서 나눠봐요. 

-그 외 


편의점에서 <불편한 편의점> 토론중~~ 


발췌



"같이 먹어요. 국물이 있어야 좀 낫지."

염 여사가 내려놓은 된장국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살피던 사내는 수저를 건넬 새도 없이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는 뜨거움 따윈 잊은 듯 된장국의 반을 후루룩 마신 뒤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젓가락질을 했다. (p.19)


"도시락은 안주가 아니라 끼니예요. 독고 씨가 술 취하는 걸 내가 도울 순 없습니다."

"한 병...... 가, 간에 기별도 안 가는데......"

"어쨌든! 난 원칙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야외 테이블은 내 소유고, 여기서 소주는 허락할 수 없으니 그렇게 알아요."독고 씨가 말없이 침을 삼켰다. (p.38)


"너희들에게 안 팔아. 나가. 안  그러면 경찰 부를 테니까." 그러자 노란 여자애가 붕어싸만코 하나를 집어 들더니 염 여사의 머리를 툭 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염 여사는 눈만 똥그랗게 뜨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할매. 할매 아까 뭐랬어? 이봐요 학생들? 우리가 어딜 봐서 학생이야? 씨발 꼰대들은 걸핏하면 젊은 사람 다 학생이래. 나 학교 안 다니거든. 나 할매 같은 선생 죽빵 날려 퇴학당했거든!" (p.45)


"그럼. 근데 어떻게 마침 온 거예요?"

"어르신...... 밤에 일한다는 거 ...... 들었어요. 잠도 안 오고...... 걱정도 돼서......갔죠."

"휴. 난 그쪽이 더 걱정되네요."

독고 씨는 민망한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수저질을 했다. 

"독고 씨가 당당히 나서길래 소싯적에 싸움이나 좀 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맞고만 있을 줄은 몰랐네. 마침 순찰차가 왔으니 망정이지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고요."

"경찰......내가 불렀죠."

"응?"

"부, 부근에......공중전화......있어요. 애들 시비 거는 거 보고......신고하고 온 거예요...... 그럼 쫌 맞다 보면.....경찰이 구해주니까......"(p.49)


"나......누군지.....모르잖아요."

"뭘 몰라. 나 도와주는 사람이죠."

"나를 나도 모르는데......믿을 수 있어요?"

"내가 고등학교 선생으로 정년 채울 때까지 만난 학생만 수만 명이예요. 사람 보는 눈 있어요. 독고 씨는 술만 끊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p.50)


사실 시현은 딱히 의리가 있거나 무엇을 잘 챙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는 흔히 말하는 '아싸'에 가까웠고 친구도 많지 않았다. 평범하게 대학까지 졸업했고, 자신의 성격에 가장 잘 맞는 일이 공무원처럼 평범한 일이 아닐까 해서 9급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이제 주변의 모두가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시현이 보기엔 충분히 버라이어티한 삶과 화려한 스펙을 지닌 친구들이 안정적이라는 이유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었고, 때문에 경쟁률은 말도 못하게 치솟고 있었다. (p.57)


"제이에스예요. 긴장하세요."

"뭐라고요? 뭐......에스요?"

"진상이라고요. 진상은 제이에스라고 했잖아요." (p.67)


"담배."

독고 씨가 제이에스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안 피우는데......"

"담배 달라고."

"아, 담배......뭐?"

"야, 너 손님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야? 너 몇 살이야?" 

"모,몰라." (p.68)


삼각김밥의 용도


그것은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것, 전문용어로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는 것이다. 과거 실내 포차를 운영하며 그녀는 여러 사람들과 일을 해봤고 엄청난 진상들을 상대했다. 계산대의 현금을 털어 도망쳤다 경찰서에 부모님과 함께 재회한 스무 살 알바생도, 술 취해 기물을 파손한 뒤 싹싹 빌던 환갑 나이 단골손님도, 용서하고 나자 다시 뻔뻔하게 그녀 욕을 하고 다녔다. 그래서 선숙은 사람들을 믿기보다는 개를 믿는 것을 택했다. 자신이 키우는 예삐와 까미야말로 그녀에게 충성했고 그녀만을 바라봐주었다. (p.87)


"그치. 교도소 대신 서울역에서 지낸 게 문제겠지."

"노숙자 된 게 잘못인가요? 너무 편견 가지고 사람 대하시면 안 돼요."

"시현이 너 편견이 다 나쁜 건 아니다. 세상 늘 조심해야 해." (p.90)


그때였다. 소년이 다시 점퍼에 손을 넣더니 벼락같이 꺼낸 삼각 김밥을 그녀의 얼굴에 던졌다. 퍽. 날아온 삼각김밥이 선숙의 양미간 사이를 때렸다. 그녀는 눈앞이 캄캄해진 채 녀석의 팔을 놓쳤다. 소년이 "씨발!"이라 외치곤 안면 전체가 얼얼한 그녀를 뒤로하고 편의점 문을 나서려는 찰나, 밖에서 누군가 소년이 미는 유리문을 곰 같은 덩치로 막아섰다. 독고 씨였다. 

"야, 짜몽."(p.93)


피해자는 도둑질을 당하고 김밥으로 얼굴을 강타당한 자신이어야 했다. 하지만 독고 씨가 순식간에 일을 정리해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화도 못 내고 말았다. 그런데 보통 이런 경우라면 선숙 씨는 부아가 치밀어 주변 곳곳에 불만을 토로하고 분노를 내뿜었을 텐데, 신기하게도 화가 잦아들었고 딱히 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p.97)


그저 독고 씨와 '짜몽'이 가난한 부자처럼 삼각형 모양 아침을 먹는 걸 바라보았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안도감과 용서, 낯선 흥분이 선숙 씨에게 생동감을 주고 있었다. 자신 역시 이 기묘한 소동극의 삼각형 한 변을 차지한 게 이상하게 재미있다고 느껴져서 삼각김밥을 까며 그들에게 다가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p.97)


"거짓말! 너 대체 뭐 하는 거니? 응?"

"엄마가 외무고시 보라며! 공부하다 좀 쉬면서 게임하는 거 가지고 뭔 소란이야? 내가 애야? 나 공부로 명문대 가고 대기업 가고 다해봤던 사람이야. 공부 정돈 알아서 하니까 유난 떨지 마요!"

"야 이 자식아! 그럼 뭐 해? 그래 가지고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냐? 방에 처박혀서 게임만 하고 맨날 라면만 먹고 그래서 되겠어? 집밖에 나가 산책도 하고 아니면 어디 고시원이라도 들어가던가!!"

"아우! 지겨워......그놈의 잔소리 지겹다고!!" (p.103)


"속상할 땐 옥수수......옥수수수염차 좋아요."

이게 무슨 팝콘 터지는 소린가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독고 씨가 옥수수수염차를 따서 건넸다. 선숙은 잠시 그녀 앞에 호의를 바라보다가 결국 받아 들고 마셨다. 무엇으로라도 치밀어 오르는 걸 눌러야 했다. 그녀는 옥수수수염차를 한여름의 생맥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p.105)


"짜몽이 그러는데......게임하면서......삼각김밥......먹기 좋대요. 아들 게임할 때......줘요."

선숙은 말없이 독고 씨가 내려놓은 삼각김밥을 보았다. 아들은 예전부터 삼각김밥을 좋아했다. 선숙이 편의점 일을 시작하자 폐기 삼각김밥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선숙은 삼각김밥을 챙기지 않았다. 아들이 방에 박혀 게임하며 그걸 먹는 꼴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삼각김밥을 내려다보는 선숙의 귀에 독고 씨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근데 김밥만 주면......안 돼요. 편지......같이 줘요." (...) 

"아들한테......그동안 못 들어줬다고, 이제 들어줄 테니 말......해 달라고......편지 써요. 그리고......거기에 삼각김밥......올려놔요." (p.109)


원 플라스 원


오늘 밤은 '참참참'이다. 지난 몇 개월간 선택해 온 경만의 최적의 조합이 바로 이것이었다. 참깨라면과 참치김밥에 참이슬. 이것이 경만의 1선발이자 절대 후회하지 않을 하루의 마감이고 빈자의 혼술상 최고 가성비가 아닐 수 없었다. (p.112)


"그동안 안 오셔서......못 쓸 뻔했어요. 저거."

"예? 열풍기 말입니까?"

"여기 애용하셨잖아요......근데 추워서 안 오시는 거......같아서 사놓은건데......암튼 오셔서 다행입니다." (p.125)


따뜻했다. 

소주도, 그 소주가 담긴 컵도. 사내가 경만을 위해 특별히 마련했다는 온기를 주는 물건도. 경만은 왕따였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왕따가 아니었다. 이놈의 불편한 편의점이 한순간에 자신만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경만은 VIP로 컴백한 기분이었다.(p.125)


"엄마가......아빠 힘들게 돈 버니까......돈 아껴 써야 한다고......편의점 가면......원 플러스 원만 사라고......그랬다는 거예요. 거참, 정말 아, 알뜰하다 싶었고......애들이 참......자알컸다 싶었죠."(p.133)

"쉬어요. 생전에 박경리 선생님이 그랬대요. 여기 작가들 글 안 쓰고 어슬렁대는 것 같아도 그게 다 집필 행위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정 작가도 비울 건 비우고 작품 생각하며 시간 보내요. 생각 없이 쓰면 타이핑이지 집필이 아니잖아요."(p.137)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어린 밥 딜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p.140) * 밥 딜런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문학세계사. 2010.


불편한 편의점


주변을 살피며 전자레인지를 찾았으나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중년 사내에게 물으니 오늘 고장이 나서 AS를 맡겼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예의 그 더듬거리는 말투로. 

"아니 죄송할 건 없고요..... 좀 불편하네요."

"어쩌다 보니......예, 불편한 편의점이......돼버렸습니다." (p.144)


알바 사내와 직장인 남자는 그렇게 연갈색 음료를 나눠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직장인 남자가 뭐라고 쏘아붙이고는 일어나 가버렸다. 알바 사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테이블을 정리하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뭐지? 갑자기 궁금증이 치솟았다. 터지려는 여드름처럼 간지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인경은 파카를 걸치고는 빌라를 나섰다. (p.152)


인경은 기가 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알바 사내는 생각보다 더 이상한 남자였다. 그런데 저번에는 부담스러웠다면 지금은 흥미가 생겼다. 단골에게 술 그만 마시라고 옥수수수염차를 건네다니......게다가 참참참은 또 뭔가? 패키지 상품으로 팔아도 좋을 것 같았다. 인경은 독특한 사고를 가진 이 골 때리는 사내에게 호기심이 발동했다.(p.153)


"맞아요. 관객들 참여하게 하고, 패키지 선물 줘 인스타 올리고 그러면PPL 받을 수 있잖아요. 아무튼 참참참 이게 주인 사내가 단골손님에게 추천해주는 패키지고요, 단골손님은 이걸 먹으며 하루를 힐링하죠. 이렇게 둘이 대사 플레이를 담당합니다. 그리고 동네 까칠한 여자 작가가 있는데, 그 여자는 진상 손님인 거예요. 작가라 밤에 일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 야간 알바 사내와 자꾸 마주치고 서로 또 사연을 나누게 되는데요......" 

"그건 왠지 너 같다." (p.161)


김 대표의 전화를 끊자마자 인경은 노트북 한글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제목을 적고 두 칸 줄을 뛴 뒤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를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쉬지 않고 타이핑을 했다. 어떤 글쓰기는 타이핑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이 오랜 시간 궁리하고 고민해왔다면, 그것에 대해 툭 건드리기만 해도 튀어나올 만큼 생각의 덩어리를 키웠다면, 이제 할 일은 타자수가 되어 열심히 자판을 누르는 게 작가의 본분이다.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가 되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p.163)


네 캔에 만 원


"형. 이제 스티브네 맥주가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도 캔으로 팔릴거라고. 이미 다른 양조장 맥주도 편의점에서 팔기 시작했다네. 그러니까 서둘러야 해. 맛은 우리가 최고니까 유통에서 잔뼈 굵은 형이 이거 나오는 대로 업자 끼고 돌리면 된다고." (p.175)


"씨발 놈아! 널 자르면 사장 아들인 거 증명될까? 내가 우리 엄마한테 말해서......아니, 이 편의점 사실 내 거거든! 알어? 내가 너 당장 자를 수 있어. 아냐고?" (p.180)


좋은 밤이었다. 오늘은 엄마와 건배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같이 찍었다. 오랜만에 느낀 가족의 온기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편의점 처분과 투자 건은 내일 말하면 된다. 엄마도 좋아하는 맥주니 가능할 것이다. 엄마가 걱정하는 오 여사나 독곤지 독건지 하는 놈의 생계는 알아서 하라지. 오 여사는 겁을 주면 뒤로 물러설 것이다. 독곤지 독건지 하는 놈은 정체를 알 수 없으니 조사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매출은 거짓말을 안 한다며 에일 맥주에 부정적인 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 (p.191)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노숙자들은 다시 도시락에 집중하려다 접근해 온 그에게 경계의 눈빛을 내비쳤다. 곽은 과거 형사 시절 취재원들을 갈굴 때의 표정과 눈빛을 재현하며 가짜 경찰 공무원증을 내보였다. (p.197)


"의뢰인이 누군진 몰라도 그 자식 없어지는 걸 바란다면 곧 이뤄질 테니 걱정 말라 그래. 그러니 당신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얼마 뒤 그 친구가 사라지면 당신이 처리했다고 하고 의뢰인에게 잔금이나 요구하라고." (p.209)


그때 편의점 문이 열리고 타킷이 무언가를 들고 나오더니 곽의 옆에 내려놓고 전원을 틀었다. 놀랍게도 열풍기였다. 온기가 금세 퍼져 옆에 사람이라도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곽은 눈인사라도 하려고 타킷을 돌아보았는데, 어느새 그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고 없었다. 뭐지, 이런 시스템은? (p.217)


친절했다. 곽의 정체를 모르는 타킷은 평소 손님 들께 하듯 친절한 응대를 했다. 손님의 돈을 절약시켜주고 추운 밖에서 청승맞게 술 마시는 그를 배려했다. 예상치 못한 환대에 타킷에게 헛소리라도 늘어놓으려던 마음이 싹 사라졌다. (p.217)


"음......제가 요 며칠 산책을 좀......많이 하긴 했어요. 생각이 많을 땐......산책이 최고거든요. 저 이제 서울......떠나기로 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한 거였는데......용기가 났어요. 저 대신 가게 일 ......할 사람 구해지면...... 갈겁니다. 대답이 됐나요?"(p.221)



ALWAYS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아니, 언제나 한 가지 생각에만 빠져 있다면? 그 한 가지 생각이 고통으로 점철된 기억이라면? 고통에 흠뻑 잠긴 뇌는 점점 무거워지는데 떨쳐버리지 못한 채 그대로 망망대해에 빠지게 된다면, 뇌는 커다란 추가 되어 거대한 심연 속으로 당신을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당신은 다른 방식으로 숨 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야 만다. 코도 입도 아가미도 아닌 것으로 숨을 쉬며 사람이라고 우기지만 사람 아닌 존재로 살 뿐이다. (p.225)


술을 끊고 음식을 많이 먹고 따뜻한 잠을 자게 되자 몸 상태는 한결 나아졌다. 쪽방에서 긴장을 내려놓고 한낮 늘어지게 누워 있으면 그곳이 바로 치료 병동인 듯했고, 야간 알바를 하기 위해 일어날때면 지병마저 달아난 듯 개운했다. 삶과 죽음의 평균대에 늘 죽음 쪽에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 점점 평균대 위로 올라와 살며시 팔을 벌리고 균형을 잡고 있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머릿속에서도 피가 돌기 시작했다. 동료의 질문에 답하며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고, 손님을 응대하며 더듬거리던 말투도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p.230)


배고픔이 해결되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알코올중독의 기운은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며 내리눌렀다. 왜 옥수수수염차냐고? 술 대신 마실 음료를 찾아야 했을 때 그것이 원 플러스 원 메뉴였기 때문이다. 플라세보 효과인지 몰라도 옥수수수염차를 마시면 한결 갈증이 풀렸고 음주 욕구를 조금이라도 눌러놓을 수 있었다. (p.231)



연말쯤 편의점 선배 시현 씨가 다른 편의점으로 스카우트 되어 가게 되었다. 편의점 알바가 스카우트된 것에 놀랐고 그녀가 덕분이라며 내게 면도기를 선물한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영문도 모르고 면도기를 받아 든 나는 꺼슬꺼슬 새로 자라난 턱수염을 매만졌다. 시현 씨는 수염 잘 깎으며 지내시란 말을 건넸고 나 역시 그녀의 안녕을 빌어주었다. (p.233)


선숙 씨는 정확히 1:9다. 당연히 동정보다는 경멸 쪽이다. 그렇다고 내가 타격받을 건 없다. 실제로도 인수인계를 할 때마다 불편해하고 피곤해하는 건 그쪽이다. 업무 교대를 마치고 나서 주변 청소를 하고 야외 테이블을 닦을 때마다 됐으니까 어서 퇴근하라 재촉하는 것도 그쪽이다. (p.234)


다음 날 사장님은 더욱 안전을 기해야 한다며 얇은 라텍스 장갑을 나눠주었다. 그 장갑을 착용한 순간 머릿속에서 번개가 번쩍했다. 그 촉감을 잊지 않으며 나는 손소독제를 장갑에 짠 뒤 비벼댔다. 얼굴에 가져가 소독내를 음미했다. 손님이 있음에도 빠르게 계산대를 벗어나 매장 끝 거울 벽으로 달려갔다. 나는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확인했다. 짧게 친 머리 아래 브이 자 눈썹과 작은 눈이 마스크와 한 쌍인 듯 자리 잡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과거를 보여주고 있었다. 마스크로 가린 얼굴과 손소독제의 알코올 향이, 라텍스 장갑의 익숙한 감촉과 자연스러운 느낌이 과거의 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의사였다. (p.240)


고스터 닥터에게 대리 수술을 맡긴 것 때문일까? 대리 수술이 당연한 듯 수술실을 비우고 한 명이라도 내담자를 더 상담해 돈을 벌었기 때문일까? 걱정과 기대가 섞인 눈빛을 보내며 내게 수술을 맡긴 그녀를 기만한 것 때문일까? 혹은 대리 수술을 밥 먹듯 지시하며 돈만 밝히는 원장 밑에서 일한 게 잘못일까? 애당초 신분 상승만을 목표로 의사가 된 내 빈곤한 정신 탓일까? 아니면 세상을 원망하며 성공해 떵떵거리겠다 다짐하게 만든 내 10대 시절의 가난과 무능력한 부모를 탓하면 될까? (p.255)


깨어나 보니 내게 남아 있는 물건이라곤 바지와 티셔츠뿐이었다. 고급 점퍼와 수제화, 지갑, 가방은 누군가 훔쳐간 지 오래였다. 맨발로 선 채 화장실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 속에서 다시 아내와 딸의 얼굴이 보였다. 거울 속 아내와 딸이 혼란스러운 내 얼굴로 바뀌자마자 나는 그것을 머리로 받아버렸다.

이후로 나는 서울역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노숙자로 불렀고 노숙자 동료들은 나를 독고라 불렀다. 죽은 노인의 이름이었고 새 이름으로 나쁘지 않았다. (p.261)


"죽어야 될 놈을......살려......주셨어요. 부끄럽지만......살아보겠습니다." 대답 대신 그녀는 마주 안은 채 작은 손으로 내 등을 두드려주었다. (p.265)


노숙자로 자리 잡은 뒤론 서울역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딱 한 번 한강에 간 적이 있었다. 다리에 올라 몸을 던지려 했다. 실패했다. 사실 올겨울을 편의점에서 보내고 나면 마포대교 혹은 원효대교에서 뛰어 내릴 계획이었다. (p.266)


강은 빠지는 곳이 아니라 건너는 곳임을.

다리는 건너는 곳이지 뛰어내리는 곳이 아님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살기로 했다. 죄스러움을 지니고 있기로 했다. 도울 것을 돕고 나눌 것을 나누고 내 몫의 욕심을 가지지 않겠다. 나만 살리려던 기술로 남을 살리기 위해 애쓸 것이다. 사죄하기 위해 가족을 찾을 것이다. 만나길 원하지 않는다면 사죄의 마음을 다지며 돌아설 것이다. 삶이란 어떻게든 의미를 지니고 계속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겨우 살아가야겠다. 

기차가 강을 건넜다. 눈물이 멈췄다.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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