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의 첫 문장은 언제나 세계의 경계를 넘어가듯 우리를 사로잡는다.
이것은 단순히 눈 덮인 풍경을 여는 문장이 아니다.
어떤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익숙한 세계에서 낯선 세계로 건너가는 순간의 감각을 말한다.
봄이다.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다.
육지에서 섬으로 이어진 주홍빛 짙은 대교를 건너간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바다는 낮게 숨을 고르고
그 위를 건너는 나는 아직 일상에 닿지 않은 채다.
그리고 드디어 다리의 끝에 이르면 벚꽃이 '팡' 하고 터진다.
세상은 소리없이 밝아온다.
달려가는 길은 온통 분홍빛으로 덮이고, 바닷바람은 꽃잎을 데려와 하늘 위로 흩뿌려진다.
그 길을 따라 벚꽃의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나의 출근길은 하루에 한번식 다른 계절로 나를 순간이동시켜 놓은다.
인적이 드문 길 위에서 잠시 자동차의 걸음을 멈춘다.
바다 위로 흘러가는 꽃잎들이 빛을 받아 흩날린다.
그 장면은 비현실처럼 아득하다.
나는 그 속에 풍경이면서 또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으로 분리된다.
봄날의 꽃은 어제와 다르고 그제와 다르다.
같은 길 위에서 다른 시간을 건너고 있다는 사실은
나는 이 계절 매일 조금식 달라지는 꽃잎과 나무를 보며 알게 된다.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같은 하루를 사는 것 같지만 어제의 나는 이미 지나갔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다른 나다.
그렇다면 나는 매일 작은 설국을 통과하고 있는 셈이다.
터널을 빠져나오자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듯,
어제의 감각을 지나 오늘의 나로 들어오는 이 짧은 길 위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존재가 된다.
가와바타는 눈의 세계를 통해 사람이 자신을 벗어나
다른 차원으로 스며드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그곳에서는 익숙한 언어가 희미해지고 대신 감각이 먼저 도착했다.
나의 봄도 그렇다.
벚꽃이 터지는 순간 나는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어제의 나와 단절된다.
그 단절은 상실이 아니다.
빛처럼 번지는 새로움에 가깝다.
조금 더 밝아진 시선, 조금 더 느려지는 호흡, 조금 더 가벼워지는 마음...
우리는 거창한 변화만을 변화라고 부르지만
실은 이렇게 계절처럼 스며드는 변화 속에서 조용히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 길을 건너는 일은 단순한 출근이 아니다.
하루라는 세계로 들어가는 통과의식같다.
어제의 나를 뒤로 하고 오늘의 나로 건너가는 설국의 터널.
눈의 나라로 들어가듯, 꽃의 세계로 스며들 듯
오늘 아침 또 하나의 나로 도착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