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없어진 것은 덤.
학부 3학년 때의 일이었다.
군대를 다녀온 뒤 다시 3학년을 하게 되었을 때였다.
늘 그랬지만, 그때도 큰 사건이 벌어졌다.
3학년 실습수업이 신청자 미달로 인해 폐강이 되어버렸다.
수강 신청을 한 필자는 “뭐, 어쩔 수 없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들 세 시간이나 되는 1학점 짜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3학점 짜리 수업을 다들 들으려는 것의 결과였다.
하지만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실습 없이 지나갈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교수님은 이 사태를 ‘괘씸하게’ 생각하셨고,
결국 전산기구조 수업 시간에 실습을 끼워 넣는 초강수를 두셨다.
전산기구조는 원래 세 시간짜리 3학점 수업이었다.
그런데 교수님은 그중 한 시간을 실습 시간으로 활용하겠다고 선언하셨다.
물론, ‘한 시간 실습’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명목상의 이야기였다.
공식적으로는 한 시간뿐이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실습은 끝나지 않았다.
그 실습을 함께했던 조교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양지아였다.
지아양도 이 강행군을 참으로 힘들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습이 끝나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오실로스코프를 만졌다.
그와 함께 복잡한 배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배선을 고민하지 않고, 여기저기 연결을 하다 보면, 소위 "미친 사람 머리카락" 같이 되었다.
배선이 엉켜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뒤의 머리카락 같았다.
말 그대로 ‘정신없이 꼬여 있는’ 상황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어디서 생겼는지도 몰랐다.
실습을 하면서 머리를 쥐어뜯은 횟수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겨울이었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내렸지만,
실습실 안에서는 학생들의 한숨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다들 녹초가 되어갔다. 하지만 진짜 절망은 따로 있었다.
방학이 다가왔다.
보드를 완성한 사람들은 거의 없었고, 반쯤 동작하는 보드를
조교에게 던져놓고 다들 방학이라고 도망을 갔다.
하지만, 또 교수님의 생각은 달랐다.
“일주일만 방학하고 돌아와라. 보드가 워킹할 때까지 실습은 계속이다.”
학생들은 멘붕에 빠졌다. “방학이 방학이 아니야?!”
하지만 교수님의 엄명이 떨어졌으니, 이를 어길 수는 없었다.
결국 일주일간 짧은 방학을 즐기고 나서 다시 학교로 복귀해야 했다.
다시 실습실로 모여든 학생들은 Z80을 임베디드 시스템의 입문으로 삼아
결국 교수님이 요청한 보드를 다들 성공하였다.
교수님은 실습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한다면 끝까지 하시는 분이었다.
“보드가 동작할 때까지 방학은 없다.” 그 정신을 몸소 실천하셨고,
덕분에 우리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의 실습이 나에게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열어준 중요한 경험이었다.
눈이 내리던 그 겨울,
실습실에서의 끝없는 실험과 배선 작업,
그리고 다시 복귀해야 했던 방학.
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내려는 정신이 그때부터 생긴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