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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Jan 05. 2023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토론 후기

샛별BOOK연구소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문학동네. (67쪽 분량)


  [고전문학BOOK클럽]에서 202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니 에르노 작가의 <단순한 열정>을 토론했습니다. 얇은 부피에 놀랐고, 경험담이라는 사실에 당황했습니다. 혼자 읽으면 '이 책 뭐지?'했을 텐데 토론하며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알았습니다. 꼭 토론하길 추천합니다. 토론 후 아니 에르노의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샘도, 아니 에르노 작가는 이 한 권으로 만족한다는 샘도 계셨습니다. 


  토론 후기를 얘기할 때 '본질'에 대해 발언한 샘이 계셨는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분의 소감을 들으며 '사랑의 본질'은 무엇이며 '소설의 본질은 무엇일까'를 정리해 보게 되었어요. '자전적 이야기는 소설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소설의 3요소는 꼭 필요한가',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소설은 꼭 등단의 문턱을 넘어야 할까' 등을 생각해 봅니다. 지금까지 읽었던 소설책과 <단순한 열정>을 비교하게 되네요. 소설이란 구성, 서사와 은유, 상징과 미학적 아름다움 등이 내포된 글이었는데 자신의 불륜을 적은 내적 일기를 소설이라고 칭하니 혼란스럽더군요. 


  작가는 소설이나 시를 통해 자신의 경험과 고통, 상상을 투척합니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글에 투영되기 마련이죠. 그것은 은유, 상징, 비유, 상상을 통해서 발현됩니다. 아니 에르노는 모든 작법을 걷어내고 자신만의 솔직한 이야기를 썼고, 그것을 출판했어요. 독자들은 소설책을 읽을 때 감정이입하지만 어디까지나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니 에르노 작품은 '사실'이라는 점을 상기하며 읽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문장이 좀 더 '진정성'있게 다가옵니다. 그 진정성은 한 개인의 진실과 맞닿아 있겠네요. 작가는 어떤 도덕적 비난을 받더라도 당시 '나는 A를 사랑했고, 단순한 열정을 다했으며, 그 사랑에 탐닉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문장으로 폭로합니다. 


  아니 에르노가 '가면을 벗어던진 글쓰기'를 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이것은 독자에게 용기를 줍니다. 지독한 자기 파괴적 사랑도, 타인을 옭아매는 기다림도, 사랑의 끝을 달려가는 욕정도, 육체적 탐닉도 아니 에르노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전 세계에 자신의 '솔직함'을 공개했으니요. 이는 대단한 자의식이며 새로운 글쓰기의 창조가 아닐까 합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는 글쓰기를 했다는 측면에서 그의 문학세계는 독보적입니다. 


"나는 내가 겪은 것만 쓴다" -아니 에르노-    


 





별점과 소감 나누기


3.0.   4.0  3.0  4.0   3.5   4.8   3.0    4.0   4.8   3.9  4.0  4.0  4.0   4.0   3.0 


-빨강 머리 앤과 비교하니 당황스러운 책이다. 

-식욕과 성욕에 대해 생각해 본 책이었다.  

-도덕적 판단을 어디까지 두어야 할까 고민했다. 

-육체를 터부시하는 사회와 교육에 대해 생각했다. 

-글쓰기 욕망에 대해 생각했다. 

-글에서 여성적 한계를 느낀 부분도 있었다. 

-굉장한 자의식의 소유자인 작가다. 

-거부감을 느낀 부분도 있었다.  

-산뜻한 소설이었다.

-성욕을 표현하는 작가가 놀랍다.  

-프레임을 깨는, 관습에 저항하는 측면의 글쓰기 훌륭하다.

-글쓰기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문학적 미학을 거부한 작가다.

-자기객관화 대단하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포착해 글쓰기 매력 있다. 

-타인의 사랑의 감정을 판단할 수 있을까.  

-사회적 비난에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작가다.  

-용기 있게 출판한 작가다.  

-왜 출판했을까?

-육체적 행복감에 대해 고민했다. 

-소설의 허구성을 파괴하여 더욱 진실한 측면에 다가가게 한 작가적 기법이 좋았다.

-내 글이 어떻게 평가 받든 상관하지 않는 자의식 굉장하다. 

-사랑의 열정을 느끼는 건 사치일까. 

-솔직하며 광기가 있는 문체였다.

-<칼 같은 글쓰기>를 읽어보려고 샀다.

-에세이와 소설의 경계를 벗어나려는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순간의 감정(경험)을 기록하는 글쓰기가 좋았다.


그 외



아니 에르노 작품 연대  (출처: 샛별BOOK연구소)



『빈 옷장』-1974년. ‘자전적 소설’ 발표.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그들의 말 혹은 침묵』- 1977년. “내 삶에서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했던 시기가 있습니다. 바로 1958년의 여름, 나의 열일곱 살 무렵 말입니다. 나는 그 시기를 사회·역사적으로 그려 내기를 바랐고, 이를테면 오토 픽션의 방법으로 『그들의 말 혹은 침묵』을 썼습니다.”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1981년. 전통적 의미의 허구를 포기. 자신의 결혼을 다룬 이야기.


『남자의 자리』-1982년. 아버지의 삶을 다룬 자전적·전기적·사회학적 글. 르노도상 수상.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1983년~1986년. 내면일기. 언니 지네트의 죽음과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듯한 유감을 서술. 치매에 걸린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의 마지막 날들을 적어나간 문병일기. 


『한 여자』- 1988년. 어머니의 이야기. 치매에 걸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 후에 쓴 이야기.


『탐닉』-1988년~1990년 집필. <단순한 열정>의 내면일기 집필 시작. 중독과도 같은 사랑 그리고 기다림, 그 시간을 날것으로 담아낸 내면의 기록. 


『부끄러움』-1997년. 아버지가 어머니를 죽이려 한 사건을 서술. 


『단순한 열정』-1991년. 


『탐닉』-2001년.


『바깥일기』-1993년. 1985년부터 7년간 쓴 일기를 모은 글. 


『사건』-1999년.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24세)을 기술. 


『집착』-2001년. 질투에 점령당한 한 여자의 모놀로그- 영화<다른 사람>(2008)상영. 


『칼 같은 글쓰기』-2003년. 프레테리크 이브자네 교수와 이메일로 나눈 대담집. 


2002년- 10월 3일 유방암 진단. 


2003년- 발두아즈 주에서 그녀의 이름을 딴 ‘아니 에르노 문학상’이 제정. 


2004년-5월 24일 마지막 화학치료를 받음.


『사진의 용도』-2004년. 에세이 –섹스 후 남겨진 흔적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기록. 


『세월』-2008년. 마르그리트 뒤라스 상. 프랑수아 모리아크상. 소설 2019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후보작 '여자의 운명 같은 것에 대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역사 속에서 그녀의 내면과 그녀의 외부에 흐르는 시간을 느끼게 해주는 모파상의 인생 같은 어떤 것. 존재와 사물들의 상실, 부모, 남편, 집을 떠나는 자식들, 팔아 버린 가구들 속에서 끝이 날 완전한 소설을. 


『다른 딸』-2011년. 언니 자네트에게 쓴 편지. 


『검은 아틀리에』-2011년.


『삶을 쓰다』-2011년. 열두 편의 자전소설과 사진, 미발표 일기들을 담은 선집. 생존작가로는 최초로 갈리마르 콰르토총서에 수록. 


『이브토로 돌아가기』-2013년.


『빛을 바라봐, 내 사랑』-2014년.


『소녀의 기억』-2016년.


『카사노바 호텔』-2020년. 센슈얼한 열정을 다룬 자전적 에세이


「슬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죽음에 깊은 경의를 표하는 이야기.


「문학과 정치」- 문학은 현실에 깊숙이 맞닿아 있어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고 강하게 주장


「축하연」 - 에르노 특유의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단편소설.


▮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 



<단순한 열정> 집필 과정


1988년 9월 25일에 A를 만남. 

1988년 9월 27일에 <탐닉>을 집필 시작. 

1989년 9월 피렌체 여행. 11월 15일 A가 모스크바로 떠남. 

1990년 4월 9일 <탐닉> 탈고. 

1991년 1월 20일 A를 다시 만남. <단순한 열정> 출간. 

1992년 11월 서른세 살 연하의 필립 빌랭을 만남.

1997년 1월 필립 빌랭과 결별. 필립 빌랭은 <단순한 열정>을 차용해 아니 에르노와의 사랑을 다룬 소설 <포옹>을 발표.

2001년 『탐닉』 출간.




발췌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한 행동,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나의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지가 않았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p.12)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 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까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p.13)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해서 우리의 약속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어느 날 오후, 나는 차를 몰아 집으로 가는 중이었고 그는 30분 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때 문득 교통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곧 ‘내 삶이 여기서 끝나게 될지도 몰라’하는 생각이 들었다.(p.15)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p.39)


-그와의 관계를 수월하게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아들들에게 일러두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집에 와도 되는지 알기 위해 미리 전화를 걸어주었고, A가 온다는 연락이 있으면 집에 있다가도 서둘러 돌아갔다. 이렇게 주변을 정리해두었기 때문에 최소한 겉으로는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어렸을 적에 불장난 같은 연애사건을 부모에게 숨겼듯이 아이들에게도 이번 일을 비밀로 하는 편이 나았을지도 몰랐다. 


물론 아이들에게 판단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모와 자식은 육체적으로 너무도 가까우면서도 완벽하게 금지되어 있어서, 서로의 성적 본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무척 불편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엄마의 알 수 없는 침묵과 멍한 시선 속에 드러나는 육체적 욕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아이들은 그런 순간에 빠져 있는 엄마를 늙은 수고양이를 따라다니는 발정난 암코양이쯤으로 생각할 뿐이다.(p.22)


-『마리 클레르』지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젊은이들은 이혼했거나 별거중인 어머니가 연애를 하는 것에 대해 가차없이 비난하고 있다. 한 소녀는 원망에 가득 찬 말투로 “엄마의 애인은 엄마가 허황된 꿈만 꾸게 만들어요”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외로운 엄마에게 그보다 더 위안이 되는 일이 있을까?(원주)(p.22)


-RER이나 지하철, 혹은 대합실, 그리고 잠시 한눈을 팔 수 있는 장소라면 어디든, 나는 앉기만 하면 이내 A를 생각하며 몽상에 빠져들었다. 이런 상태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온몸에 경련이 일어날 만큼 행복해졌다. 그리고 머릿속에 수많은 영상과 기억들이 넘쳐나서, 마치 머릿속으로도 몸의 다른 기관들처럼 육체적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았다.(p.35)


*RER: 파리 인근 도시를 연결하는 전철(<탐닉>p.333)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고,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사라지리라는 걸 예감하면서도, 지금이 오히려 행복하다고 생각했다.(p.39)


-박물관에서도 사랑을 표현한 작품들만 눈에 들어왔다. 남자의 나체상에 마음이 끌렸다. 그것들을 보며 A의 어깨선을, 배를, 성기를, 그리고 특히 허리에서 서혜부로 이어지며 안쪽으로 부드럽게 파인 곡선을 떠올렸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앞에서는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남성의 육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여자가 아닌 남자가 그토록 뛰어나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놀라워 고통스러울 정도였다.(p.43)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나는 내가 마치 글을 쓰듯이 피렌체에 나의 열정을 새겨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를 걸을 때나 박물관을 둘러볼 때나 A의 영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을 그 사람과 함께 보고, 그 사람과 함께 식사하고, 그 사람과 함께 아르노 강가에 있는 시끄러운 호텔에서 잠을 잤다.(p.43)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며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p.66)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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