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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샛별 Mar 10. 2023

[고전문학BOOK클럽] 하먼 멜빌 <필경사 바틀비>후기

샛별BOOK연구소


별점은 3.8부터 4.8까지 나왔습니다. '필경사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필경사로 취직하고 자신의 업무인 필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바틀비. 우리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작가는 바틀비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지 않습니다. 책에 나오는 하나의 단어, 한 줄의 표현만으로 바틀비의 행동을 풀어나가야 할 때가 있네요. 


바틀비는 고용주인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요. 우리는 상사에게 이런 말을 거의 하지 않고(못하고) 근무를 합니다. 사표를 던지지 전까지는요. 그러니 어떤 일도 하지 않겠다는 바틀비가 부담스렀습니다. 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반면, '택한다'는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합니다. 수동적인 노동자 위치에서 자유의지를 말하는 자로 바뀌니까요.


그러나 바틀비가 매번 시키는 일에, 요구에, 상례에, 상식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을 하는지 난감합니다. 조금의 단서로 그 개연성을 찾아봅니다. 바틀비가 처음부터 작정하고 필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고전문학으로 살아남기 어려운 '주인공'이 되었을 겁니다. 

바틀비는 ‘처음에는 놀라운 분량을 필사했’(p.27)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필사에 굶주린 것처럼 문서로 실컷 배를 채우는 듯했다. 소화하기 위해 잠시 멈추는 법도 없었다. 낮에는 햇빛 아래, 밤에는 촛불을 밝히고 계속 필사했다. 그가 쾌활한 모습으로 열심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매우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창백하게, 기계적으로 필사했다."(p.27) 화자가 바틀비를 보고 쓴 부분입니다. 이랬던 바틀비가 필사본 검증을 하자고 했을 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하죠. 변호사는 필사원들이 쓴 필사를 검증해야 합니다. 이건 누구의 일일까요? 그래서인지 변호사는 필사를 시킬때는 "해주겠나?"라고 하지만, 검증을 시킬땐 "해주겠냐?"로 묻지 않고 필사검증을"'도와주겠나?"라고 합니다.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하죠. 자신의 일인 필사는 하겠지만 검증까지는 못한다고 하는 거 같습니다.


이후 바틀비가 아무것도 안 하고 공상에 잠겨있는 것을 알아챈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필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습니다. 그러자 바틀비는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세요?”(p.57)라고 말합니다. 바틀비는 왜 이런 말을 할까요? 변호사가 자세히 보니 바틀비 한쪽 눈이 이상해져 있습니다. '그의 눈이 흐릿하고 멍해 보이는 것을 알아챘다'(p.57) 그러나서  변호사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나와 함께 지낸 몇 주 동안 침침한 창가에 비할 데 없이 근면하게 필사를 해서 그의 시력이 나빠졌을지 모른다'(p.57) 하고요. 



표지를 보면 바틀비의 한쪽 눈이 이상한 것을 눈치채실 겁니다. 삽화를 보면 바틀비의 오른쪽 눈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바틀비는 더 이상 필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왔던 것이죠. 필사를 해야할 바틀비는 자신의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면 쿨하게 떠나야 할 텐데 거처할 곳도 없는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합니다. 변호사는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을 기다리다 바틀비의 눈을 봅니다. 그의 눈이 언뜻 보면 호전된 거 같다고 변호사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체국에 심부름을 보내려 합니다. 당연히 바틀비는 하지 않겠다고 하죠. 변호사는 '여러 차례 거듭된 나의 재촉'(p.59)에 필사를 그만두었다고 말합니다. 


화들짝 놀란 변호사는 다급해서 말합니다.


"뭐! 자네의 눈이 완전히 낫는다고 해도, 아니 그전보다 더 좋아진다고 해도, 그래도 필사를 하지 않으려는 건가?" 바틀비는 "저는 필사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난감한 변호사는 그를 결국 내보내려 한다. 엿새의 시간을 줄테니 그 기일내에 사무실을 떠나라고 통보한다. 그러나 바틀비는 붙박이처럼 그대로 있습니다. 변호사는 화가 나서 “이제 다시 필사를 계속할 준비가 되었나? 자네 눈이 회복되었어? 오늘 오전에 짧은 서류를 필사해 주겠나? 아니면 몇 줄 검증하는 걸 돕겠나? 아니면 요 앞의 우체국에 좀 다녀올 텐가? 무슨 일이든 자네가 사무실을 떠나기를 거부하는 구실이 될 일을 하긴 하겠는가 말이야.”(p.67) 라고 합니다. 바틀비는 어떤 말도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은둔처로 물러갑니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를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도 바틀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바틀비의 입장보다 변호사의 입장에 감정이입하며 읽기도 했고요. 최대한 바틀비의 상황을 문장을 끌어와 이해해 보려고 했습니다. 바틀비는 워싱턴 사서 우편물 취급 담당이었는데 갑자기 해고를 당하고 변호사 사무실로 왔던 것입니다. 사무실에서 유용한 인간이 되지 못한 바틀비는 교도소로 이송됩니다. 그리고 곡기를 끊는 선택을 하고 쓸쓸히 교도소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바틀비의 상황을 보면 친구도 친지도 가족도 없는 거 같습니다. 아니면 연락이 닿지 않던가요.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토론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토론하며 선생님들의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변호사의 입장, 바틀비의 상황, 사무실의 풍경, 고용주의 태도, 노동자의 위치,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선택한다는 문제, 자유의지 등을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토론에 참석해 

주신 샘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책은 여러 번 토론해야 할 책입니다.^^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바틀비를 대하는 변호사의 감정 변화에 대해

-바틀비라는 인물에 대해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는 바틀비의 말에 대해

-터키/ 니퍼스/ 진저너트/ 필경사 바틀비/ 변호사라는 인물에 대해

-인물들이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에 대해

-월스트리트 한 법률사무소 풍경에 대해

-상례, 상식, 요구라는 말에 대해

-바틀비의 말 '택하다'를 따라 하는 직원들의 모습에 대해

-노동과 인간의 연관성에 대해

-인간의 '유용성'에 대해

-저임금, 단순노동을 해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해

-'특별하지'않다는 바틀비의 말에 대해

-필경사 바틀비의 죽음에 대해

-새로 온 건물주의 행동에 대해

-그 외





발췌


나는 초로에 접어들었다. 지난 삼십 년간 종사해온 소소한 일의 특성으로 인해 나는 흥미롭고 별스러운 사람들을 남달리 자주 접해왔다. 내가 알기로는 지금까지 그들에 관해서 기록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바로 법률문서 필사원 혹은 필경사들이다. 나는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그런 이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다. (p.7)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으므로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요컨대 열두시 이후에는 식사를 마치면 사무실로 오지 말고 집에 가서 초저녁 차 마시는 시간까지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오후의 헌신을 고집했다. (...) 변호사님, 이 머리 좀 보세요. 전 늙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려면 오후에 떨어뜨린 잉크 얼룩 한둘 때문에 흰머리가 심하게 압박받아서는 안 되겠죠. 비록 서류를 얼룩지게 할지언정 노년은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삼가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만, 변호사님, 우리는 함께 늙어가고 있습니다.(p.16) 


니퍼스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몰랐다. 그가 원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필경사용 책상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병든 야심은 그가 종잡을 수 없는 자들의 방문을 좋아한다는 사실에서도 나타났다. (...) 니퍼스는 그의 동료 터키처럼 내게 매우 유용한 사람이었다. 그의 필사는 빠르고 깔끔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만 내키면 흠잡을 데 없는 신사처럼 행동했다. 이에 덧붙여 그는 옷도 언제나 신사처럼 입었다. 이것은 의도치 않게 내 사무실의 평판에 도움이 되었다.(p.20) 

바틀비라는 이름의 핼쑥한 젊은 필경사와 그의 책상이 짧은 시간 안에 내 사무실의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는 것, 그가 폴리오(백 자)당 사 센트라는 통상적인 필사료를 받고 일하지만 자신의 필사본을 검증하는 일에서 영구히 면제되었다는 것, 그 임무가 터키와 니퍼스에게 그들의 월등한 예리함에 대한 경의의 표시처럼 전가되었다는 것, 더욱이 심부름이라면 어떤 것이든 가장 사소한 것도 전술한 바틀비에게 시킬 수 없다는 것, 그런 일을 해달라고 간청해도 그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고 말하리라는 것. 다시 말해 그가 딱 잘라 거절하리라는 걸 모두가 받아들였다는 것임을 말이다.(p.42)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인간 본성에 공통된 결점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찌 그런 비뚤어진 옹고집에 직면해서, 또 그런 무분별을 보고 격렬히 항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받은 그런 유의 거절은 매번 더해질 때마다 내가 그런 부주의를 반복할 확률을 줄이는 데 공헌할 뿐이었다.(p.43)


물론 때로는 내 영혼을 걸어야 한다 해도 돌연 그에 대해 발작적인 분노가 이는 것을 피할 수 없었다. 내 사무실에 머물면서 바틀비 자신이 정한 안묵적인 조건들, 이 조건들을 이루는 그 모든 괴벽, 특권, 전례가 없는 의무의 면제 등을 항상 염두에 두기가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이다.(p.43)


그는 카르타고의 폐허 가운데 침울한 생각에 잠긴, 결백하고 변화한 모습의 마리우스였다. (p.47)


나는 필시 그를 난폭하게 사무실 밖으로 내쫓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더라도 실제로는 서석고로 만든 창백한 키케로 흉상을 내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p.30)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동정심은 때로 고통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런 동정심이 효과적인 구제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으면 상식은 영혼에게 동정심을 떨치라고 명한다. 그날 아침에 본 것으로 인해 나는 그 필경사가 선천적인 그리고 치유할 수 없는 장애의 희생자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에 물질적인 원조를 줄 수 있겠지만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육신이 아니었다.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의 영혼이었으며 나는 그의 영혼에 닿을 수 없었다. (p.50) 


“않는 편을 택한다고?” 니퍼스가 이를 갈며 말했다. 그러곤 이번에는 나를 향해 말했다. “변호사님, 제가 변호사님이라면 그가 택하게 하겠습니다. 그에게 우선권을 주겠다고요. 저 고집불통 노새에게 우선권을! 변호사님, 지금 그가 안 하는 편을 택한다는데 그게 뭐죠?” 바틀비는 손발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나는 니퍼스에게 말했다. “미스터 니퍼스. 나는 자네가 지금은 물러나 있는 편을 택하겠네.” 어찌된 일인지 나는 최근에 딱히 적절하지 않은 온갖 경우에 나도 모르게 ‘택한다’는 말을 사용하는 습관이 들었다. 그 필경사와의 접촉이 이미 내 정신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걱정이 되었다.(p.55) 


매우 언잖고 부루퉁한 얼굴로 니퍼스가 자리를 뜨자 터기가 덤덤하고 공손하게 다가왔다. “변호사님, 삼가는 마음으로 말씀드립니다만, 어제 제가 여기 바틀비에 대해 생각해 봤는데요, 그가 매일 좋은 에일 맥주를 한 잔씩 마시는 편을 택하기만 하면, 그를 바로잡고, 그가 자신의 서류를 검증하게 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흥분해서 말했다. 

“그러니까 자네도 그 말을 입에 담는군”(...)

“아, 택한다는 말이요? 아 그렇죠…… 이상한 말이죠. 저는 그 말을 절대로 쓰지 않는데요. 하지만, 변호사님, 제가 말하려던 것은 말입니다. 만일 그가 매일 좋은 에일 맥주를 한 잔씩 마시는 편을 택하기만 하면……”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터키, 제발 좀 물러가 있게” 

“아,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제가 그래야 한다는 편을 택하신다면야.”(p.56)




“아니, 어째서? 더 이상 필사하지 않겠다고?”

“네” 

“이유가 뭐지?”

그가 냉담하게 대답했다. 

“그 이유를 스스로 보지 못하세요?”나는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눈이 흐릿하고 멍해 보이는 것을 알아챘다. 그 순간, 그가 나와 함께 지낸 몇 주 동안 침침한 창가에 비할 데 없이 근면하게 필사를 해서 그의 시력이 나빠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p.57)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그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었다. 그가 한동안 필사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은 당연히 현명한 처사라는 것을 암시했다. 나는 그에게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건강을 위해 밖에 나가 운동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일이 있고 며칠 뒤, 다른 사원들이 모두 부재중인 상황에서 편지 몇 통을 우편으로 급히 부쳐야 할 일이 생겼다. 나는 바틀비가 다른 할 일이 전혀 없으므로 평소와는 달리 융통성을 보여 우체국에 편지를 부치러 가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래서 무척 성가셨지만 내가 직접 갔다. 


추가로 며칠이 더 흘렀다. 바틀비의 눈이 호전되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언뜻 보기에 호전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물어봐도 대답을 베풀어주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필사를 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여려 차례 거듭된 나의 재촉에 그는 필사를 완전히 그만두었음을 알렸다. 


“뭐! 자네의 눈이 완전히 낫는다고 해도, 아니 그전보다 더 좋아진다고 해도, 그래도 필사를 하지 않으려는 건가?” 

“저는 필사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p.59)

바틀비였다.

청천벽력이었다. 순간 나는, 오래전 버지니아 주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오후에 입에 담뱃대를 문 채로 여름 번개에 맞아 죽은 사내처럼 우뚝 섰다. 그 사람은 열려 있던 따스한 창가에서 죽었는데, 그 꿈같은 오후, 누군가 그를 건드려 쓰러지기 전까지 거기 그렇게 상체를 내민 채로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나는 나직이 내뱉었다.

“가지 않았군!” (p.64)


“이제 다시 필사를 계속할 준비가 되었나? 자네 눈이 회복되었어? 오늘 오전에 짧은 서류를 필사해주겠나? 아니면 몇 줄 검증하는 걸 돕겠나? 아니면 요 앞의 우체국에 좀 다녀올 텐가? 무슨 일이든 자네가 사무실을 떠나기를 거부하는 구실이 될 일을 하긴 하겠는가 말이야.” 그는 조용히 자신의 은둔처로 물러갔다. 나는 그때 신경질적인 적개심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당장은 더 이상 그것을 드러내 보이지 않도록 나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 단연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바틀비와 나, 단 둘밖에 없었다.(p.68) 



어떡하면 좋지? 나는 코트의 단추를 끝까지 잠그며 혼잣말을 했다. 어떡하면 좋지? 어떡해야 하지? 내 양심은 내가 이 사람, 아니 이 유령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하지? 나는 그를 쫓아내야만 해. 그는 떠나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어떻게? 그를 강제로 밀어내진 않을 거라고? 불쌍하고, 창백하고, 소극적인 인간, 그런 의지가지없는 녀석을 문밖으로 내쫓지는 않겠다고? (p.74)

*의지가지: 의지할 만한 곳이나 사람.


“있어보니 이 사무실에서는 시청이 너무 멀어. 공기도 좋지 않고. 요컨대 다음 주에 사무실을 옮길 계획이야. 그리고 자네의 품은 더 이상 필요가 없을 걸세. 자네가 다른 곳을 찾아보도록 지금 말해두는 것이네.”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p.75)

다시 사무실에 가보니 웬걸, 그 건물주로부터 온 편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열어봤다. 그 편지를 쓴 사람이 경찰을 불러 바틀비를 부랑자 취급해 툼스 구치소에 보내게 했다는 통지였다. 게다가 내가 누구보다도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므로 그곳에 출두해서 적절하게 사실을 진술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소식은 내게 상반된 영향을 미쳤다. 나는 처음에는 분개했지만, 결국은 거의 인정했다. 건물주는 활동적이며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기질로 내가 결정하지 못했을 절차를 택했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에서 그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유일한 안인듯했다.(p.83)


소문은 이렇다. 바틀비는 워싱턴 사서* 우편물계의 하급직원이었는데, 관련 행정기관에 뭔가 변경되는 게 있어서 갑자기 해고를 당했다. 이 소문을 곰곰이 생각할 때 나를 엄습하는 감정은 제대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사서라. 사자(死者)처럼 들리지 않는가! 날 때부터 그리고 운이 나빠서 창백한 절망에 빠지기 쉬운 사람을 상상해보면, 끊임없이 사서를 취급하고 분류해 불태우는 것보다 더 그 절망을 키우는데 적합해 보이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p.93)

*‘죽은 편지’로 현재는 지역에 따라 ‘배달 불능 우편물’(Undeliverable Mail)로 칭한다. 발신자나 수신자의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거나 제대로 기재되었어도 양쪽이 이사를 가거나 사망한다든지 해서 반송도 되지 못하는 우편물을 말한다.(p.92)


그것으로 구제를 받았을 사람은 더이상 먹지도 배고파하지도 않는다. 절망하며 죽은 자들에게 용서를,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 죽은 자들에게 희망을, 구제 없는 재난에 질식해 죽은 자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편지가 나오기도 한다. 생명의 심부름을 하는 그 편지들은 급히 죽음으로 치닫는다.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p.93) 



다음 토론책입니다:)

https://blog.naver.com/bhhmother/22302045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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