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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Sep 24. 2022

정용준 장편소설<내가 말하고 있잖아> BOOK리뷰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장편소설, 민음사, 2020. (163쪽 분량) 


  정용준 장편 <내가 말하고 있잖아>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이 50% 이상 들어 있다고 밝혔다. 예민한 중학교 시절 말을 더듬어 받은 상처는 아플 수밖에 없다. 열네 살 주인공은 말더듬으로 사는 게 괴롭다. 언어교정을 위해 들어간 곳은 '스프링 언어 교정원'이다. 원장은 수강생들이 말하기 가장 어려워한 단어로 별칭으로 정한다. 루트. 마야코프스키. 핑퐁. 모티프. 처방전. 곰곰이. 무연. 그들이 더듬는 말이 이름이 된다. 화자는 자신이 다니는 무연 중학교를 발음하기 어려워해 무연이가 됐다.


   무연이는 국어시간이 싫다. 국어선생은 꼭 무연이를 지목해 읽기를 시킨다. 더듬는 걸 알면서 일부러 번호를 불러 국어책을 읽으란다. 세상 싫은 시간이다. 무연이가 더듬더듬 읽으면 선생은 "야, 야, 똑바로 읽어. 정확하게."(p.35) 차갑게 말한다. 친구들은 킥킥거리고 수군거린다. 이 순간만큼은 저 국어 선생을 죽이고 싶다. 교정원 친구 루트와 무연은 국어선생에게 복수할 계획을 짠다. 


  엄마는 114 전화 안내원이다. 술에 취해 살며 사랑 거지다. 퇴근하면 술을 먹고 수면제를 먹고 초저녁부터 잔다. 엄마는 아들에게 속옷 차림으로 담배 심부름도 시킨다. 쓰레기 같은 남자들만 만나는 엄마. 옛 애인이 다시 집에 들어왔다. 무연은 엄마의 애인을 '쓰레기'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시크하고 냉소적이다. 학교에서는 왕따다. 그나마 교정원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다. 그곳에 가면 자기 같은 사람들이 있다. 함께 말을 더듬는 사람들.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는 무연은 원장의 방침대로 노트에 말하기 어려운 말들을 적는다. 말이 잘 안 나오는 단어, 더듬고, 할 수 없는 말들을 쓴다. 이상하게 말은 '마음의 세계에서는 막힘이 없다.'(p.66) 타인 앞에서만 더듬는다. 무연은 노트에는 누굴 죽이겠다, 복수하겠다는 말이 많다. 

  화자는 스프링 언어교정원에서 하는 미션들을 수행한다. 행당시장 가는 방법 물어보기, 교정원 전단지 나눠주기, 자신감 높이기 수업, 지하철역에서 스피치 하기 등 미션, 파인애플 팔기 등을 할 때마다 서글프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걸 누군가는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p.68) 정말 이렇게 노력하는데 말더듬이를 고칠 수 있을지 요원하다. 원장이 희망고문하는 거 아닌가 생각도 든다. 


  존재감 없는 화자. 말을 더듬으면 사람들은 생각도 행동도 못하는 바보로 안다. 자신이 받은 상처들을 복수심으로 가득 채우는 나날들. 같은 어려움을 겪었던 원장은 화자에게 때론 치료자이자 아버지 역할을 해준다. 상담도 해주고, 조언도 해주고, 마음을 헤아려주기도 한다. 조금씩 마음이 녹는 화자. 경찰서에 간 무연이를 변호해 주러 온 스프링언어교정원 친구들. 그들 때문에 무연이는 마음이 뭉클하다. 애정결핍이었던 무연이에 사랑을 듬뿍듬뿍 주는 사람들. 사랑받은 만큼 무연이의 말더듬도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 


등장인물


-주인공(무연/24번/용복): 열네 살. 중1. 무연중. 

-루트/노트/24번: 여학생. 가장 정상적으로 보임. 중3. 무연중.

-마야코프스키/토스트/피츠제랄드: 무명소설가

-핑퐁: 스무 살 남자. 횡설수설. 하는 짓은 열네 살 같음. 

-모티프/용감/자존감: 30-40대. 말할 때 울먹임. 딸 연서(4세)가 말을 더듬어 고쳐야겠다고 생각. 

-처방전: 여자. 이모라고 부름. 외과 의사. 41세. 독신주의자.  말을 술술 잘함. 

-곰곰이/하이/ 아르페지오: 남학생. 열다섯. 중3. 기타를 침. 실어증. 

-할머니 : 계피사탕.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첫 문장에 대해 "나는 잘해 주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다." 당신은 어떤 편인가요?

-말을 더듬는 무연의 입장에 대해. 

-자신을 애정결핍자라고 말하는 화자를 어떻게 보셨나요?

-'스프링언어 교정원'에는 말더듬증 치료/ 자신감 향상/ 스피치/ 성격 개조/ 인생 연구/ 대화의 기술/ 청소년 상담을 한다고 홍보합니다. 여러분은 이 중 '인생 연구'라는 홍보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말하기 힘든 말, 어려운 단어와 문장을 적는 노트에 대해. 

-스프링 언어 교정원에서 하는 미션들에 대해. (행당시장 가는 방법 물어보기, 교정원 전단지 나눠주기, 자신감 높이기 수업, 지하철역에서 스피치)

-화자는 왜 더듬게 됐을까요?

-그동안 '놀림거리'(p.105)로 살아온 화자에 대해.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p.76) 이 문장에 대해.

-국어선생을 복수하겠다는 계획부터, 먹으면 바로 죽는 약을 묻는 화자의 복수심에 대해. 

-왜 사냐는 화자의 질문에 이모는 '그냥 살아'라고 답하는 장면에 대해. 

-왕십리역에 '안녕하십니까. 제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말을 더듬는 것을 고치기 위해서입니다'(p.104)라고 말하는 장면에 대해. 

-왕십리역에서 미션을 못하고 이후 집에서 우울하게 지내는 화자에 대해. 

-하고 싶은 말들을 노트에 마구 적는 화자의 모습에 대해.

-화분으로 쓰레기를 때리고 경찰서 온 화자에게 원장이 변호하는 부분에 대해.


발췌


-하늘 끝까지 헹가래질하다가 마지막에 받아 주지 않을 거잖아. 웃게 만든 다음 울게 만들 거잖아. 줬다가 뺏을 거잖아. 내일이면 모른 척할 거잖아. 이해하는 척하면서 정작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잖아. 말뿐이잖아. 결국 다 그렇잖아. 그러니까 당하면 안 된다. 그땐 진짜 끝나는 거야. 끝. (p.22)  


-그러니까 우리에게 노트는 얼린 말을 담는 보자기 같은 거야. 어려운 말이 있거나 자꾸 깨지는 단어가 있으면 여기에 빠짐없이 적어. 그리고 틈날 때마다 연습하고 또 연습해 보는 거야. 노트에 적은 것은 절대 깨지지 않거든.(p.25)


-노트 왼쪽 면에 말하기 어려운 단어를 적기 시작했다. --나. 너. 엄마.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1. 2. 5. 우주. 일요일. 월요일. 예. 아니오. 안나. 아저씨. 이사. 웨이터. 우산. 마요네즈. 메밀. 만두. 미용실. 미친. 오리. 오징어. 오스트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무연중. 오 헨리. 마지막 잎새. 어린 왕자. 모래 산. 모자. 학교. 한국. 허리케인. 허클베리핀. (p.27)


-다 싫은 건 아니었다. 할머니나 이모, 루트의 눈은 짜증 나지 않았다. 정말로 괜찮다, 괜찮다, 말해 주는 것 같은 좋은 눈이었다. 루트의 눈은 다정하거나 따뜻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날카롭고 냉정한 느낌에 가까웠다. 하지만 응원해 주는 기운이 있었다. (p.30)


-지루한 걸 싫어하는 악마들은 금방 흥미를 잃고 먹잇감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니까. 평생을 장난감과 놀림감으로 살아온 나는 강해지는 대신 현명해지는 것을 택했다. 놀리고 놀려도 반응 없는 인간은 마네킹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p.33)


-천천히. 

읽을 수 없는데 어떻게 천천히 읽나. 차분하게 읽으면 읽어져? 다리 부러진 사람한테 심호흡하고 다시 달려 봐, 하는 것과 뭐가 달라. 다시 더듬었다. 또 더듬고 또 더듬다가 고개를 숙이고 만다. 힘들다. 어려운 단어를 비슷한 단어로 바꿀 수도 없고 주어와 동사를 바꿀 수도 없다. (p.35)


-엄마는 욕하는 사람도 사랑하고 때리는 사람도 사랑한다. 곁에만 있어 달라고 애원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다고 빌고 또 빈다. 떠나지만 말라고 구걸하고 또 구걸하는 사랑 거지다. (p.39)


-직업도 없고 돈도 없고 얼굴도 거지 같고 싸가지까지 없는 엄마의 전 애인. 최악 중의 최악. 이제 새롭게 만날 애인이 없어서 헤어진 애인을 다시 만나다니. 더 실망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더 분노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마음이 위아래로 출렁거리며 요동쳤다. (p.40)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프로그램이란 것들이 죄다 이상했다. 행인에게 길 물어보기. 물건값 깎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물건을 환불하기, 전단지 나눠 주기, 전도하기 등등. 말이 훈련이지 이건 그냥 사람들과의 갈등을 무조건 이겨 내라는 거다. 뭐랄까, 뜨겁게 달군 모래에 손을 집어넣었다 빼고 빡빡 깎은 대머리에 각목을 내리치며 무공을 연마하는 무식한 고행 같은 거랄까.(p.50)


-할머니의 손은 주름이 많고 쭈글쭈글하지만 부드럽고 따뜻하다.(p.63)


-엄마가 아들을 사랑한다고 해서 아들의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니지. 사랑으로 행한 엄마의 행동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지. 할머니도 아들한테 그랬던 것 같다. 너무 사랑해서 뭐든 해야 해서 한 행동들이 슬프고 나쁜 것들이었다.(p.65)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것. 수치는 여전히 수치일 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차라리 벙어리가 되는 건 어떨까.(p.73)


-그리고...... 더듬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도 안 더듬는 건 아니야. 말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것도 아니야. 다들 어느 정도 말더듬이들이야. 우리는 보기에 조금 튀는 거고. 너도 나중에 더듬지 않게 되면 알게 될 거다. (p.76)


-그 새끼가 엄마를 많이 때리고 때로는 나까지 때렸는데 한 번 잘해 준 일 때문에 어쩌다 안부가 궁금하고 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p.77)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지 모르겠는데 암튼 부모들이란 그렇단다. 잘해 주다가도 때리고 사랑하는 말로도 상처를 주곤하지.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 다 그러려니 해. 그리고 미워해. 마음껏 미워해. 괜찮아. 일기에 죽이고 싶다고 마음껏 써도 되고. 그런데 그걸 말로 행동으로는 하지 마. 기다리면 돼.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 다 죄를 받고 죽어야 할 사람은 알아서 죽게 된단다. 원장님이 이런 말 했다고 엄마한테는 말하지는 말고.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p.98)


-어떤 친구가 물었다. 넌 왜 사냐? 쓸모없고 말도 못 하고 친구도 없고 늘 괴롭힘만 당하잖아. 왜 살어? (p.101)


-왜 사냐니. 무슨 질문이 그래. 아들. 알려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왜 사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냥. 그냥 살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 그래. 그냥 사는 게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이유야. 다른 이유는 없어. 돌멩이가 왜 딱딱한지 아니? 왜 나무는 말을 못 하게? 몰라. 나무도 돌도 몰라. 사람도 그래. 사는 데 이유는 없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사는 건 피곤해지고 슬퍼진단다. (p.102)


-어느 날엔 엄마가 엄마의 애인과 싸웠다 평소답지 않게 엄마는 엄마의 애인에게 대들고 쌍욕을 했다. 뭔갈 집어던지는 소리도 들렸다. 그래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 끝에 엄마가 엄마의 애인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고 엄마의 애인이 엄마를 죽인 뒤 문을 열고 나까지 죽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이제 만사가 귀찮았다. 숨 쉬는 것도, 냄새를 맡고, 뭘 생각하고, 배가 고파지고, 목이 마르고, 오줌을 싸고 싶은 것도 다 번거롭기만 하다. (p.111)


-하고 싶은 말, 할 수 없는 말, 하려 했던 말, 언제가 꼭 하기로 마음먹은 말, 그리고 아무 할 말이 없을 때 하는 아무 말까지 그냥 막 쓴다. 한번 쓰면 도저히 멈추질 못하겠다.(p.114)


-화가 나서 가방에 노트를 집어넣고 있는데 토스트가 작가처럼 말했다. 너 글 잘 쓴다.(p.114)


-적혀 있는 대로 읽어야 하고 정해진 대로만 발음해야 한다. 그것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p.117)


-경찰님은 1인칭 주인공 주인공 시점 소설과 일기의 차이를 구분하실 수 있나요?(p.140)


-큰 몸을 둥글게 굽혀 경찰의 말에 답하고 설명하던 어둡고 쓸쓸한 원장의 얼굴. 내 손을 움켜쥐고 집까지 단 한 번도 놓지 않던 엄마의 손. 그 손끝에서 내 손으로 계속 전해지던 울컥울컥 떨림. 모두. 전부. 종이에 모두 옮겨 놓고 싶었다. 아들, 잘 지내지? 툭툭 등을 두드려 주고 사라졌던 이모와 처음으로 진짜 소설가처럼 느껴졌던 피츠. 호주머니에 베지밀 두 개를 깊숙하게 찔러 주던 자존감 아저씨도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하나도 잊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어떤 기억도 희미해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때문에 써애 했다. 기록해야 했다.(p.144)


-용서. 복수. 용서. 복수. 원장은 혼잣말을 하며 한참 고민하더니 명찰에 사인펜으로 뭔가를 썼다.(p.151) 


-그런데 너 진짜 말 잘한다. 너처럼 말 잘하는 사람 처음 봐.(p.158)


-기분이 좋아진 그가 말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p.163)


-"나와 종이 사이 한 뼘도 안 되는 허공 속에 일렁이고 있는 문학적 표현"(p.166)


출처: 도란도란 문학상담소 (정영준 작가, 정기현 편집자)


토론후기 


-네. 유쾌하고 따뜻한 밤이었습니다. 정용준 작가 다른 책도 읽고 싶네요. 고맙습니다.


-오랜만에 유쾌하고 따뜻한 성장 소설을 읽었네요^^ 발화하는 순간 사라져 버리는 말이 뭐라고. 말을 더듬어서... 말을 유려하게 못 해서 절망에 빠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 말보다 다른 것이 더욱 필요한 시대라는 것을 절감해 봅니다.   늘 고맙습니다.


-저는 책도 다 읽었는데 넘 피곤해서 참석이 어렵겠어요. 아쉽습니다. 


-덕분에 내가 말하고 있잖아 더 깊이 있게 봤습니다. 읽을 때 지나쳤던 부분 어제 이야기 들으면서 다시 알게 되었어요. 책을 좀 여유 있게 꼼꼼하게 읽어야겠습니다. 어제 즐거웠어요.


-진희샘 책 선정 토론 시간 다 좋았어요. 같이 의견 나눠주신 샘들도 감사합니다. 어제 토론 바탕으로 오늘 두어 시간 못 다 읽은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려볼 생각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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