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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Feb 14. 2023

정주리 감독 <다음 소희> 영화 리뷰

샛별BOOK연구소



*스포일러 있습니다. 

<다음 소희> Next Sohee, 2022.

감독: 정주리

출연: 배두나(오유진), 김시은(김소희).

국가: 한국

장르: 드라마

러닝타임: 138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2023.02.08.



영화 <다음 소희>는 정주리 감독이 2017년 전주 특성화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었다. 학교 선생님은 대기업이라고 했지만 소희(김시은)는 하청 아니냐면서 웃더니 옷을 빼입고 면접을 보러 간다. 다음날 출근해 소희가 하는 업무는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멘트였다. 걸려온 콜을 받는 소희는 갖은 욕설과 시비와 성적 모욕을 들으며 시달린다. 열여덟 소희는 첫 직장(현장실습)에서 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오프닝은 소희가 열심히 자신의 꿈을 위해 혼자 연습실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다. 소희는 어떤 아이였을까. 소희의 죽음을 파헤치는 형사처럼 '소희를 알고 싶다'. 


꿈이 있던 소희

소희는 지하 댄스실에서 안무 연습을 한다. 유선 이어폰을 끼고 춤을 춘다. 거친 호흡을 뱉으며 자신의 춤 영상을 찍는다. 틀리는 동작을 계속 연습하며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는다. 춤에 진심이다. 소희는 왜, 이곳에서 춤을 췄을까. 내일이면 그만 둘 이곳에서. 소희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춤출 때였다. 춤추면서 가장 행복했을 소희. 나중에 소희는 핸드폰의 기록들을 모두 삭제한다. 다운받은 앱, 영상, 메시지, 톡 내용, 사진을 모두 지운다. 단, 이 동영상만 빼고. 



의리 있는 소희

소희 친구인 준희(정회린)는 먹방을 찍는 유튜버이다. 준희도 학교에서 소개해 준 곳에 취업했는데 그만두고 싶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준희는 자신의 일상을 찍는다. 준희는 곱창집에서 라이브를 켠다. 한 40명 정도 들어왔다. 소희는 자신도 나오냐며 해맑게 웃는다. 옆 좌석에서 술 마시던 남자 둘이 요즘에는 개나 소나 다 유튜버라며 비아냥거리자 소희는 그 테이블로 달려간다. 겁도 없이. 정작 욕을 먹은 준희는 의기소침하며 가만히 있는데 소희는 "네가 별풍선이라도 하나 쏴줘봤냐"라며, 거침없이 돌진한다. 친구를 위해 분노할 줄 아는 소희는 들은 걸 못 들은 척하지 않는다. 소희는 깡이 있다. 비겁하지 않는 소희. 



속이 깊은 소희

소희는 외동딸(?)로 나온다. 오유진 형사(배두나)가 소희 방을 들여다보는데 컴퓨터도 태블릿 PC도 없다. 이미 핸드폰은 저수지에 빠져있고, 단서를 찾을 길이 없다. 감독은 인터뷰에서 왜 소희에게 컴퓨터가 없냐고 묻자 그런 걸 사줄 형편이 안 되는 가정이었다고 답했다. 소희의 방은 단출했다.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택한 소희.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좋아하는 부모에게 자신의 상황을 속속들이 말하기 어렵다. 말하면 엄마가 속상할 거 같아서. 손목을 긋고도 술에 취해서 그랬다며 엄마를 안심시킨다. 회사에서 권고를 받고도 엄마에게는 휴가라고 말하는 속 깊은 소희. 



정의로운 소희

눈이 내리던 날 이준호(심희섭) 콜센터 팀장이 자살하자 소희는 혼자 문상을 간다. 내부고발서를 쓰고 자살한 팀장에게 문상 가지 말라는 회사의 지침이 내려졌지만 소희는 찾아간다. 다른 직원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다. 검은 옷이 없어 교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가는 소희다. 이 팀장의 아내는 소희를 보더니 흐느낀다. 회사는 팀장 사건을 묻기 위해 팀원들에게 발설하지 말라는 각서를 받는다. 소희는 혼자 서명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 버티고 버티다 결국 각서에 사인을 하고 달라지는 소희. 소희는 이런 상황이 역겹다. 

 


변해가는 소희

"나, 이제 대기업 사무직원이다"며 좋아했던 소희가 간 곳은 통신사 고객의 해지를 방어하고 가입을 유치하는 콜센터였다. 해지하고 싶다고 전화를 거는 고객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말을 돌리고, 최대한 미루며 어떡해서든 방어를 해야 하는 게 소희의 업무다. 화가 난 고객들은 막말을 퍼붓는다.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야근도 하고, 실적에 따라 욕을 먹는다.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소희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던 중이었다. 실적 1위를 찍었지만 돌아오는 건 속이고 속이는 어른들이다.


분노하는 소희

 소희는 악이 받쳐 새로 온 이보람 팀장(최희진)을 들이받는다. 팀장에게 따진다. 팀장의 명치를 때리며 인센티브를 조목조목 따진다. 인터넷 해지 방어팀이 아니라 해지안내팀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소리친다. 자기가 인터넷 깔고 해지한다는데 왜 뭣하러 28번씩이나 전화를 돌리게 만드냐고 분노한다. 선배님 선배님 했던 친구에겐 귀싸대기를 날린다. 모두가 X같은 세상이다. 



절망하는 소희 

소희가 믿을 건 담임 선생님뿐이다. 선생님은 내가 회사 앞까지 가서 얼마나 싹싹 빌은 줄 아느냐며 회사가 다 그렇다고 소희에게 참으란다. "너를 믿는다"라며. 이 말이 이토록 소름 끼칠 줄이야. 형사 유진은 선생에게 찾아가 소희가 했던 일이 어떤 업무였는지 아느냐고 따진다. 만약 담임이 소희가 하는 일을 정확히 알았다면 어땠을까. 자신을 찾아와 괴로워하는 소희에게 그런 회사는 당장 때려치우라고, 다른 곳 소개해 주겠다고, 그따위 회사는 노동청에 고발감이라고 나서줬다면... 소희는 괜찮았을까. 너를 믿는다는 말에 소희는 결심한 듯 보였다. 나를 더 이상 믿지 마세요. 그럴 힘이 없는 소희.  

선택하는 소희

흐르는 강물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소희도 저렇게 흘러 흘러 떠나고 싶었을까. 아무것도 남김없이 지우고 사라지고 싶었을 것이다. 회사도 싫고, 사회도 싫다. 거부하고 싶다. 소희는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만난다. 친구들도 각자 사정이 있어 일 때문에 못 오고, 면접 보러 가고, 내일 공장 가는 첫차를 타야 해서 늦게까지 술을 마셔주지 못한다. 소희는 힘없이 삼선 슬리퍼를 신고 맨발로 걷는다. 그러더니 카스 두 병을 마시고 조용히 일어난다. 마침 눈발이 날린다. 팀장님이 가신 날도 눈이 왔었지. 소희가 손목을 그은 날도 눈이 내렸고. 눈 오는 날이 아름답고 생각했을까. 눈이 내리는 날 떠나는 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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