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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 청계천 공구상가 탐방기

by 강무결

제23화 - 청계천 공구상가 탐방기


신기한 공구의 세계

학창 시절 당시 청계천에는 수많은 공구상가가 있었다.

물론 부산 서면에도 공구상가가 있었지만, 그 규모가 청계천에는 못 미쳤다.


연구실에는 생소한 공구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드릴과 나사탭은 연구실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구였다.

드릴 앞에 끼우는 드릴 비트도 용도에 따라 분류되었는데,

콘크리트용은 흰색, 금속용은 검은색, 나무용은 노란색이었다.

작은 드릴비트로 파일럿 구멍을 뚫은 뒤,

점점 큰 드릴비트로 확장하는 방식은 기본적인 작업 순서였다.


연구실에서 공구를 다루는 법을 익히다 보니,

요즘 유행하는 DIY(Do It Yourself) 같은 것들은 따로 배울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드릴 비트뿐만 아니라, 샌드 페이퍼 기능을 하는 드릴 부착 도구도 있었고,

정밀한 드릴링 작업을 위한 드레멜 툴도 존재했다.

필자가 2015년에 다니던 도자기 공방에서 드레멜 툴을 발견했을 때,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당일 저녁에 바로 하나를 구매를 했고, 필자의 집에는 많은 공구들이 있다.

서울로 왔을 때, 거처를 정하고 처음으로 산 것이 공구박스였다.


청계천 공구상가 탐방 미션

연구실에서는 가끔 특정 공구나 전자 부품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으로 원정(?)을 떠났다.

이번에는 교수님의 명을 받아 준수와 필자가 공구를 사러 상경하게 되었다.


교수님의 지령은 간단했다.

"고무망치를 비롯한 리스트에 있는 전자 제품과 공구들을 사와라."

그러나 교수님은 한 가지 더 요구하셨다.

"다녀온 길을 누구나 그 뒤에 따라갈 수 있도록 상세한 지도를 그려오라!"


종로5가역에 내려 청계천으로 향했을 때,

출장 간 두 사람은 종로와 청계천이 그렇게 가까운 줄 몰랐다.

물론 지금도 지하철로 다니는 사람은 모르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공구상가, 전자부품상가, 조명상가, 오디오 잭 판매점 등을 돌아다니며

남침 간첩처럼 지도를 꼼꼼하게 작성했다.


당시에는 카카오맵, 네이버맵이나 티맵 같은 HD 지도, 위성지도 서비스가 없었고,

그나마 필자가 졸업 후 2000년대 초반에는 콩나물이라는 지도 서비스가 있었다.

다음이 콩나물 닷컴을 2004년에 인수하고, 그 뒤에 카카오맵으로 바뀌었다.


교수님의 예전 직업(?)과 자동차 페인트 사건

텔레비전 수리 상가를 지나갈 때 교수님의 과거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교수님께서 가끔 공구나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시는 걸 보면,

아마도 이전에 청계천에서 보시면서 배운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그날 교수님은 또 하나의 미션을 주셨다.

"차량용 페인트를 사와라!" 하지만 문제는,

교수님 차량의 색상이 한국에는 없는 희귀한 **"블랙로즈"**였다는 것.

그 당시에는 자동차 전문점도 흔하지 않았고, 원하는 색상의 페인트를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청계천에서도 찾지 못하고 허탕을 쳤다.


교수님께서는 그 차를 미국에서 구매해서 타시고,

복귀하실 때 배에 실어 한국으로 가져오셨고,

그 비용이 한국에서 새 차를 사는 것만큼 들었다고 하셨다.

물론 당시에 수출한 차량과 국산차의 강판의 강도와 두께가 다르다는 설명을 곁들이시면서...


청계천 원정의 교훈

예전 모바일 단말기 이슈 해결을 위해서 부산에 출장을 갔을 때,

연구실에서 배운 덕분에 전자 부품 몇 개를 즉석에서 구해 정밀 저항기를 만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연구실에서 익힌 공구 사용과 문제 해결 훈련 덕분이었다.

청계천에서 길을 헤매며 지도를 그리고,

필요한 물품을 찾아다니던 경험들은 그 후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교수님은 단순히 물건을 사 오라고 시키신 게 아니라,

자립심과 실전 경험을 쌓게 하시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에, 연구실 출신들은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생존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수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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