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환에게 홀려서(1)

by 신화창조

1974년,

중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여름 방학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7월 초.


우리나라의 홍수환 선수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 더반에서 세계 챔피언에 도전했어요.


당시 우리나라는 매우 가난했고,

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하나 따지 못한 작은 나라였어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의 이미지는 가난하고 힘없는 불쌍한 나라였어요.

권투에서도 1966년 김기수 선수가 미들급 챔피언이 된 이후,

우리나라는 타이틀 도전조차 제대로 해보지 못하는 나라였어요.


우리의 홍 선수도 무명의 젊은 도전자에 불과했고요.


상대는 명성이 자자한 WBA 밴텀급 세계 챔피언 아놀드 테일러 선수.

그야말로

자기 나라 안방에서 화려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

무명의 홍 선수를 상대로 선택한 것이었지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홍 선수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어요.

겨우 스물다섯의 현역 군인 선수였으니까요.


군인의 감투 정신 덕분이었을까요?


긴 비행과 일방적인 홈 관중의 응원을 극복하고,

일방적인 경기 끝에 홍 선수가 뜻밖의 승리를 거두었대요.

15라운드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


요즘 같으면 우리나라도 강한 나라가 되었으니 그저 기쁜 일 정도로 여겼겠지만,

당시는 온 국민이 눈물 흘릴 정도로 감격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냈대요.


그 느낌 아시겠죠?

2002년 월드컵 때의 분위기와 비슷했다고 할까요?

홍 선수는 일약 국민 영웅이 된 거죠.


우리나라는 텔레비전 생중계를 할 수 있는 국력이 안 되어서,

며칠 후 녹화로 볼 수 있었어요.

라디오를 통해서만 실황 중계를 했대요.


그나마

시차 때문에 등교 시간에 중계가 진행되어 우리는 제대로 듣지 못할 뻔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요!


학교 가는 내내 중계를 들을 수 있었어요!

한 마디로 기적이 일어난 거죠.

학교까지는 걸어서 1시간 정도.

집집마다 라디오 볼륨을 올려준 덕분에 우리도 다~~들을 수 있었어요.

그야말로 온 국민이 다~~함께 들은 거죠.


그렇게 주먹을 허공에 대고 휘두르며 학교 앞에 도착할 무렵,

와아아~~! 하는 함성이 하늘과 땅을 뒤흔들었어요!


우리가!

이긴 거예요!

우린 모두 학교 앞에서 껴안고 춤을 췄어요.

경기 후, 홍 선수와 홀어머니의 전화 통화가 중계되었어요.

홍 선수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모친 : “대한 국민 만세다!”

이 대사는 명대사로 남아, 이후 수십 년 동안 유행어가 되었지요.


앗!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

홍 선수가, 이 경기가

어떻게 열네 살 중학생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는지,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번에 이어갈게요.

이 경기가 남긴 이야기와 추억이 참 많네요.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당시로 돌아간 듯 살짝 흥분이 됩니다.


홍수환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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