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모메식당>처럼
첫 교장 발령을 받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설렘보다 질문이 먼저 찾아온다는 것을.
무엇을 더 이루겠다고 말해야 하는 자리인지,
아니면 무엇을 지켜내겠다고 다짐해야 하는
자리인지 혼란스러워진다.
교장이라는 이름이 사람을 무겁게 만든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잇다가 어느 순간 아주 당연한 답에 도달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온도를
먼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끝에 떠오른 영화가 있다.
일본영화 〈카모메 식당〉이다.
핀란드 헬싱키에 작은 일식당을 연 한 일본인
여성의 이야기다.
손님은 많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화려한 요리도 없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대신 반복하고, 기다리고, 정성을 다한다.
하나둘씩 손님들이 식당을 기웃거린다.
영화 속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픔을 안고 살아가요.”
그래서일까.
카모메 식당의 주메뉴는 오니기리다.
오니기리는 일본식 주먹밥.
그들 말로 일본인의 소울푸드란다.
손으로 직접 쥔 따뜻한 밥 한 덩이,
그 맛을 보는 누군가가 이렇게 말한다.
“이곳에서는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아요.”
그리고 핀란드인의 소울푸드 시나몬롤도
천천히 부풀어 오른다.
계피 향이 공간을 채우고,
달콤함이 공기를 부드럽게 만든다.
시나몬롤은 기다림이 없으면 깊어질 수 없는
맛이다.
카모메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같은 테이블에 앉아,
오니기리와 시나몬롤을 나누고,
커피를 마신다.
말은 많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
외로움도, 어깨의 힘도 조금씩 풀린다.
카모메식당 주인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마지막 날에는 아주 좋은 재료를 사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성대한 파티를 열고 싶어요.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말보다
아름답다.
카모매 식당은 해결책을 제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존재를 허락하는 공간이다.
학교는 어떠해야 할까.
학교 역시 저마다 다른 사정이 모이는 곳이다.
아이도, 교사도, 학부모도 각자의 하루를 품고
이곳에 온다. 그 사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함께 있다.
학교는 그 마음을 재촉하는 곳이 아니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일 수는 없을까.
더 잘하라고 밀어붙이기보다, 괜찮다고 말해 주는
곳일 수는 없을까.
환대란 무엇인가?
조건 없이 문을 열어 두는 일이다.
누군가의 사정을 판단하지 않고 먼저 자리를 내어
주는 일.
성과를 묻기 전에 안부를 묻는 일.
교장은 어쩌면 공동체의 힘을 세게 쥐는 사람이
아니라, 너무 세게 쥐어진 힘을 풀어 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성과의 속도를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학교의 온도를 지키는 사람 같다.
오니기리를 쥘 때는 균형이 필요하다.
너무 단단하면 부서지고,
너무 느슨하면 흩어진다.
시나몬롤은 기다림을 견뎌야 달콤해진다.
학교도 그렇지 않을까.
서두르지 않을 때 하나로 묶이고,
서로를 환대할 때 비로소 달콤해지는 공간.
첫 교장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낯설다.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신규교사처럼 아직 자리가 미숙한 사람이다.
매일 태도를 선택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음을
배우고 익혀 가는 사람이다.
영화 속 여인은 커피를 내리기 전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코피 루왁!”
맛있어지라는 주문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사람을 환대하자,
오늘도 정성을 다하자,
학교가 카모메 식당처럼
오니기리의 온기와
시나몬롤의 달콤함,
따뜻한 커피 한 잔의 여유로,
아이도, 교직원도, 학부모도, 지역의 이웃도 잠시 위로와 위안을 얻을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되게 하자고 매일 주문을 외우자.
거창한 변화를 이루는 일에 힘쓰기보다, 환대를 지켜 내는 일이 먼저라고 주문하자.
그래서
행복 루왁!
우리 학교의 하루가 한 달이 또 일 년이...
행복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