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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Nov 08. 2022

고전문학BOOK클럽 <모비 딕> 하먼 멜빌 리뷰

샛별BOOK연구소


<모비 딕>, 허먼 멜빌, 문학동네. 2019. (922쪽 분량/일러스트 포함), 황유원 번역.


<모비 딕>의 첫 문장인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는 구절은 유명하다. 진짜 이름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자신을 이슈미얼이라고 불러달라는 화자는 고래에게 매혹되어 리바이던을 내 손으로 직접 다루어보겠다고 다짐한다. 이슈미얼은 ‘고래의 현재 서식지와 해부학적 특성’(p.695)에 대해 말했고, 논문을 쓰면서 존슨 박사의 책을 곁에 두고 참고하더니 ‘웅장한 책을 쓰려면 웅장한 주제를 택해야 한다’(p.696)면서 자신이 '모비딕'에 관한 대서사를 쓰겠다고 선언한다. 그 선언과 함께 작가는 이슈미얼과 동일시되어 독자들을 망망대해로 끌고 나간다.

하먼 멜빌의 모험소설 <모비 딕>은 포경선 피쿼드호 에이해브 선장과 흰고래 ‘모비 딕’ 사이의 대결을 거대하고도 웅장한 비극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에이해브 선장은 거대한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빼앗긴 뒤 복수를 위해 고래를 쫓는다. 고래에 관한 백과사전 격인 <모비딕>. 그 안에는 고래의 생태와 활동, 포경 기술과 포획한 고래의 처리 및 가공 등에 관한 방대한 설명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주인공 이슈미얼은 잠시 배를 타고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왜 늠름하고 건강한 영혼을 지닌 늠름하고 건강한 청년들 대다수는 언제가 바다로 가게 되길 그토록 열망하는가?(...) 왜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바다를 신성하게 여겼던가?”(p.38) 이런 질문들은 이슈미얼을 항해하게 만드는 결심이 된다.


선장 에이헤브가 이끄는 피쿼드 호는 출항준비를 마치고 고래를 잡으로 크리스마스날 출발한다. 배에는 일등항해사 스타벅, 이등항해사 스터브, 삼등항해사 플래스크가 탔다. 항해사들은 보트 세척을 지휘하며 중대장의 역할을 한다. 항해사와 짝을 이루는 사람은 작살잡이다. 스타벅은 퀴퀘그, 스터브는 타시테고, 플래스크는 다구인 작살잡이가 그들의 종자가 된다. 피쿼드 호에 탄 선원들은 대략 서른 명 정도이다. 이들은 과연 '모비딕'을 잡을 수 있을까. 3년 동안 바다에 머물 식량을 싣고 피쿼드 호는 비장하게 항구를 떠난다.


에이해브는 모비딕을 꼭 찾고야 말겠다고 생각한다. 그의 복수심은 배 안에 차곡차곡 채워진다. 모비 딕이 보트 세 척을 박살 내고 사람들을 바다에 빠트렸을 때 선장은 겨우 6인치짜리 칼날로 덤벼들다 다리를 잃고 말았다. 이후 ‘에이해브가 그 고래에 대해 줄곧 끔찍한 복수심을 품어왔으며, 그러한 복수심만큼이나 병적인 광기에 사로잡힌 나머지 마침내’(p.304) 정신적 분노까지도 모비 딕에게 결부시킨다.


에이해브 선장은 한쪽 다리를 잃게 만든 모비 딕을 꼭 찾아야 한다고 말하자 흥분한 선원들은 “눈 부릅뜨고 흰고래를 찾자, 날카로운 창으로 모비 딕을 찌르자!”(p.269)며 동화된다. 스타벅은 “하지만 저는 여기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해주려고 온 게 아닙니다.”(p.269)라고 자신의 뜻을 말한다. 스타벅과 달리 이슈미얼과 다른 선원들은 ‘에이해브의 달랠 수 없는 원한이 마치 내 것인양 느껴’(p.297)진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모비 딕을 꼭 찾아야하는 대상으로 상징화시켜 그 이념에 모두 매몰된 모습을 본다.


그러나 모비딕은 잡을 수 없는 존재다. 고래는 공룡을 포함하여 지구상에 가장 몸집이 큰 생물종이다. 큰 대왕고래는 평균 길이가 30미터를 넘고 몸무게도 180톤 내외를 이룬다. 인간은 한계를 모른다. 선원들은 흰고래 모비딕을 두려워하면서도 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걸고 망망대해를 계속 표류한다.


항해 중 영국 깃발을 단 배의 선장을 만난 에이해브는 그에게 흥분해서 “흰 고래는 어디서 봤소? 본 지는 얼마나 됐고?”(p.669) 묻는다. 예순 줄의 건장한 체격의 영국선장은 향유고래의 뼈로 만든 새하얀 팔을 보여주며 두 번 다시 모비딕에게 작살을 던지지는 않겠다며 “흰 고래는 이제 질색이야. 녀석을 쫓기 위해 보트를 한 번 내렸던 것으로 만족하겠어.”(p.676)한다. 모비딕을 향한 둘의 태도는 확연하게 비교된다. 영국 선장은 모비딕을 쫓지 않겠다고, 미국 선장은 쫓아가겠다고 말이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모비딕을 발견한 에이해브 선장은 “고래가 물을 뿜는다! 고래가 물을 뿜어! 눈 쌓인 언덕처럼 새하얀 혹이다! 모비 딕이다!”(p.836)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러나 모비딕은 몸을 다 드러내지 않고 맑고 고요한 열대의 바다를 천천히 헤엄쳐 가다가 어느새 보트를 두 동강 내버린다. 스타벅은 선장에게 가지 말라고 울부짖지만, 에이해브 선장은 “최후의 순간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고,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를 것이다.”(p.879)라며 모비딕을 향해 돌진한다. 결국 이들은 모두 모비딕의 분노에 희생되고 만다. 에이해브가 모비딕을 쫓았는지 모비딕이 에이해브를 쫓았는지는 미지수로 남는다.


피쿼드 호에 탄 선원들 중에 단 한 사람이 살아남는다. 첫 문장에서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라고 했던 그 선원. 그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다른 선원들과 같이 그도 바다에 빠졌지만 우주가 도와준다. 이슈미얼은 ‘관으로 된 구명부표’(p.515)를 발견하고 그 관을 붙든 채 꼬박 하루 낮과 밤 동안 부드러운 장송곡 같은 대양 위를 떠다니다 레이철호에 의해 발견된다. 그를 살리기 위해 상어들은 조용했고, 사나운 도둑 갈매기들은 유유히 사라진다.


예정된 비극. 그럼에도 모비딕을 찾아 떠났던 선장, 선장의 복수에 동조했던 선원과 항해사들. 스타벅만이 선장을 설득했지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장의 행동과 대사들은 거칠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의 대사처럼... 허망하고 비통하다. '모비딕'은 단순한 향유고래를 넘어 인간에게 극복하고 싶은 욕망이며, 뛰어넘고 싶은 영역이며, 맞서고 싶은 거대한 가치이자 부딪히고 싶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모비딕'을 쫓을수록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 작은 존재들. 소설은 모비 딕을 맞서는 인간의 맹목적 미약함을 파괴적으로 보여준다. 영혼까지 송두리째 뺏겼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또다시 '모비딕'을 찾아 나서게 될 것이다. '모비 빅'도 '인간'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모비 딕> 발췌



-“나를 이슈미얼로 불러달라. 몇 년 전—정확히 언제인지는 중요하지 않다—지갑에는 거의 돈 한 푼 없고 육지에는 딱히 흥미를 잡아끄는 것이 없었으므로, 나는 잠시 배를 타고 나가 세상의 바다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울화증을 떨쳐버리고 날뛰는 피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입매가 험악하게 굳어질 때, 내 영혼이 부슬부슬 비 내리는 축축한 11월 같아질 때, 나도 모르게 관을 파는 상점 앞에 멈춰 선다거나 마주치는 장례 행렬의 후미를 따라갈 때, 그리고 특히 극심한 우울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일부러 거리로 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차례로 쳐서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려면 엄청난 도덕심을 발휘해야 할 때, 그럴 때면 최대한 서둘러 바다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내게는 이 방법의 권총과 총알을 대신한다. 카토는 철학적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자신에게 칼을 들이댔지만, 나는 조용히 배에 오른다. 놀랄 일이 아니다. (p.36)(문학동네 낱권1. p.37)


-웅덩이에는 마력이 숨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얼빠진 인간 하나를 깊은 몽상에 빠뜨린 다음, 그를 일으켜 세워 두 다리를 바삐 움직이게 해보라. 그 지방에 물이 있는 한, 그는 분명 당신을 물 있는 쪽으로 인도할 것이다. 당신이 미국의 거대한 사막에서 갈증을 느끼게 되었는데 마침 일행 중에 형이상학 교수들이 있다면, 이 실험에 도전해보라. 그렇다. 다들 알다시피 명상과 물은 서로 영원히 맺어진 사이다. (p.37)(낱권1. p.39)


-그 동기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은 거대한 고래 자체가 주는 압도적인 느낌이었다. 그토록 경이롭고 신비한 괴물은 나의 호기심을 완전히 자극했다. 또한 고래가 섬만한 몸뚱이를 굴리는 거칠고도 먼 바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으며 입에 담기조차 꺼려지는 고래의 위험성, 게다가 파타고니아에서 들려오는 무수한 목격담에서 느껴지는 불가사의함까지도 나를 나의 바람대로 이끄는 데 한몫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들에 유혹당하지 않았을 테지만 내가 누구던가, 나는 저 먼 것들에 영원한 갈망을 지닌 사람이다. 나는 금지된 바다를 항해하고 야만적인 해안에 상륙하길 즐긴다.(p.41)(낱권1. p.45)


집안 살림살이를 하는 데 얼마나 많은 물건이 필요한지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침대, 냄비, 나이프과 포크, 삽과 집게, 냅킨, 호두까지 등등의 물건 말이다. 식료품점, 과일이나 야채 행상, 병원, 빵집, 은행 등과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서 삼 년간 살림살이를 해야만 하는 포경선의 경우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는 상선도 마찬가지겠으나, 포경선은 그 정도가 상선과 차원이 다르다. 포경선은 항해 기간이 매우 길뿐더러, 고래잡이라는 업무를 수행하려면 특수한 물품도 수없이 필요한데, 포경선이 보통 기항하곤 하는 외딴 항구들에서는 그런 물품의 교체가 불가능하다.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모든 배 가운데 가장 많은 종류의 위험에 노출된 배는 바로 포경선이며, 특히 성공적인 항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파괴되거나 상실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여분의 보트, 여분의 돛대 및 활대용 목재, 여분의 밧줄과 작살을 준비해야 하는데, 말하자면 선장과 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여분으로 준비해야 한다. (p.172)(낱권1. p.194)


그런데 간부 선원과 평선원의 가장 큰 차이는 간부 선원은 선미 쪽에서 지내고 평선원은 선수 쪽에서 지낸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포경선에서든 상선에서든 항해사들은 선장과 같은 쪽 숙소를 사용하고, 대부분의 미국 포경선 작살잡이들도 배의 후미에서 생활한다. 다시 말해 그들은 선장의 선실에서 식사를 하고, 선실과 벽을 사이에 두고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는 곳에서 잠을 잔다. (p.243)(낱권1. p.279)

출처: <문학동네> 일러스트 그림

-모든게 당신을 나른하게 한다. 고래잡이가 열대지방에서 보내는 삶이란 대부분 숭고한 무사평온함 속에 흘러간다. 들려오는 소식도 없고, 읽을 신문도 없으며, 별것 아닌 일로 요란을 떨어 사람을 쓸데없이 흥분하게 만드는 호외도 없다. 국내의 재난 증권회사의 파산, 주가 폭락에 대해서도 들을 일이 없다. 저녁으로 뭘 먹으면 좋을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삼 년 치 이상의 음식이 통 안에 그득히 담겨 있으며, 메뉴는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p.257)(낱권1. p.296)


-퀴퀘그와 타시테고의 식욕은 경이로울 만큼 왕성해서, 지난번 식사 때 못 채운 배를 채우려면 창백한 얼굴의 진빵은 하는 수없이 소금에 절인 커다란 갈비구이를 부지런히 날라야 했는데, 그 갈비들은 마치 황소 한 마리에서 통째로 떼어온 것 같았다. (p.260) (낱권1. p.288)


-스타벅은 자신이 이 위험천만한 대양에 나온 것은 생계를 위해 고래를 죽이기 위해서이지, 고래에게 죽임을 당해 고래의 먹이가 되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른다는 사실을 스타벅은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떤 불행한 운명을 맞이했던가? 그의 형의 찢겨나간 팔다리를 저 끝없는 심연 그 어디에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p.200)(낱권1. p.226)


-스터브가 그렇게 특이한 성격을 가지게 된 데는 이처럼 쉴 새 없이 피워대는 줄담배도 분명 한몫했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 세속의 공기는 육지와 바다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무수히 내쉰 형언할 수 없는 비참함으로 지독히 오염되어 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콜레라가 유행하던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장뇌를 묻힌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다니는데, 스터브의 담배 연기도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모든 시련에 대한 일종의 소독약 역할을 해주었을지 모른다.(p.204)(낱권1. p.232)

-삼등항해사 플래스크는 마서스비어드섬의 티스베리 태생이었다. 그는 작달막하고 다부진 몸집에 혈색이 좋은 젊은이로, 고래에 대해 몹시 호전적이었다. 그는 거대한 리바이던이 자신의 원수인 동시에 가문의 원수이기에 만날 때마다 죽여버리는 것이 곧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고래의 장엄하고 육중한 몸집과 불가사의한 행동이 보여주는 수많은 경이로움에 대해 전혀 숭배하는 마음을 품지 않았고, 고래와 맞서면서 처하게 될지 모를 위험에 대해 조금도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이처럼 무지하고 무의식적인 대담무쌍함 때문에, 그는 고래 문제에 관한 한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는 그저 재미로 고래를 쫓았으며, 혼곶을 도는 삼 년간의 항해도 그에게는 그만큼의 시간 동안 계속되는 유쾌한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았다.(p.205) (낱권1. p.232)


나 이슈미얼도 그런 겁 없는 선원 중 하나였다. 나의 외침은 다른 이들의 외침과 더불어 큰 소리로 울려퍼졌고, 나의 맹세는 그들의 맹세와 하나로 뭉쳐졌다. 내가 더욱 큰 소리로 외치고 나의 맹세에 더욱 망치질을 해서 그 맹세가 흔들리지 않도록 했던 것은 내 영혼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마음속에서 격렬하고도 신비로운 공감이 일었다. 에이해브의 달랠 수 없는 원한이 마치 내 것인 양 느껴졌다. 다른 선원들과 함께 끔찍한 복수를 해주리라 맹세한 그 고래의 내력을 알아내고자, 나는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에 바짝 귀를 기울였다. (p.297)(낱권1. p.339)


-극지방의 흰곰과 열대지방의 백상아리를 보라. 그 동물들을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존재로 만드는 게 눈처럼 하얗고 매끈한 흰색이 아니면 대체 또 뭐란 말인가? 말없이 기분좋게 바라볼 만한 그 동물들의 모습에 공포보다는 혐오감을, 그토록 은은한 불쾌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바로 이 송장같은 흰색이다.(p.313)(낱권1. p.356)

-예를 들어, 힘들고 위험한 추격 끝에 붙잡은 고래의 사체가 거센 폭풍우 때문에 배에서 풀려나 바람 불어가는 쪽으로 멀리 떠내려갔는데, 이를 또다른 포경선이 목숨이나 밧줄을 잃을 위험도 없이 침착하고 여유롭게 뱃전으로 끌어올렸다고 해보자. 이럴 때 만일 성문율이 됐든 불문율이 됐든 모든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이 없다면, 고래잡이들 사이에는 매번 더없이 성가시고 난폭한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p.609)(2권.200쪽)


Ⅰ. ‘잡힌 고래’는 그것을 잡은 자의 소유다.

Ⅱ. ‘놓친 고래’는 먼저 잡는 자가 임자다. (p.610)(2권.201쪽)


오십 년 전쯤에 영국에서 횡령당한 고래를 되찾기 위한 기이한 소송이 벌어졌는데, 원고측은 자신들이 북해에서 어렵사리 고래를 추격한 끝에 실제로 고래에게 작살을 꽂는데 성공했으나, 결국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위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밧줄뿐만 아니라 보트도 포기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피고측(또다른 배의 선원들)이 결국 그 고래를 따라가서 공격하고 죽이고 점령한 다음, 마침내 원고측이 훤히 보는 앞에서 고래를 횡령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원고측이 항의를 표하자, 피고측 선장은 원고측의 면전에서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경멸을 표했고, 자신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고래를 잡았을 당시 고래에 매달려 있던 밧줄, 작살, 보트까지 자신이 모두 가져가야겠노라고 확언했다. 그런 까닭에 원고측은 자신들의 고래와 밧줄, 작살, 보트의 경제적 가치를 보상받고자 피고측을 고소한 것이다. (p.612)(2권.202쪽)


-살다보면 딱히 대단치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그로 인해 마음이 벅차오르고 감정이 고조된다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그러니 이 리바이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어떻겠는가? 나의 서체는 나도 모르게 플래카드의 대문자만큼이나 거대해진다. 내게 콘도르의 깃으로 만든 펜을 다오! 내게 베수비오산의 분화구를 잉크통으로 다오! 친구들이여, 내 양팔을 붙들어다오! 단지 이 리바이던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는 행위만으로도 나는 진이 다 빠지고, 마치 학문의 분과, 모든 세대의 고래와 인간과 마스토돈, 과거와 현재와 미래, 지상 모든 제국의 흥망성쇠, 우주 전체와 변두리까지 아우르며 뻗어나가는 듯한 그 광범위함에 머리가 어질어질해질 지경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거대하고 자유로운 주제가 지닌 미덕, 모든 것을 확대한 엄청난 미덕이다! 우리는 그 주제의 크기만큼이나 확장된다. 웅장한 책을 쓰려면 반드시 웅장한 주제를 택해야 한다. 벼룩에 대한 책을 쓰려고 시도해 본 이들은 많겠으나, 그 주제로 결코 불후의 명작을 쓸 수 없다. (p.696)(2권.306쪽)

-“오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고귀한 분이시여.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보세요, 용감한 사나이가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당신을 설득하기에 이렇게 눈물을 흘리겠어요!”

“보트를 내려라!” 에이해브가 항해사의 팔을 뿌리치며 외쳤다. “전원 준비!”

보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선미 바로 아래쪽을 돌아나갔다. “상어다! 상어떼가 나타탔다!” 선미 쪽에 위치한 낮은 선장실 창문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오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돌아오세요!”

하지만 에이해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때는 본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대고 있었고, 보트가 파도 위로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p.868)(2권.499쪽)


-“나는 태양에 등을 돌린다. 왜 그러나, 타시테고! 자네의 망치질 소리를 들려주게나. 오오! 굴복할 줄 모르는 나의 세 첨탑이여. 갈라지지 않는 용골이여. 오직 신만이 괴롭힐 수 있는 선체여. 굳건한 갑판, 오만한 키, 북극성을 향한 뱃머리—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는 배여! 너는 그렇게 나 없이 사라져야만 하는 것이냐? 내게는 가장 보잘것없는 난파선 선장이 마지막으로 느끼는 허황된 자부심조차 허락되지 않는단 말인가? 오오, 고독한 삶이 맞이한 고독한 죽음! 오오, 이제 난 나의 가장 큰 위대함이 가장 큰 슬픔 속에 깃들어 있음을 느낀다. 어이, 거기! 송두리째 지나가버린 내 삶의 거센 파도여, 아득히 먼 대양의 끝에서 지금 이곳으로 밀려와 집채만한 파도와도 같은 나의 이 죽음을 더욱 높이 일게 해다오!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하지는 못하는 고래여, 너를 향해 나는 힘차게 나아간다. 최후의 순간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고, 지옥의 한복판에서 너를 찌를 것이다. 오로지 증오만이 가득한 내 마지막 숨결을 너에게 내뿜어주마. 어디 한번 모든 관과 널을 하나의 커다란 웅덩이에 가라앉혀보거라! 그 둘 모두 내 것일리 없으니, 나는 네게 꽁꽁 묶여서라도 너를 계속 쫓으며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 너 이 빌어먹을 고래여! 자, 이 창을 받아라!”(p.879)(2권. p.510)


“마침내 그 생명의 중심에 이르자 갑자기 검은 물거품이 위로 솟구쳐올랐다. 그러더니 그 교모한 탄성 덕분에 배에서 벗어나고 그 거대한 부력 덕분에 물속에서 아주 힘차게 솟아오른 관으로 된 구명부표가 바다 위로 길게 솟구쳤다가 아래도 떨어져서는 내 곁을 둥둥 떠갔다. 나는 그 관을 붙든채 꼬박 하루 낮과 밤 동안 부드러운 장송곡 같은 대양 위를 떠다녔다. 상어들은 아무 해도 끼치지 않고 마치 입에 맹꽁이 자물쇠라도 채운 듯 바다를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사나운 도둑갈매기들은 부리에 칼집이라도 씌운 듯 하늘을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사나운 도둑 갈매기들은 부리에 칼집이라도 씌운 듯 하늘을 유유히 미끄러져 갔다. 이틀째 되는 날, 어느 배 한 척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더니, 마침내 나를 바다에서 건져주었다. 그것은 정도에서 벗어난 항해를 이어가던 레이철호였다.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왔던 길을 되짚어가다가 엉뚱한 고아만 찾고 만 것이다.”(2권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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