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형철은 이번 시화집에서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다. 시 한줄 한줄을 통해 등장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투쟁이 보였다. 타인의 상황을 알기는 어렵지만, 어떻게든 애써서 그 사람의 슬픔, 고통, 사랑에 닿아보겠다며 문장으로 의지를 비췄다. 고통은 당사자의 몫일 뿐이다. 그렇다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방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당사자의 고통이 100이라면 제3자는 10 정도 되려나... 알 수 없다. 신형철은 그럼에도 슬픔을 나눈다는 것, 위로해 준다는 것에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고 손을 맞잡아야 하지 않을까 설파한다. 고통, 사랑, 죽음, 역사, 인생, 반복에서 우리는 모든 감정을 느낀다. 시인은 그 감정을 '시'로 썼고, 그 시를 신형철은 다시 '마음'으로 돌려보냈다.
책은 챕터마다 주제에 맞는 시를 다섯 편 실었고, 신형철이 시를 해석해 주는 형식을 취한다. 그 해석은 아름답고, 어렵고, 깊다. 그는 백수광부의 아내가 부른 <공무도하가>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시는 '가장 오래된 인생과 그 고통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p.33)라고. 공무도하가에는 네 명이 등장하는데, 신형철 평론가는 그 네 명의 사정을 그리며, 그 네 명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 네 명의 마음속에 들어간다. 우리도 신형철을 따라 그 네 명의 인생과 고통을 가늠해 보며 낭독했다. '가늠한다는 것' 어쩜 이것이 시를 읽는 방법이며, 타인을 이해하는 첫걸음이지 않을까. 시에 나오는 인물을 조용히 불러보고, 입장이 되어 보고, 그 마음속에 들어가 헤아려보며 끙끙거리는 게 시를 읽는 방법이지 않을까. 우리가 슬픔을 겪을 때 같이 아파해주는 것은 이런 여정이 필요하다.
1부 <고통의 각>에는 아이를 잃은 어미의 고통, 강간을 당한 여성의 고통, 남편을 따라 죽어가는 아내의 고통, 시를 쓰며 사는 시인의 고통을 담았다. 해당하는 시로는 '공무도하가', '욥기', '에밀리 디킨슨의 시 두 편', 에이드리언 리치 '강간', 최승자 '20년 후에 지에게'를 소개한다.
2부 <사랑의 면>에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두이노의 비가', 이영광 '사랑의 발명', 나희덕 '허공 한줌', 메리 올리버 '기러기'가 소개된다. 사랑은 만질 수 있는 대상을 갈망한다. 사랑은 지극히 육체적이다. 특히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을 낭독할 땐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을 아주 조금 가늠할 수 있었다.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p.92) 시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다. '사랑의 발명'은 내게 어미가 자식을 잃고 자신의 심장을 꺼내 취해 말하는 듯 아프게 읽혔다. 그러니 어미에게는 단 한 번 만져보고 싶은 자식의 몸이 필요하다.
3부 <죽음의 점>은 김시습 '나는 누구인가', W.H. 오든 <장례식 블루스>, 황동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 윌리스 스티븐스 <아이스크림의 황제>, 한강 <서시>가 실렸다. 낭독하면서 '아이스크림의 황제'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장면이 잔칫날 같았는데, 장례식 날이었다. 이 마을은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대접한다고. OO샘이 어린아이들은 장례식을 기다렸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날이었으니. 아이스크림은 녹아버린다. '소멸'의 속성을 가졌듯 인간도 언젠가는 아이스크림처럼 사라질 것이다. 점처럼 말이다. 그러나 점점점점점..... 점은 모이면 덩어리가 된다. 죽음은 사라지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마음에 덩어리로 남을 것이다. OO샘께서 마음 속 '죽음의 점'은 크기가 모두 다를 것이라고 했다.
4부 <역사의 선>은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 두 편',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밥 딜런 '시대는 변하고 있다', 신동엽 '산문의 시'가 들어 있다. 5부 <인생의 원>은 이성복 '생에 대한 각서', 레이먼드 카버 '발사체', 김수영 '봄밤', 필립 라킨 '나날들',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이었다. 이 중 총 다섯 편을 낭독했다. 우리는 레이먼드 카버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방에서 점잖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잠시 동안 뭔가 다른 것이 들어왔었던 방식에서.'(p.217)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OO샘은 말했다. 레이먼드 카버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서로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만남을 글로 소중하게 남겼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을 읽고 '발사체'를 쓴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을 읽고 눌러왔던 원장면을 떠올렸다는 솔직한 레이먼드 카버. 둘의 우정이 글이라는 선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쌀쌀한 2월에 <인생의 역사>를 읽고, 필사하고, 낭독하며 움직였다. 신형철은 고통, 사랑, 죽음, 역사, 인생이란 단어에 각/면/점/선/원으로 합을 맞췄다. 고통은 각처럼 아프고, 사랑은 면처럼 넉넉하며, 죽음은 점으로 소멸되고, 역사는 선으로 이어지며, 인생은 원으로 만난다. 목차에 대한 나의 해석이 상투적이나 그것이 나의 한계이기도 하다. 시를 통해 사람을 알고 인생을 배울 수 있다면... 이 한 권을 꼭 움켜쥐어야겠다.
(신청해 주신 선생님들~~고마웠습니다. 사랑해요.)
신청계기
2023년에는 글을 써보자 마음먹었는데 막상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러다 샛별쌤의 필사 수업을 알게 되어 글쓰기를 위한 밑바탕 시간으로 신청하게 되었어요~^^(O희 님)
반갑습니다. 북클럽에 관심 가지고 있던 차에 샛별쌤의 블로그에서 필사와 낭독이라는 형식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네요. 신형철 작가님의 글은 처음 접하고 시에 대해서도 문외한이지만 재미나게 접근해 봅니다.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O아 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책 나오자마자 사고 북토크 다녀오고 아껴읽다 필사와 낭독해 보고 싶어 합류했습니다. 신형철 덕질은 계속됩니다.~~~~~♡(O순 님)
경향신문 칼럼 몇 편 보고 신형철 작가님께 반했는데, 진희쌤이 찐 팬인 것 같아 완전 동지를 만난 기분으로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샛별쌤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겠습니다^^(O정 님)
안녕하세요~ 좋은 글 천천히 음미하며 읽고 싶어 신청했습니다. ^^(O숙 님)
안녕하세요! 필사하고 낭독하는 시간이 좋아서 신청했습니다. 이번에 진희샘이 소개해 주신 책을 통해 또 어떤 여행을 하게 될지 기대됩니다☺(O인 님)
안녕하세요~ 인스타에서 보고 신청했습니다 책 보는 것도 좋아하고 필사도 좋아해서 참가했어요 반갑습니다�(O미 님)
책을 읽어도 가물가물 거리고 좋은 문장 오래 붙들고 싶어 필사의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O 영 님)
저는 이 책에 소개된 시와 신형철의 문장을 꽉 껴안고 <인생의 역사> 심연으로 내려가보려고 합니다. 2월 한 달 동안 매우 진지하고 몹시 질척거릴 예정입니다. 꼴사납더라도 그러려니 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함께 앓으면 더 좋을 테고요.(O 원 님)
반갑습니다. 시는 여전히 어렵지만 신형철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도반님들과 함께 낭독과 필사를 즐기려고 합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O필 님)
안녕하세요. 신형철 님 책은 처음이에요. 워낙 이야기는 많이 들어 도전합니다. 근데 첫 책이 시에 관한 거라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그리고 손 필사도 처음이라 어찌해나갈지 모르겠지만, 기대됩니다. ^^(O경 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 책이 궁금했고 혼자서는 잘 읽지 않는 분야라 신청했습니다~! (O기 님)
신형철 작가의 작품이 처음이라 가슴이 설렙니다~^^ 필사하고 낭독 잘 따라가겠습니다♡(O경 님)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후 시화집은 처음이라 도전과 함께를 믿고 참여합니다. 만남을 역사로 만들어 봅시다.(O자 님)
혼자 읽기는 안돼서 함께 읽기 도전합니다.(O빈 님)
이진희 선생님의 낭독+필사 모임 애정 합니다. 매번 넘 좋은시간이었어요 이번에도 기대 중입니다. 그리고 이 책 시가 들어가 있어서 낭독으로 더욱 좋은 거 같아요^^필사도 함께요~~(O영 님)
‘시는 나를 사랑한다. 시가 나를 사랑한다.’라는 문장을 읽을 때 눈물이 주르륵 흘렀어요. 괜찮은 글을 쓰고 싶은 제 마음이 알아차려 버렸거든요 ‘사랑한다’라는 단어가 왜 두 번 필요했는지. ‘글’이라는 어정쩡한 탈을 뒤집어쓴 채, 영글기에 앞서 커지기만 하는 마음이 소곤거려요. 저 문장 빌려오라고. 너도 말해봐.
“글은 나를 사랑한다. 글이 나를 사랑한다.”
아닌데. 이건 눈물도 안 나고 용기도 안 나는데.
‘이 책의 가장 심오한 페이지들에는 내 문장이 아니라 시만 적혀 있을 것이다’라는 문장을 만나고 이유를 알았어요. 내가 ‘시’라면 이 사람을 사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고, 자신의 아름다운 면을 찾아 세상에 소개하면서 기꺼이 주인공 자리를 내어 주는 사람. 부끄러워진 저는 글을 좀 더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좀 더 써봐.
“네!”
“네.” (O원 님)
책 속의 시들이 너무 가슴 아파요. 어제는 '사랑의 발명'을 읽고 넘 울었고 오늘은 '장례식 블루스'를 읽고 사색하게 되네요. (O아 님)
'추억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착이 빚은 일종의 정지 상태라는 것'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을수록 자꾸만 추억을 곱씹게 되는 것 같다. 유년의 기억과 청소년기, 결혼, 자녀로 확장되어온 장년기, 직업을 통한 사회적 관계 등 시간과 장소로 연결된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하다. '애착'이란 단어가 나를 멈추게 한다. '애착으로 인한 정지 상태'. 내가 추억하고 있는 것들이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물처럼 스며든 장면일 수도 있겠지만 나의 애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다는!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 살면서 그렇게 고통스럽다거나 애절하거나 부끄러움은 붙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사물과 세계의 본질에 가까이 이를만큼 고독해 보지 않아서인가. 어렵다. (OO 님)
홀로움을 알듯 모를 듯하다. 하여 황동규의 시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니>에서 화자가 개미를 바라보는 마음을 상상해 본다. 아버지의 체취가 담긴 옷과 양말을 고스란히 걸치고 우두커니 개미를 보고 있을 그 마음을. 아마도 화자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수없이 준비했을지도 모르겠다. 추억이 너무 아픈 기억이거나 절절한 그리움이 되지 않을 만큼 추억하고 또 추억했을지도. 추억의 시간들이 그저 영화처럼 덤덤하게 넘겨지는 순간이 오면 아, 내가 혼자가 되었구나, 아버지는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구나, 하고 너무 아프지 않게 받아들이게 되었을지도. 나는 아직 부모님과의 이별을 경험하진 않았지만, 시절 인연들과 이별을 겪으면서 아팠던 마음들이 있다. 힘들게 외로운 시간들도 있었지만 한때 마음을 다했던 그 시간의 진심이 나의 외로움을 아름답게 지켜줄 때가 있다. 과거의 관계에 감사하고, 현재의 관계에 애정을 다할 때,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흘러간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이해할 때, 외로움이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때로는 죽을 만큼 외롭다가도 때론 눈물겹게 충만한 순간들이 삶 속에서 계속 교차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OO 님)
낭독을 하며
-신형철을 알게 되어 기쁘다. 같이 낭독을 하니까 다르게 읽히고, 샘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들을 수 있어 좋다.
-'아픔의 각'이라는 파트는 뾰족한 것으로 콕콕 찌른 것처럼 아팠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깊은 작가다. 어쩌면 시도 타인 같다. 시를 이해하기 어렵듯 타인을 이해하는 것도 어렵다. 시의 행간의 의미를 찾고, 시를 한 줄 한 줄 읽어나가듯 타인을 알아가는 것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픔'을 모르겠다고 말하는 신형철의 솔직한 태도가 좋다.
-'슬픔에 대한 자신감'이라는 표현처럼, 이제 조금은 슬픔이 오더라도 시를 읽고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단상을 쓰다 안 풀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다.
-여러 선생님들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훗날 <인생의 역사> 낭독 시간을 생각하면 참 따스한 시간이었다고 기억될 것이다.
-밥 딜런의 시 중에서 '지금 맨 앞인 자가 훗날 맨 끝인 자가 되리라.'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시대가 변화고 있고, 맨 끝인 자의 잠재력도 생각해 본다.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부분에서 '부끄러움'을 생각했다. 어느 정치가의 '부끄러움'도 생각나고, 나 자신의 부끄러움이 생각났다.
-레이먼드 카버의 시를 처음 읽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발사체'라는 시가 인상적이었고, 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라는 부제도 특이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평에 답가를 보내듯 쓴 시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방에서 점잖게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잠시 동안 뭔가 다른 것이 들어왔었던 방에서' 라는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