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 전까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by 뭉클


하퍼 리의 소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버지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매사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 전까지는,
그의 몸속에 들어가 직접 그 몸으로 걸어보기 전까지는
결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단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문장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문장이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지금의 나를 향해 쓰인 말처럼.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이해했다고 믿는 순간에도

우리는 얼마나 많은 오해 위에 서 있는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사랑은 이해를 깊게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확신을 먼저 만들어낸다.
그 확신은 쉽게 판단으로 기울고,

판단은 서서히 멀어지는 거리로 변해간다.

말해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말하지 않은 마음까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다뤄버린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몇 가지로

사람을 설명하려 한다.


새 근무지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교내 청소와 환경을 맡고 있는 분이다.

복도와 계단, 화장실을 돌며 흐트러진 자리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사람.

겉모습은 내 또래였지만 그녀의 시간은

훨씬 더 앞서가 있는 듯 보였다.
흐트러진 머리칼과 창백한 기색,

말은 더디고 문장은 길었다.
그 말투에는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아이 같은 결이 묻어 있었다.

어딘가 어눌했고 웃는 얼굴은 울음 같았다.
울음 같은 그 표정은 수줍은 웃음처럼 보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애매한 결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 대화를 이어가기보다는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는 쪽을 택하고 있었다.


그녀는 특히 분리수거에 엄격했다.
택배 상자의 테이프를 뜯지 않는 일,

개인정보가 남은 채 버려지는 종이들 민감했다.
틀림이 없지만 짜증섞인 단순한 지적과 지시의 문장들은 작은 실수에도 기계마냥 반복되었다.

"테이프와 개인정보는..."

으로 시작되는 훈계는 지루하게 이어졌다.

동료들은 택배를 열다가도

그녀가 다가오면 몸을 움츠렸다.
그 순간이 부담이 되었고 사람들은 점점 거리를 두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그녀의 전부였다.


그날도 교감선생님이 직원휴게실에서 이제 막 도착한 택배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장면을 보자마자 격앙된 목소리로
" 테이프와 개인정보는..." 을 이어가고 있었다.
한 번 시작된 말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나는 결국 한마디를 건네고 말았다.

“여사님, 제 표정을 한번 보세요.
지금 이 표정이 여사님 표정입니다.
제 목소리, 크죠? 여사님 목소리예요.”

짧은 말이었지만 그녀의 하루를 바꾸기에는 충분했던 것 같다.

그날 내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다녔다.
나와 마주치는 일을 피하는 사람처럼
복도를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음 날 불러 차 한 잔을 건넸다.
둘이 나란히 앉아 차를 마셨다.

그녀는 생각보다 조근조근 이야기를 잘 풀었다.

그러다가 생각지 못한 그녀의 지나온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고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

도와주는 이 하나없이 홀로 버텨낸 시간.
막막함 속에서 여러 번 삶을 내려놓고 싶었던 순간들.

식당과 청소 일을 오가며 버티듯 살아낸 날들.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 교육시키며 힘들었던 날들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길었지만 감정은 담담했다.
그런데도 그 말들은 오랜 시간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그러한 시간이 그녀를 꼼꼼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나는 그날 그녀의 삶을 잠시 따라 걸으며

그녀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완전히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그녀가 지나온 시간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도 그녀의 말투는 여전했지만

나에게는 이전과 다르게 들렸다.

어느새 그녀의 세월에 크게 동의하고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쉽게
사람을 몇 가지 특징으로 묶어버리는가.
그리고 그 묶음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믿어버리는가.

이해란 상대를 완전히 아는 일이 아니라
함부로 단정하지 않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때 떠올랐다.
< 앵무새 죽이기> 속 부 래들리.

문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를 이야기로 만들어냈고,
그 이야기 속에서 그는 괴물이 되었다.

아이들은 보지 못한 채 두려워했고,
어른들은 알지 못한 채 단정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래들리의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건네진 마음,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타난 한 사람.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곁을 지켜온 사람이었다.

보이지 않았을 뿐
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 네가 매사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기 전까지는,
그의 몸속에 들어가 직접 그 몸으로 걸어보기 전까지는
결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단다.”


나는 그날 그녀와 함께 그녀의 시간을 들으며

그녀의 몸으로 걸어보았던 걸까.

다른 사람의 몸으로 걸어본다는 것은
끝내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보다 조금 덜 불가능한 일은 할 수 있다.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천천히 판단하고,
한 번쯤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일.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습이
그 사람의 전부일까.
아직 그 사람의 바깥에 서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질문 하나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은 바꾸어 놓는다.

어쩌면 이해란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멈추는 일에 가깝다.

그렇게 멈추어 서서

매사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아야 한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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