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BOOK연구소
레이먼드 카버의 모든 것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캐롤 스클레니카, 2012. 강. (900쪽 분량)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은 20세기 후반 미국 단편 작가였던 레이먼드 카버에 관한 전기다. 저자 캐롤 스클레니카는 여러 차례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다. 그녀는 십 년이 넘는 자료 조사와 수백 명의 인터뷰를 거쳐 레이먼드 전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비평가들은 레이먼드 소설이 “어딘가 텅 비어 있고 모호한 느낌”(p.8)을 주기 때문에 미니멀리즘 소설의 대부라고 불렀다. 미니멀리즘 작가는 ‘최소한’으로 ‘최대한’을 보여주는 작품을 써내는 사람을 칭한다. 카버의 대표작으로 <풋내기들>,<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춤추지 않을래?>, <대성당> 등이 있다.
책은 카버의 작품이 나오게 된 배경, 작품이 나오는 과정, 작품이 나온 후 반응, 단편에 대한 비평, 레이먼드의 반응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예를 들면 <대성당>이 출간 후 반응에 대해 『뉴스위크』지에서는 “폐허가 된 거리에서 ”(p.748) 살고 있는 인물을 묘사했다고 비평했다.
『뉴욕 타임스 북 리뷰』는 다음과 같은 찬사를 보낸다. <대성당>에서 “카버가 그려내고 있는 것은 빈약한 삶이다. 그 안에는 종교나 정치, 문화가 없고, 계급이나 인종이라는 도피처도 없으며, 강력한 풍속이나 의식 있는 반항의 지원도 없다.”(p.749)고 말이다. 교사나 작가들은 카버의 문체에 반했고, 독자들은 하층민의 삶을 다룬 소재에 열광했다. 런던의 『타임즈』는 그를 “미국의 체호프”라고 불렀다. 전기는 레이먼드 카버가 어떻게 작가라는 길을 걸어왔는지 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책은 제1부 ‘시작’엔 출생과 10대에 만난 사랑, 결혼 과정이 담겨 있고 2부 ‘모색’에선 20대 대학생활, 두 아버지의 역할, 초기 작품을 습작했던 과정이 나온다. 3부 ‘성공 그리고 불만’은 30대 왕성했던 카버의 작가 생활을 담고 있다. 편집자 고든 리시와의 만남, 알코올중독자의 생활, 단편작을 집필하는 과정이 나온다. 4부 ‘회복’은 금주를 시작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 40대의 카버를 담았다. 5부 ‘영광’은 성공한 단편작의 출판 과정, 두 번째 결혼생활, 50세에 사망하기까지 인생의 길을 담았다.
레이먼드 카버를 평생 끈질기게 괴롭힌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중독이다. 술과 담배. 마약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그를 파괴시켰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우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 레이는 결국 알코올중독자가 된다. 책은 많은 부분을 레이의 중독 과정에 할애하고 있다. 그만큼 레이와 중독은 뗄 수 없는 지독한 동반자였다. 아내 메리앤이 레이에게 경고한다. “이건 하루 네댓 잔 마시는 수준이 아냐. 이젠 술 마실 궁리를 하는 게 하루의 핵심이야. 당신은 서서히 자살하고 있어.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해.”(p.424). 레이는 길거리에서 메리앤의 머리를 짓찧어 경찰이 오기도 하고 눈가에 눈이 시퍼렇게 멍들게 만들고 ‘칼이나 불이 붙어 있는 담배’(p.423)로 아내를 위협했다.
어느 날은 메리앤 머리를 침실 모서리에 들이박아 응급실에 가기도 했다. 카버는 대학 강의 중에도 술 얘기를 하고 심지어 “너무 취해서 수업을 할 수 없을 때에는 레이는 학생들한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수업을 취소(p.470)” 시키기까지 했다. 술은 가정을 파괴시켰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레이의 두 자녀는 학교 정학을 맞고 자동차 문제, 마약과 알코올 문제까지 일으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카버의 자녀와 아내도 알코올 중독에 빠져 버렸다.
중독은 레이먼드 카버를 자기혐오에 빠지게 만들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아들을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그를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자녀에게 폭행하고 아내도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가정은 파괴되어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독은 기로에 섰다. 알코올 중독자로 남을 것인가. 회복해서 문학적 성공을 향해 갈 것인가 말이다.
레이는 금주를 선언했고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카버가 술을 끊는데 거의 삼 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끔찍한의 시간들. 술꾼이었던 시절의 부끄러움, 무기력했던 아픈 경험들은 소설의 소재로 하나둘씩 스며들어 작품으로 거듭났다. 어쩜 소설은 카버의 반성문일 것이다. 「수거자들」(한국어 번역본:수집가들)은 카버가 술을 마시던 마지막 시기에 견뎌내야 했던 ‘삶 속의 죽음’(p.508)의 기이함을 전형적으로 드러낸 작품이다.
때론 “술에 대한 예전의 강박”(p.854) 등이 되살아나 술을 시켰지만 입으로 가져가진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레이는 담배와 대마초는 포기하지 못했다. “그의 오십 년 인생 중에 사십 년 동안 담배를 피워왔고, 대마초는 이십여 년을 피워왔다. 이것들은 중독이었고, 위안이었고, 버팀목이어서-어떤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이다.”(p.844) 폐암 진단을 받고 각혈을 하면서도 수술을 받는 날까지 담배를 끊지 못했다. 폐암 수술 후 암을 제거했지만 담배는 적게 피웠고 대마초는 브라우니에 넣어서 먹었다. 레이의 암은 재발됐고 레이는 재수술을 거부했다.
책은 가족사를 상세히 다룬다. 특히, 메리앤과 이혼 과정 부분에서 전기 작가가 성실하게 그 과정을 추적한 면모가 드러난다. 1982년 매리엔과 이혼에 합의하며 자발적으로 매달 위자료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레이가 작가로 유명해지자 자식을 포함해 일가족들이 레이를 의지하며 돈을 요구한다. “모두들 내 살을 조금씩 떼어가고 싶어해.”(p.715)라고 레이는 회고한다. 레이가 작가생활로 1982년부터 다른 가족들보다 많이는 벌었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정도로 번 건 아니었다. 이런 경제적 상황들 때문에 레이는 소설을 쓰고 또 썼다.
「칸막이 객실」은 메리안과 파경을 맞게 되고 어머니, 동생, 딸이 어려움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걸 지켜보면서 담아낸 작품이다. 「칸막이 객실」에서 아들에게 주려고 산 시계를 도난당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레이가 아들 밴스를 유럽으로 보내면서 시계를 잃어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며 손목시계를 끌러줬었다. 레이는 두 번째 아내이자 작가인 테스를 만나게 된다. 질서가 없는 레이의 삶에 테스는 안정감을 주기 시작한다. “테스가 지은 집은 명백히 레이에게 이상적인 거점을 마련해 주었다.”(p.742). 레이가 책상에 앉으면 바닷가가 보이고 해안선이 보였다. 레이는 자연세계를 철학적으로 시로 담아냈다.
카버는 술을 끊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 “『대성당』을 마무리 지은 것은 그가 중년의 자율과 원숙함에 도달했다는 징표다.”(p.729) 대성당 원고를 편집자 고든 리시에게 보내며 자신의 요구사항을 이렇게 당부한다. “훌륭한, 최고의 편집자로서 이 책에 도움을 주기 바라오. 하지만 내 유령(대필작가)으로서는 말고 말이요.”(p.729) 라고 말이다. 카버는 고든에게 표지디자인, 작품배열은 허용하지만 본문엔 손을 대지는 말라고 당부한다. <대성당>은 테스 갤러거와 존 가드너에게 헌정한다. <대성당>은 8주 만에 3쇄를 찍고 17,000부의 판매고를 올렸으며 레이먼드는 총 41,000달러를 받았다. 작품은 열두 개의 언어로 번역되기도 했다. 지금도 <대성당>은 카버의 대표작이며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당시 미국은 “단편소설이 부흥”(p.750)했던 시기였다. 그 계기는 『존 치버의 단편집』성공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편집자였던 고든 리시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는 『에스콰이어』지에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끈질기게 소개하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전기에는 편집자인 고든 리시와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들이 어떻게 수정을 거치고 재탄생 되었는지 읽을 수 있다.
또한 전기에는 고든 리시와 카버에 관한 애증의 관계도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카버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말로,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에서만 그려낼 수 있는 아름다움”(p.806)을 발견해낼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는 타인에게 엄청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소설에 드러났다. 그래서인지 인물들이 추상적으로 읽히지 않고, 현실 어디에서 봄직한 인물들이라고 느껴진다.
작가로 걷는 마지막 길. 레이는 쉰 번째 생일을 맞아 시애틀 엘리엇 베이 서점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코끼리>를 청중들 앞에서 낭독하며 혹시 읽다가 계속 읽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테스를 대동했다. 폐로 암이 전이되자 테스와 레이는 결혼을 했고 유언장을 작성했다. 밴스, 크리스틴, 메리엔에게 각각 5000천 달러를 남겼고, 부동산과 문학적 자산의 소유권은 테스에게 넘겼다. 그리고 레이는 마지막 책을 마무리하는 일에 맞추어졌다. “난 마지막 바로 그 순간까지 삶 속에 두 발을 딛고 있고 싶어.”(p.866) 카버는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였으며 마지막으로 카버가 원한 것은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아들과 형제, 친구로서, 남편으로서 두 번, 그리고 마침내 작가로서,”(p.866)말이다.
1988년 8월 1일. 레이와 테스는 체호프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각색한 영화 「어두운 눈」을 비디오로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테스는 대학에 강의를 나가면서 레이에게 세 번 입맞춤을 했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8월 2일 레이의 호흡은 거칠어졌고 테스는 말을 건넸지만 레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1988년 8월 2일 해가 뜬 직후, 레이먼드 카버는 사망했다.’(p.874) 한 편의 영화처럼 살다간 레이먼드 카버.
책은 9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다. 레이의 전기를 쓰기 위해 캐롤 스클레니카는 증언자료를 꼼꼼하게 모아 상황을 유추해 써 나갔다. 예를 들어, 의료비 청구서의 병원비 목록을 보고 상황을 기록했으며 테스가 쓴 일기, 그녀의 회고록이나 레이와 함께 다녔던 여행기 등을 자료로 삼았다. 또한, 레이가 주고받은 편지들, 단편작에 들어 있는 내용, 물건구입내역 등을 참고로 했다. 레이먼드 카버와 고든 리시의 만남, 무라카미 하루키의 방문 등 읽을거리는 다양하다. 에필로그엔 사후 카버의 유언장을 두고 재산 다툼을 벌이는 부분까지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매리 안과 두 자녀, 테스가 카버 저작권을 두고 법정 분쟁까지 진행된 상황도 보여준다. 전기작가로서 모든 것을 담아내겠다는 면모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열네 권 분량에 달하는 단편소설을 쓴 작가 레이먼드 카버. 이 전기집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단편소설 작가들 중 가장 영향력 있고, 존경받고, 또 광범위하게 모방되고 있는 작가”(p.880)를 소개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 레이먼드 카버에 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레이먼드 카버는 자신의 삶을 소설에 투영시켰다. 친구인 리처드 포드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두드러진 것은 레이는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썼고, 자기가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의 나약함과 그 나약함을 위로해 주기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말을 자신의 작품 안에 쏟아부었다는 것입니다.”(p.879) 그는 우리의 외로운 삶을 끊임없이 글쓰기로 복원하려고 했던 작가였다.
미국 오리건주 가난한 제재소의 아들로 태어난 카버. 19살에 결혼해 20살에 두 아이의 아빠가 되어버린 카버에겐 청춘의 시절이 없다. 남편과 아버지라는 이름은 2-3년 걸리는 장편을 쓰기엔 무리였다. 생활고 때문에 단편과 시에 매달렸고, 자신의 작품이 고든 리시에 의해 50퍼센트나 난도질(?) 당해도 묵묵했다. 고든 리시와는 조력자로 파트너로 지냈지만, 언젠간 자신의 단편을 온전한 형태로 출간하겠다고 뜻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번번이 실패한다. 두 번의 파산, 두 번의 이혼, 알코올중독, 암 투병을 겪으며 50의 짧은 생을 살다간 카버. 그의 작품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의 단편이 사랑받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있을 법한 고단한 이야기가 때론 아프게 때론 따뜻하게 전해지기 때문 아닐까. 카버의 단편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필독을 권한다.
레이먼드 카버 <풋내기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으로 더 유명하다. 한 작품에 제목이 두 개가 된 이유는 이렇다. <풋내기들>이 카버가 쓴 원제목이고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은 출판사에서 편집된 제목이다. 그러니까 원천 텍스트를 출판사 편집자인 고든 리시에게 넘기면서 제목이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고든 리시는 이 원고를 50퍼센트나 줄여 출판했다. 레이먼드 카버는 50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언젠가는 자신의 단편들을 온전한 형태로 출간하겠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풋내기들>은 편집자가 수정하기 전 레이머드 카버가 쓴 오리지널 원고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풋내기들>에는 총 1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제목은 레이먼드 카버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들>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