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전집 중 〈유산〉, 하늘연못, 2006. (440쪽 분량)
'유산 The Legacy'
만약 죽음을 생각한다면 가족/친구들에게 유산으로 무엇을 남길까. 버지니아 울프가 쓴 단편 <유산>의 주인공 안젤라는 남편에게 '녹색가죽으로 장정한 열다섯 권의 일기장'을 남겼다. 비서 시시 밀러에게는 진주 브로치를 친구들에게는 애정의 징표로 반지, 목걸이를 남겼다. 남편은 아내의 일기장을 읽고 진실과 마주한다. 안젤라는 결혼할 때부터 일기를 썼다. 남편과의 결혼생활을 일기에 적었다. 일기에는 베니스로 여행 가서 플로로리안스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일, 어려운 이웃을 만나고 도와준 일, 남편과 있었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선택도 일기에 썼다.
남편은 아내 안젤라가 남긴 일기장을 훑어보다가 추억에 잠긴다. 이어 일기장에 B.M.이라는 이니셜이 등장하자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길버트는 B.M.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궁금했고, 일기장에 적힌 문장을 근거로 B.M.을 자신만의 이미지로 상상한다. “땅딸막한 몸집, 텁수룩한 턱수염, 붉은 넥타이, 그런 작자들 특유의 옷차림……”(p.435)이라면서. 길버트는 “B.M.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길버트는 그런 부류를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부류를 싫어했다.”(p.435)고 말한다. B.M.에 대한 길버트의 판단은 편협하며 자기 멋대로 공상한다. 아내의 일기 문장에 대해 남편이 해석하는 부분이 이 소설의 백미다. 길버트의 판단을 보며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정치가였던 길버트 클랜든은 상류계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권위적이고 자기애가 강하고 우월의식 가득하다. 평생 정치가의 아내로 살면서 안젤라는 내조에 최선을 다했다. 안젤라의 삶은 남편에게 귀속되어 있었다. B.M.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젤라는 왜 B.M. 끌렸을까. 안젤라는 B.M.과 첫 만남을 하게 되고 그와 사회주의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인다. B.M.이 상류층을 비난하는 부분에 대해 안젤라는 그를 설득한다. 그리고 둘은 친해진다. B.M.과 안젤라는 런던탑에 가기도 하고 B.M.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하녀와도 악수할 줄 아는 남자다. 안젤라는 그가 빌려준 『칼 마르크스』, 『다가오는 혁명』을 읽으며 그의 사상에 물든다. 그는 혁명을 꿈꾸는 남자였다. 안젤라는 남편과 B.M. 사이에서 갈등하며 점점 B.M.을 사랑한다. 그가 그녀에게 함께 런던을 떠나 이집트(?)로 가자고 하지만 안젤라는 “나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B.M.은 죽음을 선택했고, 안젤라도 그를 따라간다. 그녀는 왜 선택을 못했을까. 죽을 만큼 사랑하면서.
안젤라는 런던 피커딜리 광장에서 다가오는 차에 몸을 던졌다. 남편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일기를 읽은 길버트는 그녀의 죽음이 ‘사고’가 아닌 ‘자살’임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았을 때 남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짧은 분량이지만 구조도 탄탄하고 캐릭터도 입체적이다. 안젤라와 길버트를 통해 각가의 부부관계를 생각해 보게 된다. 남편이 아내에게 대했던 태도도 찾아보며
토론하며 나온 이야기들
-재미있다. 가독성 좋다.
-버지니아 울프 책이라 겁먹었는데 유산은 좋았다.
-부인이 100% 남편을 맞추며 살았다.
-영국 전형적인 귀족계층의 우월의식을 볼 수 있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아내가 즉사했다고 알았을 텐데도 남편은 애도의 모습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길버트는 출세지향적인 남자다.
-감정불능자 같다.
-아내의 일기를 읽고 자기 멋대로 해석한다.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길버트의 시각이 보였다.
-부인 안젤라는 정말 착각하고 있는 남편이다.
- B.M.도 남편과 비슷한 성격이지 않을까.
-길버트와 안젤라의 부부 사이가 처음에는 좋았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아내가 쓴 일기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는 남편에 대해
-남편이란 인물에 대해
-남편과 B.M.을 비교한다면.
-남편이 비서 시시 밀러를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 B.M.에 대한 길버트의 판단에 대해.
-정치가의 아내로 사는 삶에 대해.
- B.M.이란 인물에 대해.
- B.M.이 선택한 죽음에 대해.
-안젤라가 자살을 선택한 행동에 대해. -남편에게 물려주고 싶은 유산이 있다면.
발췌
"시시 밀러에게."
길버트 클랜든은 아내의 거실의 작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반지들과 브로치들 사이에서 진주 브로치를 집어들고 거기 새겨진 글을 소리내어 읽었다. "시시 밀러에게, 내 사랑을 전하며."(p.427)
친구들에게 줄 선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남겨놓고.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던 것 같았다.(p.427)
그래, 정말 이상한 일이야. 어떻게 모든 걸 그렇게 완벽하게 준비해 두었을까?(p.428)
그녀는 그에게는 일기장 말고는 특별히 남긴 것이 없었다. 녹색 가죽으로 장정한 일기장 열다섯 권이 그녀가 쓰던 필기용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와 결혼할 때부터 일기를 썼다. 함께 살면서 싸운 적도 드물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싸움이라기보다는 말다툼이었다- 그 일기가 원인이 될 때도 있었다. 그녀는 일기를 쓰고 있다가 그가 들어오면 얼른 덥거나 손으로 가리곤 했다.
“안돼요. 절대 안 돼요.”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내가 죽으면 모를까.”
그러더니 결국 유산으로 그 일기장을 남긴 것이다. 그녀가 살아 있을 때에 둘이 공유하지 않은 것은 그 일기장뿐이었다.(p.428)
미스 밀러는 처음에는 말문을 열지 못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앉아 있기만 했다. 그러다가 이윽고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용서하세요, 클랜든 씨.”
그는 중얼거리듯 대꾸했다. 물론 그는 이해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의 아내가 그녀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었다. (p.429)
이제 그가 할 일은 아내가 남긴 그 브로치를 그녀에게 전달하는 것뿐이었다. 좀 어울리지 않는 선물같았다. 약간의 돈이나 타자기를 남겼더라면 더 좋았을텐데......(p.430)
안젤라가 죽기 한두 주 전에 사랑하던 오빠가 죽었지...... 무슨 사고로 죽었던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p.430)
“클랜든 씨.”
그녀는 처음으로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동정하면서도 뭔가를 갈망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당황했다. “언제든지 제가 도울 일이 있다면 부인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그녀는 그러고는 가버렸다. 그녀의 말과 그 표정은 정말 뜻밖이었다. 그녀가 필요할 것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의자로 돌아가는 그에게 문득 재미있고 공상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그 동안 내가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는 동안, 그녀가 소설가들 말마따나 남몰래 나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는 걸어가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벌서 오십이 넘었다.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아직 준수했다.
“불쌍한 시시 밀러!”
그는 빙그레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아내하고 이런 얘기를 하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그는 본능적으로 안젤라의 일기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 곳이나 펴서 읽어 보았다. (p.431)
“B.M.은 상류층을 맹렬하게 비난했다…… 나는 그 뒤로도 그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는 너무 편협했다.” B.M.은 남자였군……이른바 ‘지식인’이라고 자칭하는 작자의 하나인 게 틀림없어. 안젤라 말대로 성격이 격하고 편협한. 그녀는 그를 집으로 초대한 것 같았다.
“B.M.이 만찬회에 왔다. 그런데 미니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녀의 그런 말투는 그의 상상에 또 다른 살을 붙였다. B.M.이라는 작자는 하녀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미니하고 악수를 나누었으니까. 숙녀의 거실에서 자신의 의견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 비굴한 노동자 계급인 것 같았다. B.M.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길버트는 그런 부류를 잘 알았다. 그리고 그런 부류를 싫어했다. 또 그 작자가 등장했다.
“B.M.과 함께 런던탑에 갔다…… 그는 혁명이 임박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헛된 행복을 꿈꾸고 있다고 했다.” 그래, 그랬겠지. 길버트는 그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모습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땅딸막한 몸집, 텁수룩한 턱수염, 붉은 넥타이, 그런 작자들 특유의 옷차림…… 평생 동안 단 하루도 성실하게 일해본 적이 없는 작자들…… 안젤라는 똑똑하니까 그런 작자의 속을 꿰뚫어 보았겠지? 그는 계속 읽었다. (p.435)
“B.M.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날품팔이를 했다고 한다…… 그 생각을 하면 도저히 이렇게 사치스럽게 살 수가 없다…… 모자 하나에 3기니나 주고!”
그녀로서는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그 작은 머리를 쥐어짜며 고민하지 말고 나하고 의논했어야지! 그는 그녀에게 『칼 마르크스』, 『다가오는 혁명』 같은 책들을 빌려주었었다. B.M.이라는 머리글자가 자꾸자꾸 등장했다.
-“저녁을 먹고 났을 때에 B.M.이 불쑥 나타났다. 다행히도 나는 혼자 있었다.”
바로 1년 전이었다. (p.437)
-“B.M.과 단 둘이서 식사를 했다…… 그는 몹시 초조해했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잘 알 만한 때라고 말했다…… 열심히 설득했지만 그는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만일 내가……” 그 나머지 부분은 다 지워져 있었다.
“이집트…… 이집트…… 이집트…… ”라고 덮어 써놓아서 단 한 글자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해석은 한 가지밖에 있을 수 없었다. 그 나쁜 자식이 그녀에게 정부(情婦)가 돼 달라고 했던 것이다. 그것도 그의 방에서! 길버트 클랜든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는 얼른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그녀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이제 더 이상 머리글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라고 되어 있었다.
“그가 또 왔다. 나는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고 했다…… 내게서 떠나달라고 했다.” 바로 이 집에서 그녀를 윽박질러? 그녀는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을까? 왜 망설였을까? (p.437)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고는 빈 페이지가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답장이 오지 않는다.”
또 빈 페이지가 계속되었다. 그리고 또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
“결국 그는 하겠다고 위협하던 걸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그래서 어떻게 됐지? 그는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모두 공백이었다.그러다가 그녀가 죽기 바로 전날 쓴 일기가 있었다.
“나도 그럴 용기가 있을까?”
그게 끝이었다.(p.438)
"됐소!" 그는 유산을 받았다. 그녀가 진실을 이야기해 준 것이다. 그녀는 애인을 따라 연석에서 차도로 뛰어들었다. 그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연석에서 차도로 뛰어들었던 것이다.(p.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